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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엔 늘 그들이 있었다
카메라로 기록한 ‘시대와 사람’, 제49회 한국보도사진전
2013년 04월 07일 (일) 14:23:52 김동현 기자 kailok@naver.com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이 있다. 운(運)이 칠할이고, 기술(技術)이 삼할이라는 뜻으로 흔히 도박판에서 운을 강조하는데 쓰이지만, ‘찰나의 순간’을 잡아야 하는 사진기자의 세계에서도 통하는 얘기라고 한다. 지난달 13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막된 제 49회 한국보도사진전에는 2012년 일간지, 주․월간지 등을 장식한 수많은 보도사진 중 기량과 운이 잘 결합돼 강렬한 인상을 준 작품들이 전시됐다. 지난달 23일 도슨트(전시물 설명자) 역할을 맡은 한국일보 홍인기 기자는 “좋은 사진을 찍는 데는 운이 7할 이상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 왼쪽부터 1964년(코리아 헤럴드 최종수), 1970년(경향신문 최혜영) 대상작품. ⓒ 김동현

전시장 입구 쪽에는 1962년 보도사진전이 시작된 이후 대상을 수상한 역대 작품들이 전시됐다. 1964년 ‘한일협정반대’를 외치며 최루탄 속을 헤매는 하얀 한복 차림의 이화여대 학생들,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활짝 웃는 수영선수 조오련의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피투성이가 된 채 구조를 기다리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피해자, 2011년 국회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동의안 날치기 처리에 항의하며 최루가루를 뿌리는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의  모습도 보는 이들을 역사의 순간으로 데려갔다.

   
▲ 왼쪽부터 1995년(조선일보 김창종), 2011년(경향신문 김창길) 대상작품. ⓒ 김동현

1991년 28회 대상 수상작인 ‘정원식 총리 폭행’은 국무총리로 임명된 정원식씨가 한국외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할 때 벌어진 사건을 담았다. 사진 속 정원식 총리는 운동권 학생들에게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아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가 문교부장관 재직 시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의 해직을 주도했다는 이유였는데, 강의실에서 그에게 발길질을 한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홍인기 기자는 “이 한 장의 사진이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안 좋게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1991년(대전일보 전재홍), 1996년(중앙일보 김경철) 대상 작품. ⓒ 김동현

1996년 33회 대상수상작 ‘창밖 세상이 궁금했나’도 많은 이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경찰병원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사진이었다. 안양교도소에서 단식 투쟁으로 건강이 악화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경찰병원으로 이송된 후 병실에만 머물렀다. 좀처럼 포착할 수 없는 그의 모습을 한 사진기자가 오랜 기다림 끝에 찍었다. 홍 기자의 설명에 따르면 중앙일보 김경철 기자는 인근 아파트에서 6일 밤낮을 카메라 렌즈에서 거의 눈을 떼지 않고 기다리다가 ‘그 순간’을 담았다고 한다.

2012년을 돌아볼 수 있는 작품도 풍성

   
▲ 2012년(중앙일보 조용철) 대상작품 ‘당원에게 머리채 잡힌 당대표’. ⓒ 김동현

역대 대상작 전시가 끝나는 지점에서 여섯 개 부문으로 구성된 2012년도 수상작 전시가 이어진다. 2012년 대상은 중앙일보 조용철 기자가 찍은 ‘당원에게 머리채 잡힌 당대표’다. 당시 통합진보당 대표였던 조준호 씨의 머리를 악착같이 잡아채는 한 여성당원의 모습은 당의 내분을 포함한 현장 분위기를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적나라하게 전달했다. 그 자리에는 사진기자와 취재기자 등 총 100여명의 취재진이 있었지만 이 장면을 잡은 사진은 단 한 장이었다.

   
▲ 왼쪽부터 ‘안철수의 진심은?’(세계일보 김범준), ‘독도는 우리 땅’(스포츠조선 송정헌). ⓒ 김동현

‘사람을 읽다, 시대를 읽다’를 주제로 한 2012년 보도사진전에는 총선과 대선, 런던올림픽을 담은 사진들이 풍성했다. 대통령선거전을 담은 사진 중에는 안철수 전 후보의 기자회견 장면이 흥미롭다. 당시 안 전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협의를 당분간 중단한다고 밝힌 뒤 회견장을 나갔는데, 그 모습이 연단에 비친 그림자로 사진에 담겼다. 평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안 전 후보의 그림자가 연단에 쓰인 ‘진심’이란 글자와 대비되면서 긴 여운을 남겼다. 또 폭우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연설하는 박근혜 후보, 배춧잎을 머리에 덮은 익살스런 모습으로 배추상인과 대화하는 문재인 후보 등 대선 후보들의 인간적인 모습도 많았다. 대선 사진들을 지나면 ‘독도 세레모니’로 파문을 일으킨 축구대표 박종우 선수의 모습을 필두로 런던올림픽의 다채로운 장면들이 전시의 끝을 장식한다.

전시장을 둘러본 대학생 상희영(23·서울)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이 가장 인상깊었다”며 “보도사진이 재치 있고 예술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 세계일보 남제현 기자가 찍은 '연막소독기 작동 시연을 촬영하는 사진기자'. ⓒ 김동현

전시관을 나가는 출구에는 보도사진을 찍는 기자들의 모습이 ‘양념’으로 진열됐다. 사진기자들은 뿌연 연막 속에서도, 눈이 어깨까지 쌓이는 폭설의 현장에서도, 출렁이는 바다의 조각배 위에서도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혼신을 다해 셔터를 누른다. ‘운이 칠할’이라고 하지만 그 운을 잡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웅변하는 사진들이었다.

2012년의 주요 사건과 한국 근현대사의 모습들, 그리고 사진기자들의 열정까지 보여주는 제 49회 한국보도사진전은 오는 9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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