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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전대협’을 민주화운동 ‘전대협’ 오도
[사실확인] 정부 비난 대자보 붙인 ‘전대협’ 관련 보도
2019년 04월 25일 (목) 19:32:13 박서정 기자 outsidebox94@gmail.com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에 베티나 슈탕네트는 ‘악이란 결코 진부하거나 평범하지 않으며 고도의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지금 유튜브 등을 이용한 가짜뉴스 제작과 유포 행위는 평범하지 않을뿐더러 고도로 계산된 ‘범죄’이며 건전한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주범’이다. 기성 언론 중에도 사실확인보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거나 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매체가 많다. 이들은 잘못되면 ‘오보였을 뿐’이라면서 의도성을 감춘다. 이에 성역 없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가 명백한 가짜뉴스뿐 아니라 ‘무리한 흑백논리’ ‘일반화 오류’ ‘인과관계 오류’ 등 진실과 거리가 먼 보도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기획을 시작한다. (편집자)

<조선일보>는 4월 2일자 A14면에 ‘450개大·국회에 文대통령 비판 대자보···경찰 내사 착수’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큰 제목 아래 ‘전대협 학생들, 김정은 편지 흉내’, ‘“적폐·친일로 몰아라” 풍자’ 등 부제를 달아 보도했다.

   
▲ <조선>은 첫 보도에서 기사 부제를 ‘전대협 학생들’이라고 달고 기사에서도 ‘전대협 대학생 모임'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면서 ‘전대협’의 실체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 <조선일보>

<조선>은 설명없이 ‘전대협’으로 첫 보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낸 편지 형식의 대자보가 전국 대학과 국회에 붙어 경찰이 내사에 나섰다. ‘전대협’이라는 대학생 모임이 붙인 대자보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기사 제목과 내용에서 과거 운동권 대학생 단체였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인 것처럼 오인하게 하고 있다. 부제를 아예 ‘전대협 학생들’이라고 붙인 뒤 기사 본문에서도 ‘전대협’이 어떤 단체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전대협이라는 대학생 모임’ 식으로 애매하게 표현했다. 그 대신 그들의 주장은 상세하게 소개했다.

‘이 대자보는 지난 31일부터 전남 대학가에 붙기 시작해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대학가에 등장했다. 문 대통령을 ‘남조선 인민의 태양’으로 부르며 ‘혁명을 비판하면 무조건 자유한국당 알바로 매도하라’ ‘평화·인권 등 아름다운 용어를 사용하고 상대는 막말·적폐·친일로 몰아라’는 일부 여권 지지층의 행태를 풍자하는 내용이 담겼다.’ 

<조선>은 또 “경찰이 사실관계 확인을 운운하는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행동”이라는 그들의 말을 인용해 정부를 비판하는 논조를 보였다. <조선>이 이른바 ‘전대협’ 회원을 인터뷰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행동’이라고 경찰을 비판한 데는 정부를 비판하려는 <조선>의 의도가 실렸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파이낸셜뉴스>와 <이데일리>는 아예 ‘전대협’이란 단체를 과거 운동권 학생 단체와 같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로 표기했다.

   
▲ <파이낸셜뉴스>(왼쪽)와 <이데일리>(오른쪽)는 ‘전대협’을 아예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라고 표기했다. ⓒ <파이낸셜뉴스>, <이데일리>

<파이낸셜뉴스>는 15일 기사에서 ‘‘시민단체 행동하는 자유시민’은 15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수사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국민을 겁박하는 공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했다’고 썼다.

<이데일리>는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전국 대학가에 ‘김정은 서신’을 표방한 정부 비판 대자보를 붙인 것과 관련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대한민국이 아닌 김정은 독재정권의 경찰’이라고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원조 ‘전대협’은 26년 전 해산

‘전대협’이란 약칭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는 1987년 6월에 민주화운동이 고조되면서 8월에 결성된 전국 대학생 조직으로, 1993년 4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 전환하면서 해산했다. 전대협은 출범 당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평화통일’ ‘민중연대’ ‘학원자주화’ ‘학생통일단결’ 등을 설립 목적으로 내걸고 1987년 이후 우리나라의 민주화 투쟁에 큰 역할을 했다.

문재인 정부 첫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씨가 전대협 3기 의장(1989년)을 지냈고, 더불어민주당 이인영(1기 의장), 우상호 (1기 부의장), 오영식(2기 의장) 의원 등 현 여권 핵심 인사들 중에 전대협 출신들이 많다.

전대협 후신인 한총련은 1997년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아 해산됐고,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이 한총련 후신으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전국 규모로 대학 학생회를 대표하는 단체가 없다.

대여섯 학생이 만든 ‘동아리’를 ‘전국조직’처럼 보도

이번에 대자보를 붙인 ‘전대협’이란 단체는 운동권 대학생들의 전국 조직이었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우파 성향 대학생 몇몇이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단비뉴스> ‘사실확인팀’이 ‘전대협’이 개설한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단체의 정식 명칭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냐”고 문의하자 그들은 그냥 “전대협입니다”라고만 답변했다. 자신들은 과거 운동권 학생단체인 ‘전대협’과는 무관하며 현 정권의 핵심인물 중에 전대협 출신이 많다고 해 그걸 패러디해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작년 말쯤 개설한 ‘전대협’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25일 현재 팔로우 수가 3천621명이다. 페이지를 개설한 대학생 김 아무개(25) 씨는 일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군에서 전역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대통령과 정부가 20대 청년들의 고민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해서 친구 5명과 대자보 내용을 기획해 대학을 돌며 대자보를 붙였다"고 했다.

   
▲ 우파 대학생 모임 ’전대협’의 페이스북 페이지. 이들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이름을 패러디했다고 하지만 ‘불행과 고통의 화근, 미제침략군을 몰아 내자’는 구호가 있는 사진을 올려 민주화운동을 한 전대협인 것처럼 방문자들을 오도하고 있다. ⓒ '전대협' 페이스북

‘전대협’은 운동권 ‘전대협’ 무관한 우파 단체

이처럼 ‘전대협’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를 뜻하는 '전대협'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조선일보>는 우파 ‘전대협’을 마치 운동권 ‘전대협’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조선>는 지난 15일 1면에 ‘김정은 패러디 대자보 붙였다고···경찰, 가택 무단진입 조사’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극소수 대학생이 만우절을 계기로 패러디 한 것을 정색하고 운동권 단체 전대협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것처럼 비치게 해놓고, 경찰을 비판하는 내용을 1면에 돋보이게 편집한 것이다. <조선>은 여전히 우파 ‘전대협’의 정체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대학생 모임’으로만 표기해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 <조선> 15일자 1면 기사. 우파 ‘전대협’의 대자보 부착에 관한 경찰 조사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 <조선일보>

<조선>은 특히 지면을 통해 ‘전대협’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와 무관하다는 기사를 내보내고도 계속 ‘전대협’을 애매하게 표기해 치고 빠지는 식으로 독자들과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조선>은 2일자 신문 사회면(A14)에서 ‘전대협 대학생 모임’이라는 식으로 우파 ‘전대협’이 마치 운동권 전대협인 것처럼 보이게 해놓고, 다음날인 3일자 신문에서는 일반독자들이 잘 안 보는 문화면에 그 ‘전대협’이 운동권 전대협과는 다른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 <조선>이 15일자 1면에서 ‘대학생 모임인 전대협’이라고 애매하게 표현한 기사에 달린 댓글. 우익 성향의 독자도 "전대협이란 이름 앞에‘우익’ 글자를 첨부해라"고 요청했다. ⓒ <조선닷컴>

더 큰 문제는 전국 조직을 가진 단체도 아닌 대학생 몇 명이 페이스북 페이지 하나 열어 극우세력이 좋아하는 대자보를 붙인 것을 마치 전국 규모 대학생 조직이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을 하는 것처럼 과장하고 여론을 오도하고 있는 점이다. 

그런 보도를 해놓고 경찰이 보도내용을 확인하고 조사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처럼 일파만파로 문제를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민간의 영역에서는 풍자가 어느 정도 자유롭게 허용될 수 있지만, 정기간행물 등록을 한 기성 언론이 그것을 확대재생산한다면 그 매체의 권위와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편집 : 이신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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