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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싶도록 힘들 때 이 영화를 보라
[JIMFF] <제이슨 베커: 아직 죽지 않았다> 리뷰
2012년 08월 12일 (일) 09:08:48 허정윤 기자 sungruon@naver.com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 팜플렛에는 ‘엔드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아달라’는 유의사항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없었더라도 <제이슨 베커: 아직 죽지 않았다>(Jason Becker: Not Dead Yet)를 본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못했을 거다. 엔드 크레딧과 함께 ‘제임스 베커’의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제는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는 기타리스트 제이슨 베커.ⓒ 제이슨 베커 페이스북

기타 신동?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 이상이 있었다

   
▲ '신동' 제이슨 베커의 탄생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의 열정은 매번 주위를 놀라게했다. ⓒ 제이슨 베커 페이스북

두 사람, 기타 두 대, 그리고 음악. 영화 첫 장면은 10대 소년과 젊은 남성이 흥겹게 연주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어린 제이슨 베커(Jason Becker)와 그의 삼촌이었다. 그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JIMFF 안내서에 적힌 ‘신동’은 어디 있나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러나 영화는 곧, 제이슨 베커의 가족과 지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바뀐다. 그들은 제이슨 베커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성장과정, 음악에 대한 열정, 사람 됨됨이까지 그와 관련된 기억들을 관객들에게 가감 없이 들려준다. 그들 중에는 위대한 기타리스트인 마티 프리드먼, 에디 반 헤일런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고 ‘난 에릭 클립튼만큼 유명하지 않은 사람은 몰라’, ‘난 그냥 경쟁부문이라 보는 건데’라고 생각하는 관객이 소외당할 일은 없다. 다큐멘터리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친절하게 그를 소개한다. 오래된 사진과 홈비디오가 영화기술로 멋지게 재탄생되는 ‘눈 호강’도 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제이슨 베커는 그의 기타 연주법인 속주 만큼이나 과속으로 태어났다. 1969년 7월 22일 캘리포니아주 리치먼드에서 출산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먼저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는 클래식 기타 연주를 즐기던 아버지 영향으로 기타에 관심을 가졌고 열두 살 때 기타를 선물받아 본격적으로 기타공부를 시작했다. 열세 살에는 에릭 클립튼 전곡을 연주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그는 기타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고 눈만 뜨면 기타를 연주했다. 식사할 때도, 친구와 이야기할 때도 기타를 놓지 않았다. 그는 신동이면서 ‘연습벌레’였고 그 자체를 즐겼다.

최고의 순간에 다가온 시련

   
▲ 루게릭병에 걸리기 전 제이슨 베커. ⓒ 제이슨 베커 페이스북

86년 가을, 프로듀서 마이크 바니에게 데모 테이프를 보내 신예로 발탁된 그는 마티 프래드먼과 캐코포니(Cacophony)를 결성해 인기를 끌었다. 뒤이어 데이빗 리 로스 밴드에 리드기타리스트로 낙점돼, 전미 투어 준비를 해나갔다. 제이슨에게는 꿈에 그리던 록 스타가 돼 승승장구하는 길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제이슨은 스무 살 되던 해에 루게릭병을 선고받는다. 이 병은 근육이 점점 마비되어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이다. 그가 회상하길, 자신은 단지 한쪽 다리가 저려서 병원에 갔을 뿐이었고 병이 선고됐을 때도 부모님께 전화로 알리고 담담하게 연습실로 향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몸이 점점 굳어가면서 투어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단순한 속주 테크닉을 넘어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까지 겸비했던 제이슨 베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빼앗기는 데는 몇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속주는커녕 코드 하나를 짚기도 벅찼다. 결국, 그는 모든 루게릭 환자와 다름없이 휠체어를 끌어주는 사람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게 됐고 정상적인 대화마저 불가능했다. 제이슨은 모든 신체기관이 마비되는 와중에도 입술과 턱이라도 움직일 때는 마우스 커서를 이동하는 방법으로 작곡 활동을 계속했다.

“난 루게릭병에 걸렸다. 병은 내 몸을 병들게 했지만 내 정신까지 앗아가진 못했다.”

루게릭병은 그의 몸을 마비시켰지만 음악의 열정까지 마비시키지는 못했다. 부모를 비롯해, 그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음반작업을 도왔다. 동료 음악인들은 치료비 모금을 위한 공연을 열었다. 그의 열정은 주위의 사랑을 만나 솔로 앨범 퍼스펙티브(perspective)를 탄생시켰다. 이 음반으로 제이슨 베커라는 이름은 기타리스트인 동시에 유능한 작곡가로 재조명됐다. 재즈와 클래식에 기반을 둔 앨범들은 ‘제이슨의 음악을 못 들어 본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 번 들어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니아층을 형성했다.

   
▲ 제이슨 베커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그의 치료비 모금을 위한 공연을 열었다. ⓒ 제이슨 베커 페이스북

영화 속으로 들어간 ‘기타의 전설’

그러나 이 음반 발표 후 그는 턱까지 마비돼 안구만 돌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안구로 대화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천재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뮤지션이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길어야 스물다섯 살까지 살 거라는 진단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제이슨 베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가 죽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반전 아닌 반전으로 그는 22년째 병마와 싸우며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활발한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제이슨은 이 순간에도 온 힘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삶의 마법을 부리고 있는 중이다. 문득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겨운 일상이 지속될 때 제이슨 베커를 만나보길 추천한다. 그가 말 대신 음악으로 답할 것이다.

   
▲ 제이슨 베커(좌)를 주인공으로 한 <제이슨 베커>는 제시 바일(우)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 JIM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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