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평(약 9.9㎡)짜리 정사각형 방안. 서울 성북구에 사는 김나연(28·여·가명) 씨는 2018년 봄부터 2020년 여름까지, 그 안에만 있었다. 가로 1.5m, 세로 2m 크기의 침대에 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다음 2021년 봄까지는 가끔 집을 나서 도서관에 혼자 앉아 있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은둔 생활을 하는 3년 내내 거의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았다. 함께 사는 부모와도 대화를 피했다.은둔에서 탈출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김 씨는 그 시절을 생생히 기억한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어요.” 책상 위에는 은둔 생활 내내
서울 동작구에 사는 김유정(29·여·가명) 씨는 2019년에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휴학했다. 생활비가 없었다. 족히 백만 원은 넘게 들어갈 미술대 졸업전시 비용도 마련해야 했다. 학교에 가는 대신 중소기업에서 일했다. 온갖 일을 맡았다. 제품 디자인, 웹 페이지 구성, 판매 기획까지도 했다. 김 씨는 정규직도, 계약직도 아니었다.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였다.그 사이 대학 동기들은 인턴이 됐다. 그들은 체계적으로 ‘스펙’을 쌓아 좋은 기업에 취직했다. 김 씨에겐 당면한 생계가 더 무거웠다. 매력적인 이력이 될 만한 일을 구할 시간이
강세주(32·여·가명) 씨는 12년 전인 스무 살 때 1년 동안 은둔했다. 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내 인생은 이제 망했다’고 생각했다.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세주 씨는 깊은 잠에 빠졌다. 이틀 내내 자기도 했다. 자다 깨고, 깼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정신이 드는 순간에는 자책했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문제인데,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제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세주 씨는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가끔은 희망을 품었다. 잠들기 전 되뇌었다. ‘내일은 나가
광주광역시에 사는 이정선(57·가명) 씨에게는 3년째 은둔 중인 아들이 있다. 둘째 권준성(20·가명) 씨다. 이 씨 부부와 세 형제까지 다섯 식구가 사는 51평짜리 아파트에서 권 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3평 남짓한 자신의 방에서 보낸다. 하루에 한두 번 화장실과 주방을 갈 때만 방에서 나온다. 배고플 때는 라면이나 냉동식품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 한동안은 먹고 싶은 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어머니 이 씨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요즘에는 그마저도 끊겼다. 소통 단절로 오해만 쌓여가족은 은둔 청년과 가장 가까운 타인이다. 안정과 지지를
은둔 탈출에는 촘촘한 단계가 필요하다. 회복 속도에 따라 다른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은둔 청년이 고립되는 집에서는 가정방문 상담이 필요하다. 은둔 징후를 발견할 수 있는 학교에서는 교사의 대응이 중요하다. 3년 이상 길게 은둔한 청년에게는 전문기관의 도움도 필요하다. 지원의 법적 근거가 되는 조례 제정과 법률 통과도 중요한 과제다.1단계: 가정초기 단계에 있는 은둔 청년은 일반적으로 3개월에서 6개월 이상 가족 이외 사람과는 소통하지 않는다. 사회적 관계 일체를 거부하거나 소수의 관계만 유지한다. 가족과도 소통을 끊는 일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