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지하차도 참사 100일]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이야기

지난 22일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난 7월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에 있는 미호천이 집중호우로 넘치면서 궁평2지하차도가 물에 잠겼다. 모두 14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경찰과 검찰 수사가 시작됐고, 국정감사도 열렸지만 진상 규명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관계기관들의 모습에 유족들과 생존자들은 힘을 합쳐 사람들 앞에 섰다. 이들은 100일 동안 어떻게 버티고 있었을까. 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100일에 대해 들었다.

7월 15일, 그의 일상이 멈췄다

지난 7월 16일 소방당국이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정윤채 기자
지난 7월 16일 소방당국이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정윤채 기자

A씨는 지난 7월 15일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동생 B씨를 잃었다. 서른 살 B씨는 청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였다. 결혼한 지 이제 막 두 달이 된 새신랑이기도 했다. 참사 당일 B씨는 입사 시험을 보러 가는 처남을 오송역에 데려다주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 B씨는 극적으로 지하차도를 빠져나왔지만, 구조대원을 기다리다 끝내 숨졌다. B씨는 희생자 중 첫 번째로 발견됐다. 그가 발견된 곳은 지하차도 외부에서 불과 100m도 안 되는 지점이었다.

지난 18일 청주의 한 카페에서 A씨를 만났다. A씨는 “시간이 이만큼 흘렀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가는 게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의 앞에서, A씨에게 내일은 더 이상 ‘내 일’이 아니게 됐다.

그날 오전, A씨는 여행에서 막 돌아와 청주공항에 도착한 상태였다. 동생이 있는 지하차도로 당장 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은 직후 A씨는 택시를 잡아 현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곳이 어디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구조대원을 통해 어렵게 위치를 받았지만, 진입로가 통제돼 있어 택시를 타고 지하차도 주변만 뱅글뱅글 돌았다.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동생이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A씨는 동생을 찾아 헤맨 지 몇 시간 만에 병원 응급실에서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동생은 심정지 상태로 의료진들에게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다. A씨의 어머니는 의료진을 붙들고 “제발 살려 달라”고 오열했다. 하지만 동생의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다.

상황을 미처 다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로 동생의 장례가 시작됐다. 청주시청에서 유가족 전담 공무원이 나왔지만,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별로 없었다. 장례가 시작된 이튿날, 청주시청 소속 한 공무원이 A씨 동생의 빈소를 찾아왔다. 공무원은 A씨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달라”고 했다. A씨는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공무원은 장례비 지원 등 비용에 관한 설명만 반복했다. 당시 A씨에게 필요한 건 장례비용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왜 이런 참사가 났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A씨는 그가 유가족 전담 공무원인지도 몰랐다.

유가족협의회 이경구 공동대표도 “전담으로 배정된 분들은 있었지만 도움은 되지 않았다”며 “장례식 이후 현재까지 전담 공무원이 지속적인 지원을 해주거나 하는 건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청주시는 지난 7월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장례지원 때부터 연계된 16명의 전담 공무원이 심리회복 지원, 소통창구 역할, 재난지원금 등 각종 지원 신청을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A씨는 장례식 이후로 전담 공무원으로부터 한 번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공무원은) 처음 말씀 나눈 이후로는 쭉 장례식장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 계셨어요. 그 외 다른 도움은 없었어요. 전담 공무원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청주시에 확인해보니 유가족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청주시 관계자는 25일 <단비뉴스>와의 통화에서 “장례식이 종료된 이후에 (전담 공무원이) 먼저 적극적으로 연락을 드리진 않는다”며 “필요한 게 있으시면 연락을 주시면 된다고 안내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가족분마다 다르긴 하지만 민감한 상태시다 보니 먼저 연락을 자주 드리기가 부담스러웠다”며 “거절하시거나 불편해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필요하실 때 연락을 주시면 도와드리겠다는 식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같은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한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충북도에 현재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요구해 도청 공무원들과 유가족이 대면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지만, 역시 제대로 된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 발인을 해도 되는 거냐”고 묻는 A씨에게 도청 공무원은 “답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문답은 그런 식으로 끝났다. 결국 유가족들은 직접 협의체를 꾸렸다. 지난달 7월 26일 출범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협의회에는 희생자 14명의 유가족 모두가 참여하고 있다.

우울·공황·불면…트라우마에 잠식된 일상

참사로 동생을 떠나보낸 이후, A씨의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대화하다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자꾸만 말이 끊겼다. 뭘 하려고 했는지 생각나지 않아 한참을 가만히 생각하는 상황이 늘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식욕도 현저히 떨어졌다. 몇 주 만에 체중이 5kg이 빠졌다. 없던 불면증도 생겼다. 새벽을 뜬눈으로 지새우다 겨우 잠들어도 오래 못 가서 다시 깼다.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A씨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가 “내가 만약 이랬으면 동생이 살았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같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을 만나는 일, 잠을 자는 일, 밥을 먹는 일. 참사 전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했을 모든 일이 어려웠다. A씨는 카페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는 날도 이렇게 말했다.

“항상 죄책감이 느껴져요. 이런 카페에서 뭘 먹는 것도 오랜만인데, 동생이 그렇게 갔는데 난 살아 있다고 또 이런 게 먹히는구나 싶어서…”

성격도 변했다. A씨는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일정표는 항상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빽빽했다. 하지만 동생이 떠난 이후로,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는 일이 다 의미 없게 느껴졌다. 자주 만나던 친구들 모임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A씨는 자신이 ‘아무 일 없이 일상을 사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느낀다.

A씨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지는 상상도 안 된다고 했다. A씨의 어머니 역시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다시 제대로 된 식사를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액체로 된 환자식을 A씨가 권하고 권해서 겨우 드시게 하는 정도였다. 외출은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다. 트라우마는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더 심해진다. 참사가 있었던 날처럼 비가 세차게 몰아치는 날엔 방 안에 앉아 눈물로 하루를 보냈다.

“엄마는 스스로를 죄인 아닌 죄인이라고 생각하세요. 우리 책임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남은 죄책감은 온전히 가족들이 껴안고 있는 것 같아요. 일상 회복…? 전혀 안 됐어요.”

이랬다저랬다…지자체 지원은 ‘두드려야 열리는 문’

현재 A씨와 그의 어머니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를 받기 시작한 건 8월 초부터다. 2주에 한 번 정도 병원을 찾아 상담과 약물 처방을 받는다. 치료비는 충북도에서 지원한다. 현재 충북도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를 대상으로 심리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 심리치료비 지원 과정에서도 잡음이 많았다. 청주시청은 지난 7월 28일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호우피해 관련 재난심리치료비 지원 안내문’을 문자로 발송했다. 호우 피해와 관련된 정신건강 문제로 정신의료기관을 이용하면 최대 1년까지 1인당 100만 원 이내로 의료비를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외에 다른 안내는 없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지원 금액과 기간 한도였다. 충북도에 “지원 금액과 기간이 터무니없이 적은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트라우마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즉 PTSD 치료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참사 후유증이 몇 년 뒤에 발현될 수도 있는데 금액과 기한에 제한을 두는 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언론과 시민단체 등에서도 “트라우마 치료 기간에 제한을 두면 지원 의의가 훼손될 수 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결국 충북도는 지난 8월 24일, 금액과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안내문을 유가족에게 다시 보냈다. 1인당 100만 원 이내였던 금액 제한은 사라졌다. 최대 1년 이내였던 지원 기간도 의료진 검토에 따라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기간까지’로 수정됐다.

청주시청이 지난 8월 24일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들에게 발송한 호우피해 관련 재난심리치료비 지원 안내문 수정본.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협의회 제공
청주시청이 지난 8월 24일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들에게 발송한 호우피해 관련 재난심리치료비 지원 안내문 수정본.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협의회 제공

당초 의료비 지원 금액과 기한을 제한한 이유에 대해 충북도청은 지난달 열린 참사 피해자 지원 관련 토론회에서 이태원 참사나 세월호 참사 때 나온 지원자료를 참고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토론회에 나온 충북도청 소속 공무원은 “타 시·도에 유사 사례가 없어 기준안을 잡기가 어려웠다”며 “긴급한 상황에서 (투입 예산을) 예비비로 확보하다 보니 빨리 지급하기 위해 일단 그렇게 (제한을 두고) 먼저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도청에서도 1~2년 단기간 내에 치료가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고 이후 확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도청의 이런 대처에 대해 유가족들은 지자체의 지원이 ‘두드려야 열리는 문’ 같다고 말한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필요를 먼저 파악하고 이에 맞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방침을 정해 통보했다가 유가족들의 반응을 보고 뒤늦게 지원 내용을 수정하거나 추가하는 식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가족협의회 최은경 공동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수동적으로 (지원을) 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만큼 요구해야 겨우 요만큼 바뀌고, 이만큼 더 이야기해야 또 조금 바뀌고… 계속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아마 아무것도 안 됐을 거예요.”

재난지원금 안내 과정에서도 혼선이 빚어졌다. 동생을 잃은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한 시점, A씨는 동사무소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당장 다음 주 월요일(7월 31일) 재난지원금 신청이 마감되는데 그때까지 신청하지 않으면 지원금을 지급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이틀 뒤까지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재난지원금 관련 내용을 처음 전달받는 A씨는 당황했다. 당장 이틀 뒤까지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너무 급작스러웠다.

연락을 받은 건 A씨뿐만이 아니었다. 일부 유가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은 연락을 받았다. 유가족 단체채팅방에는 “이 전화 무슨 전화냐”, “당장 모레까지 서류 제출하라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는 의문이 쏟아졌다. 유가족은 충북도청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도청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에서 7월 31일까지로 정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의 답은 달랐다. 행정안전부는 “수해 피해 발생 시 재난 종료 10일 이내까지 신청해야 하는 건 맞지만, (참사 관련은) 인적 피해이기 때문에 해당하지 않을 것 같으니 확인해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이는 청주시의 소통 오류로 생긴 소동이었다.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겨우 살아나왔는데… 기다리는 건 경찰 조사

지자체의 태도에 지쳐가는 건 유가족뿐만이 아니다. 오송 참사 100일 문화제 현장에서 만난 생존자협의회 대표 C씨(41)는 지자체의 심리치료지원에 대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말했다. C씨는 “충북도청과 청주시청은 피해자 지원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피해자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심지어 충북도청과 청주시청은 피해자 지원과 관련해 소통도 전혀 하지 않는 듯 보인다”고 주장했다.

지난 8월 말, 생존자협의회는 충북도청과 각자 집계한 생존자 명단을 맞춰보았다. 이때 충북도청이 갖고 있는 명단에는 생존자 16명 중 2명이 누락돼 있던 것이 드러났다. 누락된 2명의 자리에는 참사가 발생한 궁평2지하차도가 아니라 궁평1지하차도에서 다른 사고로 구조된 2명이 들어가 있었다. 일부 생존자는 연락처가 잘못 기재된 상태였다. 생존자협의회는 누락 사실을 통지하고 정정을 요구했다.

이달 초, 청주시청은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의료급여 지원을 안내했다. 그런데 이때까지도 청주시청이 보유한 명단에는 8월 말 충북도청 명단에서 누락된 생존자 2명이 여전히 빠진 상태였다. 충북도청에서 청주시청에 명단이 잘못됐던 것을 알려주기만 했어도 발생하지 않았을 실수였다.

피해 지원에 관한 안내도 부족했다. 트라우마에 있어 전문가가 초기부터 개입하는 것은 후유증을 줄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탈출한 생존자들이 가장 먼저 받은 연락은 피해 지원 안내가 아니라 경찰 조사였다. 생존자들이 지자체로부터 처음 심리지원 관련 사항을 안내하는 연락을 받은 것은 참사가 발생한 지 약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충북 광역 정신건강 복지센터에서 집중 호우 피해자를 대상으로 전문가 상담을 제공하려 한다는 안내 문자였다. 당시 일부 생존자들은 이미 사비를 들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충북도청은 ‘개인정보 보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방적으로 연락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당사자 동의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됐다는 것이다.

생존자 C씨가 지난 20일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보여준 진단서. 정윤채 기자
생존자 C씨가 지난 20일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보여준 진단서. 정윤채 기자

8월 1일, 생존자들에게는 한 통의 문자가 더 도착했다. 유가족들에게 전송된 내용과 똑같은 재난심리치료비 지원 안내문이었다. 치료비 지원 안내 이후 생존자들은 속속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부 생존자는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 병원에 갈 용기조차 내기 힘들었다. 용기를 내서 치료를 시작하려 해도, 전문적인 상담이 가능한 곳을 찾기도 어려웠다. 예약이 꽉 차 있어 2-3주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렵게 병원 문턱을 넘어도 치료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생존자들이 원한 건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 치료였지만, 병원 상담 시간은 5분에서 10분 내외로 짧았다. 한 생존자는 병원 상담 중 “이겨내 보려고 한다”고 하자 의료진으로부터 “스스로 (이겨내는 법을) 잘 아는 것 같으니 상담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진료를 그만하자”는 답을 들었다.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 상실감만 얻고 돌아와야 했다.

일부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병원 치료비 이외에 사설 상담센터에서 진행하는 PTSD 전문 심리상담에 대한 지원도 병행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설 상담센터의 자격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이미 의료기관에서도 상담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사설 상담센터가 아니라 충청권 트라우마센터, 충북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등 국가에서 공인된 기관을 이용할 수 있다. 현재 충북도에서는 유가족은 충청권 트라우마센터, 생존자들은 충북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고 있다. 하지만 충청권 트라우마센터의 경우 국립공주병원에 있다 보니 접근성이 떨어져 해당 센터에서 상담을 받는 유가족은 극소수였다. 관련 안내도 상세히 이뤄지지 않아 현재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직접 모아서 공유하고 있었다. 생존자 C씨의 말이다.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내는 생존자도 있어요. 지자체에서는 한 명 한 명 일일이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직접 전화해서 다시 물어보고, 따로 발품 팔아가며 얻은 정보들을 채팅방에 직접 공유하고 있어요”

유가족과 생존자는 지자체를 믿지 못한다

지난 7월 20일 충북도청에 마련된 오송 지하차도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정윤채 기자
지난 7월 20일 충북도청에 마련된 오송 지하차도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정윤채 기자

참사가 발생했을 때, 국가와 지자체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할까.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유사한 참사가 또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와 지자체의 임무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다. 참사로 상처 입은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이들이 일상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참사 초기,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도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글에서 “충북도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빠른 사고 수습과 함께 유가족분들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참사 수습 과정에서 이 말은 지켜지지 못했다.

지원 과정에서 실수가 반복됐다.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파악부터 지원체계 마련, 지원 안내 과정에서 유가족과 생존자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실수가 이어졌다. 지자체의 대응이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상처입힌 일도 있었다. 참사 직후 충북도청이 마련한 합동분향소 안내판에 ‘사고 사망자’로 표기돼 유가족들의 항의로 ‘참사 희생자’로 정정된 일, 시민 분향소 기습 철거, 경찰 조사 후에야 시작된 심리지원 안내 등이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는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지자체에서는 제대로 해주는 게 없구나”, “지자체를 가만히 믿고만 있어선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각인시켰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 지자체는 ‘나의 회복을 돕는 조력자’가 아니라 ‘내가 맞서야 할 또 다른 대상’이 됐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묻기 전에 먼저 알려주길 원한다. 하지만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지자체가 ‘묻고 따져야만’ 대답한다는 걸 경험으로 학습했다.

“처음 참사가 발생하고 나서 충북도청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지금 도청 앞에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버스가 와있으니까 가서 상담받으라고. 우리 어머니가 버스에서 돌아가셨어요. 버스란 버스는 쳐다보기도 싫은데 버스 안에 들어가서 상담을 받으라는 게 말이 돼요? 그런 작은 배려도 없는 거잖아요.” (오송 참사 유가족협의회 최은경 공동대표)

“지자체가 사무적으로 일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죠. 솔직히 부담이 많이 돼요. 내가 잘못하면 유가족들이 흩어질 수도 있으니까. 제가 일부러 토론회도 나가고, 인터뷰에서 자꾸 이야기하는 이유도 이렇게 알려야만 무언가 달라지고 좋아진다는 게 느껴지니까.”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경구 공동대표)

참사 피해자 지원은 특혜가 아니라 권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5월 마련한 ‘재난피해자 권리보호를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에서 “재난피해자는 수동적인 지원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이고 국가는 지원과 회복에 대한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사회적 참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참사 때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투사’가 되어 나서야 하는 상황도 함께 반복되고 있다.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왜 항상 국가와 싸워야만 할까.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피해자 지원 문제가 늘 화두에 오르는데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은 왜 달라지지 않을까. 반복되는 참사 속에서 정부는 무엇을 배웠고 이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을까.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제는 그 질문에 정부와 지자체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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