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본뜬 MBC <승부의 신>, 우왕좌왕 하락세
[TV를 보니 : 10.9 ~15]

지난 7월 끝난 문화방송(MBC)노조의 파업이 한창일 때 <무한도전>은 ‘사랑 받는 프로그램’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시청자들은 ‘보고 싶다, 무한도전’을 외쳤고, 노조나 회사측도 각각 다른 속셈을 갖고 <무한도전> 결방의 파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연출자인 김태호 피디(PD)의 운신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많았다. 한 예능프로그램의 위력을 그처럼 실감할 때도 없었던 듯하다.

당시 <무한도전>이 그렇게 큰 관심을 끈 배경에는 평소의 인기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하하 대 홍철’편의 마지막 3회분에 대한 시청자의 궁금증이 컸다는 것이다. 동갑내기 하하와 노홍철이 형ㆍ동생을 가리기 위해 ‘캔 뚜껑 빨리 따기’, ‘자유투’, ‘동전 빨리 줍기’ 등의 게임을 펼친 이 코너는 1월 28일 2회가 방영된 후 파업 때문에 3회분이 몇 달간 미뤄지게 됐다. 3,400 명에 이르는 대규모 관객이 두 사람 중 누가 이길 것인가를 예측하고 어느 한쪽에 섰다가 지는 쪽이면 탈락하는 대규모 이벤트도 함께 펼쳤기 때문에 이 코너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은 더욱 컸다. 경기 결과를 최종적으로 다 맞힌 관객은 자동차를 받게 돼 있었기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하가 ‘달인’ 김병만에게 과외를 받고, 노홍철이 인터넷 유명강사의 단기 속성 수업을 들으며 승부욕을 불태우는 장면은 더 큰 웃음과 재미를 자아냈다.

긴장감 없는 승부에 시청자 외면 

<무한도전>에서 한 번으로 끝난 이 이벤트를 MBC는 파업이 끝난 후 독립된 프로그램으로 편성했다. 파업종료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8월 19일 <승부의 신>이 <일밤>의 한 코너로 등장했다. 관객 수를 1,500 명으로 줄였지만 참여의 형식은 <무한도전>의 ‘하하 홍철편’ 과 거의 같았다. 출연자들의 승부는 대개 2회분으로 나눠 방송된다. <일밤>의 다른 코너인 <나는 가수다>가 5%대 시청률로 명맥을 유지하는 가운데, <승부의 신> 첫방송 시청률은 3.6%(AGB 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기준)로 그럭저럭 기대를 걸 만 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부진을 면치 못하더니 10월 14일 방송된 9회 시청률은 1.9%에 그쳤다.

▲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경기종목이 강점이라는 <승부의 신>. 하지만 매회 비슷한 게임의 반복은 지루함을 불러온다. ⓒ MBC

<승부의 신>의 부진은 일단 경쟁 프로그램의 상승세와 무관하지 않다. 같은 시간대 에스비에스(SBS) <정글의 법칙>과 한국방송(KBS) <남자의 자격>이 인기몰이 중이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은 마다가스카르 등 해외 촬영을 통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고, <남자의 자격>은 주 종목인 합창단 프로젝트를 통해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당기고 있다. 하지만 <승부의 신>이 추락한 게 오로지 이런 외부 요인 탓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승부 자체가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무한도전>에서는 ‘동전 줍기’, ‘캔 뚜껑 따기’ 등 소소한 게임 종목들이 뭇 운동경기 못잖은 긴장감을 조성했다. 손톱이 잘 자라지 않는 하하의 약점을 이용하는 등 ‘꼼수’에다 유재석, 박명수 등 진행자들의 재치가 더해져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승부의 신>도 이를 벤치마킹해 ‘쌍절곤으로 촛불 끄기’, ‘눈물 빨리 흘리기’ 등의 미션을 선보였지만 <무한도전>에 비해 맹물처럼 밍밍하고 허전한 구석이 있었다. 거기다 여러 종목이 8~10라운드라는 긴 호흡으로 이어지다 보니 지켜보기가 지루하다. 게임의 진행 속도가 느리다 보니 시청자는 곧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대결의 ‘이유’와 ‘보상’을 분명히 해야

지난 14일 방송에서는 ‘한류스타’ 동방신기(유노윤호ㆍ최강창민)와 ‘이태원스타’ 유브이(UV/유세윤ㆍ뮤지)가 몸을 던져 열띤 경기를 펼쳤지만 시청률이 2%에도 못 미치는 참담한 결과가 나왔다. 대형 스타의 인기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부진에 빠진 <일밤>에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오히려 더 깊은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형국이다.

▲ 교차점을 찾기 힘든 두 출전팀 동방신기와 UV. ⓒ MBC

탈출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우선 김용만 탁재훈 김수로 노홍철 김나영에 레인보우 김재경과 배우 이재윤 등 7명이나 되는 진행자를 어떤 형식으로든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공동 진행자가 너무 많다보니 각각의 역할과 캐릭터가 분명하지 않고, 진행자들이 편도 나누지도 않은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불안하다. 게스트로 출연한 두 팀의 성격도 대결 상황에 맞게 분명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동방신기와 UV의 대결을 두고 ‘최강 라이벌전’이니 ‘세기의 대결’이라고 법석을 떨었지만 지켜보는 시청자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대결의 ‘명분과 이유’, 결과에 대한 ‘벌칙과 보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삼아 펼치는 승부라도 목표가 뚜렷해야 시청자가 몰입할 수 있다. 동갑내기 하하와 노홍철이 ‘형ㆍ동생을 가리겠다’며 죽기 살기로 덤비는 것은 우스꽝스럽지만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기존 프로그램의 인기 코너를 정규 프로그램으로 확대편성하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라고 볼 수 있다. ‘하하 대 홍철’의 승부가 한번은 눈길을 끌었을지 모르지만 그런 게임이 계속될 경우 과연 시청자들이 식상해 하지 않을지 충분한 검토가 필요했다. 부진의 늪에 빠진 <일밤>을 구하려는 조급함과 파업 후 MBC 예능의 부활을 서두르는 다급함이 있었겠지만 치밀한 전략과 정교한 준비 없이 성공하긴 어렵다는 것을 <승부의 신>이 보여준 셈이다. 

▲ <승부의 신>은 일밤의 구원투수로 나설 수 있을까? 오는 21일 방송부터 대대적인 개편을 했다고 하는데 두고볼 일이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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