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태 칼럼] 건드리면 폭발할 듯한 사회…언론도 책임 느껴야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할 것으로 알려진 8월이 오고야 말았다. 이 글은 그런데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대한 찬반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언론이 재난이나 갈등을 다루는 방식, 자세에 관한 얘기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는 논란의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지난 6월부터 수산업계가 침체에 빠졌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오염수에 불안을 느껴 수산시장을 찾는 발길이 줄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수산시장 상인은 “원전 물을 틀었어야 원전이고 말고 하지”라며 시기적으로 장사가 안될 때라는데 기사는 원전 오염수 영향이라고 했다.

지난달 9일 오후 포항 죽도시장 어시장 골목. 연합뉴스는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도 안 했는데 찬바람 부는 횟집∙양식어가’라는 제목으로 이 사진을 보도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9일 오후 포항 죽도시장 어시장 골목. 연합뉴스는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도 안 했는데 찬바람 부는 횟집∙양식어가’라는 제목으로 이 사진을 보도했다. 연합뉴스

이성적 얘기보다는 자극적 주장에 더 귀가 솔깃한 법이다. 그러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면 한국 바다가 끝장날 것처럼 몰아가거나 원전 오염수는 한 방울도 안 들어간 수산시장 수조 물을 마신다. 이성적 주장보다 감성적 퍼포먼스가 효율적이라는 것은 정치인들에겐 상식이다.

이런 자극적 대결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건 언론이다. 일방적 주장에 지면을 내주지 말고, 엉뚱한 쇼에 카메라를 들이대지 말아야 한다. 현실은 거꾸로 간다. 그런 것만 열심히 찾아내 보도한다. 브레이크가 아니라 가속페달을 밟는다. 자극적인 말이나 쇼를 하면 제목으로 뽑히고 사진과 영상이 실린다. 자극적인 내용이 조회 수나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언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을 고마워할 판인데 찬물을 뿌릴 리가 없다.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어도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사회적 위험에 대해서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논의가 사실적 근거에 따른 분석과 실제로 추진 가능한 대책으로 수렴되지 않고 정치 공방만 계속된다면 문제가 다르다. 그런데도 ‘위험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느냐’고 되물으며 공방만 중계하는 것은 언론의 공적 책임을 다하는 보도로 보기 어렵다.

방류를 시작하지도 않은 오염수 때문에 수산시장을 찾는 사람이 두 달 전부터 줄었다면 그것은 위험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인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위험 때문에 소비자는 수산물을 먹지 못하고 자영업자들은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 사실이기는 한가? 언론이 ‘위험 정보’가 아니라 ‘불안 심리’만 퍼뜨린 것은 아닌지 돌아볼 지점이다.

위험이나 재난, 갈등 사안에 대한 감성적 접근 사례는 넘쳐난다. 뉴스 소비자가 언론에서 정보가 아니라 ‘공감과 유대’를 얻으려 한다는 연구도 있는데, 언론은 그것이 충성 소비자를 확보하는 길임을 이미 알고 있다. 소비자들도 피해자를 다독인다며 사안을 감성화하는 보도에 오히려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보도는 ‘정보 전달’이 아닌 ‘감정의 확산’으로 흐르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적 재난이나 갈등은 특정 악당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니다. 현안마다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완전히 풍경이 다르다. 한쪽을 악마화한다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언론이 감정적 주장들을 단순 중계하듯 전달해서는 사회적 갈등은 오히려 증폭된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한발씩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은 서로의 처지를 역지사지할 수 있는 이성적 접근 속에서만 가능하다.

자극적 제목, 극단적 내용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보도는 이런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국가대항 경기를 중계하듯 갈등 사안을 보도하면 안 된다.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실제 삶을 좌우하는 문제이다. 살짝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갈등이 도처에 널린 세상이다. 정말 합리적 공론장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면 언론이 ‘감정의 확산’이 아닌 ‘정보 전달’로 돌아가야 한다.

*이 글은 <기자협회보> 8월 2일자 ‘언론 다시보기’ 코너에 실렸던 칼럼을 신문사의 허락을 얻어 일부 수정해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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