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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문화’도 기후위기엔 ‘느긋’
[단비발언대]
2021년 09월 16일 (목) 10:49:31 윤상은 기자 nadfri@naver.com
   
▲ 윤상은 기자

올 여름 미국 남서부에서 집을 포기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한낮 최고기온이 50도까지 오르는 폭염 때문이었다. 더위를 견디기 위해 에어컨을 켜면 늘어난 전기료 청구서가 날아온다. 이에 더해 최근 미국 주요 대도시에서는 집값이 치솟았다. 지갑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기료와 집세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했다. 더워서 에어컨을 틀면 집세를 낼 돈이 부족하고, 더위를 맨몸으로 견디면 죽을 맛이었다. 이 지역은 수년 전부터 폭염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를 원인으로 꼽는다.

기후위기는 약자의 목부터 조른다. 지속되는 폭염, 빈번한 홍수와 태풍, 끝나지 않는 가뭄에 사회적 약자들은 열사병에 시달리고, 물난리에 집을 잃는다. 2003년 여름 유럽에서는 약 7만 명이 폭염에 목숨을 잃었다. 2015년 4월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두 달 간 폭염이 이어져 수천 명이 사망했다. 노약자와 어린이는 열사병에 더 취약하다. 실외에서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은 더위를 피할 길이 없다. 기후위기가 전쟁까지 이어진 사례도 있다. 시리아에서는 잇따른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사회가 더 불안정해졌다. 결국 내전이 일어났다.

   
▲ 올 여름 독일은 100년만의 홍수로 집이 무너지고, 자동차가 물에 떠내려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전문가들은 온실가스를 지금처럼 배출하면 기후위기가 더 심각해질 거라고 경고한다. ⓒ SBS

한국도 안전하지 않다. 지난해 여름 54일 동안 장마가 지속된 탓에 밥상 물가가 크게 올랐다. 농경지가 물에 잠기고, 수확하지 않은 과일이 빗발에 떨어졌다. 비닐하우스는 바람에 찢겨나갔고, 여름철 햇볕을 제대로 보지 못한 농작물은 예년처럼 자라지 못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장마로 피해를 본 농경지 면적이 축구장 3만8천 개 규모라고 추산한다.

아직 한국은 기후위기가 바꿀 세상의 예고편만 본 걸지도 모른다. 환경부는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서 21세기 말이면 한반도에서 쌀, 옥수수, 감자 생산량이 최대 30% 감소할 거라 내다봤다. 최근 49년(1968~2016) 동안 한국 주변 해역의 표층 수온은 세계 평균보다 약 2.6배 높이 상승했다. 해양 산성화 속도도 빠르다. 바다가 이산화탄소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우리 밥상에서 수산물이 하나 둘 사라진다는 얘기다.

기후 위기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 27개국은 전체 전력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38%로 화석연료 37%를 앞질렀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내놓았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과 국가에 관세를 물릴 계획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기후 위기를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한국은 해외 석탄 발전 투자를 중단하기로 약속하며 기후위기 대응에 발 맞추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투자는 그대로 계속하겠다고 한다. 한국 전체 에너지 발전량의 약 36%는 석탄에서 얻는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6.6%로 경제협력개발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저조한 재생에너지 발전 수치 뒤에는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전기를 쓰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있다.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만 쓸 계획을 약속하는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RE100’ 캠페인을 열고 있다. 여기에 참여한 한국 기업은 손에 꼽힌다. 전세계 300개 넘는 기업이 동참했지만, 한국에서는 SK그룹 8개 계열사, 아모레퍼시픽, LG에너지솔루션 등 14개 기업뿐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자는 구호는 넘쳐나는데, 실천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지구를 살리자는 말이 돈의 힘에 밀려 작아지기 때문이다. 태양광·풍력 발전에는 '좋지만 단가가 비싸서 부담스럽다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실은 재생에너지와 배터리 효율이 점점 개선된 덕에 가격도 낮아지고 있다. 당장 비싸다고 등한시하기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일 방법을 고민할 때다.

3면이 바다인 환경과 강한 기술력을 합쳐 풍력 발전을 늘릴 방법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IT기술을 활용해 재생에너지 사용에 필요한 가상 발전소를 만들고 운영할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 한국은 짧은 기간에 성장하려고 무조건 많이 만들어 많이 쓸 수 있는 에너지만 고집해왔다. 석탄을 태우고 원전에 쓸 우라늄 원료를 채굴할 때 나온 탄소가 기후위기 원인이 된 지난날을 반복할 수 없다.

   
▲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24일 서울 중구 명동 한국YWCA연합회에서 열린 '기후위기 시대, 핵발전은 대안이 아니다! 탈핵 비상 선언'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1.8.24 ⓒ 연합뉴스

우리 일상도 탄소를 마음껏 배출하는 편리함에 익숙하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많이 만들어 쓰고 버리는 생활을 이어오며 기후를 바꿨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 이후 크게 늘어난 일회용품 사용량이 대표적이다. 화석연료에서 나온 플라스틱은 생산된 뒤 쓰레기가 되어 매립·소각되는 전 과정에서 기후위기를 야기한다.

패스트 패션에 취한 사람들은 유행에 맞춰 산 옷을 한 철 입고 버린다. 이 소비에 맞춰 합성 섬유를 대량 생산하고 파기할 때 매탄과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화려한 유리 건물은 단열성이 떨어져 에너지 손실이 크지만 비싼 가격으로 이름을 날린다.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의식주는 한국을 1인당 탄소 배출량 세계 6위에 올려놓았다. 편하고 보기 좋은 일상은 폭염과 식량위기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같이 파멸하거나, 함께 살아내는 갈림길에 서있다.


편집: 유제니 기자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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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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