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정희준 동아대 교수
주제②: 스포츠 저널리즘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13일 새벽 스페인 국왕컵 16강전 셀타비고와 레알마드리드의 경기가 끝나자 한국 언론은 ‘박주영’ 이야기를 쏟아냈다. ‘해트트릭할 뻔한 박주영’, ‘박주영 펄펄 날았다’, ‘박주영의 셀타비고 레알마드리드 격침’…… 외국 언론 평점분석도 어김없이 따라붙었다. 수차례 기회를 잡고도 득점에 실패했다는 대목은 보기 어려웠다.

명문구단인 레알마드리드와 벌인 경기였기에 벌어진 현상이 아니다. 한국 기자들이 유럽 프로축구리그에서 뛰는 유명 선수를 만나면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박지성을 아는가”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를 만나면 “추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바뀐다. 기성용이나 구자철이 뛰거나 추신수가 경기에 나온 날이면 각 언론사 스포츠면과 방송은 이들의 활약상을 알리는 외신 인용 기사로 가득하다.

같은 한국인이고, 독자들이 관심을 두니 더 큰 비중을 두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비판도 있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서 우리나라 스포츠 저널리즘이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크게 왜곡되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와 <어퍼컷>이라는 저서를 통해서도 이런 주장을 펴왔다.

▲ 정희준 교수의 저서 <어퍼컷>(좌)과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우). ⓒ 미지북스, 개마고원

스포츠 저널리즘을 지배하는 ‘민족주의’

어떻게 정치판에서나 나올 것 같은 ‘민족주의’가 스포츠까지 진출하게 된 걸까?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은 우리가 힘없는 약한 민족이고, 육체적으로도 열등해서 나라를 잃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표어로 ‘단합’을 강조하고, 팔다리가 긴 서양인을 동경하게 됐다. 민족적 콤플렉스가 민족주의를 강하게 만들었으며, 그 정점이 스포츠라고 정 교수는 진단했다.

“우리나라 민족주의는 ‘콤플렉스에 의해 추진되는 민족주의’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콤플렉스가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분야가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콤플렉스를 치유하는 방법 또한 스포츠에 있었죠.”

일제강점기는 언론인이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시절이기도 하다. 친일 지식인에서부터 아나키스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계몽적 지식인들이 육체적으로 열등한 조선인을 개탄하면서 스포츠를 적극 권장하고 집중 보도하기 시작했다. 언론이 여론을 반영하지 않고, 언론이 여론을 만들었다. 과거보다 약해졌지만, 민족주의는 여전히 스포츠 저널리즘에 뿌리 깊게 배어 있다. 그 작동방식을 정 교수는 한마디로 ‘증명’이라 정의했다.

“’당신이 아닌 이 선수는 일개 운동선수가 아니라 세계에서 인정하는 선수야. 너 몰랐지? 외국에서는 이렇게 말해’라고 증명해주는 거죠. 선수들이 거둔 성과에 한 번 열광하고, 외국 반응에 두 번째로 열광합니다. ‘~~에 따르면 김연아가’, ‘~~에서는 박지성이’ 하는 식으로 말이죠.”

한국만 열광한 ‘세계야구대회’ WBC

이러한 민족주의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예가 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다. 이 대회는 올림픽에서 야구가 퇴출당하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이를 대체할 목적으로 축구 월드컵을 본떠 만든 ‘초청 대회’다. 하지만 주최한 미국에서조차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제2회 WBC 대회가 열릴 당시 미국에 있었던 정 교수는 ‘신문에서 대회를 다룬 기사가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관심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강대국들을 연파하고 결승까지 진출한 우리 대표팀이 ‘세계를 경악시켰다는’ 등 찬양 기사를 쏟아냈다.

평소에도 한국 언론은 유독 외국에서 뛰는 선수들이나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에 대한 외국 언론 반응에 신경을 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같이 큰 대회가 있을 때는 아예 ‘외신 배달 시즌’에 돌입한다. 독자들이 그만큼 관심 있기 때문이라는 항변도 일리 있다. 문제는 언론이 중립적인 시각에서 ‘전달’하지 않고 ‘띄워주기’에 급급한다는 점이다.

▲ 우리나라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대회에 열광했지만, 개최국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 참가국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 WBC조직위원회

“박지성 선수의 예를 들어 볼까요? 출전 경기 수나 시간 등을 냉정하게 따져 봤을 때 박지성 선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후보선수입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이 그렇게 보도한 적이 있나요? 퍼거슨 감독의 한마디, 외국 기자의 한마디를 부풀려서 박지성 선수가 맨유 최고 스타인 것처럼 포장했습니다.”

이런 ‘신격화’는 박지성뿐 아니라 김연아, 박태환에게로 이어져 지금은 기성용, 박주영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언론의 지나친 띄워주기에 지치고 반발해 안티팬으로 돌아선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정 교수는 밝혔다.

4년마다 돌아오는 ‘금메달 타령’에 묻힌 생활체육

최근 들어 다소 약해졌지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만 열리면 볼 수 있는 ‘금메달 타령’도 민족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그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 주체가 아니라 국가에 금메달을 바쳐야 임무를 다한 것으로 쳐준다. 성패는 금메달 수, 조금 넓게 봐도 메달 수에 좌우되고, 대회 기간에 등장한 ‘인간 승리’ 주인공도 모두 메달리스트들이다. 다른 나라 언론이 예선 탈락한 선수들에 대해서 감동과 용기를 전달하려 노력하는 동안, 우리 언론은 희생양 찾기에 바쁘다.

과거 가난하고 힘없던 시절에는 승전보가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세계 4대 스포츠 대회(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를 모두 개최하고 다양한 종목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 지금도 그렇게 메달에 목맬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우리는 ‘스포츠 강대국’의 조건이 메달 숫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 교수는 그보다 저변 확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생활체육이 활성화한다면, 자연스럽게 엘리트 스포츠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저변을 확대한 뒤 이를 기반으로 엘리트 스포츠를 지원하는 선순환 구조의 스포츠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스포츠계나 언론이 생활체육 저변 확대를 외치는 시점은 국제대회가 끝난 직후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활체육은 망각되고 프로스포츠같은 엘리트 스포츠로 회귀한다.

언론 외면 속에 체육계 폭력 그대로, 스포츠 지망생 줄어

민족주의와 집단주의는 그 안에 속한 개인을 말살한다. 눈에 보이는 성적에 집착하는 동안 우리 체육계는 다양한 폭력과 부조리를 방치했다. 언론은 이를 고발하고 바로잡도록 촉구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은 성적에 따라 선수들을 차별하며 도리어 이들을 방조했다.

▲ 정희준 교수는 스포츠계에서 발생하는 숱한 부조리를 언론이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임온유
우리나라에서 스포츠계는 일종의 ‘섬’이라고 정 교수는 표현했다. 한번 들어가면 되돌아올 수 없다. 공부는 포기해야 한다. 일단 발을 디디면 대학에라도 진학하기 위해 ‘8강’, ‘4강’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절대 ‘갑’인 감독과 주관기관의 눈에 들기 위해 어떤 부조리도 감내해야 한다. 삶의 방식은 폭력이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중고교 학생 선수 78.8%가 다양한 유형의 폭력을 경험했고 63.8%는 성폭력을 당했다. 초등학교 1학년생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폭력을 경험한 학생 중 56.4%는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 엄청난 문제에는 무수한 공범이 있다. 언론도 그 중 하나다. 상당수 언론은 스포츠계의 폭력 문제를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기사화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 좋은 기삿거리를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감독이나 구단과 ‘공생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문제가 터지면 구단, 주관기관, 언론이 일치단결해서 사건을 무마시킨다.

그 실태가 알려지면서 자식을 스포츠계에 보내려는 부모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스포츠에 열광하지만, 정작 자녀를 보내지 않는다. 스포츠 저변을 더욱 넓혀야 할 시점에, 도리어 스포츠 지망생들은 줄어들고 있다. 이른바 지식인 집단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은 자식을 운동부에 보내지 않고 사설강습소나 주말교실에서 취미로만 즐기게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선수들이 정규수업을 충실히 듣도록 하면 된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이 쉬운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언론 또한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만 목소리를 낼 뿐이지, 평소에는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이를 여실히 볼 수 있는 대목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장희진 파동’ 이다. 수영 국가대표로 선발된 14세 중학생 장희진은 태릉 선수촌에 입촌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면서 훈련에 참가하려 했다. 선수촌과 연맹은 그의 요청을 묵살하고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했을 뿐만 아니라 수영연맹에서 제명했다. 결국 여론에 밀려 자격박탈과 제명은 백지화되었지만, 장 선수는 올림픽 이듬해 한국에서 운동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 '장희진 파동'의 주인공 수영선수 장희진은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사실 전달에 충실…다른 이슈 뒤덮지 말아야

스포츠 저널리즘 문제의 해법에 대해 묻자 정 교수는 “원론적인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가 꼽은 원칙은 두 개다. 첫째, 기본적인 팩트를 충실히 전달하고 둘째, 다문화사회에 걸맞은 논조를 펴야 한다. 민족주의적인 논조를 버리고, 보다 스포츠의 본질에 부합하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이 중립에서 객관적으로 팩트를 전달해야 합니다. 5:5의 기계적 중립을 맞추긴 힘들겠지만, 있는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되죠. 여론이 한쪽으로 쏠리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 쪽 정보만 지속적으로 들으면 사실이라고 믿게 되죠. 욕 먹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계속 알려야 합니다. 독자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 단일민족 정체성을 더 이상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프랑스는 아프리카계 이주민과 극우세력이 충돌하면서 폭동이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타국에서 온 이주민이 10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2세, 3세가 태어나고 이들이 성장해서 정치세력화 할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하나’를 외치기보다 다양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언론인이 되어야 합니다.”

정 교수는 스포츠의 긍정적인 효과가 과도한 저널리즘 때문에 퇴색될 수 있다며 “언론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포츠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시급하고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사건과 이슈들이 스포츠에 묻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가 조사해본 바로는 올림픽 메달소식이나 월드컵 경기결과를 1면 톱에 배치하고, 딸림 기사를 수십 개씩 쓰는 곳은 한국뿐입니다. 너무 심하지 않나요? ‘국민이 요구한다’는 변명을 앞세우지 말고, 언론이 중심을 굳건히 잡아줘야 합니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꼭 바뀌어야 합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이주헌, 이권우, 한홍구, 장승구, 김진석, 신형철, 정희준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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