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권영지 기자

이달 들어 택배 기사 5명이 숨졌다. 사망한 택배 기사들은 추석 성수기에 택배 물량이 몰려 과로에 시달렸다. 정부는 추석 연휴 동안 택배 분류작업에 인원 1만여 명을 고용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투입인력은 20%에도 못 미쳤다. 이런 미봉책으로는 택배 기사들의 ‘죽음의 행렬’을 막을 수 없다. 택배 기사의 과로는 사용자와 고객의 이익에 기형적으로 편중된 노동구조에 기인한다. 그러한 구조적 문제를 고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들의 사망소식을 더 자주 들을 수 밖에 없다. 택배 기사들의 죽음이 계속되고 갈수록 그 주기가 짧아지는 건 노동자들에게 저임금 중노동이 가중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택배 노조와 업체, 정부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문제를 풀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노사정이 협력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택배 기사가 밀려오는 배송물량에서 자기 구역에 배정된 물품을 골라내고 있다. 물량이 많을 경우 택배 기사들이 사비를 들여 분류작업을 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 KBS

택배 기사의 업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은 분류작업이다. 택배회사의 물류 터미널에서 택배 기사의 배송차에 물품을 싣는 이 일은 전체 노동시간 중 40%를 차지한다. 분류작업은 택배 기사가 따로 돈을 받지 않고 일하는 ‘공짜 노동’인데다 업체는 계약서상 비용을 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계약서에 따르면 택배 기사의 구역 내 배정된 물품을 수령하는 일은 택배 기사의 업무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규정대로라면 분류작업에 대한 인건비가 이미 수수료에 포함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는 노동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불공정 계약이다. 과거엔 택배 물량이 적었던 데 비해 지금은 온라인 쇼핑이 활발해지면서 택배기사의 분류작업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업체가 택배 기사의 과로사에 “책임질 게 없다”며 계약서를 들이밀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계약 조건이 바꿔져야 한다.

또 한 가지 큰 문제는 택배 기사 대다수가 산업재해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택배 기사는 특수고용 노동자로 산업재해보험 가입 대상이다. 그러나 전체 택배 기사 중 산재보험 가입자는 약 15%에 불과하다. 택배 기사가 산재보험에 가입하면 보험료의 절반을 업체가 내야 한다는게 그 원인이다.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를 작성함으로써 가입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업체가 적용 제외 신청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업체가 택배 기사의 적용 제외 신청서를 대필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업체의 갑질을 막고 택배 기사의 과로사를 막으려면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

택배 기사들은 분류작업뿐 아니라 낮은 수수료를 받으며 당일에 배송해야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택배 기사들의 잇따른 죽음은 이같은 택배 업계의 횡포와 노동환경을 방치함으로써 발생한, 예고된 죽음이나 다름없다. 택배 기사들이 건강하게 일하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턱없이 낮은 임금도 올려야 한다. 최근 CJ대한통운이 분류작업 인원 투입과 택배 기사 전원 산재보험 가입을 약속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한진택배, 로젠택배 등 나머지 업체들의 노동 구조 개선 의지도 절실하다. 택배 업체들은 이제는 더 이상 적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착취해서는 택배업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걸 깨닫고 노동 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도 빠른 시일 안에 노동자와 택배 업체를 한 자리에 불러모아 의견을 듣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더 이상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편집 : 이정헌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