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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 않은 세계, 그리스 사상과 불교
[지역]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제천 강연회
2013년 07월 11일 (목) 21:52:37 박세라 기자 sera1862@gmail.com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왜 살아야 하는가?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적잖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이런 질문의 해답은 학교나 교과서에서 배우는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사 조현 종교전문기자는 ‘우리는 선우 제천지회’(회장 김연호) 주최로 지난 5일 제천 유유예식장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봄으로써 근본적인 해답을 탐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역시 스스로 진리와 깨달음을 찾고자 종교의 발상지들을 순례했다. 그는 여행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을까?

그리스와 인도 여행에서 만난 깨달음의 비결 - 질문

조 기자는 이날 ‘그리스 사상과 불교’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11년 전 1년간 인도여행을 하면서 운 좋게도 4대 종파 수장을 모두 만났던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모두 훌륭한 스승이지만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반(道伴)이 돼주었다. 그는 “우리 미래에 올 부처님은 교주, 스승 혹은 신화적인 존재처럼 일방적으로 무엇인가 전수해주는 존재가 아닐 것”이라 예측한다. 즉 스스로 깨닫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좋은 친구이자 벗이 곧 내면의 부처인 것이다.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화려함을 동경합니다. 그러나 경쟁과 치열한 싸움이 있는 곳에선 벗이 아닌 조건으로 사람을 대하죠. 나에게 무슨 이득이나 해로움을 줄지, 아니면 어떤 가르침을 줄지 따집니다. 오직 조건으로만 사람을 대한다면 진정한 벗은 존재하기 힘들죠.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아무런 행복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 '그리스 사상과 불교'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조현 기자. ⓒ 구소라

인도 여행에서 묻지 못한 더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내면과 현실을 보고자 발길이 향한 곳은 그리스였다. 그는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하나하나 던지고 답하며 여행했다. 그리스 사상은 불교와 유사하다. 그가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이다. 기독교 국가인 그리스와 불교가 어떻게 연관됐길래 유사하다는 것일까? 조 기자는 지중해권의 ‘질문 문화’가 모든 것의 해답이라고 말했다.

“지중해 남쪽 이스라엘에서 나온 히브리 문명이 서양 문명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쪽은 북쪽 그리스 문명입니다. 그곳의 독특한 문화가 바로 ‘질문’이죠. 석가모니도 모든 것에 대해 질문과 답하는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쉽게 질문하지 못한다고 조 기자는 지적했다. 유대인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오늘은 선생님께 무슨 질문을 드렸니”라는 질문을 받는다. 학교에서 좋은 질문을 할수록 칭찬해주고 계속 질문하도록 격려한다. 그들의 토론도 끊임없이 질문을 주고받는 형식이다. 한 사람이 모든 절대적 진리를 독점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도반이 돼 깨우쳐 주는 역할을 한다. 조 기자는 노벨상 4분의 1을 차지하는 유대인의 탁월성은 질문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

소도시 아테네가 세계문명을 지배한 이유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국가였다. 조 기자는 “많은 사람들이 아테네가 어떻게 2500년간 세계 문명을 지배했는지 관심 있게 물어온다”며 “하지만 처음부터 위대했던 국가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신화에 의존적이었던 당시 그리스인은 인간은 신에 순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주체적 인간성이 존중받을 수 없던 시대에 살았다. 페르시아가 침략하자 두려움에 떨던 그리스 사제들은 델포이 아폴론 신전의 무녀를 찾아가 점괘에 미래를 걸었다.

“무녀는 ‘신도 두려워 지붕 위에서 검은 피를 쏟고 있으니 땅끝까지 도망가라’는 신탁을 전합니다. 원래 점괘는 번복하지 않지만 희망을 보고 싶었던 사제들은 다시 한 번 점괘를 부탁하죠. 결국 나무 목책(木柵)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으면 안전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파르테논 신전 안에 숨어듭니다.”

그때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은 “우리가 이치에 맞는 작전을 세울 때 신은 반드시 우리 편이 된다”며 신화에만 의존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는 페르시아는 육지국가니 바다에서 목선(木船)을 이용해 싸우는 것이 신의 계시라 해석하여 살라미스 해협으로 페르시아군을 유인해 괴멸시켜버린다. 안정을 찾은 아테네는 무역과 상공에 힘써 경제적으로 풍족해졌다. 하층민 역시 경제력을 갖게 되자 참정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것이 민주화의 기반이 되었고 작은 도시국가 아테네가 세계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는 토양이 돼주었다.

동서양과 고금은 멀지 않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와 현재는 얼마나 다를까? 아주 까마득한 옛날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이 아주 잠깐이듯 2500년 전 삶도 멀지 않다. 철학의 땅이었던 그리스가 기독교 국가가 되었지만, 삶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그들의 사상은 2500년 전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게 조 기자의 생각이다.

   
▲ 그리스의 풍경을 따라가며 저자의 생각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조현 기자의 책 <그리스 인생 학교>

“피타고라스는 18세에 고향 그리스 에게해의 사모스 섬을 떠나 터키로 가서 그리스 최고 철학자인 탈레스를 만납니다. 탈레스는 그의 천부적 재능을 인정하고 자신의 모든 지식을 전수했죠. 어느 날 피타고라스는 탈레스로부터 ‘너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노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밀레토스, 페니키아, 이집트, 바빌론 등으로 지식을 채우기 위한 발걸음을 옮깁니다.”

피타고라스의 이런 열정이 싯다르타와 다르지 않다. 싯다르타는 피타고라스보다 이삼십년 늦게 태어난 인물이다. 궁궐의 환락 속에서 살다가 성문 밖의 병들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생로병사의 고통에 의문을 가졌다. 29세에 출가해 히말라야에서 많은 스승을 만나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배웠다. 조 기자가 부처가 살았던 네팔에 갔을 때 사람들이 나무로 만든 수레를 끌고 다니는 것을 보다가 “저 사람들은 2500년 전 부처님이 살던 때와 큰 차이가 없는 삶을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스 왕 밀린다와 학승 나가세나 사이에 오고간 대화를 엮은 불교 경전 ‘밀린다팡하(Milindapanha)’ 속에 동서양의 만남이 수레 이야기로 남아있다. 왕과 고승이 질문하고 답하던 중 왕이 “이곳까지 타고 온 수레는 무엇인가”라고 묻자, 바퀴, 살, 손잡이 등 각각은 수레가 아니라고 대답한다. 즉 모두를 합친 것도, 이외의 다른 것에서도 수레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고승은 “수레는 바퀴와 살, 손잡이 등 여러 가지로 이루어진 합(合)일 뿐 하나 하나의 독립된 개체가 실체는 아니다”고 말했다. 세상은 다양한 여러 개체가 모여 움직이는 거대한 수레바퀴인 것이다.

이후 예술품을 만드는 기법도 발전시킨 그리스는 인도에 헬레니즘을 전파한다. 원래 헬레(Helle)는 그리스라는 뜻이며 그리스의 정식 명칭은 헬레닉 공화국(Hellenic Republic)이다. 북인도는 헬레니즘 문명의 영향으로 간다라 미술이 탄생했고 간다라 미술은 우리나라 통일신라에 전파된다. 그 흔적은 석굴암의 본존불상에도 남아있다. 따라서 그리스의 신전과 신상은 우리나라 석굴암의 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이런 역사를 멀게만 볼 것이 아니라, 세상은 서로 연관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독립된 문명과 역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수레 비유처럼 연관된 존재들이 서로 깊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죠. 나아가 2500년 전의 역사도 지금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현재와 엄청난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 조현 기자의 강연을 듣고 있는 불교 관계자와 제천시민들. ⓒ 구소라

모르는 것을 아는 것

소크라테스의 한 제자가 무녀에게 달려가 “이 세상에서 우리 스승보다 더 현명하신 분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무녀는 “없다”고 대답한다. 이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자기 내면에서 답을 찾을 수 없기에 무녀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똑똑하다는 사람을 다 찾아가 철학, 정치, 종교 그리고 농법까지 궁금하고 모르는 것을 질문한다. 그 과정 속에 소크라테스는 “내가 그 사람들보다 현명한 것이 맞다”고 인정한다. 왜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 소크라테스가 만난 현자들은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했다. 이치는 통달할 수 있지만 지식으로 세상을 다 알 수는 없다. 소크라테스는 “그들은 자신이 안다는 것만 알고 모른다는 것은 모르더라”며 “나는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불교에서도 이런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불교의 선승 숭산스님은 “오직 모를 뿐”이라 했다. 조 기자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면 남에게 물어볼 것도 없고 서로 경청할 수도 없어서 마음을 열 수 없다”며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불교의 숭산스님 모두 자신의 무지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불교에서 해탈은 자유를 얻는 것과 같다.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자유로울 수 있다.

자기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게 깨달음의 첫걸음

   
▲ 조현 기자는 그의 저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내면 세계에 새롭게 눈을 뜨고 삶의 변화를 만들어 가는 여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사람은 삶을 살아가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를 잘 들여다 보는 사람은 드물다. 조 기자는 “자기 내면의 상처에 대해서 자각하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현실이 너무나 힘들어 신화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할 뿐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합니다. 혹시 내면을 보더라도 두려움에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소설을 쓰죠. 사실 삶이라는 것은 구질구질한 것입니다. 그것을 진실하게 봐야 내 상처와 아픔이 보이는 것인데, 아름다운 드라마로만 보기 때문에 무엇이 내 상처인지도 모르죠.”

삶은 아름답게 포장되지 않는다. 우리 삶은 번뇌가 있기 때문에 구질구질하고 아프고 힘들다. 그러나 그 속에서 타인을 돌볼 수도 있고 깨달을 수도 있다. 세상은 상대적이다. 평화는 불안에서 나오고 해탈은 구속에서 나온다. 조 기자는 “번뇌도 없고 고통스럽지 않다면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이라 말했다.

 

“나도 과거에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뛰쳐나가기도 했죠. 그러나 고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이 상처투성이라도 고통스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들여다보면 됩니다.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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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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