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상습범’

▲ 홍석희 기자

‘누구나 악이 될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 조지 짐바르도가 <루시퍼 이펙트>에서 한 말이다. 짐바르도는 1971년 스탠포드대 지하에서 모의 감옥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에는 평범한 대학생 24명이 선발돼 교도관과 죄수 역할을 했다. 각자 역할에 맞는 복장을 입었고, 교도관은 죄수를 실제 상황처럼 통제했다. 이 실험은 원래 2주간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6일 만에 중단됐다. 교도관이 점차 가학적이고 잔인하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짐바르도는 이 실험을 통해 인간 본성이 본래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상황 조건에 크게 영향받을 수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 2019년 한국에 두 서른 살 청년이 있다. 그들은 동갑이지만 전혀 다른 고민을 안고 있다.

첫 번째, 홍늦잠은 오늘도 10시에 일어났다. 계획한 기상시간은 7시였지만, 또 늦잠을 잤다. ‘습관이 인생을 바꿉니다.’ 그도 동의한다. 독학으로 재수하던 2009년부터 자정에 취침하고 7시에 기상하고자 노력중이다. 실천은 10년째 요원하다. 그는 ‘늦잠’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두 번째, 김범죄는 또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왔다. ‘상습절도’ 혐의다. 그는 중2 때 절도로 소년원에 들어간 뒤 같은 혐의로 실형을 다섯 번 받았다. 이번에도 출소 당일 50만원을 절도하려다 붙잡혔다. 가중처벌로 최소 징역 6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상황에 처했다. 그는 ‘절도’에 길들여졌다.

홍늦잠과 김범죄는 습관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홍늦잠은 초등학생 때까지 혼자 잠들지 못했다. 늘 부모 곁에서 자는 데 익숙했다. 어느 날부터 ‘방’이라는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잠들어야 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밤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때부터 늦은 새벽 잠드는 데 익숙해졌다.

김범죄는 몸이 불편하고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4남매 맏이였던 김범죄는 어린 시절부터 가장 역할을 맡아야 했다.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한두 푼씩 남의 돈에 손을 댔다. 그렇게 시작된 좀도둑이 도벽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동생들이 생계비를 보조해주지만, 그는 익숙해진 절도를 멈추지 못한다.

두 청년은 어린 시절 형성된 습관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홍늦잠은 평범한 고민을 갖고 있는데, 김범죄는 반복해서 재판을 받고 인생의 상당기간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있다. 이런 차이는 정당한 것일까? 그는 재판에서 “나는 단 한 번도 용서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울부짖었다. 담당판사는 그 지점에서 고민을 시작한다. 김범죄가 홍늦잠과 같은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면 지금과 같은 삶을 살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김범죄에게는 어떤 삶을 살지 선택할 권리조차 없었다. 그저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법원은 늘 냉정했다. 그는 ‘상습범’이었을 뿐, ‘한번쯤 용서 받을만한 사회구성원’인 적은 없었다.

▲ 정의의 여신 디케는 눈을 가리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피고인의 삶을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 pixabay

물론 온정주의 시각으로만 판결해서도 안 된다. 그는 상습절도범이다. 판사는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과 양형에 관해 논의한다. 결국 직전 형량인 4년에서 감경된 3년 6개월 형을 선고한다. 일반 형사재판에서 재범은 가중처벌 요건이지만, 판사가 관례를 깨버린 것이다. 감경된 6개월은 그가 그토록 부르짖던 ‘한 번의 용서’를 의미한다. 판사는 주문 낭독에 앞서 말한다. “피고인은 일생 단 한 번도 용서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이제 처음이자 마지막일 용서를 받는 것인지 모른다.”

이 주심판사는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작가로 잘 알려진 문유석 전 부장판사다. 그는 저서 <판사유감>에서 이렇게 썼다. ‘이 재판 결과가 정답이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온정주의적 재판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앞으로 법관으로 평생 살아가면서 쉽게 잊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자신이 김범죄와 같은 환경에 태어났을 때, ‘그럼에도 나는 그와는 다른 삶을 살았을 거야’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그에게 한 번의 용서쯤은 해줘도 되지 않을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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