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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은 신분해방 꾀한 ‘주체적 여성’
[인문교양특강] 권순긍 세명대 교수
주제: 고전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
2020년 01월 31일 (금) 11:56:18 황진우 김서윤 기자 gugu9213@naver.com

“고전이란 것은 수많은 사람에게 입과 입을 거쳐 다듬어지고 다시 만들어져 수많은 군중의 목소리가 들어있습니다. 옛날 사대부 문화는 소설은 잡스럽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그 시절을 잘 대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생각보다 더 높은 수준의 모습을 묘사해놓기도 하구요.”

권순긍 세명대 미디어문화학부 교수는 ‘고전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를 주제로 저널리즘스쿨 특강을 했다. 그는 “여러분들은 언론계에 진출하기 때문에 고전을 더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권순긍 교수는 <심청전>의 의미를 재해석했다. ⓒ 김서윤

‘춘향전’이 포르노가 아니라 예술인 이유

권 교수는 먼저 <춘향전>과 <심청전>을 설명했다. <춘향전>은 몽룡과 춘향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지니고 있고 <심청전>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을 내포하고 있다. 두 이야기 모두 엄격한 조선 사대부 시절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

<춘향전>은 20여 편이나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인기가 많은 작품이다. 작품 세계로 들어가면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보다 야한 부분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포르노가 아닌 예술 작품으로 부르는 이유는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진실하고 사랑하는 모습 자체가 영혼과 육체가 만나는 아름다운 진경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춘향을 당시 시대 상황을 뛰어넘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표현했다. 그는 춘향이 몽룡과 만나는 장면과 서약하는 장면, 그리고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는 장면을 예로 들며 “조선 시대 남성 중심의 기담과 차별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성의 ‘신분 상승’이 아닌 ‘주체적 여성’으로서 ‘신분 해방’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심청은 효녀인가 불효녀인가

심청은 현재 ‘효녀’로 평가받지만 당시 사회 기준으로는 ‘불효녀’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해서 ‘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이를 보존하는 것이 효의 시작인데 인당수에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자기 죽음으로 아버지를 살렸으니 ‘불효’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권 교수는 “‘효’보다는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를 향한 ‘고귀한 사랑과 희생’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 다른 판소리와 달리 <심청전>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많다. ⓒ 권순긍

<심청전>에는 환상적 요소가 개입돼 있다. 본래 심청은 천상계 서왕모 딸인데 죄를 지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가 용궁 환생으로 고난을 극복한다. 그리고 자기 희생으로 아버지를 비롯해 세상 사람이 눈을 뜨는 ‘천지개벽’ 세상을 만든다. 이렇게 <심청전>은 시대 순환 구조로 되어 있다. 작곡가 윤이상과 영화감독 신상옥은 <심청전>을 이용해 오페라를 작곡하고 유신시대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권 교수는 대표적인 대중 서사인 <춘향전>과 <심청전>이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나오지 못하고 대표 캐릭터가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는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게 바로 고전이기 때문에 고전을 새로운 콘텐츠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흥부전’이 알려주는 자본주의 철학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잘못된 표현이에요. 정당하게 벌어야죠. 돈이라는 황금탑이 면죄부가 되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들어온 <흥부전> 내용 대부분은 제비 덕분에 흥부는 부자가 되고 놀부는 망한다는 권선징악 주제를 담고 있다. 하지만 권 교수는 이에 더해 <흥부전>이 조선 후기 빈부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놀부는 첫째 아들이라는 이유로 부모 재산을 독차지한 탐욕의 대상이다. 반면에 흥부는 농촌계층 분화 과정에서 발생한 몰락 양반 또는 빈농이다. 흥부는 짚신장수, 날품팔이, 매품팔이 등을 해도 당시 사회구조 때문에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다. 보은 박 덕분에 가난에서 탈출하지만 현대판 ‘로또’ 같은 이런 낭만적인 방법이 없었다면 가난에서 탈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권 교수는 <흥부전>이 보여주는 자본주의를 현대 자본주의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경고하는 메시지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18, 19세기부터 양극화가 나타나 빈부갈등이 벌어지는 모습이 이 고전에 담겨있다”며 “지금 사회에서도 자본가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극화 현상은 정부마다 계속 화두가 되는 부동산 문제만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도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YTN 보도에 따르면 주택 가격 상위 10% 가구와 하위 10% 가구 간 집값 격차는 최대 38배나 차이 났다. 강남구 주택보유자 22%는 두 채 이상 집을 가진 다주택자로 파악됐다.

   
▲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도 집값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 ⓒ YTN

권 교수는 노르웨이를 예를 들며 우리나라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노르웨이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 차이가 심하지 않다며 우리나라와 큰 차이점은 소득보다 분배를 강조하고 누구나 세금을 많이 내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재벌은 놀부 모습이 많죠? 세금도 많이 안 내려고 하고요. 예를 들어 삼성은 세금을 안 내면서 변칙 증여하려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쳤잖아요. 그런 걸 보면 <흥부전>이 우리에게 많은 얘기를 해주는 것 같아요. 모두가 풍성한 이 세상을 위해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동물을 내세운 정치 풍자

권 교수는 <토끼전>도 소개했다. <토끼전>의 핵심은 동물우화를 이용한 봉건체제 풍자다. 일제강점기로 넘어가기 전까지 우리나라 정치체제는 왕을 중심으로 한 봉건체제였다. 모든 왕이 지혜롭고 백성을 생각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아 나라가 혼란스러웠던 때도 많았다.

   
▲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김서윤

<토끼전>에는 두 가지 회의 모습이 나온다. ‘용궁 어전회의’와 ‘산중모족회의’다. ‘용궁 어전회의’에서는 병든 용왕을 위해 신하들이 회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충신이라고 하지만 어느 하나 육지로 토끼 간을 구하러 가는 신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지금으로 치면 6급 공무원쯤 되는 ‘자라’가 간을 구하러 간다.

‘산중모족회의’는 사냥개를 처치하려고 소집한 회의다. 군주는 호랑이고 여우와 멧돼지 등이 호랑이를 모시는 신하다. 회의에서는 사냥개를 처치할 방도는 없고 겨울철 식량을 걱정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쥐와 다람쥐로 비유되는 일반 백성은 겨울 양식을 강탈당하고 멧돼지는 호랑이에게 자기 자식을 바친다. 중간 계층의 수탈 구조를 형상화한 것인데 고창의 아전 집안 출신인 신재효는 이를 통해 자기비판을 한다.

<토끼전>은 다른 고전과 달리 결말이 여러 개로 나뉜다. 크게 보면 세 가지인데, 봉건체제를 지지하고 미화하거나, 비판하고 풍자하거나, 타협한다. 이에 관해 권 교수는 “계층마다 봉건체제를 대변하는 처지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레와 벽돌의 중요성 강조한 ‘열하일기’

권 교수는 마지막으로 <허생전>을 설명했다. <허생전>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들어있는 소설이다. 박지원이 자기 모습을 허생에 빗대어 쓴 글인데 경제활동의 중요성과 양반들의 명분 의식을 비판했다.

   
▲ 연암 박지원 초상화. ⓒ 권순긍

박지원은 팔촌형인 박명원의 개인비서 자격으로 건륭 황제 축하 사신단에 포함된다. 1780년 100일을 소요해 북경과 열하를 다녀온 그는 중국의 발전된 선진 문명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이용후생(利用厚生), 곧 백성의 일상생활에 이롭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관점에서 수레와 벽돌의 사용을 권장하기도 했다. 권 교수는 “당시 조선은 수레와 벽돌을 사용하지 않는 사회였다”며 “수레는 유통수단, 벽돌은 실용건축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 박지원이 봤다고 추측되는 청나라 길거리 모습. ⓒ 권순긍

넓은 소매 옷 입고 ‘북벌’하자고?

박지원이 충격받은 이유는 중국에 가기 백여 년 전에 조선에서는 청나라를 정벌해야 한다는 ‘북벌론’이 크게 대두됐기 때문이다. ‘북벌론’은 청나라를 문화 의식이 낮은 오랑캐 나라로 인식하고 형제 나라로 받아들인 것은 부끄럽게 여긴 조선 사대부에서 나온 것이다.

효종이 죽은 후 ‘북벌론’은 수그러들지만 일부 집권층은 포기하지 않는다. 박지원은 ‘북벌론’을 포기하지 않는 집권층을 위해 세 가지 계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집권층은 자기 기득권은 내놓지 못해 ‘북벌론’을 포기한다. 박지원은 이런 부분을 ‘헛된 망상’이라며 비판한다.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의복은 흰옷을 입으니 그거야말로 상인(喪人)이나 입는 것이고,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남쪽 오랑캐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중략) 이제 대명(大明)을 위하여 원수를 갚겠다 하면서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넓은 소매 옷을 고치지 않고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권 교수는 “아직도 헛된 명분에 사로잡혀 개혁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며 “개선해야 할 사회 시스템은 빨리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9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원종원, 안치용, 이택광, 김용락, 조순환, 권순긍, 조효제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최유진 기자

[황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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