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쟁점] KBS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 방안

KBS ‘뉴스9’을 진행했던 황상무 전 KBS 앵커가 지난 2020년 11월 9일 사표를 냈다. 황 전 앵커는 KBS 사내 게시판에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회사가 한쪽 진영에 서면 나머지 절반의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라며 “KBS는 극단의 적대 정치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황 전 앵커의 글을 인용해 수십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대부분 ‘KBS가 극단의 적대 정치에 편승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제목에 담으며 황 전 앵커가 KBS의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한 걸 ‘일침’으로 표현했다.

▲ 황상무 전 KBS 앵커가 2015년 KBS ‘뉴스9’을 진행하고 있다. ⓒ KBS

그러나 황 전 앵커 역시 자신이 지적한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서 자유로운 처지는 아니다. 1991년에 KBS에 입사한 황 전 앵커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간판 뉴스인 ‘뉴스9’ 앵커를 맡았다. 2018년 4월 KBS 경영진이 교체되기 전 KBS 부장·차장들은 “부당한 권력 비판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은 채 정부의 확성기 노릇에 매진한 자가 어떻게 아직도 공영방송 메인 뉴스의 앵커를 할 수 있느냐”며 황 전 앵커의 퇴진을 촉구했고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황 전 앵커를 둘러싼 이런 일들만 봐도, KBS가 정권의 영향을 짙게 받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독립적’ 저널리즘 구현 위해선 ‘정치적 독립성’ 필요

공영방송이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영방송인 KBS가 정치적으로 독립했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KBS가 운영하는 뉴스 유튜브 채널인 ‘KBS News’가 2020년 11월 12일부터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한 달이 지난 2020년 12월 16일 기준 총 응답자 61만여 명 가운데 78%가 “KBS 뉴스에서 공정성이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답했다. 2위는 정확성(13%)이었다. 설문지에는 “KBS가 정말 몰라서 물어보냐”는 댓글이 붙기도 했다. 실명으로 투표한 게 아니긴 하지만, 다양성·신속성·심층성 등 다른 보기보다 ‘공정성’을 아쉬운 점으로 지적한 사람이 80% 가깝다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KBS의 정치적 편향성 문제는 KBS의 역대 사장과 이사회 구성을 보면 더 명백히 드러난다. KBS의 초대 사장은 문화공보부 출신인 홍경모 사장이었다. 1973년 박정희 유신 정권 하에서 문화공보부 산하 서울중앙방송국이 한국방송공사로 전환할 때였다. 이후 육영재단 이사장을 지낸 최세경 사장이 뒤를 이었고, 다음엔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들 86명을 해고한 뒤 ‘땡전뉴스’를 만든 이원홍 사장이 임명됐다. 

그 뒤로도 대체로 정부와 같은 정치적 이념을 갖고 있거나, 이른바 ‘말이 통하는’ 인사가 KBS 사장이 됐다. 조항제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15년 한국언론학회 세미나에서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정치적 독립성 문제가 가장 많은 갈등과 파장을 불러일으킨 역사적 변수였다”며 “공영방송사의 ‘낙하산 사장’은 진보·보수를 떠나 정부의 반복된 방송지배 역사와 단임제 대통령의 정해진 레임덕이 초래한 숙명적인 귀결점”이라고 진단했다.

▲ 역대 KBS 사장. ⓒ 조한주

‘정치적 독립’ 불가능한 KBS 지배구조

KBS 사장은 KBS 이사회가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KBS 이사회는 방송법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가 구성에 관여한다. 방통위는 위원 5명으로 구성되는데, 위원장을 포함한 2명의 위원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다른 3명은 국회의 추천에 따라 임명하는데, 여당이 1명, 야당이 2명을 추천한다. 방통위는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기 때문에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서는 항상 여야 3:2 구도가 된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의견이 관철되는 구조라는 말이다. 이런 의사결정 구조가 그대로 KBS 이사진 선임에 반영되고, ‘과반수 찬성’이라는 의결 방식이 맞물리면서 ‘대통령·여당 → 방통위 → 이사회 → 사장’이라는 수직 체계가 형성된다. 다시 말해, 선거 결과에 따라 KBS의 사장 선임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 공영방송의 현행 지배 구조. ⓒ 김민정

참고로 방통위원 5명은 모두 정무직 공무원으로 위원장은 장관급, 부위원장을 포함한 위원은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2020년 11월 현재 방통위원장은 민언련 공동대표를 했던 한상혁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이며, 부위원장은 김현 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다. 김창룡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김효재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낸 안형환 전 KBS 기자가 위원을 맡고 있다.

공영방송 제도를 갖고 있는 영국과 일본, 프랑스, 독일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정치적 영향을 가장 쉽게 받게 돼 있다. 감독기구가 공영방송의 사장을 정할 때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는 나라는 사실상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독일 바이에른주가 과반 의결 방식을 택하고 있긴 하지만, 최대 77명으로 구성되는 ‘방송평의회’의 과반이어서 최대 11명의 이사가 결정하는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다르다. 단순 과반수 찬성, 그것도 10명 남짓의 소수 인원 중 과반수 찬성만 있으면 공영방송사의 사장이 결정되는 방식은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의결 방식이다.

수신료 인상 전제로 지배구조 개선해야

KBS의 정치적 독립성을 위해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기도 한다. 양승동 KBS 사장은 2020년 10월 1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KBS 수익 가운데 수신료는 46% 전후에 머물고 있다”며 “수신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수신료 대신 아예 준조세로 홍보해 수신료를 인상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KBS가 지난해 12월 9일 공개한 제972차 정기이사회 속기록을 보면 서정욱 KBS 이사는 “수신료의 본질은 KBS라는 공공재를 위한 준조세”라며 “수신료가 재원이 돼야만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율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결국 KBS 이사회는 지난 1월 27일, KBS 수신료를 월 2,500원에서 3,840원으로 인상하는 조정안을 상정했다. 실제로 전기요금 고지서에 ‘수신료 3,840원’이 반영되려면 KBS 이사회와 방송통신위원회, 국회까지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수신료 인상이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KBS의 수신료 인상 의사는 확실하다.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KBS 본관. ⓒ KBS

여러 가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양승동 KBS 사장은 낙관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지난 2일 양 사장은 한국방송공사 창립 48주년 기념사에서 수신료 인상 추진과 관련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상에서 반응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부정적인 의견들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국민참여형 숙의민주주의 방식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 여론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수신료를 올리는 것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법적으로 바꾸는 게 선행되거나 최소한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지배구조 개선 없이 공정성 확보를 내세워 수신료 인상을 주장하기엔 이미 KBS의 신뢰도가 너무 많이 떨어졌다는 주장이 배경이 되고 있다.

KBS는 2020년 1분기 자체 미디어 신뢰도 조사에서 KBS가 국내 언론매체 중 가장 신뢰도가 높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6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조사․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Digital News Report) 2020>에서 KBS의 신뢰도는 50%에 불과했다. 국내 언론 매체 중에서는 JTBC와 MBC, YTN의 뒤를 이어 4위에 그쳤다. 다른 나라의 공영방송들과 비교해도, 주요 국가들 중에는 꼴지 수준이다. 핀란드 YLE가 신뢰도 84%로 가장 높았고 영국 BBC는 64%, 일본 NHK는 60%였다.

‘KBS는 정파성이 짙다’는 불명예스런 딱지를 떼려면 지배구조 개선이 최우선 과제다. ‘대통령․여당 → 방통위 → 이사회 → 사장’이라는 수직 구조가 깨져야 ‘정치적 편향성’의 악순환 고리도 끊어진다. 일단 국회는 제도 개선의 첫 발짝을 뗐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계류된 채 끝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이 이미 발의됐다. KBS 부사장 출신인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12일, KBS 등 공영방송의 사장과 이사를 국민추천제도로 임명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공영방송 이사 후보자를 시민 100명이 참여하는 ‘이사 후보 추천 국민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추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사장 선출 역시 ‘국민위원회’ 투표로 선출하되, 이사회의 검증을 거친 뒤 최종 결정되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정 의원이 발의한 대로 법이 바뀐다 해도 KBS 이사는 13명으로 2명만 늘어난다. ‘이사 후보 추천 국민위원회’도 방통위가 위촉해 실제로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사 후보 추천 국민위원회’에 100명이 위촉된다는 개정안은 바람직한 방향이기는 하다. KBS 이사회 구성에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꼭 정 의원이 발의한 방식만이 아니라도, 제대로 KBS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결국 무산된 KBS 지배구조 개선안이 21대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공영방송’다운 KBS로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편집 : 윤재영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