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만 잘 나가고 빈부격차·성장잠재력·고용 악화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1997년 11월 21일, 외환위기에 직면한 우리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습니다. 오늘은 그로부터 꼭 15년째 되는 날인데요, 지난 15년간 우리 사회의 가장 의미심장한 변화로 어떤 것들을 꼽을 수 있을까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IMF 구제금융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즉 시장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정책이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시장개방을 확대하고 규제를 풀고, 노동에 대한 보호를 약화시키는 조치들이 이어지면서 약육강식, 승자독식 경향이 두드러지게 됐죠. 결과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는데요, 우선 긍정적인 측면은 신속한 위기극복에 이어 국내총생산이 98년 3454억 달러에서 2011년 1조162억 달러로 3배가량이 됐고,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시대에서 2만 달러시대로 도약했습니다. 위기직전 100억 달러에 못 미쳤던 외환보유고는 3000억 달러가 넘는 수준으로 확충됐고요. 추락했던 국가신용등급은 올 들어 위기 이전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갔습니다. 반면 부정적인 면은 분배와 고용의 질, 성장잠재력이 모두 심각한 뒷걸음질을 했다는 것이죠. 우선 재벌의 경제력집중과 부익부빈익빈 등 경제양극화가 심해져 사회적 갈등을 낳고 있고,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나는 등 고용의 질이 나빠졌습니다.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면서 대다수 가구의 소비여력이 줄어 내수가 침체되고 성장잠재력이 하락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니계수, 소득5분위배율 모두 상승…임금근로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

김: 지난 15년간 경제력집중과 부의 양극화가 워낙 심화됐기 때문에, 경제민주화가 지금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양극화의 현실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지표와 대중의 인식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요.   
 

제: 우리 경제의 양극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 가계와 기업의 불균형 등 여러 차원으로 나타나는데 아무래도 피부로 실감하는 것은 개인들이 체험하는 소득의 양극화일 것입니다. 소득불평등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97년 0.264에서 2010년 0.315로 높아져서 그만큼 우리사회의 불평등이 악화됐음을 보여줬습니다. 소득 상위 20%가구의 수입이 하위 20%가구 수입의 몇 배인가를 보여주는 소득5분위배율도 같은 기간 3.97에서 5.96으로 증가했습니다. 전체가구의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50~150%에 해당하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보는데, 이 비중이 위기 전인 95년에는 75.3%였지만 2010년엔 67.5%로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빈곤층은 7.7%에서 12.5%로 늘었고요. 지난 15년에 대해 국민들은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 살펴볼까요. 중앙일보와 한국리서치가 최근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공동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80.8%가 ‘외환위기 후 대기업은 기업하기가 더 좋아졌다’고 답변했습니다. 반면 ‘서민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 ‘위기극복과정에서 국민이 희생됐다’,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고 응답한 사람이 각각 90%내외에 달했습니다.

김: 많은 국민들이 살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직접적인 이유의 하나는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처우가 나쁘다는 부분일 것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15년간 일자리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제: 외환위기 후 기업 구조조정과정에서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졌죠. 기업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정리해고를 본격적으로 허용하면서 실직자가 급증했고, 비정규직 고용이 크게 늘었습니다. 어지간하면 정년을 보장해 주던 종신고용제와 경력이 쌓일수록 월급이 올라가는 연공서열형 임금제도가 무너지고 계약제, 연봉제, 성과급 등 노동자간의 경쟁을 심화시키는 불안정한 보상시스템이 보편화됐습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정부의 공식통계는 2001년 처음 시작됐다고 하는데요, 당시 전체임금근로자의 26.8%에서 2010년에는 33.1%로 증가했습니다. 비정규직범위를 보다 넓게 잡는 노동계 집계로는 현재 임금근로자의 5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분류됩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월급이 절반 남짓밖에 안되고,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정하고, 보험과 연금 등 사회안정망으로부터 소외돼 있죠. 그러니 비정규직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가난하고 불안정한 노동자가 늘어난다는 얘기입니다. 

김: 우리 경제의 가장 심각한 현안 중 하나가 가계부채인데요, 지난 15년간 얼마나 늘었습니까.

제: 외환위기 후 대기업들은 평균부채비율이 400%를 넘는, 지나친 차입경영을 벗어나라는 주문을 받았고 치열하게 빚을 줄였습니다. 그래서 2010년 말의 평균부채비율은 115% 남짓으로 낮아졌고요. 그러자 은행 등 금융사들은 돈을 예전만큼 쓰지 않는 기업들 대신 수익성이 높은 가계대출로 관심을 돌려 대대적인 대출 마케팅에 나섰습니다. 대다수 가계는 외환위기 후 실질임금이 정체되거나 뒷걸음질 쳐 살림살이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빚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졌습니다. 여기에 정부와 은행이 부동산경기를 부양하고 담보대출을 장려하면서 중산층은 집값 상승의 기대 속에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고, 저소득층은 부족한 생계비를 빚에 의존하느라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었죠. 주거, 보육, 건강 등 기초민생분야의 사회복지가 허술하니 저소득층이 빚을 내는 것 외에 마땅한 수단이 없기도 했고요. 이 때문에 98년 183조원이던 가계부채가 올해 6월말에는 922조원으로 5배가 넘는 수준이 됐습니다.  그래서 각 가정이 대출원리금 갚느라 허리띠를 졸라매다 보니 소비할 여력이 줄어들고, 이 때문에 내수가 부진하고 성장잠재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어요. 

내수시장 침체로 성장잠재력 하락, 광범위한 사회적지출 필요

김: 현재 경기가 나쁘다는 것 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 자체가 떨어졌다는 것이 더욱 걱정스런 부분입니다. 성장잠재력이 하락한 이유는 뭔가요.

제: 금방 말씀드린 것처럼 가계부채로 인해 가계의 소비여력이 줄면서 내수가 침체되고 이로 인해 성장잠재력이 하락하는 측면이 있고요, 우리사회의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 인구의 상대적 비중이 줄고 있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성장잠재력은 잠재성장률이라는 개념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요,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3.7%로 외환위기 직전 잠재성장률 6.1%의 거의 절반수준으로 하락했습니다. 참고로 잠재성장률은 한 국가의 경제가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서 물가상승 등의 부작용 없이 이뤄낼 수 있는 성장률을 의미합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장차 1%, 혹은 0%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또 실질성장률, 즉 물가를 감안해서 실제로 경제가 성장한 정도를 살펴봐도 97년 5.8%에서 지난해 3.6%로 낮아졌고 올해는 2%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김: 그렇다면 우리 경제가 성장잠재력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 15년 전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독려했던 IMF가 지난 10월 한국경제관련 보고서를 냈는데 ‘소득평등을 강화하는 사회적 지출이 성장을 견인한다’는 내용이어서 눈길을 모았습니다. IMF는 한국이 직면한 고령화와 소득불평등이라는 도전에 맞서 성장을 지속하려면 건강, 교육, 실업급여를 포함한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등 광범위한 사회적지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가 주도해서 돈을 쓰라는 것인데요, 이런 사회적 지출이 불평등을 완화하고 성장을 촉진하면서 선순환의 사이클을 만들 수 있다는 얘깁니다. 15년 전 정리해고 등을 독려했던 것에 비하면 의외의 처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MF는 특히 한국에서 소득불평등의 가장 큰 요소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임금격차를 낳는 노동시장의 분절이라면서 이런 분절을 완화해서 생산성향상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비정규직 해결과 복지확충을 통해서 양극화를 완화하라는 처방인데요, 그러려면 조세정책도 증세를 통해 재분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 것입니다. 성장잠재력 회복을 통해서는 이와 함께 신재생에너지나 고부가가치 농업, 문화콘텐츠, 관광 등 신성장산업을 집중 육성해 일자리를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또 수출과 내수의 균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의 기조를 전환해야 하고 금융거래세등 개방의 위험성을 최대한 낮출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잠재성장률 하락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인 저출산고령화와 관련해서도 보육,주거, 교육 등에서 실질적인 복지시스템을 갖춰 여성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해야 합니다.  


 *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11월 21일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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