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향료 다룬 ‘KBS스페셜’, 어려운 소재 밀도 있게 소화
[TV를 보니 : 10.22~28]

“남들은 ‘숨 막힐 듯한 향기’를 문학적 표현으로 사용합니다만, 향기로 인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숨이 막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꼭 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지난달 28일 한국방송(KBS)의 <KBS스페셜>에 출연한 어느 주부의 말이다. 향기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니? 섬유유연제로 세탁한 옷에서 풍기는 강한 향이나 자동차 방향제 냄새가 좀 찜찜했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사람들에게 방송의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달콤한 향기의 위험한 비밀’이라는 제목이 보여주듯 더 강하고 자극적인 향을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지를 이 방송은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사실 '향기'라는 소재는 TV영상으로 시각화하기 힘든 것인데도 과감한 접근을 시도했다. 

▲ ‘달콤한 향기의 위험한 비밀’편의 오프닝 화면. ⓒ KBS 화면 갈무리

다양한 사례와 실험으로 영상화 어려움 극복 

‘폐색성 세 기관지염’이라는 보기 드문 질병에 걸린 제리 블레이락(63)씨. 폐의 80% 이상이 망가져 산소호흡기를 코에 달고 산다. 미국 미주리 주에 거주하는 이 남자의 원래 직장은 팝콘 공장이었다. 팝콘에 ‘합성 버터밀크향(디아세틸)’을 배합하는 일을 하다 그 향의 독성 때문에 폐가 망가졌다. 스틴 베드(43)씨는 ’향기 민감증 환자‘다. 외출할 땐 반드시 방독면을 챙겨야할 정도로 냄새에 민감하다. 상점에도 주 1회밖에 가지 않는다. 향수나 섬유유연제, 심지어 책 냄새에도 고통을 느낀다. 그는 인공의 냄새를 피해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 2009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그와 같은 ’향기 민감증 인구‘가 놀랍게도 미국 국민의 30%를 넘는다고 한다. 한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KBS방송문화연구소가 16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향 첨가제품의 냄새를 맡은 후 메스꺼움이나 편두통, 기분저하 등의 부정적 반응을 보인 사람이 62.3%나 됐다. 

▲ 방독면을 쓰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 향기 민감증 환자 스틴 베드 씨. ⓒ KBS 화면 갈무리
그런데 이 ‘위험한 향기’가 우리 생활 전반에 퍼져 있다. 생크림, 식빵, 향수, 팝콘, 화장품, 방향제, 샴푸, 섬유유연제, 양초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방송은 생크림의 주요 성분이 우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사실도 보여주었다. 커피에 올리는 하얀 생크림, 제과점에서 빵을 장식한 생크림 대부분이 우유 성분은 20% 이하거나 전혀 들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우유 냄새’는 인공향료가 만든 것이었다.  

만드는 과정을 보자. 포리인산, 카라기난, 잔탄검, 카제인나트륨, 야자경화유, 글리세린지방산 에스테르, 설탕 등을 잘 섞어 먼저 ‘우유 비슷한 물질’을 만든다. 쉽게 말하면 ‘가짜 우유’다. 이 가짜 우유엔 우유향이 없다. 그래서 우유향이 나는 ‘합성 착향료’를 넣는다. 그러면 진짜 같은 가짜 우유가 만들어진다. 그 우유로 다시 생크림을 만든다. 그럼 ‘진짜 생크림과 똑같이 보이는 가짜 생크림’이 된다. 이걸 업계에선 ‘식물성 휘핑크림’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 위에 하얗게 얹힌 크림은 대부분 이 식물성 휘핑크림이다. 진짜 우유로 만든 생크림 보다 더 생크림 같다. 점도가 좋아 모양을 만들기에도 더 편리하다. 색깔도 더 하얗고 향도 진하다. 

이런 합성착향료는 식빵, 호떡, 오미자차, 복분자술 등 대다수 가공식품에 첨가물로 들어간다. 식품 외에도 달콤한 향기가 나는 샴푸, 섬유유연제, 방향제, 향수 등 각종 생활 미용용품에 인공향료는 빠짐없이 첨가 된다. 문제는 이 첨가 향료에 독성이 있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물고기 실험, 고민정 아나운서 집의 공해 수치 조사,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등의 실험 결과를 근거로 합성 향료의 독성을 꼼꼼하게 입증했다. 일부 향료에는 발암성분도 들어 있었다. 그래서 유럽연합(EU)과 미국 환경보호청은 인공향료 성분을 ‘독성이 있다’는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한다.  

▲ 인공향료의 독성을 금붕어에게 시험하는 장면. ⓒ KBS 화면 갈무리

국내사례 부족, 어색한 PD 등장 등 아쉬움도 

이 방송은 시각화가 힘든 무형의 소재를 60분간 밀도 있게 소화했다. 취재과정 자체를 영상화하고, 각종 사례와 실험 등을 이어가며 이야기 전개를 아기자기하게 만들었다. 실험에서 나온 수치는 일반인들에게 쉽게 전달하려고 애썼다. 실내 공기 오염과 자동차 배기가스 등을 비교하며 이해도를 높인 부분도 좋았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폐질환의 묘사나 KBS자체조사 등을 동원한 성의도 돋보였다. 환경 분야 전문가들의 인터뷰도 알아듣기 쉬운 편이었다. 자칫 전문용어를 나열하면서 추상적인 논의로 흐를 수 있는 소재를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게 잘 요리했다.  

하지만 몇 가지 거슬리는 부분도 있었다. 향기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사례를 너무 길게, 중복되게 소개한 느낌이 있었다. 향기의 위험성을 쉽게 전달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었으나 어느 정도 절제가 필요했다. 특히 향기로 인해 고통 받는 사례를 주로 미국에서 찾았던 점도 아쉬웠다. 국내 사례는 단 한 건에 불과해 시청자들이 상대적으로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법하다.  

향기의 독성 등을 입증하기 위해 동원한 실험장면도 지나치게 잦아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이 과정에서 담당 피디(PD)가 출연한 모습도 어설펐다. 표정과 말투가 진지하지 않아 프로그램의 흐름을 끊는 느낌이었다. 옷차림, 질문, 표정 등을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한 후 등장할 필요가 있었다. 또 시청자 박지현씨는 게시판에서 “TV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이유로 동물을 불필요하게 죽이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금붕어를 대상으로 한 인공향료 실험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림이 없는 소재’를 영상물로 소화하는데 불가피한 측면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런 지적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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