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영화 ‘장기자랑’

어느덧 4월이 돌아왔다

다시 4월이 돌아왔다. 겨우내 건조했던 땅에 단비가 내렸고 파릇파릇한 잎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을 괴롭히던 매서웠던 바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췄고 두툼했던 외투는 옷장으로 들어갔다. 추웠던 겨울을 보낸 사람들은 봄날을 만끽하기 위해 공원과 호수로 나왔다. 평소엔 쑥스러워 찍기 주저하는 사진도 함께 찍어본다. 어색하게 찍은 사진이 뭐가 좋을까 싶지만, 분명 언젠가 다시 꺼내 본다면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4월의 하루를 함께했다는 걸, 사랑하는 이와 행복한 일상을 함께 나눴고 그때 내 곁에 있었다고 말이다.

다시 찾아온 4월을 기억하기 위해 여기 일곱 엄마가 무대 위에 올랐다. 배워본 적 없는 연기지만, 또 너무 오래돼 기억도 안 나는 고등학생 역할이지만, 엄마들은 진심을 다한다. 이 연극에 그들이 사진처럼 기억하고 싶은 어느 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세월호 엄마들의 ‘장기자랑’

이소현 감독이 제작한 영화 <장기자랑>은 4·16 가족 극단 ‘노란 리본’의 연극, <장기자랑>의 준비과정과 배우로 연기에 도전하는 세월호 희생자 엄마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엄마들의 연극은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선보일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수인 엄마 김명임, 예진 엄마 박유신, 영만 엄마 이미경, 애진 엄마 김순덕, 동수 엄마 김도현, 순범 엄마 최지영, 윤민 엄마 박혜영 씨가 수학여행을 앞두고 한껏 부푼 마음의 학생들을 연기한다.

세월호 참사의 엄마들이 펼치는 연극이라는 점에서 그 내용과 메시지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과연 엄마들은 연극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또 영화는 이 연극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동료 PD로부터 세월호 9주기를 맞아 <장기자랑>이라는 영화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월호를 다룬 이전의 다큐멘터리 영화들과는 다르다는 말에 과연 어떤 점이 다를지 궁금했다. 솔직히 새롭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참사로 인해 슬프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유가족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를 다룬 영화는 모두 그랬으니까,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예고편 속 엄마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 나온 세월호 영화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엄마들이 춤을 추며 웃음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아픈 기억 때문인지 세월호와 웃음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라 생각했다. 세월호를 따라다닌 단어는 늘 눈물과 슬픔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만난 세월호 희생자 엄마들은 달랐다.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를 좋아하던 아들 동수를 위해 김도현 씨는 극 중에서 루피로 변신해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랩을 좋아하던 아들 영만을 위해 엄마 이미경 씨는 랩에 도전하기도 하고, 뒤늦게 아들의 꿈이 모델이었다는 걸 알게 된 최지영 씨는 아들 순범을 위해 극 중 모델을 꿈꾸는 ‘방미라’역을 맡아 당당한 워킹을 선보이기도 한다. 연극무대에 선 엄마들은 더 이상 아이들을 슬픔과 아픔으로만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영화를 제작한 이소현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엄마들을 괴로움에 빠진 ‘세월호 유가족’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무대에서는 함께 연기하며 열정을 불태우지만, 때론 배역 욕심에 서로 섭섭해하기도 하고 투정도 부리는 우리 곁의 평범한 엄마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또 엄마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마음으로 연극에 도전하게 됐는지, 또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해 주길 바라는지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그런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 장면은 예진 엄마와 영만 엄마의 갈등이었다. 연극 <장기자랑>에서 예진 엄마 박유신 씨는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던 딸과 닮은 ‘조가연’ 역을 맡아 연기한다. 그런데 영만 엄마 이미경 씨 역시 연극을 이끄는 ‘조가연’ 역을 탐낸다. 연극에서 더 비중 있고 주도적인 역을 맡기 위해 엄마들이 서로 투정 부리고 갈등을 빚는 모습은 흔히 우리가 참사 피해자 가족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화에서 박유신 씨가 진지하게 “저, 지금 그 언니(이미경 씨) 안 봐요”라고 말하는 인터뷰 장면도 관객에겐 귀엽고 유쾌한 상황으로 다가온다.

문득 그런 궁금증이 생겼다. 엄마들은 왜 이렇게 연극에 열심일까? 왜 그렇게 갈등을 겪고 토라지기까지 하면서 연극을 하는 걸까? 엄마들에게 연극은 무슨 의미였을까? 어쩌면 엄마들은 이제 슬픔을 극복하고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려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다움’을 벗어나서

지금까지 미디어는 세월호 참사를 다루며 주로 그날의 슬픔에 집중했다. 희생자 가족들도 항상 슬픔에 괴로워하거나 분노하는 ‘피해자다운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들이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보이며 유가족들을 향한 일부 세력의 터무니없는 비난도 생겨났다. ‘언제까지 자식들을 이용할 거냐’, ‘이제는 지겹다’며 그만하라는 비아냥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버젓이 횡행했다.

어쩌면 떠난 아이들을 슬퍼하고 남겨진 가족들에 위로를 보냈던 대다수 ‘우리’도 비슷한 모습이었을 테다. 함께 슬퍼했고 위로했으니 할 일을 다 한 것이라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태도로 여전히 유족들을 슬픔에 잠긴 피해자로만 바라봐왔으니 말이다.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를 만든 이소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참사 피해자가 아니라 이웃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친구로 어머니들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한다. 감독은 세월호 유가족을 둘러싼 세상의 시선과 편견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영화에서 엄마들은 더는 슬픔에만 잠겨 우울한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었다. 춤추고 노래하며 세상에 나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당당히 하는 온전한 개인이었다. 이젠 위로의 대상으로 타자화되는 것도, 부당한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도 모두 거부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 아이들의 아름답던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자 하는 엄마로 살아간다. “남들이 손가락질할지도 모르지만, 전 가끔 더 멋있게 살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영만 엄마 이미경 씨의 말은 그런 점에서 세월호 엄마들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엄마들은 여전히 4월이 다가오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다. 9년이 아닌, 90년이 지나도 그날의 끔찍한 기억을 잊을 엄마는 없다.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겠다고 백번을 선언해도 억울하게 보낸 아이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윤민 엄마 박혜영 씨는 아직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고 있다. 영만 엄마 이미경 씨는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유일한 생존자 엄마인 애진 엄마 김순덕 씨는 딸 애진이와 자신 모두 종종 그때의 기억 속에서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엄마들의 슬픔은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무뎌졌을 뿐,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연극 <장기자랑>에서 엄마들이 연기한 고등학생들은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한다. 열심히 준비한 장기자랑도 성공적으로 선보인다. 영화 속 엄마들 역시 아이들이 다녔던 단원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연극을 끝으로 새로운 연극 준비에 돌입한다. 연극과 영화 두 <장기자랑>의 결말은 우리가 겪었던 현실과는 다르다. 어쩌면 그래서 허망한 감정이 들지도 모르겠다. 안전한 사회에서 평범한 모습으로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아이들을 이젠 볼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엄마들은 연극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새로운 희망과 힘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우리 사회엔 분명 변화가 있었다. 언론은 세월호 참사 때와 같은 오보를 내지 않기 위해 재난보도준칙을 만들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때로 유가족들을 향한 조롱과 비난을 일삼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사회적 참사에 함께 연대하며 고통을 나누기도 했다.

엄마들은 이제 9년 전 현실에서 벌어졌던 비극과는 달리 연극을 통해 희망을 연기한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변화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담고서 말이다.

<장기자랑>의 시사회 및 기자 간담회에서 예진 엄마 박유신 씨가 이런 말을 했다.

“모든 분들이 우리 아이들 너무 아프게만 기억하지 마시고, 맑았고 깨끗했고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켰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찾아온 4월, 엄마들이 간직한 사진 속 아이들은 여전히 맑은 웃음을 띠고 있다.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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