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회고로 시청자 공감 이끌어낸 300회 특집
[TV를 보니 : 10.15~21]

“좋으니까...”

야영 천막(텐트) 안에서 노홍철과 하하가 유재석에게 물었다. 무명시절, 왜 신인이나 다름없는 자신들을 그토록 잘 대해주었는지. 그러자 유재석은 “좋으니까 그랬겠지”라고 답했다. 바로 이 말이 <무한도전>의 지난 7년을 설명해 주는 한 마디가 아닐까. 주어진 ‘미션(임무)’을 더 잘 해내기 위해 사비를 털어 연습실을 마련하고, 쉬는 날에도 기꺼이 추가 촬영에 임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도 레슬링 경기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 그들 자신이 <무한도전>을 좋아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시청자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프로그램에 최선을 다하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 ‘좋아서’ 300회에 이르기까지 줄곧 열광했을 것이다.

▲ 2005년 4월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한 <무한도전>이 300회 특집을 맞았다. ⓒ MBC 화면 갈무리

예능 프로그램의 선두주자, 잠시 쉬어가다

‘한국 최초의 리얼 버라이어티’, ‘대한민국 대표 예능’, ‘대한민국 예능은 <무한도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찬사를 듣는 프로그램. 그런 만큼 지난 20일 ‘300회 특집’에 거는 시청자들의 기대도 컸다. 지난 7월 문화방송(MBC)노조의 파업 중단과 함께 방송이 재개된 이후 미지근해진 듯 보였던 시청자의 호응을 되찾기 위해 뭔가 엄청난 프로젝트를 시도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있었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허를 찌르는 기획을 보여주었다. 7년을 앞만 보고 달려온 멤버들이 과거를 되돌아보고 자신들을 성찰할 수 있도록 ‘쉼표’를 마련한 것이다.

적지 않은 시청자들은 ‘쉼표 특집’이라는 예고를 봤을 때 ‘지난 추억이나 이야기하며 쉬어가려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쉬어가는 것도 남달랐다. 단순히 기억에 남는 장면을 다시 돌려보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대화를 통해 왜 그들이 <무한도전>을 만드는 지, 그 과정에서 어떤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는지 속 깊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시청자들은 그들의 진솔한 대화에 빠져들면서 ‘우리는 왜 무한도전을 보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눈물이 시청자의 가슴을 함께 적신 300회였다.

▲ 출연자들끼리 주고 받은 '소울푸드'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잘 보여주는 선물이었다. ⓒ MBC 화면 갈무리

멤버들은 각자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을 꼽으며 추억을 되새기고 서로를 위해 마련한 ‘소울 푸드(영혼을 위한 음식)’를 나누었다. 방송사 자료실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방송 테이프들은 299번의 <무한도전>을 만들어 낸 시간과 땀을 실감하게 했다. 그 시간은 출연진 뿐 아니라 제작진과 시청자들이 함께 한 세월이기도 하다. ‘무모한 도전’ 시절부터 함께 해 온 시청자들은 이 ‘어리바리한’ 남자들에게 뭔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며 극성팬이 되어갔다. 출연자들 역시 공과 사를 넘나드는 끈끈한 관계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제작진이 마련한 텐트에 일대일로 앉아 섭섭하고 슬펐던 기억까지 나누는 장면은 그들의 인간적인 고민과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어 당겼다.

매회 새로운 기획력과 긴장감 유지가 숙제

‘쉼표’의 반응은 예상보다 좋았다. 시청자 이홍란씨는 프로그램 게시판을 통해 “시청자 입장에서도 뜻 깊은 방송이었다”며 “이런 훈훈한 장면이 또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재훈씨는 “멤버들의 대화에서 위로를 얻었다”며 “힐링이 되는 방송이었다”고 소감을 남겼다. 시청률도 16.8%(AGB닐슨 미디어리서치, 수도권 기준)로 파업 이후 방송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새롭고 걸출한 특집의 탄생이었다.

▲ 출연자들끼리 진심을 터 놓으며 한결 더 가까워진 '쉼표'특집. ⓒ MBC 화면 갈무리

조용하지만 강한 효과를 거둔 이번 특집처럼 예상을 뒤엎는 기획력이 바로 <무한도전>의 가장 큰 강점 아닐까? 물론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희극적 요소들, 이를 조화롭게 버무리는 연출력, 그리고 ‘대체 에너지 특집’, ‘나비효과 특집’ 등에서 보듯 시대의 현안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사회적 감각도 빼 놓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무한도전>이 시청자의 사랑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 동력은 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이끌어 낸 기획력이라 할 수 있다. 소와 줄다리기(1회)를 하고 기차와 달리기 경주(2회)를 하던 ‘무모한 도전’부터 최근의 ‘무한상사’까지 한시도 안주하지 않고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그 쉼 없는 노력 말이다.

<무한도전>이 앞으로도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살아남는 길은 이번 쉼표 특집에서 보여준 기획력을 잘 유지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갈수록 소재가 진부해진다는 비판을 허락하지 않고, 매회 다른 포맷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앞으로 400회, 혹은 그 이상을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방송으로 살아남으려면 ‘안이한 기획’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매 주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오는 <무한도전>을 통해 일상에 지친 시청자들이 지금처럼 웃음과 활력을 계속 얻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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