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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프가 ‘회계장부’로 은유한 것
[상상사전] ‘정의’
2019년 02월 16일 (토) 15:45:39 나혜인 기자 nahyein8@gmail.com
   
▲ 나혜인 기자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이기는 프레임> 등을 쓴 언어인지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인간의 모든 생각이 은유에 기반한다고 본다. 예컨대 인간에게 정의란 곧 ‘회계장부’다. 인간은 자산과 부채의 값이 늘 같아야 하는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듯, 자기 이익을 탐하려 나쁜 짓을 한 악인에게는 그만큼의 징벌을, 남을 위해 희생한 의인은 그에 맞는 보상을 해줘야 비로소 ‘정의로운 상태’라고 받아들인다. 선악의 크기보다 중요한 건 징벌 또는 보상과의 ‘등가성’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논란도 ‘정의는 회계장부’라는 은유와 맞닿아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아예 인정하지 말자거나, 인정하더라도 현역복무보다 2배 이상 기간 격무에 동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병역은 희생’이라는 인식에서 나온다. 종교 때문에 병역을 거부하는 건 ‘회계장부상 잘못된 부정의’이며 이는 마땅한 징벌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여긴다.

아시안게임에서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을 응원하던 팬들을 겹쳐 보면 레이코프의 은유는 더 선명해진다. 많은 사람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비판하면서도 손흥민이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아 계속 유럽 무대를 누비는 건 기꺼이 받아들인다. ‘손흥민 정도면’ 마음속 회계장부에서 충분히 군필자의 희생과 ‘같은 값’으로 봐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양심적 병역거부를 아예 인정하지 말자거나, 인정하더라도 현역복무보다 2배 이상 기간 격무에 동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병역은 희생’이라는 인식에서 나온다. ⓒ BBC

손흥민과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은 이 문제에 ‘절대적’인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중요한 건 군필자 희생과의 ‘등가성’이다.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니 우리 사회는 어쨌든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만 한다.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우리 국격에 비추어 봐도 이는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대체복무의 강도인데, 국방부가 검토하고 있는 안처럼 ‘현역복무 기간보다 2배 길게 교도소 등 격무시설에서 연간 인원을 제한해’ 대체복무제를 운용하겠다면 이는 징벌이나 다름없다. 대만 등 우리보다 앞서 대체복무제를 시행한 다른 나라들은 대개 ‘인원 제한 없이 심사해 현역의 1.5배 정도 기간을 광범위한 사회서비스 분야’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동원한다.

굳이 교도소가 아니더라도 치안, 소방 등 다른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인력난이 심한 한국이 대체복무자를 장기간 교정시설로 내모는 건 ‘이 정도는 해야 다수 군필자의 희생과 같다고 인정해주겠다’는 소수자 혐오의 관점에서 ‘등가성’을 따지기 때문이다. 병력 자원 손실을 걱정해 연간 대체복무 대상자 수를 제한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한국에서 연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사람은 고작 수백명이다. 대체복무제가 병역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거라는 걱정도 기우다. 심사 절차만 잘 갖추면 대체복무제 시행 전후 양심적 병역거부 사례는 크게 늘지 않았다는 게 대만의 경험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 ‘마음속 회계장부’를 정의로운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라면, 대체복무제를 국제표준과 비슷한 수준으로 도입하되 기존 군 장병 처우를 개선하면 된다. 말도 안 되는 임금 수준과 반인권적 병영 문화를 개선해 현역으로 병역을 이행하더라도 ‘3년 이상 교도소에서 격무에 시달리는 것’보다 괴롭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대체복무제가 징벌 영역까지 가지 않고도 회계장부상 오류가 없는, 정의로운 상태에 머물 수 있다. ‘나도 고생했으니 너도 그만큼 해라’는 회계장부와 ‘나는 할 만했는데 너도 할 만해야지’라는 회계장부. 둘 다 오류 없는 ‘등가’ 상태지만 더 나은 선택은 단연 후자다. 분단국에 태어난 죄로 개인의 삶이 국가로부터 제약받는 것만 해도 서러운 일이다.

* 글쓴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10기로 올 2월 YTN 기자로 입사하기 직전에 이 글을 제출했습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최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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