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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중시한 생산·유통에 승부 건다
[농촌불패] 대산농촌재단 장학생 연수 탐방기 ①
2019년 07월 17일 (수) 21:42:38 박선영 조현아 정소희 최유진 기자 sunnyolo1021@gmail.com
대산농촌재단(이사장 진영채)이 지원하는 농업전문언론장학생 4명(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과 농업리더장학생 9명이 ‘다양한 가치, 새로운 농(農)’을 주제로, 가치를 추구하며 새로운 농업에 도전하는 농촌을 견학했다. 7월 2일부터 4일간 현장을 둘러보고 쓴 ‘2019 여름철 장학생 연수 탐방기’를 2회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 '다양한 가치, 새로운 농'을 주제로 한 대산농촌재단 여름철 연수에서 연수단이 밝은세상영농조합법인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 대산농촌재단

양극화 사회는 지역격차를 넘어 지역소멸 문제로 연결될 정도로 농촌지역에 특히 타격이 크다. 이에 따라 농민도 취약계층으로 보고 농민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올 6월부터 해남에서는 농민기본소득제가 시작됐다. 전체 농가에 지급하는 건 최초다. 조건 없이 월 5만원을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한다.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가치에 관한 사회적 보상의 물꼬가 소액이나마 처음 열린 것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기본소득 논의가 뜨거워진 배경에는 한국의 극심한 양극화 사회가 있다. 제한된 지역과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은 이미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취약계층인 청년, 아동,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남시 청년배당과 서울시 청년수당, 그리고 아동수당과 노인기초노령연금이 그 예다.

대산농촌재단 장학생 연수단은 충청남도 공주 충남연구원에서 오랫동안 농민기본소득 도입을 연구해온 박경철 책임연구원에게 농민기본소득, 일명 ‘농민수당’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농민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 충남연구원 박경철 책임연구원이 대산농촌재단 장학생들에게 농민기본소득에 관한 강연을 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농민기본소득은 모든 농민에게 영농규모, 영농형태 등에 상관없이 생활에 필요한 일정한 금액을 균등하게 지급하는 제도다. 취약계층인 농민을 배려해 보편적 권리로 기본소득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공업화, 도시화, 개방화 과정에서 배제되고 희생돼 어려움에 직면한 농민에게 사회적으로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농업과 농촌의 지속성을 보장하려는 제도이기도 하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약 24조 원으로 추산돼 그 일부를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농민의 삶이 파탄 난 이유는 농업선진국과 무리한 자유무역협정(FTA) 맺었기 때문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농업시장을 개방해 놓고 농민에게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라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정부마다 여러 정책을 시도했지만 현실은 암울하고 소득 차이도 계속 벌어지고 있어요. 이에 따라 농촌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더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박 연구원은 농촌에서 이뤄지는 여러 불필요한 각종 개발사업 등 사업성 예산을 축소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는 원래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수많은 예산을 그들에게 직접 주지 않고 각종 공모사업과 개발사업 등으로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어촌특별세’를 확대하거나 도농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균형발전세’를 신설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경철 연구원은 농촌 붕괴를 막으려면 현행 제도의 개선 수준이 아닌 특단의 농정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장 큰 난관인 기본소득 재원 마련에 관해 그는 “소농이 대부분인 한국 농촌 실정에 맞지 않는 다수의 농업직불금 중 친환경농업직불금만 남기고 나머지는 농가기본소득 재원으로 통합하면 농가 단위의 기본소득제를 실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치소비를 위한 스토리텔링

10년 전 무렵 스토리텔링 관련 책들이 서점의 인기도서코너를 채웠다. 자기 역사를 담은 ‘스토리텔링’은 듣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는 게 핵심이다. 선조부터 자신까지 이어진 역사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 농업의 가치를 창출한 이가 있다. ‘호랑이배꼽 막걸리’로 유명한 밝은세상영농조합법인 이혜인 대표다. 영농조합은 막걸리 이름처럼 한반도의 호랑이 배꼽 자리인 경기도 평택에 있다.

“저희 집안은 이 지역에 600년 동안 살아왔어요.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내 우리 술을 빚습니다.”

‘호랑이배꼽 막걸리’는 비옥한 땅에서 생산한 평택쌀로 만들어진다. 햅쌀을 사용해 와인기법으로 빚어 100일을 숙성해 탄생한 생쌀 발효 막걸리다. 누룩 만들기부터, 원재료인 쌀을 다루는 모든 과정이 손으로 이루어진다.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지정했다.

   
▲ 밝은세상영농조합 이혜인 대표가 ‘호랑이배꼽 막걸리’ 제조법을 설명하고 있다. ⓒ 대산농촌재단

“정말 맛있는데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솔직하게 제 얘기를 썼어요.”

이 대표 가족은 스토리텔링에 ‘최적화’해 있다. 원로 서양화가인 아버지 이계송, 도예가이자 향토요리연구가인 어머니 이인자,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밝은세상영농조합 디자이너가 된 언니 이혜범 씨로 구성됐다. 이 대표는 “10년 전 원래 술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양조장을 차리고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조금씩 돕다가 5년 전부터는 아예 사업을 이어받아 직접 술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모와 나의 연결고리,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뜻하는 게 배꼽”이라며 “전통주인 막걸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싶었다”고 막걸리 이름에 의미를 부여했다.

   
▲ 와디즈 펀딩은 스토리를 통해 투자자와 서포터즈를 연결해주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다. 1월 9일부터 2주간 진행된 펀딩에 281명이 참여해 목표치의 10배를 달성했다. ⓒ 와디즈

그는 올 1월 ‘호랑이배꼽 막걸리’를 이런 스토리로 소개하며 와디즈의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다. 결과는 후원금 목표치의 10배 달성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은 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말한다. 시작부터 꽃길은 아니었다. 대기업의 유통과 마케팅에 끌려 다니고 싶지 않아 모든 걸 스스로 한 이 대표는 현실의 벽에 자주 가로막혔다고 한다.

“정작 술을 빚는 사람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유통체계가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매출이 크지 않지만 단계적으로 성장하고 있어요. 시작부터 시장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면 노력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품 경쟁력을 키우려고 다양한 시도를 한 게 저희 영농조합의 강점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지금은 취향의 시대예요. 포장에도 예술적인 감각과 저희 양조장만의 스토리를 더하려고 노력해요. 그걸 젊은 친구들이 알아줘서 감사하죠.”

강연을 들은 순천대 농업경제학과 3학년 강태승 씨는 “가치 소비를 하는 시대에 다양한 매체를 통해 유통 창구를 늘렸는데 중간상인 안 거치고 6차산업을 하려는 자세가 입지를 다진 비결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1x100이 아닌 10x10의 농사를 위해

이튿날, 연수단은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농장 꽃비원을 찾았다. 꽃비원은 ‘꽃비가 내리는 과수정원’을 줄인 말로,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는 모든 과정이 담긴 농장이란 의미다.

“어떤 형태의 농사를 지을 것인가, 나는 농촌에서 어떤 모습의 삶을 살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주체적이고 자립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죠.”

정광하(39) 꽃비원 대표는 자립하는 농촌생활을 꿈꿨다. <슬로라이프> 등 책을 읽으며 어떤 방향의 삶으로 나아가야 할지 숱한 고민을 했다. 2012년 아내 오남도(42) 씨와 함께 귀농을 했고 7년째 가족농으로 살고 있다.

   
▲ 꽃비원 키친에서 설명을 이어가는 정광하 대표. ⓒ 대산농촌재단

“현재 유통구조는 너무 복잡해요. 산지에서 소비자에 도달하기까지 무수한 단계를 거치고, 단계마다 가격이 뛸 수밖에 없는 구조지요. 불특정 다수 소비자를 대상으로 지금처럼 다수 농민이 경쟁해 작물을 유통시장에 파는 것이 맞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정 대표는 현재 유통구조를 ‘1x100(품목수x사람수)’로 표현했다. 이윤을 높이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면 단일 작물을 재배하며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팔아야 하는 구조라는 뜻이다. 생산자는 자기 작물을 100명에게 팔지만, 그들을 만날 수 없고 거의 다 모른다.

생산과 유통에 관한 고민이 깊어진 것은 미국 생활을 하면서부터다. 이들 부부는 농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3년간 농산물 유통 관련 일을 했다. 월마트 등 큰 체인을 자주 이용했지만, 포장단위가 커서 2인가구가 구매하기 불편했다. ‘WHOLE FOODS MARKET’ 등 대형 유기농 마켓을 찾아갔지만 생산자가 가려지고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발견한 게 ‘Irvine farmer’s market’이란 농부의 마켓이었다. 자신이 기른 작물을 소규모로 직접 판매하는 생산자들을 만나면서, 부부는 이들처럼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뢰에 기반한 관계를 맺으며 먹거리를 유통하는 생산자였다.

그렇게 꽃비원이 탄생했다. 자급자족, 다품종 소량생산, 소농, 유기농을 기치로 내건 농장이었다. 1x100이 아닌 10x10 형태로, 적정 규모와 관계를 유지하며 유통하는 목표를 세웠다. 생산자가 재배하는 작물들을 온전히 이해하며 그 가치를 아는 이에게 온전한 먹거리를 전달하려고 했다. 그다지 크지 않은 2200평 땅에 부부는 사과, 배 등 과수 묘목을 심었다. 소비자들과 소통하며 유통할 곳을 모색했고, 서울에서 열리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알게 됐다.

관계’를 획득하고 유통하다

매달 쉬지 않고 마르쉐에 참여하는 것을 단기 목표로 삼았고, 그 과정에서 생활방식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비슷한 단골 소비자를 만나게 됐다. ‘가까운’ 이들을 대상으로 꽃비원이 꾸러미 사업을 시작했다. 1년에 12번, 한 번에 2만5천원으로 제철 과일과 채소를 정성스레 꾸러미에 담아 발송했다.

“처음엔 30가구를 모집하기도 했지만 깊은 소통이 어렵다는 생각에 20가구로 줄였어요. 모든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 관계에 달렸습니다. 그에 따라 적정규모가 어디까지인지 정해집니다.”

   
▲ 꽃비원 꾸러미를 받은 이들은 SNS에 사진과 후기를 올리며 긴밀한 관계를 이어간다. ⓒ 꽃비원

2016년부터는 농장 옆에 ‘꽃비원 키친’을 시작했다. 밭에서 거둔 농작물을 맛있게 먹으려고 시작한 농사의 확장이자 자립을 위한 또 하나 통로였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음식, 식재료를 주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자 했다. 10평대 아기자기한 식당은 점차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주 5일, 점심 시간대 위주로 운영된다. 꽃비원의 목표는 전체 수익에서 마르쉐, 꾸러미, 꽃비원 키친이 각각 30%씩 담당하는 보다 균형 잡힌 수익 모델을 이루는 것이다. 이는 더 다양한 경로로 더 다양한 이들을 균등하게 만나고 싶은 부부의 바람이다.

   
▲ 제철 작물로 만든 꽃비원 키친의 메뉴들. ⓒ 대산농촌재단

“지금은 저와 아내의 노동력으로만 농사를 짓는데, 1년차보다는 훨씬 적합한 규모를 찾은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빚은 다 못 갚았어요.”

농사와 관련 사업으로 수익을 내기에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꽃비원은 자립 농장으로서 지속가능한 잠재력을 지닌 듯하다. 꽃비원만의 또렷한 가치를 표방해 거기에 공감하며 동참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는 3천명, 페이스북에는 2천명 친구들이 있다. 최근 온라인으로 판매한 감자는 12시간만 올렸는데도 300kg이 팔렸다. 결국 적정규모 농업이란, 또 적정한 유통이란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신뢰에 기반한 ‘가까운 관계’가 건강한 생산과 유통, 소비를 만든다. 꽃비원 부부가 일하는 동력과 삶의 즐거움도 관계라는 가치에서 빚어진다.


편집 : 이자영 기자

[정소희 PD]
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 지역농촌부 정소희입니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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