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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고무줄처럼 당기기만 하다간
[상상사전] ‘생태계’
2020년 12월 22일 (화) 07:27:58 양수호 기자 protects55@naver.com
   
▲ 양수호 기자

빈 벽을 향해 고무줄을 튕기다 한순간 터져버렸다. 힘을 준 탓이다. 고무줄 같은 삶을 생각한다. 기상 오보는 가끔 신뢰를 되찾는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24시간을 전부 생산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한다. 지구의 역사는 빙하도 지금까지는 팽창과 축소를 반복해왔다.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모든 물건에는 탄성 원리가 작용한다. 일정한 응력을 주면 되돌아가려는 힘이 동시에 작동한다. 한계도 분명하다. 내가 날린 고무줄은 탄성한계를 초과해 터진 것이다. 극지방의 빙하도 이젠 탄성을 회복하지 못할 것 같다. 인류는 자연을 고무줄로 착각한 것이다. 힘을 줘 당기면 되돌아오리라 생각했다.

인류는 미래라는 손가락으로 자연을 당겼다. 미래라는 말, 아직 오지 않음과 거의 분명히 다가올 것, 그냥 가능한 가짓수 중 하나를 뜻한다. 미래를 담보로 자연을 쓴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호명하고, 많은 이가 자연에게 사죄한다.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이 낱말은 무책임하게 남용돼왔다. 사후세계는 알 수 없다. 죽는 순간 미래가 없다는 건 알 수 있다. 한 치 앞 미래도 못 보는 인류가 미래를 논하며 자연을 힘껏 당겨왔다. 자연에게 탄성력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만 죄책감이 덜했기 때문일까? 자연을 개발해 이득을 취하는 데는 불과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리지만, 자연이 회복하는 시간을 계산하면, 탄성력은 극히 미미하다. 현재 자연은 터진 고무줄이다.

“모든 생명에는 나 너 없으며, 그저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보면 그것이 사람의 것이거나 짐승이나 벌레 풀의 것이나 상관없이 저절로 슬퍼지고 놀라게 된다.”

함석헌 선생의 말처럼 우리는 모든 개체에 생명이 있다고 믿을까? 지구는 대부분 인간이 점유하고 있다. 인적이 없는 곳을 찾기 힘들다. 인간 때문에 희생되는 것도 많다. 인간에게만 존귀한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세계적으로 채식을 선호하는 사람이 느는 현상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공장식 축산의 폐해도 심각하다. 공장식 축산으로 태어난 동물은 비좁은 축사에서 각종 성장 주사를 맞고, 단기간에 도살된다. 분뇨와 트림을 통해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 자연을 개발해 이득을 취하는 데는 불과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리지만, 자연이 회복하는 시간을 계산하면, 탄성력은 극히 미미하다. 현재 자연은 터진 고무줄이다. © pixabay

자연의 관점에서 인간은 이기적이다. 당기는 힘을 버티지 못해 본래의 탄성력을 잃었다.오래전부터 세계 각국이 쓰레기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우유팩 하나가 썩는 기간이 5년이다. 나무젓가락이 20년, 스티로폼 용기가 50년, 플라스틱 용기가 80~100년, 칫솔과 음료수병이 100년 가까이 걸린다. 태평양에서는 거대한 쓰레기 섬이 발견됐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인 제로웨이스트 운동은 자연을 당기지 않는 일이다. 한쪽은 자연으로 이득을 취하는 대신 다른 한쪽은 탄성 한계를 알고 있다.

“자연이 살았을 때 그 안에 모든 것이 살았지만, 사람이 자연을 죽였을 때 그 안에 있는 사람도 죽는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주장한 함석헌 선생의 말을 곱씹게 된다. 그간 인간과 자연은 수직적 관계의 조화가 아니었는가 반문하게 된다. 인간은 자연에게 돌려준 것보다 빼앗은 것이 많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고무줄에 비유한 것도 인간 중심 사고방식이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다. 탄성 원리의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이봉수)

편집 : 이정헌 기자

[양수호 기자]
단비뉴스 기획탐사팀, 시사현안팀 양수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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