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음악인과 함께하는 공연기획팀 ‘프로튜어먼트'

“프로튜어먼트는 기성 기획사와 다릅니다. 자칫 기획사 소속의 연습생 아니냐는 의혹이나 악성댓글에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걱정입니다.”

에스비에스(SBS)의 오디션(경연)프로그램 <케이(K)팝스타 시즌2>의 첫방송 다음날인 지난해 11월 1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K팝스타′ 게시판에 ‘안녕하세요. 악동뮤지션 프로필에 올라와 있는 프로튜어먼트 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이런 내용으로 올라왔다.

프로튜어먼트는 지난달 8일 SBS <K팝스타 시즌2>에서 우승한 ‘악동뮤지션’의 ‘소속사’로 잘못 알려져, 어떤 곳인지 궁금해 하는 네티즌들에 의해 홈페이지가 일시적으로 마비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기획사가 아닌 대학생 프로젝트팀”이라고 해명하고 나선 것이다.  

프로튜어먼트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과 아마추어(amateur), 매니지먼트(management)를 결합한 말이다. 프로 무대를 지향하는 아마추어 청년뮤지션들이 그들의 재능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매니지먼트(관리)팀을 의미한다. 송준호(29․인천대 경영4)대표를 포함한 7명의 대학생 팀원이 30여 음악그룹을 ‘협력 파트너’로 지원하고 있다. 음악을 생업으로 삼고자 하는 청년들, 특히 작곡 실력이 있는 뮤지션이 많은데 10대 남매로 구성된 악동뮤지션도 지난해 5월부터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전속 계약 대신 뮤지션과 ‘협력’하는 기획사

프로튜어먼트가 기성 기획사와 다른 점은 무엇보다 뮤지션과 전속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함께하는 청년음악인들을 ‘소속’이 아닌 ‘협력’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기성 연예기획사들과 달리 프로튜어먼트는 청년뮤지션이 다른 기획사와 함께 일하는 것을 막지 않고, 오히려 대형 소속사를 찾는 등 더 큰 무대로 나가는 것을 장려한다.

 

▲ 프로튜어먼트 송준호(29)대표는 청년 뮤지션의 생활고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 허정윤

공연 수익을 뮤지션들에게 공개하고 매 건마다 사전협의를 하는 것도 다른 점이다. 기존 매니지먼트사들은 ‘재투자를 해 준다’는 명목 등으로 소속 연예인 활동수입의 80% 이상을 챙기는 경우도 많지만 프로튜어먼트는 30% 정도만 가져간다. 만약 수익금이 일정 기준보다 낮으면 뮤지션들에게 공연수입 전액을 양보한다고 한다.

프로튜어먼트의 남다른 행보는 ‘제도 개선은 멀고 현실은 갑갑한 상황’을 해결하려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지난 2011년 1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당시32세·여)씨가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리다 숨진 일을 계기로 지난해 11월부터 예술가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는 ‘예술인 복지법’이 시행됐지만 출발선에 선 청년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최근 5년간 실적이 있는 예술인만 지원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청년뮤지션 입장에서는 인정받을 만한 ‘경력’을 쌓는 일이 만만치 않다. 무대를 제공할  공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큰 행사는 대형 기획사들이 맡기에 일정 수준의 명성이 없으면 참여하기 어렵다. 지난해 2월 인디밴드 축제 ‘유데이페스티벌’ 조직위원회와 청년유니온이 발표한 ‘청년뮤지션 생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청년음악인 221명 중 48%가 공연, 저작권료, 강습 등 음악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전체 소득의 10분의 1 미만이라고 답했다. 적은 수입마저 음악관련 활동을 통해 얻지 못하고 시간제일 등 별도의 경제활동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명의 청년뮤지션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어느 정도 공연료를 받으며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무대다.

저비용 공연시장 틈새를 노리다

프로튜어먼트의 활동은 지난 2008년 7월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의 한 프랜차이즈 맥주 전문점에서 연 개업행사가 시작이었다. 대학생들이 ‘스스로 꿈을 찾자’는 취지로 모인  커뮤니티 ‘카르페디엠’에 참여하고 있던 송 대표에게 우연한 계기로 공연기획의뢰가 들어왔다. 송 대표는 아마추어 음악인 8팀을 섭외해 무대에 올렸는데 현장의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아마추어팀들의 공연을 보고 ‘신선하다’고 호평한 것이다.  그날 공연한 8팀은 각각 15~20만 원의 공연료를 받았다.

송 대표는 여기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찾아보니 모든 행사가 값비싼 프로를 찾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열풍 등으로 소규모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었고 이들이 주최하는 행사에는 적은 공연료에도 나와 줄 수 있는 뮤지션이 필요했다.

“소규모 공연무대는 시장이 작기에 공연료도 적습니다. 대신 공연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형 기획사에서 건드리지 않죠.”

 

▲ 어쿠스틱 밴드 걸뱅이는 프로튜어먼트의 도움으로 인천의 한 라이브카페 무대에 올랐다. 왼쪽부터 걸뱅이 멤버 박정진(29), 이유승(29), 김성은(29)씨. ⓒ 박준용

프로튜어먼트는 2011년 7월 인천 신포동지역 활성화를 위해 지역상가와 청년단체, 문화단체 등과 함께 거리공연 무대를 만들었다. 지난해 6월에는 인천 연고의 프로야구팀 에스케이(SK)와이번스와 제휴해 홈경기 종료 후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청년 열정 콘서트’를 열었다. ‘버스킹포유(Busking for you)’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매주 금요일 청년뮤지션들의 공연을 조직해 한강을 찾은 시민들에게 음악을 선물하기도 했다. 12월에는 프로튜어먼트 단독으로 공연 ‘플리즈터치미(Please touch me)'를 기획해 협력 뮤지션 6팀을 서울 숭실대학교 소극장 무대에 올렸다. 이외에도 공연 주최측과 청년뮤지션들을 연결해 주거나, 공연무대를 직접 기획했다.

이런 활동으로 지난해 프로튜어먼트가 올린 매출은 약 1800만원, 순이익은 100만원에 불과하다. 많은 활동에 비해 매출액 등이 적은 것은 전체공연 중 85%가 사회공헌 행사로 공연료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씨앗을 뿌리듯 공연 시장에서 좋은 이미지를 쌓으면 장기적인 수익의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청년뮤지션들도 행사의 성격을 이해하고 공연료 없이 무대에 섰다.   

이렇게 수입이 보잘 것 없으니 재투자에는 한계가 있다. 지난해 12월 악동뮤지션 등 프로튜어먼트 협력 7팀이 만든 합작앨범이 인디밴드 음반전시장인 ‘레이블 마켓’에 전시되기도 했지만, 한 번에 수십만원씩 드는 녹음실 비용을 아끼느라 사무실에서 녹음을 한 날도 있다고 한다.

컬티베이트(cultivate), ‘키우는’ 것이 목표

프로튜어먼트와 협력하는 청년뮤지션 중 인지도가 높아진 그룹이 생기자 주변에서는  “이적료를 받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튜어먼트는 이를 거부했다. 청년뮤지션들을 상업적 가치로 판단하는 순간 인연이 끊어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우리가 돈을 주는 무대를 연결하니까 돈에 관심이 많겠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내다 보니 청년 뮤지션들의 주된 욕구는 돈이 아니라 그들끼리의 네트워크였죠.”

 

▲ 프로튜어먼트 매니지먼트 팀과 청년 뮤지션들은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 프로튜어먼트

프로튜어먼트는 페이스북의 그룹기능(www.facebook.com/proteurment) 등을 활용해 협력 아티스트들 간의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만난 청년뮤지션 간에 협연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11월 발매한 컴필레이션(모음) 앨범은 그 결과물이다. 앨범에는 메이엔 줄라이(대표곡 ‘난’), 수정별밴드(‘왼손오른손’) 등이 참여했다.

프로튜어먼트와 협력관계인 어쿠스틱밴드 ‘걸뱅이’의 멤버 박정진(29․인천)씨는 “공연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적네트워크가 없었는데 프로튜어먼트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친한 뮤지션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프로튜어먼트는 단순히 공연무대를 마련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송 대표는 최종목표가 음악을 통해 ‘키우자’는 뜻의 ‘컬티베이트(cultivate)’라고 말했다. 음악을 통해 삶을 유지하는 문화(culture)를 만들어, 잘 된 모델을 다른 곳에도 옮겨 키우자(incubate)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예전엔 노래실력으로 가수가 됐는데 요즘은 돈으로 재능도 만들어진다고들 해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청년뮤지션들은 대중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좁고요. 경제활동과 인적 네트워크를 지원해서 그들의 디딤돌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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