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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할 이유
[상상사전] ‘소수자’
2018년 02월 23일 (금) 14:34:22 남지현 기자 njihyun0116@gmail.com
   
▲ 남지현 기자

아마데오 가르시아 가르시아는 타우시로족 최후의 생존자다. 페루 국경 내 아마존 깊숙이 숨어 살던 타우시로족은 유럽인이 퍼뜨린 전염병에 몰살당했다. 아마데오는 1999년 동생이 죽은 뒤로 지구에서 타우시로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사람이 됐다. 그의 말동무는 타우시로어를 기록하기 위해 그를 찾는 언어학자들과 어릴 적 입양 보낸 자식들뿐이다. 그나마 자식들과는 어눌한 스페인어로 짤막한 통화를 가끔 하는 정도다. 이제 70대 노인이 된 아마데오는 대부분 시간을 숲속에서 홀로 사냥하고 술을 마시며 보낸다. 타우시로어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사무칠 때는 해먹에 누워 타우시로어로 번역된 성경 구절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아마데오가 홀로 남겨진 건 고무 탓이었다. 1844년 미국에서 고무를 자동차 타이어로 쓸 만큼 딱딱하게 만드는 기술이 개발됐다. 미국과 유럽에서 고무 수요가 폭발했다. 남미 아마존 부족 90%는 이때 몰려든 고무 회사의 강제 노역이나 이들이 퍼뜨린 전염병으로 죽었다.

페루에는 아마데오처럼 살아남은 소수 원시 부족민들이 사용하던 언어가 47개쯤 남아있다. 언어 멸종은 지극히 정치경제적 현상이다. 스티븐 메이 교수는 2001년 저서 <언어와 소수자 권리>에서 ‘소멸 위기에 놓인 대다수 언어는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주변화하거나 종속된 집단의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주민은 보통 어느 국가에서나 호기심과 차별의 대상이 되곤 하므로 정글에 살지 않는 이들은 부족어를 고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말이 안 통해 괴로운 건 소수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언어권 안에서도 소수 집단의 언어는 쉽게 낙인찍히고, 오해받고, 질타받고, 왜곡되고, 무시당한다.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여성 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얼마나 여성을 사랑하는지 고백한 무수히 많은 남성만 봐도 페미니즘의 언어가 얼마나 많은 오해를 받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존재와 경험을 표현하는 언어가 이해되지 못할 때 소수자들은 고립되고, 결국 침묵한다. 침묵의 결과는 혹독하다.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는 저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일터에서 차별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여성보다 ‘해당 사항 없음’이라 답한 여성이 두 배나 더 아팠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 ‘해당 사항 없음’이라 답한 이들은 결국 차별 경험이 있으나 이를 애써 인지하지 않으려 했거나 타인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늘 차별받고 억압받지만 이를 소리 내 말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 ‘을’들은 언어를 빼앗김으로써 병들어 가는 셈이다.

지난 25일 EBS <까칠남녀>는 성소수자 특집을 방영했다. 패널들이 질문하면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출연진이 성소수자에 관해 직접 설명하는 식이었다. 방송 직후 프로그램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방송 폐지를 촉구하는 글이 도배됐다. ‘동성애는 비정상적이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변태적 취향이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존중하라고 강요하지 마라’, ‘동성애를 반대할 표현의 자유도 존중해 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일부는 담당 피디 전화에 ‘문자 테러’를 가하기도 하고 EBS 사옥 앞에서 프로그램 폐지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지난해 12월 25일 방영됐던 EBS 까칠남녀 성소수자편 방영 이후 보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성소수자 혐오 세력은 프로그램 폐지를 주장하며 EBS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 EBS

자신을 인지하고 자신을 긍정할 언어가 없는 성소수자는 일반인보다 자살시도율이 높다.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청소년 중 절반가량이 자살을 시도해 본 적 있다고 답했다. 일반 청소년의 5배에 이른다. 혐오 세력은 성소수자의 사랑은 성욕에 불과할 뿐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국립국어원도 사랑은 이성 간의 감정이라고 못 박아 두었다. EBS는 성숙한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방송이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 구성원인 성소수자의 억눌린 목소리에 마이크를 대주는 일에 망설임이 없기를 기대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경난 PD

[남지현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환경부, 국제부, 시사현안부 남지현입니다.
생긴 대로 같이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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