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배여운 SBS 기자

마부작침(磨斧作針)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음을 이르는 사자성어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일은 ‘데이터 저널리즘’과 닮은 점이 있다. 데이터 저널리즘은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뾰족한 사실을 찾아 보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SBS> 데이터저널리즘팀의 이름은 ‘마부작침’이다.

2016년 만들어진 마부작침은 현재 SBS 디지털뉴스 제작부가 담당하는 ‘스브스프리미엄’ 서비스에 속해 있다. 스브스프리미엄은 SBS의 지식구독 플랫폼으로, 텍스트 기반 콘텐츠를 제공한다. 마부작침은 비급여 진료비 데이터 280만 건을 전수 분석해, 동네별로 비급여 진료비를 비교할 수 있도록 한 ‘깐깐하게’, 인공지능을 활용해 언론사 뉴스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치인에 대한 여론 변화를 실시간으로 보여준 ‘폴리스코어’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였다.

지난해 11월, 배여운 SBS 디지털뉴스 제작부 기자는 비급여 진료비 비교 서비스 ‘깐깐하게’로 제398회 이달의 기자상 전문보도 부문, 제181회 이달의 방송기자상 디지털콘텐츠 부문을 수상했다. 비급여 진료비 데이터를 모두 분석해 천차만별 실태를 지적하고, 동네 비급여 진료비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단비뉴스>는 지난달 23일 서울시 양천구 목동 SBS 사옥에서 배여운(38) 기자를 만났다.

지난달 23일 배여운 기자가 단비뉴스와 인터뷰 중 카메라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전예나 기자
지난달 23일 배여운 기자가 단비뉴스와 인터뷰 중 카메라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전예나 기자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알려준 ‘데이터 저널리즘’

배 기자는 행정병으로 복무하면서 데이터를 처음 다뤄봤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그는 군대에서 액셀을 배우며 ‘숫자가 맞아떨어지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복학 이후 대학 졸업 직전인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를 우연히 접했다. 뉴욕타임스 기자들이 직접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기사를 쓴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아쉽게도 당시 데이터전문팀을 운용하는 국내 언론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데이터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데이터 시각화를 전문으로 하는 어느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일을 2년 4개월간 했다. 실무를 경험하며, 데이터 작업에서 결국 중요한 건 의미를 설명하는 ‘스토리텔링’이라는 걸 알게 됐다. 때마침 데이터 저널리즘팀을 만든 <중앙일보>에 2017년 데이터분석가로 합류하게 됐다.

배여운 기자가 2018년 데이터분석가로 제작에 참여한 중앙일보의 인터랙티브 ‘우리 동네 의회 살림’. 기초의회 가계부를 검사한 이 콘텐츠는 1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배여운 기자가 2018년 데이터분석가로 제작에 참여한 중앙일보의 인터랙티브 ‘우리 동네 의회 살림’. 기초의회 가계부를 검사한 이 콘텐츠는 1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중앙일보에서 ‘우리 동네 의회 살림’을 비롯해 여러 데이터 기사에 참여한 그는 2019년 SBS 보도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탐사보도를 전담한 ‘끝까지 판다’팀에서 일한 뒤, 데이터 저널리즘팀인 ‘마부작침’으로 옮겼고, 지금까지도 디지털뉴스 제작부에서 데이터의 의미를 찾아내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데이터 분석은 ‘요술 방망이’가 아닌 ‘취재 방법’

10년간 데이터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실무에 활용한 배 기자는 “데이터 저널리즘이라고 하면 무엇이든 다 될 것 같은 ‘요술 방망이’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데이터 저널리즘은 기자가 알고 있으면 좋은 취재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기술적 능력보다 기자가 그 방법을 활용해 어떤 기사를 어떻게 쓸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그는 데이터 분석에 앞서 취재하는 아이템과 관련한 여러 정보와 지식을 공부하는 일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 그는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데이터를 분석하면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고, 해석에서 오류가 생길 수 있다”며 “기술만으로는 좋은 기사를 보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데이터 저널리즘은 사안에 관해 연구한 후 기술로 구현해내는 방법이기 때문에 분석 기술만 학습하기보다는 주제에 관한 공부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개발자, 디자이너 등과 협업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배 기자는 말했다. “함께 일하는 모두가 저널리스트이고, 좋은 기사를 향해 나아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협업하는 동료들과 아이템 기획 단계부터 많이 의논한다. 기술적 도움만 받는 것이 아니라, 아이템을 선정한 배경, 강조해야 하는 지점 등을 초기 단계부터 활발히 논의할 때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질문에 답하거나,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배 기자에게는 취재 아이템을 기획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질문을 먼저 생각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데이터로 찾는 것이다. 이때 데이터는 그의 물음에 답하는 ‘취재원’이다. 둘째, 질문이 떠오르지 않을 때 다양한 데이터를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다. 모든 분야에 충분한 지식이 있는 건 아니기에 질문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는데, 데이터가 그의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워주는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최근 배 기자의 마음에 남은 기사도 둘째 방법으로 기획한 아이템이다. 지난해 2월 전국 토지 소유 정보 데이터를 보던 그는 소유주 가운데 일제강점기 당시 창씨개명된 이름들을 발견했다. 일본인 혹은 일본식 이름을 가진 조선인이 소유한 땅을 지도 위에 표시해보니 첨성대 주변에 모여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데이터가 그에게 물음을 던진 순간이었다.

지난해 3·1절을 맞아 그는 SBS 스브스프리미엄에 ‘국보 첨성대 앞 땅 주인이 ‘일본인’? 추적해봤더니’를 보도했다. 전국 3946만 7980필지의 토지대장을 전수 분석해, 해방 이후 소유권 이전이 없는 일본인 혹은 일본식 이름을 가진 조선인 필지 5만 2787건을 확인했다. 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현장 방문이 필요한 곳은 직접 찾아갔다. 그는 “데이터가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현장에서 많이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획부터 데이터 분석, 현장 방문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마친 이 보도는 “데이터에서 출발해 현장 탐사로까지 이어진 의미 있는 보도”로 배 기자의 기억에 깊게 남았다.

지난해 2월 28일 보도된 SBS ‘첨성대 앞 땅 소유주가 후쿠가와상?...방치된 일제 잔재 5만 필지’ 화면 캡처. SBS 뉴스 유튜브 갈무리
지난해 2월 28일 보도된 SBS ‘첨성대 앞 땅 소유주가 후쿠가와상?...방치된 일제 잔재 5만 필지’ 화면 캡처. SBS 뉴스 유튜브 갈무리

데이터 기반 보도가 더 넓게 뿌리 내리려면

배 기자는 “데이터가 넘쳐흐르는 시대라고 하지만, 쓸 수 있는 데이터가 많진 않다”고 말했다. 정보공개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데이터를 얻지 못하는 일도 많다. 게다가 국내 언론사의 데이터 저널리즘 팀이 줄어들고 있다. 그 아쉬움을 메워주는 건 주변 동료 기자들이 전달하는 아이디어와 그들과의 협업이다. 출입처를 오가는 기자들은 각 분야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런 부분을 데이터로 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그에게 건넨다.

배 기자는 데이터 기반의 기사가 더 많이 보도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더 다양한 협업을 통해 국내 언론에 데이터 보도를 뿌리내리고 확대하려는 꿈을 갖고 있다. “많은 사람이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배울 시간과 기회가 없다 보니 구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강의를 통해서도 데이터 저널리즘을 많이 알리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최근 배 기자의 관심 분야는 인공지능(AI)이다. AI를 잘 활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활용할 언론인으로서, AI의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과 위험성에 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보도도 함께하고 싶다. 10년 차 기자인 그는 데이터를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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