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도 생명이다] ② 부산 청사포 고양이마을

대만 타이베이 허우통마을과 일본 후쿠오카 아이노시마섬은 미국 뉴스채널 씨엔엔(CNN)이 선정한 세계 고양이명소다. 각각 인구 200~300명 규모인 두 마을에서는 주민 수보다 조금 더 많은 고양이들이 낯가림 없이 사람들과 어울린다. 오직 고양이를 보러 오는 관광객도 많은데,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 상품들까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에서도 경남 통영 욕지도와 강원도 춘천 효자마을 등이 고양이마을을 추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의 반대와 지방자치단체 주도 사업의 한계에 부닥쳐 흐지부지됐다. 그래서 부산 해운대구 중동 청사포에서 시작된 ‘고양이마을 프로젝트’가 더욱 눈길을 모은다. 마을버스도 한 대뿐인 작은 어촌에서 고양이마을 만들기에 도전한 사람은 1인 기업 ‘고양이발자국’의 유용우(38) 대표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길고양이 급식소’ 보급

부산 아쿠아리움 마켓팅팀 등에서 일하다 2016년 창업한 유 대표는 지난해 11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온라인 모금) 사이트인 와디즈에 ‘사람과 고양이의 공존을 꿈꾸는 청사포 고양이마을 프로젝트’ 계획을 올렸다. 직접 디자인한 고양이마을 지도와 길고양이 도안을 넣은 후드티셔츠 등 캐릭터상품을 올리고 후원자를 모집했다. 300만원이 목표금액이었는데 2배가 넘는 649만원이 모였다.

▲ 1인 기업 ‘고양이발자국’의 유용우 대표. 작은 어촌인 부산 해운대 청사포에 고양이마을을 만들고 있다. ⓒ 장은미

유 대표는 후원자들에게 약속한 펀딩 상품 등의 비용을 뺀 나머지 모금액으로 ‘길고양이 급식소’와 표지판 등을 제작해 청사포 곳곳에 설치했다. 가로, 세로, 높이 각 35센티미터(cm) 정도인 급식소는 사료를 놓을 수 있는 받침대와 눈비를 막을 수 있는 가림막으로 이뤄졌다.

“그냥 가림막 있고 밥 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전부인데 이것 때문에 캣맘들이 울고 웃죠.”

캣맘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사람들을 ‘고양이 엄마’라는 뜻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2009년부터 10년째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캣대디’라고 자신을 소개한 유 대표는 길고양이와 캣맘들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말했다. 길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찢고 앙칼진 울음소리를 낸다며 싫어하는 주민들이 있기 때문에 캣맘들은 눈치를 보며 몰래 밥을 준다. 그래서 1회용 그릇을 쓰고, 사람들을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제가 밥을 챙겨주던 길고양이 가족에게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식칼을 던지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 적이 있어요. ‘그냥 고양이가 싫다’는 거였죠. 싫다고 길고양이들을 다 죽이는 게 답일까요? 그래서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어 고양이 급식소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러다 ‘고양이마을’이라는 프로젝트까지 하게 됐어요. 캣맘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주고 싶어요.”

청사포 고양이마을 프로젝트에 앞서 부산시청과 서울 종로구청 등 지자체, 동물권행동 카라 등이 2016년 이후 지금까지 전국 1천여 곳에 유 대표가 제작한 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했다.

 
청사포 마을 곳곳에 놓인 길고양이 급식소. 삼면이 막힌 식탁 형태로, 상단에는 ‘고양이 학대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라는 경고문도 적혀 있다. ⓒ 장은미

‘부르는 게 이름’ 각자의 방식으로 돌보는 주민들

청사포 마을에서 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한 카페, 식당, 회사, 가정집 등 일곱 곳은 모두 원래 밥을 주던 곳들이다. 유 대표가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니 흔쾌히 동의했다. 급식소마다 보통 서너 마리 고양이가 식구(食口)여서 마을에 30마리 정도 고양이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집에도 고양이 급식소를 놔 달라’고 하는 주민도 생겼다고 한다.

이 마을 한옥카페 청사포역 직원 김승은(25)씨는 길에서 구조한 고양이를 기르는 ‘집사’ 1년차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사람을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고양이 기르는 사람들을 농담 삼아 집사라고 부른다. 김씨는 “사실 사장님 두 분 중 한 분은 고양이를 무서워하셨는데, ‘한옥이’가 사장님의 마음을 열었다”고 말했다. 몸에 망토를 두른 것처럼 노란 줄무늬가 있는 한옥이는 살갑게 사람들 발치에 다가온다. 한옥이를 자주 본 사람들은 ‘야옹’하고 쳐다  보면 물을 달라는 뜻이라는 걸 안다. 청사포 길고양이들은 ‘부르는 게 이름’이다. 근처 다른 가게에서는 한옥이를 ‘모리’로 부른다.

▲ 한옥카페 청사포역에서는 ‘한옥이’로, 식당 모리구이에서는 ‘모리’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노란 망토 무늬 고양이. 자신이 그려진 표지판 옆에 얌전히 앉아 있다. ⓒ 장은미

돼지고기 꼬치구이집 모리구이 직원 강용구(32)씨는 “10년 전 가게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사장님이 길고양이 밥을 챙겨줬다”며 “나는 일한지 7년 째인데 우리 가게 마스코트인 모리는 밥 먹으러 온 지 4년 정도 됐다”고 말했다. 가게 단골들은 고양이들이 안 보이면 찾기도 한다고.

고양이발자국 옆 급식소인 금오횟집 장준탁(64) 대표는 아픈 길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갈 정도로 애묘(愛猫)가다. 그는 “나를 보면 ‘야옹 야옹’하고 밥 달라는 ‘야옹이’가 어렸을 때부터 눈이 별로 안 좋은데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옹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장 대표가 횟감을 손질한 뒤 던져주는 자투리 생선이다.

매주 20~30명 전국에서 고양이 보러 찾아와

유용우 대표에 따르면 요즘 청사포에는 주말마다 20~30명의 외지인이 고양이를 보러 온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노시마섬과 허우통처럼 길을 가득 메울 정도로 고양이가 많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겨우?’ 하는 표정으로 아쉬워한다. 반면 고양이 급식소를 보며 ‘이렇게 당당히 밥을 줄 수 있구나’하고 감격해하며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고.

카페 청사포와봄 윤승찬(48) 대표는 “서울 연남동에 사는 어떤 분이 1박 2일로 부산 여행을 오셔서 다른 데는 안 가시고 고양이마을만 보고 가시더라”며 “특히 우리 카페 마스코트인 ‘호빵이’의 팬을 자처하셨는데, 갈 때 호빵이와 친구들을 위한 간식까지 듬뿍 주고 가셨다”며 웃었다. 호빵이는 하얀 몸에 검은 점박이 무늬가 있는데 ‘식빵 자세’를 하고 있을 때 덩치가 특히 푸짐해 보인다. 고양이들이 네 다리를 몸 아래로 말아 넣은 것을 식빵 자세라고 한다.

▲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간식 선물을 받는다는 ‘청사포와봄’ 마스코트 고양이 호빵이. 하얀 몸에 검은 점박이 무늬가 있는데 ‘식빵 자세’를 하고 있을 때 덩치가 특히 푸짐해 보인다. 고양이들이 네 다리를 몸 아래로 말아 넣은 것을 식빵 자세라고 한다. ⓒ 장은미

고양이 6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최미진(46·부산 기장읍)씨는 친구에게 고양이 마을 소식을 듣고 3개월짜리 막내 고양이를 안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우리 집 고양이 전부 길에서 구조한 애들이어서 그런지 길고양이들이 예사로 안 보이네요. 고양이 마을이 생겼다기에 너무 반갑고 좋았어요. 사람들이 고양이와 교감하고 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서 학대하지 않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고양이마을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선착순 20명에게 참가신청을 받아 수의사 등을 강사로 초청해서 길고양이 건강관리와 법률 상식을 알아보는 ‘청사포 고양이 1교시’도 열었다. 한 기업 봉사단이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마을을 청소하기도 했다. 유 대표는 “마을버스에 고양이 보호문화를 알리는 콘텐츠 광고를 하고 소식지 ‘월간 청사포 고양이마을’을 발간하는 것, 포토존을 만드는 것 등 다양한 구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유용우 대표가 직접 만든 고양이마을 지도(좌)와 각종 표지판. ⓒ 고양이발자국

‘밭을 파헤친다’ 싫어하는 주민과는 대화 노력   

급식소 설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불편한 시선도 받았다. 유 대표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주민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고양이가 밭을 파헤쳐 싫다던 할머님께는 몇 번 찾아가서 같이 흙을 덮어드렸어요. 또 고양이가 싫다는 분들께는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들으면서 최대한 대화로 풀어나가려고 해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특별하게 고양이가 오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함께 살던 녀석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유 대표는 급식소에 밥 먹으러 오는 고양이 중 절반 정도는 중성화(TNR:불임수술)가 된 상태라며 고양이 숫자가 지나치게 늘어 갈등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승찬 대표는 “여기 사는 고양이들이 편하고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고, 고양이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힐링하는 마을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 이현주(58‧여)씨는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말했다.

“7,8년 전에는 고양이들이 농사 방해한다고 일부러 쥐약 놓는 마을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동물보호 인식도 생기고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우리 밭도 고양이들이 종종 파헤치는데 그건 고양이 습성이라고 하데요. 그래서 조금 귀찮더라도 파종 시기에는 밭에 덮개를 해놔요. 음...고양이도 같이 우리랑 잘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나라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개나 고양이 등을 가족처럼 여기며 사는 ‘반려동물 시대’다. 반면 버려지는 동물도 매년 10만여 마리에 이르고, 이들 중 상당수는 보호소에서 안락사 당하거나 길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단비뉴스>는 ‘동물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라는 관점에서 반려동물의 현실과 제도상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관련 시민활동을 소개한다. 나아가 공장식 사육과 남획, 잔인한 도축 등 이윤논리에 희생되는 짐승의 문제를 ‘동물권(인간의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권)’ 차원에서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편집 : 이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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