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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지 못하는 모래, 떠나지 못하는 사람
[시련에 든 한반도 물] ⑥ 영주댐 건설로 수몰 앞둔 금광마을
2013년 05월 07일 (화) 19:05:26 박일규 송두리 조한빛 기자 lklla@naver.com

모래가 흐르던 강에 거대한 모래 산이 쌓여 있다. 모래능선은 강둑을 따라 몇 백 미터나 이어진다. 영주댐 완공을 앞둔 경북 영주시 내성천의 모습이다. 아이들이 놀던 모래톱은 굴삭기가 차지하고, 여유 있게 굽이치던 물길은 직선수로가 됐다. 물고기들이 거슬러 오르던 여울도, 장난꾸러기들이 물장구쳤을 개울도 사라졌다. 백로 한 마리가 날아와 물길에 발을 담그더니 이내 떠나버린다. 파헤쳐진 강가에 남은 건 육중한 건설장비뿐이다.

   
▲ 영주시 문수면 무섬마을 앞을 흐르는 내성천. 평은면 금광리 앞 내성천도 공사 전에는 이런 모습이었다. ⓒ 박동주

“학교 바로 앞에 흐르던 내성천은 그 자체로 우리들 운동장이었어요. 세계적으로도 이런 모래 강은 없다고 하잖아요. 보드라운 모래 위를 맨발로 뛰어다니다가 더우면 강에 뛰어들어 멱도 감고 고기도 잡고 했는데...”

영주시 평은면 금광마을에서 나고 자란 박성명(51)씨는 내성천과 함께 유년시절도 잃게 됐다. 동네 친구들과 공 차던 학교 운동장, 쉬는 시간만 되면 시끌벅적했던 복도, 선생님께 야단맞던 교무실이 모두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마지막 운동회’가 열린 평은초등학교 운동장은 박씨처럼 유년을 잃게 된 졸업생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은 학교를 떠나고 학교는 마을을 떠나고

현재 평은초등학교 전교생은 13명. 작은 시골 학교지만 4년 전까지만 해도 60여명 학생들이 있었고 매년 입학생도 들어왔다. 하지만 2년 전 정부에서 영주댐 건설로 폐교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학생수가 급격히 줄었다. 올해 초 입학 예정이었던 8명 모두 주소지를 옮겨 시내 학교로 갔다. 91년간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던 학교는 학생이 끊기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 '모교에서의 마지막 운동회'가 열리고 있는 평은초등학교. 뒤편으로 댐 건설로 깎여나간 산들이 보인다. ⓒ 송두리

“아무리 설득해도 ‘당신 같으면 애를 여기에 입학시키겠냐’는 거야, 맞는 말이잖아. 총동창회에서 장학금을 지급하고 통학버스도 운영한다는 조건을 내걸어 (주소지를 옮겼던 8명 가운데) 겨우 3명을 데리고 왔어.”

동창회의 자발적인 노력 끝에 학교는 폐교 대신 이전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총동창회 사무국장 서건석(58)씨는 “십 몇 년 된 폐교를 리모델링해 그곳으로 옮긴다”며 “여섯 학급이 안 나와서 교실을 반으로 나누는 등 말이 안 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까지 했지만 또 애들이 들어오겠냐는 체념도 (졸업생들 사이에) 있다“고 덧붙였다.

마을은 물에 잠기는데 이주단지는 터도 안 닦여

영주댐 건설로 평은면 지역 564세대가 수몰된다. 이곳에 400년 동안 터를 잡았던 인동 장씨 집성촌도 뿌리를 잃는다. 서씨는 “내성천 중상류(평은면ㆍ이산면 일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대구, 구미 등지에 공업용수를 공급해야 한다는 이유로 보금자리를 잃게 됐다”며 “수년을 함께 쭉 살아온 집안사람들이 댐 때문에 뿔뿔이 흩어지고, 대대로 모셔온 조상묘도 다 파헤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 과정에서 벌어진 예상치 못한 문제는 마을을 더 빠르게 와해시켰다.

   
▲ 댐 건설에 장애가 되는 지장물 철거와 수몰민의 이주 및 이주신청을 요구하는 현수막들. ⓒ 조수진

“부모가 농토를 가지고 있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댐으로 보상비를 받고 이를 상속 개념으로 자식들한테 나눠주다 보니까 부모 자식, 부모 형제간에 소송까지 하는 사태가 발생해. 거액의 이주비를 노리고 접근하는 사기꾼도 있고... 관계가 다 끊어지고 고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어.”

수몰 이주민은 평당 만원 꼴인 130평 규모의 이주단지에서 살 것인지, 이주비 약 4,500만원을 받고 다른 곳으로 나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시내로 이사 나갈 형편이 안 되거나 고향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은 주민들에게 문제가 있다. 이주단지 예정 부지는 세 곳인데 한 곳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올해 말 완성을 목표로 댐 건설을 밀어붙이는 정부가 정작 이주민의 새 보금자리 마련은 ‘나 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윤상(81)씨 역시 마냥 기다리지도, 당장 이사 가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우리 귓골에 있는 스물두 집 중 여덟 집이 광동 2리 이주단지로 갈 예정인데 정부에서 아직 터도 안 닦았어. 장사하거나 원래 땅 좀 있던 사람들 아니면 당장 집을 어디로 옮기란 말인지. 정부가 댐 만든다는 목표만 세우고, 나머지 일은 거꾸로 하고 있어.”

짐승도 고향으로 머리 두고 죽는다는데...

광동리 제일 어른이기도 한 김씨는 고향을 경제적 가치로만 따질 수 없다. 그가 자식들 집으로 거처를 옮기지 않고 이주단지를 선택한 것도, 일생을 함께한 마을 사람들과 떨어져 친구도 없이 보낼 여생이 걱정돼서다. 김씨는 “농사만 짓고 살던 노인네들이 시내 아파트 가서 뭘 하겠냐”며 평생 살아온 터전을 떠난 사람들이 뒤늦게 다시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 모래산으로 뒤덮인 내성천. ⓒ 조수진

여든 넘는 세월이 지났어도 김씨는 내성천 윗물과 아랫물에 남녀 각각 따로 모여 목욕하고, 해 지면 강둑에 불을 놓아 쥐불놀이하던 때를 선연히 기억한다. 그는 “함께한 친구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지금 혼자 남아 강을 기억하는 건 축복이 아니라 벌”이라며 “그 강마저 다 사라지면 오직 나만 남는 것”이라고 말했다.

“짐승도 죽을 땐 고향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데, 우린 이제 고향을 잃었으니 눈도 제대로 못 감겠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휘돌아나가던 실개천도, 농부가 삽을 씻던 저문 강도 이제 옛 시구로만 남게 되는 건가? 청계천에서 시작된 삽질은 4대강을 온통 파헤쳐놓더니 ‘지천(支川)정비’라는 미명으로 전국의 개천들을 콘크리트로 싸바르고 있다. 굽이굽이 흘러가며 온갖 생명을 키우는 게 하천의 역할이고 본모습이건만 ‘직강(直江)공사’라는 이름 아래 여울과 둔치를 없애는가 하면, 보를 건설해 물길을 막고 물과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친수시설’을 마구 건설해 하천을 괴롭힌다. 녹조 현상은 하천을 못살게 구는 무지막지한 개발주의에 대한 마지막 경고인지도 모른다. <단비뉴스>가 단군 이래 최대 시련에 처한 물길의 현장들을 찾아 나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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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빛 기자]
단비뉴스 전 전략부장, 미디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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