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위기와 혁신] ⑮ 불평등 심화하는 ‘승자독식’ 교육재정

“관내 고등학교 졸업생으로 우수대학에 진학하거나, 수능성적이 일정기준 이상으로 대학에 진학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서울대 1천5백만 원, 고려대‧연세대 1천만 원...” 

경남 의령군장학회의 장학사업 안내문이다. 지난 2월 1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의령군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 장학재단들이 ‘스카이(서울‧고려‧연세대)’ 등 상위권대에 진학한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학벌에 따라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지방자체단체 장학재단의 학교(학벌)에 따른 장학금 지급 차별에 대한 의견 표명’에서 지급기준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특정 대학에 진학했다는 이유로 장학금을 주는 것은 대입 경쟁 결과만으로 학생의 능력과 가능성을 재단하는 ‘학벌주의’라는 이유였다.

지역 고교생 명문대 진학하면 지자체에서 장학금

▲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학교 정문. 전국 지방자치단체 38곳의 장학재단은 서울대 등 상위권대에 진학한 지역 고교 졸업생에게 장학금을 지급, ‘학벌차별’이라는 인권위원회 지적을 받았다. © 장은미

인권위의 의견표명은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지난해 지자체 장학재단의 장학금 지급 차별에 대해 진정을 낸 결과다. 사걱세는 2018년 전국 군 단위 지자체 장학재단 68곳의 장학금 지급 실태를 조사하고, 강원 양구군·충북 증평군·경북 고령군·전남 영암군 등 38곳에서 상위권대 합격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걱세는 인권위 의견표명에 대한 논평에서 “지자체 장학재단이 공익법인으로서 사회 일반의 이익에 이바지하기 위한 고유한 목적을 위반했다”며 “주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대다수 학생들을 배제함으로써 열패감을 준 것에 대해 자성하고 해당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권위 권고를 받은 지자체 중 평창장학회, 구례군인재육성기금, 무주군교육발전장학재단 등 19곳은 명문대 장학금을 폐지하거나 개선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양구군양록장학회, 고령군교육발전위원회 등 나머지는 ‘노력에 대한 보상’ ‘지역인재 육성’ ‘지역고교 경쟁력 향상’ 등을 이유로 해당 장학금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명문대 장학금 제도를 운영한 경북의 한 지자체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와 경기지역 사립대 스포츠의학과에 진학한 김소연(23) 씨는 “상위권 진학자에게 지원을 집중해 학벌주의를 강화하는 장학금 제도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학금의 공공적 의미를 살려 단순한 입시성적 순이 아니라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창의적인 진로에 도전하는 학생을 지원해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 경남 의령군장학회 우수대학 진학 장학금 공고. 2018년 11월 14일 최종수정일 이후 2020년 3월 현재까지 그대로 게재돼 있다. © 의령군장학회 홈페이지

한국 교육에서 승자가 자원을 독식하고 그로 인해 더 강력한 승자가 되는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등이 소수 상위권 대학과 학생들에게 각종 재정 지원을 몰아주어 더욱 유리한 여건을 만드는 사이, 대학서열이 낮은 대학은 지원에서 소외돼 교육환경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 때문에 대학서열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이 더욱 강해지고 지방대 등 하위권 대학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노골화하고 있다.

‘스카이’ 3개 대에 재정지원사업 5분의 1 집중

▲ 경북지역 한 사립대 정문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대학재정지원사업인 ‘소프트웨어 중심대학’ 유치를 홍보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 장은미

지난 3월 24일 경북 경산에 있는 한 4년제 사립대 정문 앞 도로에는 ‘소프트웨어 중심대학 – 과학기술정보통신과학부 선정’이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정문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300미터(m) 거리에 똑같은 현수막이 설치된 것을 포함, 교내에 어림잡아 스무 개 가량의 구조물이 같은 내용을 홍보하고 있었다. 과기정통부가 주관하는 이 사업은 대학교육을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혁신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자는 취지로 지난 2015년부터 매년 5~8개 대학을 선정해 평균 20억 원씩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충북의 한 사립대 홈페이지에는 ‘2020년 해외취업연수사업(K-MOVE스쿨) 3개 과정 선정’이라는 제목의 교내 뉴스가 3월 내내 메인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해외취업연수사업은 국내 청년을 맞춤형으로 교육해 글로벌 기업 등에 취업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대학은 뉴스에서 “2019년 정부지원금 대비 2배 증액된 약 4억 원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며 ‘쾌거’라고 자랑했다.

대학들이 이토록 요란하게 ‘실적’을 홍보하는 재정지원사업. 그러나 사실은 이 대학재정지원사업들이 교육 불평등을 부추기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소장 제정임)가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운영하는 정보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를 통해 지난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전국 4년제 일반 대학 220여 곳의 재정지원사업 수혜 실적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3개 대학에 전체 지원금의 5분이 1 가까이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연 평균 지원금은 ‘비 스카이대’의 20배

지난 12년 간 정부와 지자체가 전국 대학에 지원한 재정지원사업비 총 49조6749억 원 가운데 서울대에 지원된 금액은 4조6175억 원으로 전체의 9.3%를 차지했다. 서울대 재학생 수는 2만8천여 명으로 조사 대상 전국 4년제 대학의 전체 학생 수 194만여 명 중 1.4%에 불과하다. 또 연세대에 지원된 금액은 2조4479억 원으로 전체의 4.9%, 고려대는 1조8258억 원으로 전체 3.7%를 차지했다. 스카이 세 대학의 재정지원사업비 총합은 8조8912억 원으로 전체의 17.9%에 달했다. 조사 대상인 전체 대학의 재학생 수 194만 명 중 5% 정도(분교 포함)만을 차지하는 세 대학이 전체 사업비의 1/5 가까이를 가져간 것이다.

▲ 2007년~2018년 대학재정지원사업비 전체 지원금 중 스카이 대학 비중. 세 대학에 대한 지원금이 17.9%로 1/5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 임형준

매년도 대학별 평균 재정지원비를 살펴보면 차이는 더 확연히 드러난다. 서울대는 매년 평균 3848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 받았고, 연세대는 2040억 원, 고려대는 1522억 원을 각각 지원 받았다. 반면 세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은 매년 평균 193억 원을 받는 데 그쳤다. 서울대는 전국 대학 평균의 20배 가까이, 연세대‧고려대는 7~10배를 지원 받은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스카이 대학과 나머지 대학의 재정지원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벌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지난 2007년 전국 대학재정지원사업비 1조4000억 원 가운데 서울대는 1428억 원, 연세대는 291억 원, 고려대는 295억 원을 지원 받았고, 전국 대학은 평균 80억 원을 지원 받았다. 그러나 2018년에는 총 사업비 6조6000억 원 가운데 서울대가 5403억 원, 연세대 3316억 원, 고려대 2760억 원을 받은 반면, 전국 대학 평균은 296억 원이었다. 서울대 지원비가 약 4000억 원, 연세대가 약 3000억 원, 고려대가 약 2500억 원 상승하는 동안 나머지 대학은 평균 216억 원이 증가하는 데 그친 것이다.

▲ 2007~2018년 스카이 대학과 전국 대학 220여 곳의 대학재정지원사업 수혜 추이. 스카이 대학의 지원금은 가파르게 늘었지만, 전국 대학의 평균 지원금은 큰 변화가 없다. © 임형준

그러다 보니 2018년 하위 132개 대학의 지원비를 모두 합친 금액은 5451억 원으로 서울대 한 곳의 지원비(5403억 원)와 비슷했다. 재정지원 금액이 적은 대학은 대부분 사립대였고 교육여건·성과 등을 측정하는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아 재정지원제한에 걸리거나 재정지원사업을 적게 수행한 경우였다. 가장 지원금이 적은 대학은 전남 한려대로 7천만 원 수준에 불과했다.

‘매우 불평등한' 재정지원이 대학 서열 고착화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고등교육재정 배분 및 운영의 합리성 제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1년~2017년 전국 일반 4년제 대학을 대상으로 한 중앙정부 재정지원사업 배분의 공평성을 분석한 결과 지니계수가 0.67~0.72에 달해 매우 불평등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니계수는 분포의 불평등도를 측정하기 위한 계수로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 
 
이길재(46) 충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상당수 대학이 인건비, 전기세 등 경상운영비 지출만으로 재정운용이 벅찬 가운데 대학재정지원사업비는 학생 교육 및 연구, 실험실습, 해외봉사, 취창업지원 등에 사용할 수 있어 이 돈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 교육에 큰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외부에서 돈을 끌어올 수밖에 없어 전국 대학들이 여기에 목을 매고 있다”며 “많은 지원을 받는 학교들은 계속 받아가서 돈 잔치를 하고 그렇지 않은 대학은 교육환경이 갈수록 뒤처지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영리 민간연구기관인 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43) 연구원은 “재정지원을 많이 받는 대학은 사업계획서라든지 교육·연구현황, 대학평가 등에서 좋은 성과를 내서 지원 받는 것인데 무슨 문제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주요 대학이 재정지원을 독식하는 구조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 고등교육 재정이 한정적이다 보니 선택과 집중의 시장 논리로  쉽게 성과를 낼 수 있고 상대적으로 교육환경이 나은 대학에 지원이 편중된다”며 “소수 상위권 대학에 자원이 집중됨으로써 이미 노골적으로 나누어진 대학 서열을 강화하고 교육 여건을 양극화해 고등교육 체제가 붕괴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본관 전경. 고려대는 2018년 대학재정지원사업비 2760억 원을 받았다. 전국 대학 평균은 296억 원으로 고려대의 10분의 1 수준이다. © 장은미

서울대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전국 대학 평균의 3배 

학생 1인당 교육비를 봐도 명문대와 비 명문대의 격차는 크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가 대학알리미 사이트에 공개된 2008년~2018년 전국 4년제 일반대학(이공계특성화대학 제외) 220여 곳의 학생 교육비를 분석한 결과, 전국 대학의 연간 1인당 교육비는 평균 1124만원이었던 반면 서울대는 3858만원으로 3.43배였다. 또 연세대는 2593만원(2.31배), 고려대는 1941만원(1.73배)에 달했다. 반면 일반대 중 최하위 대학인 전남 세한대는 1인당 교육비가 8백만원 수준이었다.

▲ 2008년~2018년 스카이 및 전국 대학 220여 곳의 학생 1인당 교육비 추이. 스카이의 교육비가 전국 대학 평균의 2~3배에 달한다. © 임형준

스카이 대학에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집중된 이유는 ‘선택과 집중’ ‘평가와 경쟁’을 바탕으로 한 선별적 차등지원 방식 때문이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작성한 ‘대학재정지원 평가와 발전과제(2017)’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대학재정 지원정책은 ▲ 1994년 이전, 대학재정지원 미비 ▲ 1994년~2003년, 평가 기반 차등지원 제도 도입·확대 ▲ 2004년~2007년 특수목적지원사업 전면 실시 ▲ 2008년~2018년, 정량적 지표 활용 포뮬러(공식) 펀딩 도입 및 대학구조조정 연계 본격화 시기로 나뉜다. 각 시기별로 상황은 다르지만 ‘명문대 집중 지원’이라는 추세는 갈수록 강해졌다. 스카이 대학은 정부 수립 초기부터 엘리트 교육기관으로서 집중 지원 대상이 돼 여러 특혜를 받았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대학재정 지원제도가 평가를 통한 선별 및 차등 지원으로 발전하면서 경쟁 우위를 바탕으로 독점적인 혜택을 누렸다고 할 수 있다.

▲ 역대 정부에서 모두 집중적인 재정지원을 받아 온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학교마크. ⓒ 각 대학 홈페이지

공주대 교육학과 김훈호(41) 교수는 “정부는 평가를 통한 재정지원사업이 공정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평가 기준으로 얼마나 지원사업을 잘 수행할 여건이 되느냐를 보았기 때문에 상위권 대학이 좋은 점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며 “지원 받는 대학은 서열에 따라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교육 여건에서 안정궤도에 올라간 대학은 계속 지원을 받는 반면 후발 주자들은 거기에 발을 담그기 쉽지 않은 구조”라며 “교육부나 기획재정부 역시 그런 상황을 알고 있을 테지만 결국 돈을 투자해서 성과를 낼 수 있을 만한 대학에 재정지원이 가는 게 맞지 않겠느냐 하는 논리가 받아들여 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역진적 교육재정 배분은 반헌법적 행위”

스카이 대학에 대한 집중 지원은 교육 여건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역진적 배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대학 재학생들은 국비지원금을 편중 지원 받음으로써 다른 대학생보다 우월한 교육여건에서 공부하고, 결과적으로 더 높은 경쟁력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명연(54) 상지대 법학과 교수는 “스카이에 대한 지원 몰아주기는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반헌법적 행위”라고 잘라 말했다.

“우리나라 헌법 제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입니다. 그냥 교육 받을 권리가 아니고 ‘균등하게’란 말을 붙인 건 이 권리가 자유권이 아니고 사회권이라는 겁니다. ‘능력에 따라’라는 말도 단순히 수능점수 같은 성적이 아니라 연구, 기술, 직업 등 각자의 적성과 개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결국 국가는 사람과 지역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균질한 교육을 받게 해주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서울 명문대 학생이 더 잘 되도록 집중 지원해 주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더 뒤처지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명백히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겁니다.”

스카이 집중 지원은 이들 대학 재학생 중 고소득층 비율이 높은 만큼 이미 많은 자원을 가진 ‘금수저’에게 더 많은 자원을 더해주는 결과를 낳는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의 ‘2018년 1학기 서울‧고려‧연세대 재학생 소득분위 산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스카이 재학생 중 소득 10분위(월소득 1200만원 이상) 비율이 30%, 9분위(730만원 이상) 비율이 16%로 ‘고소득층’ 비중이 46%나 됐다. 스카이를 제외한 전국 대학 국가장학금 신청 학생 중 9‧10분위 고소득층 비율(25%)의 약 두 배에 달한다.

▲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한국장학재단 ‘2018년 1학기, 서울‧고려‧연세대 재학생 소득분위 산출 현황’ 자료. © 김해영 의원실

이는 국가장학금 미신청자를 제외한 수치로, 이들을 포함하면 고소득층 비율은 더욱 늘어난다. 미신청자는 대부분 대학 등록금이 부담스럽지 않거나 소득 수준이 드러나길 원치 않는 부유층으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은 한국장학재단 ‘2014∼2016년 대학별 국가장학금 신청 현황’ 자료를 통해 국가장학금 신청자와 미신청자의 고소득층을 더할 경우 그 비율이 전체 스카이 재학생의 70%까지 올라간다고 분석했다. 

그런데도 스카이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기회균형선발’을 시행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기회균형선발은 기초생활수급자, 특성화고 졸업자, 농어촌지역 학생, 북한이탈주민, 서해5도민 등이 지원할 수 있는 특별전형이다. 대학알리미 공시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전국 일반 4년제 대학 222 곳의 평균 기회균형선발 비율은 전체 합격생의 11.6%(4만700명)였지만, 서울대는 4.8%, 고려대는 5.2%, 연세대는 6.4%에 불과했다. 정부로부터 가장 많은 재정지원을 받는 대학이지만 교육 불평등 완화를 위해 권장하는 제도에는 적극 나서지 않은 셈이다.

지방대, ‘부익부 빈익빈’ 현실에 박탈감  

재정지원사업에서 소외된 지방대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등이 작성한 논문 ‘지방대학의 관점에서 본 현행 대학재정지원사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2017)’에 따르면, 전국 지방대 관계자 2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지방대들은 대학재정지원사업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4.09/5점 척도)’ ‘자원배분 왜곡(3.92)’ ‘지역 간 격차 심화(3.72)’ 등에서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 경북지역 한 4년제 대학 캠퍼스에 교육부 재정지원사업 중 하나인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CORE) 유치를 홍보하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 장은미

이길재 교수는 “온 국민의 머릿속에 1등부터 꼴등까지 전국 대학의 서열이 매겨진 상황에서 정부마저 그 서열 구조가 정확하게 반영되는 지표를 통해 차등적인 재정지원을 시행하고 있다”며 “이처럼 정부 지원이 차별적이고 10년간 등록금도 동결되면서 상당수 대학의 교육 현장이 정말 후진국 수준으로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학과만 해도 1년 운영 예산이 650만원인데 이 금액으로 A4용지나 프린터 토너 사기도 빠듯해 조교가 복사용지를 빌리러 다니기도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고등교육 혁신을 이루거나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전국 4년제 사립대학 지역별 대학당 운영수지 현황. 전체적으로 운영수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2017년 이후 상당수 지역대학이 적자상태에 놓여있다. © 임형준

졸업생 사회진출 등 교육성과 격차도 심화 

이미 앞서가는 대학에 더 많은 자원을 몰아주는 교육재정구조는 이미 사회문제로 대두된 대학 간 교육성과의 격차를 지속, 강화한다. 김성훈 이화여대 교수의 논문 ‘대학 학벌이 대졸자의 첫 취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2014)’에 따르면 스카이를 비롯한 상위 10위 대학 졸업자의 첫 일자리가 대기업 정규직일 가능성은 31위 이하 대학 졸업자의 1.65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 대학 출신이 한국 사회 요직을 독점하는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사걱세가 지난해 11월 우리나라 권력기관 주요 인사의 출신 대학을 분석한 결과, 입법부에선 2016년 선출된 20대 국회의원(300명) 중 서울대가 27%, 고려대 12.3%, 연세대 8%로 세 대학 출신자의 비율이 총 47.3%(142명)였다. 사법부에선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7명이 서울대 출신이었고, 대법관 14명 중 서울대 출신이 9명, 고려대 출신이 2명이었다. 행정부에서도 문재인 정부 2018년 2기 행정부 개각 결과 차관급 이상의 약 59%가 스카이 출신이었다.

▲ 사걱세가 분석한 스카이 출신의 한국 사회 주요 분야 독점 현상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런 스카이 독점 양상은 젊은 세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2019년 신임 법관 80명 중 서울대 출신은 28명(35%), 연세대 13명(16.3%), 고려대 10명(12.5)으로 세 대학 출신이 63.8%에 달했다. 로스쿨 출신 신임검사 55명 중에도 고려대 15명(27.3%), 연세대 8명(14.6%), 서울대 7명(12.7%) 등 세 대학이 36.4%를 차지했다. 같은 해 국가공무원 5급 공채(행정) 합격자 270명 중에서도 서울대 출신이 75명(28%), 연세대 50명(19%), 고려대 35명(13%)으로 스카이 비율이 60%나 됐다. 2019년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합격자 중 스카이 비율도 68.3%였다.

▲ 최근에도 법원, 검찰, 행정부 등 권력기관에 진출하는 ‘엘리트’ 중 스카이 출신이 60%를 넘어서고 있다. ⓒ 임형준

‘대학혁신지원사업’ 불평등 구조 개선에 한계 

문재인 정부는 2019년부터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재구조화하고, 소수 대학을 선별해 차등적으로 나눠준 특수목적사업 일부를 다수 대학에 비교적 균등하게 나눠주는 일반재정지원 사업으로 개편하는 등 대학 불평등 완화를 위한 노력을 보이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대학혁신지원사업’은 대학자율역량강화사업(ACE+), 대학특성화사업(CK) 등 5개 재정지원사업을 통합해 2019년~2021년 3년 간 총 5688억 원을 자율개선대학 131곳, 역량강화대학 12곳에 일반재정으로 지원하고 대학별 중장기 발전계획에 따라 자율적으로 사용하도록 한 사업이다.

여기서 자율개선대학이란 대학구조조정을 위한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에서 상위 64% 안에 들어 정원감축 없이 재정지원을 받는 곳이고, 역량강화대학은 나머지 대학 중 20% 정도로 정원감축을 조건으로 재정지원을 받는 곳이다. 고등교육 기본 조건을 갖추었다고 인정받은 자율개선대학은 학생 수와 교육여건에 따라 매년 20억~70억 정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대학재정지원사업비가 경쟁에서 이긴 극소수 대학에 쏠리던 이전보다는 많은 대학이 안정적으로 재정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 교육부의 대학 재정지원사업 재구조화 모델. 5개 특수목적사업을 일반재정지원 사업(대학혁신지원사업)으로 개편했다. © 교육부

그러나 이 정도의 변화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희(50) 대구대 교직부 교수는 “방향은 맞지만 각 대학이 재정을 집행할 수 있는 내용이 여전히 제한적이고 전체 대학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기에는 지원 규모도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대학혁신지원 사업을 통해 대학이 학생들에게 마땅히 제공해야할 여러 프로그램들을 활성화할 수 있는 효과는 있어요. 그런데 그 외에 교수 연구비, 실험실습 기자재, 환경여건 개선에 활용하기에는 너무 제한이 많아요. 각 대학은 기본 운영비가 없어서 연구비를 삭감하고 환경투자도 못하면서 계약직 직원을 고용해 학생 교육 프로그램만 돌리고 있는 거예요. 현재 고등교육 구조상 일반 경상경비 여건을 개선하고 환경 격차를 줄이기 위한 재원은 확보도 안 돼 있을 뿐 아니라 그런 사업 자체가 없어요.”

대안은 OECD 평균 수준으로 고등교육재정 늘리기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교육계는 우리나라 고등교육 재정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고등교육 정부 재정 확보 방안 연구(2019)’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고등교육 재정지원사업 예산은 교육부 9조2000억 원과 타 부처·지자체 예산을 포함해 총 13조7600억 원 정도다. 그 중에서 대학생에게 직접 지원되는 국가 장학금이 4조3000억 원 정도고, 이를 뺀 나머지가 실질적으로 고등교육기관에 지원되는 금액이다.

보고서는 한국 고등교육 1인당 교육비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으로 설정하고 현재 등록금을 유지할 경우, 적정 고등교육 재정은 2020년 24조569억 원 정도 된다고 분석했다. 같은 조건으로 등록금을 2030년까지 현재의 30%까지 인하하면 2020년 25조3828억 원, 2030년에는 26조6212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보다 2배 정도 많은 고등교육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역시 2019년 하계 대학총장세미나에서 고등교육비 정부 투자 수준을 OECD 평균으로 끌어올리려면 고등교육 예산을 2023년까지 24조1600억 원으로 늘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 OECD와 한국의 GDP 대비 공교육비 및 민간교육비 지출 비율. 한국은 대학교육에서 정부 지출이 부족하고 민간의 지출 비중이 높다. © 임형준

실제로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재정 부담은 낮은 편이다. ‘OECD 교육지표 2019’ 통계자료(2016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고등교육 공교육비 중 정부재원 비율은 0.7%로 OECD 평균(0.9%)보다 낮았다. 대신 고등교육 민간재원 비율은 1.1%로 OECD 평균(0.5%)보다 2배 이상 높았다. 한국 대학교육이 정부 지원보다는 학생과 학부모가 내는 등록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또 한국의 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역시 1만486달러로 OECD 회원국 평균(1만5556달러)의 67.4%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대학생은 초등학생(1만1029달러), 중고등학생(1만2370달러) 보다 적은 교육투자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평균은 고등교육이 초·중등교육보다 1.5~2배 가까이 많은 투자를 받는 것과 대비된다.

▲ OECD와 한국의 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액 비교. OECD 평균 고등교육 1인당 지출액은 1만5556달러인 반면 한국 고등교육 1인당 지출액은 1만486달러에 그친다. © 임형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둘러싸고 논란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을 신설해 일정 규모의 고등교육 예산을 안정적, 지속적으로 확보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은 교육부가 지금처럼 매년 예산을 편성해 재정지원금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내국세의 일정 부분을 대학에 교부해 고등교육 재정을 상시 지원받도록 제도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우리나라 초중등학교는 1971년부터 법에 따라 내국세의 20% 정도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지원 받아 활용하고 있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이 필요하다. 20대 국회에서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이 3가지 발의됐다. 2016년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2017년 윤소하 정의당 의원,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해 계류 중이다. 이들 법안은 국립대뿐 아니라 사립대에도 대학운영에 필수적인 경상비를 일정 부분 국가가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교육부와 기획재정부는 부실 대학을 포함한 사립대를 세금으로 지원하는 데 대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태훈(46) 사걱세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지금 정부가 가진 고등교육재정 규모가 너무 적어 현재 규모로는 대학교육 발전을 위해 혁신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며 “우리나라 GDP 규모로 봤을 때 고등교육재정 지원 자체를 지금보다 최소 2배 이상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부실·비리대학 때문에 교육재정 투입에 반대 목소리가 있지만 경영진 비리 때문에 학생과 교수도 피해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기본적인 교육을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은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에 미비했던 교육부 감사를 철저하게 시행하고, 경영권자가 스스로 징계여부를 결정해 솜방망이 징계에 그치게 하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면 이들 대학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역거점 국립대’ ‘공영형 사립대’ 등 획기적 발상 필요

<대학 평가의 정치학> 공저자인 김용(48)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학재정지원의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 사회가 대학 체제를 어떤 방향으로 혁신할 것인지 큰 그림을 그리는 데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대학이 전 세계에서 사립대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갖고 공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국공립대 비중을 높이기 위해 집중 투자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부산대학교 전경. 김용 교수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지역 국립대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높은 수준의 거점대학으로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부산대 홈페이지

“우리나라 대학은 국립대나 사립대나 다 백화점식으로 운영하니까 역할 분담도 안 되고 효율성도 떨어집니다. 일본은 이공계열은 국립이 담당하고 상대적으로 재정투입이 적은 인문사회계는 사립대가 담당하는 등 역할 분담이 잘 돼 있는 편입니다. 우리도 서울대와 서울 주요 사립대 중심 체제를 극복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 지역 국립대를 더욱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산대 같은 곳을 서울대급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돕고, 많은 인재들이 지역 대학에 가서 공부하도록 지원하는 것이죠. 조금 넓히면 경북대, 전남대, 충남대 등과 같은 지역 국립대를 높은 수준의 거점대학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연덕원 연구원은 “고등교육이 무상으로 이뤄지는 유럽은 대학을 평가해 차등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학생 수’에 따라 균등하게 배분한다”며 “현재 사립대 중심 체제를 정부가 대학재정의 절반을 책임지는 ‘정부 책임형 사립대(공영형 사립대)’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책임형 사립대란 대학 운영비의 50%를 국가가 책임지는 대신 이사 정수의 50% 이상을 공익이사로 꾸리고 국립대 수준의 재정·회계 투명성 장치를 마련해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사립대의 폐단으로 지적된 부실운영, 족벌경영 등의 문제를 해소하고 공적 자금지원에 대한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김명연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공영형 사립대의 ‘연합 네트워크’를 강조했다. 그는 “지금처럼 대학이 서열화한 구조에서는 지방대가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특성화, 전문화를 이루기 어렵지만, 공영형 사립대를 권역별로 네트워크화해 학과와 교수를 통합·공유하면 집중적으로 특정 분야를 육성해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장기적으로 국공립대와 공영형 사립대가 거시적인 통합 네트워크를 만들어 신입생을 권역별로 통합해 모집하고 공동으로 교육해서 학점, 학위를 주는 연합 교육으로 지역별 교육여건도 균등하게 만든다면 대학의 서열구조와 학벌구조도 해체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김민희 교수는 “한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대학의 공공성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공익적 목표에 따라 대학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대학교육에 대해 유독 설립자와 수익자 부담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데, 대학을 졸업해 사회에 진출한 인력들이 경제성장이나 사회적 성숙, 국가 경쟁력에 기여한다는 논리가 더욱 힘을 얻어야 공적 투자를 늘려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미국의 하버드 등 선진국 명문대학은 대부분 수도가 아닌 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교육의 품질과 상관없이 ‘지잡대’ 등으로 싸잡아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토가 심하다. 지방대생들이 편입 등을 통해 서울로 ‘탈출’하는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저출산 추세로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지방대 중 상당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와 <단비뉴스>는 심층기획 ‘지방대 위기와 혁신’을 통해 서울 중심의 불균형 발전과 왜곡된 학력 경쟁 등이 낳은 지방대 소외의 실상을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편집 :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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