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교향곡 7악장] 인터미션

지난 4월부터 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의 7명의 PD들은 (김동연, 문준영, 서현덕, 양진국, 조승연, 조옥주, 정호원) 저마다의 빛깔로 반짝이는 삶을 사는 보통 어른들의 인생을 표현한 <인생 교향곡> 7부작 시리즈를 기획했다. 교향곡은 악기 수가 비교적 적은 삼중주, 사중주 앙상블과 달리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필요한 음악이다. 그만큼 여러 가지 악기가 조화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인생 교향곡>은 제천, 영월 등 지역에 사는 어르신 6명을 만나 인생의 의미를 묻고 답한 기획 시리즈다. 주인공인 6명의 어르신의 평균나이는 75세다. 어르신들의 삶은 그 깊이나 멋, 개성이 교향악처럼 풍부하다. 누구는 바이올린처럼 경쾌하고 누구는 첼로처럼 진지하다. 저마다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인생 교향곡>의 ‘인터미션(중간휴식)’에서는 프로그램의 기획취지와 단비뉴스 PD들의 제작기를 소개한다.

지난 6일부터 공개된 7부작 시리즈 다큐멘터리 ”인생교향곡“은 제천 영월 등 지역에 사는 어르신 6명을 담았다. 인생교향곡 화면 갈무리
지난 6일부터 공개된 7부작 시리즈 다큐멘터리 ”인생교향곡“은 제천 영월 등 지역에 사는 어르신 6명을 담았다. 인생교향곡 화면 갈무리

MZ에게 필요한 보통 어른의 다채로운 이야기

서현덕 PD가 김영선 씨가 가르쳐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김영선(69) 씨는 그린스크린을 배경으로 서 PD를 촬영한 뒤 가상 화면을 덧입혀 편집했다. 김영선 영상 화면 갈무리
서현덕 PD가 김영선 씨가 가르쳐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김영선(69) 씨는 그린스크린을 배경으로 서 PD를 촬영한 뒤 가상 화면을 덧입혀 편집했다. 김영선 영상 화면 갈무리

왜 MZ세대 PD들은 보통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까? 서현덕(30) PD는 "어른스러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서 PD는 아코디언을 취미로 연주하는 김영선(69) 씨의 이야기를 지난 16일 공개된 "음악이라는 행복(#4악장)"에 담았다. 영선 씨는 아코디언을 꺼내 보이며 "내가 나한테 선물 한 것"이라 소개했다. 서 PD는 "내가 나한테 선물한다는 건 젊은이들도 많이 쓰는 표현인데, 똑같은 말을 하시길래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 나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때 느끼는 즐거움은 나이를 불문하고 같다는 걸 보여준다.

왼쪽 유문숙(78) 씨와 오른쪽 김동연(30) PD. 유문숙 씨가 김동연 PD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사진 김동연
왼쪽 유문숙(78) 씨와 오른쪽 김동연(30) PD. 유문숙 씨가 김동연 PD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사진 김동연

MZ세대에게 '보통 어른'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그만큼 요즘 세대가 불안정하다고 느끼기 때문도 있다. 오는 30일 공개될 7악장에서 유문숙(78) 씨의 배움에 대한 열정을 담은 김동연(30) PD는 "다큐를 제작하면서 배우고 싶다는 열정으로 가득 찬 어르신을 보며 오히려 번아웃이 왔던 내가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유문숙 씨는 첫 만남 인터뷰에서 "나는 뒷방 늙은이가 아니고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배움에 대한 욕심이 많은 분 같았다. 이 분과 함께하다 보면 지친 자신이 오히려 힘을 얻을 것 같아서 제작을 시작했다. 김 PD는 "젊은 세대는 다정함 대신 경쟁하는 법부터 익힌다. 우리 주변에 존경하고 배우고 싶은 어른이 없다"는 게 요즘 젊은 세대가 힘든 이유라고 말했다. 다큐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의 공통점은 '다정함'이라 소개한 김 PD는 "젊은 세대를 향한 어른들의 '다정함'이야 말로 진짜 MZ에게 필요한 인생 선배의 모습"이라고 소개한다.

오는 23일 공개될 인생교향곡 5악장의 주인공 박영숙(76) 씨는 프로선수급으로 탁구를 친다. 탁구대회에 출전하기위해 연습하는 모습이다. 사진 문준영
오는 23일 공개될 인생교향곡 5악장의 주인공 박영숙(76) 씨는 프로선수급으로 탁구를 친다. 탁구대회에 출전하기위해 연습하는 모습이다. 사진 문준영

문준영(23) PD는 프로 선수급으로 취미 탁구를 치는 박영숙(76) 씨의 이야기를 다큐에 담을 예정이다. 할머니는 "행복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고 늘 말한다. 문 PD는 "사람들은 '20대가 제일 좋은 때다', '학생일 때가 좋다', '젊음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그럼 한편으로는 '젊음이 지나가면 내 인생이 더 이상 즐겁지 않을까' 의문이 남기도 했다." 하지만 박영숙 할머니를 만나며 생각이 달라졌다. "70대 어르신이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늘 말씀하셨다. 지금의 내가 서 있는 게 내 인생의 정점이 아닐 수 있겠구나, 70대, 80대에도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인생 교향곡>은 다른 세대를 이해하려는 MZ세대의 노력이기도 하다. 양진국(26) PD는 "세대가 빠르게 교체되고 변화하면서 '틀딱'이라는 노인 혐오표현도 등장했다. 지금은 현장에서 은퇴한 세대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세대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 PD는 조부모 격인 세대를 취재하면서 이들의 고민의 하나는 '어떻게 하면 잘 죽을까'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양 PD는 서예와 영상제작을 취미로 배우는 김형구(83) 씨의 소소한 일상을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김형구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동창회장인데 어느 날 갑자기 멀쩡했던 친구들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며 '좋은 죽음이란 뭘까'에 대해 양 PD와 대화를 나눴다. 양 PD는 "젊은 세대는 인생의 다음 스텝으로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멀리 계획해봤자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구상이다. 인생을 어떻게 하면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보내며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나간 과거가 아닌 지금이 제일 빛나는 어른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제천미디어센터에서 미디어 수업을 진행하는 조옥주(47) PD의 모습. 강사로 일하며 ‘인생의 명장면’ 영상 제작 수업을 듣는 ”인생 교향곡“ 주인공들을 알게 됐다. 사진 조옥주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제천미디어센터에서 미디어 수업을 진행하는 조옥주(47) PD의 모습. 강사로 일하며 ‘인생의 명장면’ 영상 제작 수업을 듣는 ”인생 교향곡“ 주인공들을 알게 됐다. 사진 조옥주

<인생 교향곡>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하게 된 건 조옥주(47) PD의 남다른 배경 때문이었다. 조 PD는 2021년부터 제천미디어센터에서 미디어강사로 일하고 있다. 미디어센터에서 노인세대를 위한 "스마트폰으로 영상 만들기", "나도 유튜버"같은 수업을 진행했다. 올해 4월 미디어교육센터의 MBC 작가 출신의 한 동료가 "내 인생의 명장면" 영상 수업을 두 달간 8회차 수업으로 진행하는 걸 알게 됐다. 어르신들이 촬영과 편집을 배워 자신의 인생을 59초 영상으로 제작한다는 것이 수업의 목표였다. 조 PD는 이 수업을 듣는 분들을 한 분씩 맡아 다큐로 제작해보자고 PD들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기획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수업을 듣는 어르신들이 인생 회고록을 영상에 담는 것에 열의를 보이지 않으며 프로젝트가 흐지부지될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이들의 제작기를 담으려는 시리즈 다큐멘터리 제작도 좌초될 위험에 빠졌다. 하지만 조 PD는 이 또한 어르신들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라고 보았다. 인생의 명장면 수업을 듣는 한 어르신은 "내일은 더 늙을 거니까, 지금이 제일 명장면이다"라며 지나간 인생을 회고하는 영상이 굳이 필요할까라고 반문했다. 결국 시리즈의 기획은 각 주인공들의 인생의 의미를 담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원영호(69) 씨가 로우앵글로 촬영하는 법을 익힌 뒤 연습하고 있다. 단비뉴스 유튜브 갈무리
원영호(69) 씨가 로우앵글로 촬영하는 법을 익힌 뒤 연습하고 있다. 단비뉴스 유튜브 갈무리

조 PD는 지난 9일 공개된 원영호(69) 씨의 다큐멘터리 "자신있게 말한다. 인생이란?(2악장)"을 제작했다. 원영호 씨가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습을 담았다. 원영호 씨는 퇴직하고 난 뒤에 자신의 고향인 영월로 돌아갔다. 영월군 주천면의 이장이 된 원영호 씨는 낡은 곳으로 변해가는 고향에 사람들이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뉴미디어 활용법을 새롭게 배웠다. 버스가 안 들어오는 마을에 버스가 들어오게 만들고, 마을 사업으로 공원도 만들었다. 영호 씨는 "농부가 밭은 갈더라도 늘 똑같이 갈지 말고 새로운 게 나오면 새로 배워야 한다. 배움을 한정 짓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온라인상에서 만난 다른 노인들로부터 늘 대단하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기성 세대에게 배움에 대한 용기를 주는 사람이다.

지난 12일 공개된 ”시로 그리는 우리네 세상(3악장)“의 주인공 문규열(74) 씨. 시화전을 준비하며 문규열 씨가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사진 조승연
지난 12일 공개된 ”시로 그리는 우리네 세상(3악장)“의 주인공 문규열(74) 씨. 시화전을 준비하며 문규열 씨가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사진 조승연

꾸준한 노력으로 14년 만에 시집을 낸 사람도 있다. 조승연(28) PD가 담은 문규열(74) 씨의 이야기다. "시로 그리는 우리네 세상(3악장)"은 지난 12일 공개됐다. 원래 시, 역사, 문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직업 시인이 되진 못했다. 60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 창작에 집중하면서 다음달에는 14년만에 시집을 낸다. 조 PD는 "문규열 할아버지는 늘 자기 자신을 항상 낮추는 겸손한 분이다. 문학의 길을 14년 동안 걸었지만 여전히 자기 시를 사람들에게 자랑하거나 시인이다 이야기하기 부끄러워 하신다. 자신을 낮추는 어르신들을 많이 못 봐서 할아버지의 그런 면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예순의 나이에 시작한 도전으로 새로운 길을 걷게 된 문규열 씨의 이야기는 도전하기에 이르고 늦은 나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MZ세대 PD들이 포착한 평균 나이 75세 어르신들의 귀여운 모습들

김동연 PD는 7악장에 등장할 유문숙(78) 씨의 귀여움을 다큐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유문숙 씨는 동연 PD가 30살이라고 밝히자 "내 손주는 초등학생이다. 서른 살짜리 손주 둔 적 없으니 할머니라 부르지 마라"고 선을 그었다. 그래서 김 PD는 그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김 PD는 할머니의 첫인상으로 "하고 싶은 게 많아보이는 분"이라 설명했다. 어떤 한 개인이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드러내는 걸 비호감으로 낙인찍기 쉽다. 특히 노인, 할머니가 자기 욕심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모습은 낯설게 비춰질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이 할머니의 사랑스러움과 따스함과 귀여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유문숙 할머니는 칭찬하는 말에 쑥스러워 무조건 "아니다"라고 받아친다. 그래도 칭찬받는 것을 좋아해 늘 "이런 말 해주는 건 로사리아(동연 PD의 세례명)밖에 없어, 내가 또래 중에 제일 잘하지?"라고 되묻는 습관이 있다. 김 PD는 "유문숙 할머니가 조금 더 솔직하고 (실례일 수 있지만) 발칙하게 자신을 표현하셨으면 좋겠다"며 그 모습이 너무 매력 있다고 말했다.

왼쪽 양진국(26) PD와 김형구(83) 씨가 셀프 카메라 촬영을 하고 있다. 20대 양 PD와 80대 김형구 씨는 연애부터 죽음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양진국
왼쪽 양진국(26) PD와 김형구(83) 씨가 셀프 카메라 촬영을 하고 있다. 20대 양 PD와 80대 김형구 씨는 연애부터 죽음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양진국

양진국 PD도 김형구 할아버지가 영화 ‘업’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닮았다고 소개한다. 양 PD는 "할아버지께 영화 '업'의 할아버지 캐릭터와 닮았다고 보여드리니 좋아하시며 크게 웃으셨다. 주고받는 농담에서 순수하게 큰 웃음을 지어보이는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다큐에 담고 싶었다. 내가 키가 크니까 할아버지가 비교적 아담하게 나오신다. 투샷이 한 앵글에 담기지 않는 것을 통해 할아버지의 아담한 귀여움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 PD는 할아버지와 '연애와 사랑' 이야기도 나눴다. 김형구 할아버지는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문제 때문에 매사에 조심스럽다. 친구들과 어울려 잦은 야외활동을 하는 할아버지는 혹여나 아내가 신경쓸까 걱정한다. '여사친'들과 논다고 오해받지 않기 위해 센터 모임을 나가도 할머니에게 "오늘 일정은 어디다", "이동 중이다" 보고한다. 양 PD는 '80살이 넘어도 사는 건 똑같구나'싶었다고 말했다. 얼마 전 유행한 '깻잎논쟁'에 대한 할아버지의 생각도 물어봤다. '깻잎논쟁'이란 애인이 있는 사람이 애인 아닌 다른 사람의 깻잎을 떼주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를 논쟁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사람 대 사람으로 보면 못 떼줄 이유는 없다"면서도 "옆에 아내가 있으면 당연히 다른 사람 깻잎은 떼주면 안 된다"고 받아쳤다. 할아버지의 카카오톡 배경화면에는 '결혼한 지 18520일' 아이콘이 표시되어 있다. 양 PD는 "할아버지와 연애와 사랑 고민을 나누면서 요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할아버지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며 복잡한 연애사는 젊은 세대나 할아버지 세대나 비슷하다고 말했다.

<인생 교향곡> 시리즈는 지난 6일 "#1악장. 프롤로그-7개의 시선"을 시작으로 "#2악장. 자신있게 말한다. 인생이란?", "#3악장. 시로 그리는 우리네 세상", "4악장. 음악이라는 행복"까지 공개됐다. 인터미션 "다채로운 보통 어른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 이후엔 5악장, 6악장, 7악장이 공개될 예정이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