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표민수PD가 전하는 드라마 기획의 비밀

표민수 PD는 대표적인 ‘작가주의 연출자’로 꼽힌다. ‘사랑’에 관한 독자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1998년 <거짓말>(KBS2)을 시작으로 <바보 같은 사랑>(KBS2), <풀하우스 1>(KBS2), <넌 어느 별에서 왔니>(MBC), <인순이는 예쁘다>(KBS2), <그들이 사는 세상>(KBS2), <아이리스 2>(KBS2)등 그가 연출한 드라마는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오랫동안 시청자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는 드라마를 기획할 때 어떤 고민을 할까? 그의 연출 비결은 뭘까?

▲ 드라마 기획에 대해 말하는 표민수 PD. ⓒ 김성숙

일반론과 특수론, 기획의 시작

기획은 제작의 핵심영역이다. 어떤 기획을 하느냐에 따라 시청자를 설득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표 PD는 지난 12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방송제작론 특강에서 드라마 기획을 할 때 ‘특수한 사람을 1번으로 둘 것인가, 아니면 일반적인 사람을 1번으로 둘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일반론에서 시작해서 특수론으로 끝나게 할 것인가, 아니면 특수론에서 시작해서 일반론으로 끝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기획의 첫 단계라고 설명했다.

“일반론을 꺼냈으면 특수론으로 가야 하고, 특수론을 꺼냈으면 일반적인 얘기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할머니가 여자 대학생을 죽인 사건이 있습니다. 그 사건을 중심으로 이 시대 특유의 오해, 생각 기타 등등의 뿌리는 어떻게 되는가로 나아가면 특수론에서 시작해서 일반론으로 사람들을 공감하게 만드는 겁니다. 반면에 여러 가지 다른 사안들을 모아서 이 사건을 바탕으로 사회적 조건이 어떻게 한 사람을 살인마라는 괴물로 만들어 냈는가를 설명하면 일반론에서 특수론으로 가는 것이죠.”

표 PD는 드라마에서 이미 다룰만한 소재는 다 나온 상황이라면서 소재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일반론에서 특수론으로 빠져나갈 것인지, 아니면 특수론에서 일반론으로 빠져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자 성향이 장면을 결정한다

남자가 드라마 기획을 하면 대부분 사건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반면 여자가 기획을 하는 경우 감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경향을 보인다. 여자는 오감, 육감과 같은 감각이 남자보다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성을 더 강하게 가진 여자도 있을 수 있으며, 여성성이 강한 남자도 있을 수 있다. 표 PD는 이러한 기획자의 성향이 연출의 세밀함과 디테일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커플이 손을 잡는 장면을 연출한다고 했을 때 남자는 단순하게 두 사람이 손을 잡는 장면을 만듭니다. 그런데 여자가 연출하면 손을 잡고 흔드느냐 흔들지 않느냐, 남자가 뒤에서 여자의 손을 잡는 거냐 그렇지 않는 거냐, 손을 만지작거리느냐 아니냐와 같은 것들을 결정한 후 장면을 만듭니다.”

표 PD는 ‘디테일에서 출발해서 큰 숲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큰 숲에서 디테일로 갈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도 기획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도전 골든벨’이라는 프로그램의 기획은 퀴즈프로그램을 만들자는 큰 숲에서 시작해, 학교에서 할지 OX 퀴즈처럼 만들 것인지를 결정하는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획은 큰 숲에서 디테일을 도모하게 된 형태가 된다. 또 반대로 디테일에서 출발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면 어떤 큰 포맷의 프로그램이 탄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학생들이 표민수 PD의 강의를 듣고 있다. ⓒ 김성숙

독창적 드라마는 삶의 양면성을 다룬다

일반적으로 불륜이란 결혼해서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불륜은 몸을 섞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몸을 섞지는 않았지만 상대를 마음속으로 깊이 사랑하는 것도 불륜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혹시 우리가 말하는 불륜이 과거에도 불륜이었을까? 표 PD는 불륜을 정의할 수 있다면 과거에도 맞고 지금도 맞아야 하며 미래에도 맞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거짓말>은 표 PD의 미니시리즈 첫 작품이다. <거짓말>은 불륜을 소재로 삼았지만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뒤집으면서 시청자의 주목을 받았다. 기존 드라마에서 불륜은 다른 사람 몰래 손을 잡고 다니다가 놓고, 은밀하게 문자를 나누는 것과 같은 사건 중심으로 표현됐다. 표 PD는 불륜이 정말 사건인가에 관한 의문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그는 사건으로서의 불륜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에 집중해 드라마를 만들었다. 더불어 불륜의 당사자 대신 그들의 주변에 집중했다. 예컨대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의 아내에게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기존 통념에 의문을 갖고 반대되는 생각을 연속했기에 독창적인 논조의 기획이 나올 수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기획이란 행복한 사람은 왜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은 왜 불행한가라는 두 가지 질문이 모두 들어있는 것입니다.”

불륜을 해서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불행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지금 불행하다고 해서 평생 불행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에게 행복을 부여하고 행복한 사람에게 불행을 부여하는 두 가지가 함께 움직여야 살아있는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다. 나무가 있어야 숲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숲은 따지고 보면 나무라는 원소가 존재해야 한다. 표 PD는 이러한 원리를 ‘원근법’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것이 필요하면 큰 것도 필요하고 일반론이 있으면 특수론이 필요하고 주관적인 것이 있으면 객관적인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획을 위해서는 반대되는 것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긴 머리카락을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렸다면 짧은 머리카락을 좋아하는 사람도 떠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 긴 머리카락과 짧은 머리카락이라는 두 가지 객관적인 논거와 반대되는 감정적인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머리카락이 짧아서 불행한지 행복한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표 PD는 이렇게 생각을 반대로 뒤집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드라마의 논조를 찾아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론에는 연출자 철학 담아야

“연출자가 가장 마지막에 고민하는 것은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느냐는 것이죠. 시청자에게 알아서 판단하라고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해요.”

할머니가 고등어를 가지고 젊은 사람과 싸우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할머니가 맞으면서 악을 쓰고 있다면 그 뒤에 어떤 감정 상태가 있는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할머니가 혼자 어린아이를 데리고 살고 있어 삶이 고단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 말이다. 표 PD는 이 단계에서 생각을 그치면 탄탄한 기획서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삶이 고단한’ 할머니에서 그치지 않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감정 상태를 바탕으로 또 다른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을 바탕으로 감정으로 펼쳐나가는 단계를 반복해야 기획자가 의도하는 바를 폭넓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획서를 만들 때 감성과 이성을 일고여덟 단계 반복해야 완벽히 다른 기획서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마무리다. 생각을 뒤집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더라도 이야기의 결론을 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다. 표 PD는 기사에 논조가 있는 것처럼 기획서에 자신만의 특수한 생각을 집어넣어 마무리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성적인 여자가 폭력적으로 변했고, 여자는 아이한테 폭력을 행사하다 자살했다’라는 이야기의 줄기가 있다면 이 줄기에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여자의 감성이 남자의 감성보다 우월하다’는 기획자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 이것이 이야기를 통해 드러날 수 있도록 표현하여 기획서를 마무리해야 자신만의 독특한 기획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드라마 속 인생이 곧 우리의 인생

“배우, 작가, 연출가에게 글씨를 똑같이 쓰라고 해도 다 다르게 쓸 겁니다. 아무리 똑같이 하려고 해도 느낌은 다르겠죠. 그러니까 남 생각하지 마시고 자기 생각만 하세요. 기획서를 만드는 건 결국 본인 인생을 연출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어쨌든 연출이라는 건 조그마한 사회를 내가 움직이는 거니까요. 결국 내가 뭔가를 만들어 내야 하죠.”

표PD는 자신만의 구체적인 소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연출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떤 연출자가 되고 싶은지, 연출자로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세분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분된 자신만의 특별한 소신이 담긴 기획을 해야만 비로소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연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드라마는 허구다. 그러나 이 허구도 사람의 손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사람의 철학이 담길 수밖에 없다. 한 편의 드라마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다. 표 PD는 드라마 속의 인생과 우리의 인생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드라마와 내가 유기적으로 붙어서, 드라마에서 내 인생을 배우고 내 인생에서 드라마를 배우고, 내 인생에서 다른 사람의 인생,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나의 인생을 배우는 그런 드라마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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