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식물 멸종 막으며 한반도 생태를 지키는 김남영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식물팀장

경북 영양군 영양읍 대천1리의 한적한 논밭 가운데 현대식 건축물이 우뚝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건물을 잇는 통로 아래 출입구가 있다. 생태 통로를 닮은 그곳에 ‘환경부 멸종위기종복원센터’라고 적혀 있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이하 복원센터)는 한반도의 멸종위기종을 지키고 되살리는 핵심 기관이다. 2018년 만들어졌지만, 그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단비뉴스>는 환경 보호의 최전선에 있는 복원센터를 널리 소개하고 싶었다. 복원센터의 여러 팀장 가운데 '멸종위기종 방사·이식 모니터링' 과제의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는 김남영(46) 식물팀장을 지난 10월 이후 대면, 온라인, 전화 등으로 여러 차례 인터뷰하고, 현장을 직접 찾아 취재했다.

경북 영양군에 있는 환경부 국립생태원의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멸종위기종을 관리하고 증식해 방사·이식하는 일을 한다. 전나경 기자
경북 영양군에 있는 환경부 국립생태원의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멸종위기종을 관리하고 증식해 방사·이식하는 일을 한다. 전나경 기자

한반도의 초록 평화를 지키는 55명의 어벤저스

2023년 12월 현재, 환경부가 지정한 한반도 멸종위기종은 282종이다. 이 가운데 동물은 187종, 식물은 95종이다. 이들은 멸종위기의 정도에 따라 다시 두 등급으로 나뉜다. 멸종되기 직전인 I급은 68종이고, 개체 수가 줄어 곧 멸종위기에 처할 것으로 예상되는 II급은 214종이다.

모든 멸종위기종의 위기 등급 딱지를 떼어내겠다는 이들이 복원센터에 모여 있다. 복원센터의 두 축은 ‘복원전략실’과 ‘복원연구실’이다. 그 가운데서도 복원연구실은 멸종위기 생물을 증식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핵심 조직이다. 복원연구실엔 복원연구팀 7명, 포유류팀 10명, 조류팀 9명, 어류·양서·파충류팀 11명, 곤충·무척추동물팀 9명, 그리고 식물팀 9명 등 모두 55명이 일한다. 이들은 멸종위기종의 생태를 연구하고, 이를 증식할 방법을 찾아내어, 센터 안에서 생물을 키우고, 키운 생물을 자연으로 보낸 뒤, 그 생물이 자연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관리한다.

2018년 환경부는 멸종위기종 가운데 우선 복원 대상 25종을 선정했다. 그래픽 전나경 기자
2018년 환경부는 멸종위기종 가운데 우선 복원 대상 25종을 선정했다. 그래픽 전나경 기자

멸종위기에 처한 282종의 운명이 이들에게 달린 셈인데, 인력과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지켜야 할 생물에 우선순위를 정해뒀다. 2018년 환경부는 ‘우선 복원 대상’ 25종을 선정했다. 동물은 19종, 식물은 6종이다. 소똥구리, 남생이, 양비둘기, 산양 등이 우선 복원 대상 동물이다. 우선 복원 식물은 나도풍란, 만년콩, 가는동자꽃, 서울개발나물, 신안새우난초, 한라송이풀 등이다. 어느 생물 하나 덜 중요한 것이 없지만, 세간의 관심은 아무래도 살아 움직이는 동물에 쏠린다. 김남영 식물팀장은 그 점이 안타깝다.

김 팀장은 생태계를 비행기에 비유했다. 나사 하나가 풀린 비행기가 이륙하면, 비행 중에 여러 부품이 하나씩 빠지다가 결국 추락한다. 생태계에서도 “한 종이 사라지고, 그 영향으로 다른 종이 없어지면, 여파가 점점 커진다”고 김 팀장은 설명했다. 서로 연결된 생태계에서 모든 종은 중요하다. 동물보다 식물이 더 중요하진 않지만, 동물만큼 식물도 매우 중요하다.

환경부가 수립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종합계획 2018~2027’에 따라, 복원센터 식물팀은 지금까지 나도풍란과 가는동자꽃을 이식했다. 내년부터 서울개발나물을 비롯해 다른 식물들도 이식할 예정이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선 다양한 멸종위기종 식물이 자란다. 만년콩(왼쪽), 신안새우난초(오른쪽). 김정현 기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선 다양한 멸종위기종 식물이 자란다. 만년콩(왼쪽), 신안새우난초(오른쪽). 김정현 기자

그런 식물팀을 이끄는 김남영 팀장의 고향은 강원도 강릉이다. 산이 많은 곳에서 자라난 덕분에 어릴 때부터 식물을 자주 접했다. 식물을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에서 산림자원학을 공부했다. 그중에서도 생태학을 전공으로 삼아, 석사와 박사 공부까지 마쳤다.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산림청이 지정한 희귀식물인 ‘꼬리진달래’ 연구로 학위 논문을 썼다. 식물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인정받아, 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개원하던 2018년 식물팀장의 책임을 맡게 됐다.

모든 종이 연결된 생태계

지난 10월 경북 영양에 있는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 김남영 식물팀장이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현 기자
지난 10월 경북 영양에 있는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 김남영 식물팀장이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현 기자

김 팀장을 비롯한 복원센터 연구자들이 일하는 방식도 생태계의 동식물과 비슷하다. 여러 동식물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것처럼 연구자들도 밀접하게 소통하며 함께 일한다. 예를 들어, 나도풍란을 어디에 이식하면 좋을지 찾는 작업을 식물팀과 곤충팀이 함께 진행했다. 나도풍란은 곤충을 이용해 꽃가루를 운반하는 충매화다. 그 꽃가루를 옮기는 것은 뒤영벌류이다. 나도풍란이 종자를 맺고 번식하려면 뒤영벌류가 존재하는 환경을 찾아야 했다. 반대로 동물팀이 산양 방사지를 찾을 때는 식물팀이 함께 했다. 산양이 먹는 풀이 무엇인지 아는 연구자들은 식물팀에 있기 때문이다.

생물의 모든 분류군을 연구하는 이들이 복원센터에 모여 있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종 간 연결성을 고려하면서 멸종위기종을 되살릴 수 있다. 어느 한 종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복원센터의 목표다.

멸종위기식물의 성장 3단계

식물은 조직 배양실에서 발아를 시작한다. 나도풍란(왼쪽)과 석곡(오른쪽). 김정현 기자
식물은 조직 배양실에서 발아를 시작한다. 나도풍란(왼쪽)과 석곡(오른쪽). 김정현 기자

생태계 전체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는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복원센터의 조직 배양실에서 멸종 위기 식물의 싹을 틔운다. 손가락 길이만큼 자란 작은 식물이 검은 배양액에 뿌리를 내리고 무균·진공 상태의 병에서 자란다. “일반 흙이 아닌 무균 상태에서 식물 발아율이 더 높아진다”고 김 팀장은 설명했다. 진공병이 식물의 인큐베이터인 셈이다.

조직 배양실에서 성장을 마친 식물은 생장실에서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단계를 거친다. 김정현 기자
조직 배양실에서 성장을 마친 식물은 생장실에서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단계를 거친다. 김정현 기자

어느 정도 자라면, 인큐베이터를 나와 생장실로 옮겨간다. 여기서 식물은 세상에 적응한다. 무균 상태였던 조직 배양실에서 자연환경 그대로의 공간에서 3~6개월 동안 지낸다. 흙이나 이끼 등으로 채운 화분에서 식물은 더 강하게 자란다. 줄기가 거의 없고 긴 타원형의 초록빛 잎을 가진 나도풍란의 자태도 생장실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식물들은 차광막과 습기 장치로 환경을 조절할 수 있는 온실에서 1~2년 더 성장하고 나서야 이식된다. 김정현 기자
식물들은 차광막과 습기 장치로 환경을 조절할 수 있는 온실에서 1~2년 더 성장하고 나서야 이식된다. 김정현 기자

마지막으로 식물은 복원센터의 온실로 옮겨진다. 천장의 습기 장치를 통해 일정 습도를 유지하고 차광막으로 햇볕까지 조절하는 시설이다. 이곳에는 여러 식물이 함께 어울려 자란다. 온실에서 연구원들의 손도 바빠진다. 상록식물은 온실 속에 있는 작은 온실로 옮겨 키운다. 습지에 사는 식물의 화분에는 물을 채워둔다. 식물마다 적절한 비료를 주고 수시로 분갈이한다. 수정해 줄 곤충이 필요한 식물은 연구원들이 직접 핀셋으로 꽃가루를 옮긴다. 여기서 얻은 씨앗은 다시 조직 배양실로 옮겨 싹을 틔운다. 연구원들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1~2년을 온실에서 보내면, 드디어 자연으로 옮긴다.

최적의 이식지를 찾는 시행착오

2021년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전남 신안군 홍도에 나도풍란 150개체를 이식했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제공
2021년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전남 신안군 홍도에 나도풍란 150개체를 이식했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제공

그렇게 자연으로 이식한 여러 식물 가운데 김 팀장의 기억에 가장 뚜렷하게 남은 것은 나도풍란이다. 복원센터 식물팀이 오랜 준비를 거쳐 처음 이식한 식물이 나도풍란이었다.

첫 단계부터 어려웠다. 나도풍란은 자연에서 거의 사라져 종자를 구하기 어려웠다. 2019년 12월, 제주도 비자림에 있는 나도풍란 복원지에서 종자 꼬투리 2개를 채취해 증식했다. 1년이 넘도록 복원센터에서 보살펴 키웠다. 마침내 2021년, 전남 신안군 홍도에 나도풍란 150개체를 이식했다. “다 실패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반, 많이 살았으면 싶은 기대감 반이었다”고 김 팀장은 당시를 떠올렸다.

기온, 습도, 광량, 풍속 등 환경조건에 차이가 있는 세 지점에 각 50개체씩 나누어 나도풍란을 심었다. 여섯 달 뒤에 보니, 150개체 가운데 109개체가 살아 있었다. 1년 뒤에 확인하니, 4개체만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의 나도풍란이 연둣빛이 도는 흰 꽃을 피워 올렸다.

150개를 이식하여 4개가 살고 1개만 꽃을 피웠으니 실패일까. 김 팀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나눠 심은 세 지점 가운데 섬 남쪽의 상록활엽수림에 이식한 나도풍란의 생존율이 가장 높았다. 나도풍란을 이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멸종위기종 Ⅰ급인 나도풍란은 2021년 전남 신안군 홍도에 이어 지난 9월 신안군 가거도에 이식됐다. 전나경 기자
멸종위기종 Ⅰ급인 나도풍란은 2021년 전남 신안군 홍도에 이어 지난 9월 신안군 가거도에 이식됐다. 전나경 기자

나도풍란의 이식은 계속된다. 지난 9월에는 전남 신안군 가거도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섬의 남사면에 심었다. 그렇게 멸종위기 식물을 자연에 이식하는 날이면, “자식을 세상으로 보내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김 팀장은 말했다. 자식에게 부모가 기대하는 바와 똑같이, 멸종위기 식물이 세대를 이어 자연에 잘 정착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그의 기쁨이고 보람이다.

김 팀장의 기쁨을 앗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야생식물을 뿌리째 채취하는 사람들이다. 식물 사진을 예쁘게 찍겠다면서 함부로 훼손하는 사람들이다. 애초에 나도풍란이 멸종위기를 맞은 것도 그런 사람들 때문이다. 집에서 관상용으로 즐기기 위해 함부로 채취한 탓에 자연의 나도풍란이 사라졌다.

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김 팀장의 말이 있다. “야생식물은 자연에 두고 보는 게 가장 아름답지요.” 나도풍란을 되살리려면, 뒤영벌이 있어야 하고, 김남영 팀장을 비롯한 멸종위기종복원센터의 노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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