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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제 안 풀리는 이유 언론에 있다
[이봉수칼럼] 선진 교육체계 왜곡보도…‘줄 세우기’ 정점 서울대 손 못 대
국공립대 통합안에 어정쩡한 태도…‘한겨레’가 중도신문인가
2012년 07월 24일 (화) 20:36:56 이봉수 hibongsoo@hotmail.com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세계 최고 경쟁지상주의 교육에 내몰려본 한국인은 모두가 교육문제 ‘전문가’다. 그러나 개인 경험에 근거한 판단은 스스로를 ‘동굴의 우상’에 갇히게 해 현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측면도 있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서열주의 교육체계를 당연시하고 선진국의 보편적 교육체계를 무시한다. 그런 인식의 오류에 크게 기여한 것이 선진국 교육제도에 대한 보수언론의 왜곡보도와 진보언론의 무기력한 대응이다.

우리 보수세력이 국가표준으로 여기는 미국의 교육제도조차 사실은 우리처럼 무한경쟁에 맡겨져 있는 게 아니라 형평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책임을 학교교육에 부과한다. 미국 고등교육체계에도 ‘뛰어난 자에게 영광’이라는 제퍼슨주의와 ‘기회의 평등’이라는 잭슨주의가 함께 녹아들어 있다. 입학은 주립대뿐 아니라 명문 사립대들도 시험점수 말고도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시골이나 소수집단 출신 학생에게 많은 기회를 준다. 장학금도 성적순이 아닌 가정형편에 따라 필요한 만큼 주는 게 원칙이다.

프랑스·독일·영국·북유럽국의 대학들은 재정에 관한 한 국립대나 다름없다. 최근 내국인한테도 등록금을 좀 받는 데가 생겼지만 학비 부담은 가볍다. 우리는 어떤가? 집안 좋은 학생들이 좋은 대학 입학을 휩쓰는 게 현실이고, 형편 어려운 학생을 위한 기숙사나 장학금 확충보다는 아르바이트비까지 긁어모아 초호화판 빌딩 짓기 경쟁을 벌이는 데가 ‘명문대’들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줄 세우기’ 교육체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 끼친 공적보다 폐단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동창회보를 보면 300명 현직 국회의원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132명이라고 한다. 대학원 단기과정을 포함한 숫자지만 그 또한 연줄을 잡으려는 목적도 있다고 보면, 국회의원 44%가 단일 대학 학맥으로 연결되는 ‘이상한 나라’에 우리는 산다. <한겨레>가 12일 보도했듯이 새로 구성되는 대법원은 ‘서울법대 동창회’나 다름없고, 행정부나 대기업도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서울대 출신이 과점 상태에 있다.

하버드나 케임브리지가 아무리 명문대라 해도 그 나라의 수많은 대학이 분야별로 어깨를 겨루고 있어 서울대처럼 독과점적 위치에 있지는 않다. 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하면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서울대의 고위직 독과점은 예외인가? 서민들 주머니를 턴 시디(CD)금리 담합 의혹이 일고 있지만, 담합행위도 학연을 중심으로 성사되는 경우가 꽤 있다. 위반하는 이들끼리는 물론, 단속하는 이도, 단속에 불복하면 재판하는 이도 학벌로 연결되기 십상이니 종종 솜방망이 처벌로 매듭지어진다.

시험 한번의 결과로 신분질서가 형성되고 고졸자는 대출이자까지 높아지니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무색하다. 이런 현실은 더 지독한 학벌주의의 온상이 될 뿐 아니라 자살 학생이 속출할 정도로 초·중등교육을 황폐하게 만들고 사교육비 부담으로 가계빈곤을 가속화한다. 또 지방대학을 고사시켜 지역불균형을 심화하고 수도권 과밀을 부채질하는 등 한국 사회 거의 모든 문제의 중심에 서열주의 대학체계가 있다.

 

   
 

물론 서울대 출신이 한국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질곡의 현대사에서, 독재정권에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것도 서울대 출신이지만, 가장 열렬하게 협력한 것도 그들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 서울대가 ‘세계 대학순위 42위에 올랐다’고 자랑하지만, 공대생까지 입학하자마자 고시공부에 돌입하고, 대학원은 정원을 채우기도 힘들 만큼 학부졸업생이 외국 대학으로 유학 가는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한국은 미국 내 유학생 수로 선두를 다투는 나라이다.

근원적 문제 해결책으로 국공립대 통합과 대학원 중심 서울대 개혁안이 야당의 정책으로 등장했으나, ‘서울대 폐지론’이라는 보수언론의 견강부회와 진보언론의 무관심 속에 선거국면에서도 이슈화가 잘 안 되고 있다. 보수언론과 논객들 논리 중에는 자체 모순을 드러내는 부분도 있다. ‘서울대가 폐지되면 국가 경쟁력이 급락하고 결국 사립대로 학벌서열이 재편될 것’이라는데, 폐지론도 과장됐지만 설령 서열이 재편된다 해도 경쟁력의 원천이 분산될 뿐 전체적으로 손상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인재의 분산은 전체 대학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국공립대 통합은 고사 위기에 놓인 지방대학을 회생시키고 지방거점 도시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서 주춤거리는 반면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의 상당 부분은 교육체계의 차이에 있는 듯하다. 미국이 하버드를 정점으로 학벌주의가 짓누르는 사회였다면, 하버드 중퇴생 빌 게이츠는 학점을 따느라, 리드대학 중퇴생 스티브 잡스는 편입시험에 매달려 재능을 소진했을 것이다.

<한겨레>는 국공립대 통합·개혁안에 중도신문과 거의 비슷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 해설기사(3일)와 ‘논쟁’(6일)으로 양쪽 주장을 전달하고, ‘여야가 대학 혁신을 놓고 뜨겁게 경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식의 사설(3일)을 내보낸 정도였다. 진보언론이 경제민주화 못지않게 부각시켜야 하는 것이 사회민주화이고 그 핵심이 모든 학생을 줄 세우는 학벌주의 혁파에 있다면 대선주자들에게도 물어야 한다. 문재인과 손학규는 찬성했고, 박근혜는 반대할 것이다. 안철수는 말하지 않았다.

언론인이기도 했던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상속자들> <재생산> 등 책에서 ‘학교교육이 불평등한 문화자본을 가진 사회계급을 재생산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상은 68혁명을 통해 프랑스 대학체계를 변혁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의 보수논객들은 프랑스와 독일의 명문대가 해체돼 세계에서 ‘최상위권’에 드는 대학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적어도 ‘상위권’에 드는 수많은 대학이 프랑스와 독일의 세계적 학문성과와 국가 경쟁력을 떠받치고 있다. 한국의 보수는 역시 학벌주의 최대 ‘상속자’이니 불평등한 사회계급의 ‘재생산’에 기여하고 마는 건가?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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