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법망 비껴가는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노동착취

첫 월급 50만 원, 근로시간 하루 평균 11시간. 패션 스타일리스트를 보조하는 어시스턴트, 이른바 ‘패션어시’의 근로 환경은 근로기준법이 정해 놓은 노동 기준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50조는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초과 근무를 포함한 근로시간 상한도 52시간이다. 

지난해 청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실시한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노동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패션어시들은 주 평균 55시간 근무하며 합당한 추가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저 ‘좋아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당연시돼왔다.

▲ 패션어시 업무 중 하나는 촬영 시 필요한 옷들을 패션 대행사에서 대여해 촬영장으로 가져갔다가 다시 반납하는 것이다. 보통 스타일리스트가 빌릴 옷을 지정해줘야 하지만, 그 업무까지 패션어시에게 넘겨지기도 한다. ⓒ 이정민

일주일 간 하루 2시간 자고 일해도 월 50만 원어치 노동

한국의 패션스타일리스트 업계는 대부분 연예기획사 같은 기업과 외주계약을 맺으며 운영된다. 연예인의 소속사가 프리랜서인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면 그 스타일리스트는 어시스턴트를 고용한다. 패션어시는 하청의 하청인 셈이다. 스타일리스트는 ‘실장’으로, 어시스턴트는 ‘팀원’으로 불린다.

현재 패션 업계에 종사 중인 김 아무개(29) 씨는 지난 7월 14일 <단비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어시스턴트 근무 시절 첫 월급이 50만 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6개월간 50만 원을 받았는데 담당 연예인이 작품에 들어갔을 때는 더 바빠져서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일해야 했다”고 전했다. 담당 연예인이 촬영을 시작하기 전후로 그의 옷을 준비하고 정리하는 것도 패션어시의 몫이다. 그래서 모두가 출근하기 전에 출근해야 하고, 모두가 퇴근한 텅 빈 스튜디오에서도 그들의 근무는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취업 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초과근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정해진 월급만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논란이 일었던 최저임금도 이들이 일하는 현장에서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지난해 청년유니온은 패션어시 252명을 설문조사 해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노동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를 보면 이 가운데 94%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4대 보험 가입률도 5.16%에 불과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 낮 최고 기온 33도를 기록하며 폭염주의보가 이어진 지난 7월 13일,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패션어시들이 직접 옷을 나르고 있다. ⓒ 이정민

“우리도 누가 죽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지난 4월 청년유니온 산하 ‘패션어시유니온’이 공식 출범했다. 패션어시지부의 지부장을 맡고 있는 마라(가명)는 지난 7월 14일 <단비뉴스>와의 만남에서 첫 달 월급 40만 원으로 패션어시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패션어시들은 서울 곳곳의 각종 패션 브랜드를 돌아다니며 직접 옷을 빌리고 반납해야 하지만, 그 교통비용은 오롯이 본인 부담이다. 마라 씨는 최대한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자연스레 ‘환승달인’이 됐다고 말했다.

마라 씨는 “대부분이 20대 초반 여성이다 보니 직장 내 ‘가스라이팅(상황이나 심리를 교묘히 조작해 정서적으로 상대방을 조종하는 행위)’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그는 ‘너한테 주는 50만 원도 아깝다’며 대놓고 소리를 지르거나 스팀기를 집어던지는 등 ‘갑질’이 만연하다고 설명했다. 현장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처음 노조를 만들 때도 좁은 업계에서 ‘찍히는’ 일이 발생할까 봐 주저하는 움직임이 많았다. 

실제로 지난해 한 매체에서 익명에 가면을 쓰고 고용형태를 비판하는 영상이 나간 후 영상에 나온 패션어시 한 명이 실장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 마라 씨는 “‘우리도 누가 죽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다”며 고용이 불안정한 직군 안에서도 패션어시에 대한 언론 보도가 적은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그나마 여러 사람들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낸 결과 패션어시들의 임금이 평균 50만 원에서 70만 원대로 소폭 상승한 것이 긍정적 변화라고 말했지만 아직도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 퀵보다 패션어시의 인건비가 싸다는 이유로 직접 옷을 대여하고 반납하러 돌아다녀야 한다. 지정된 매장이 강남구에만 40곳에 달하고, 서울로 범위를 넓혀 보니 100곳이 넘었다. 이렇게 매장을 오갈 때 들어가는 교통비도 본인 부담이다. ⓒ 청년유니온 패션어시지부장 마라

근로계약서 작성 안 해도 법적 보호 가능

돌꽃노동법률사무소 김유경 노무사는 지난 6월 17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일 먼저 어시스턴트가 노동법이나 근로기준법 적용 기준이 되는 ‘노동자’인지 살펴봐야 한다”며 “그건 그들이 사용자인 스타일리스트와 종속관계인지 따져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종속관계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관해 판례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업무 내용이 사용자에 의해서 결정되는지 △근무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지 △사용자가 업무 관련하여 지휘·감독을 하는지 등이다. 업무 내용을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가 결정한 일을 시키는 순간 근로자에 해당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김 노무사는 패션어시가 노동청에 임금체불을 주장할 경우, 고용주가 이들을 단순 ‘프리랜서’로 둔갑시켜 체불진정을 무효화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가시적인 계약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시스턴트라는 직업 자체가 누군가를 보조한다는 업무적 특수성을 지니므로 이러한 본인의 근로자성을 강조하면 임금 체불 주장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청년유니온 패션어시지부는 지난해 9월 패션스타일리스트 6인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다.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청하면 노동부 소속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에서 노동관계법 위반 사실이 있는지 조사해 시정지시를 하거나 사법처리를 해 위법 사항을 개선하게 한다. 

청년유니온의 요청 결과 지난 2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스타일리스트 6인의 △근로계약서 미작성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근로자명부 미작성 △임금대장 미작성 △최저임금 미지급 등 6가지 위반 사항이 인정됐다. ‘불안정노동’이라는 큰 지각의 한 편에서 패션어시들은 법적 보호를 이끌어내는 등 업계 관행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편집 : 박성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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