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전쟁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한 직후였다. 국내 언론이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전하는 가운데 양대 공영방송인 MBC와 KBS는 러시아의 공격을 받는 우크라이나의 모습을 생중계로 송출했다. MBC의 유튜브 채널 <MBCNEWS>, <엠빅뉴스>와 KBS의 유튜브 채널 <KBS News>을 통해서였다. MBC와 KBS의 유튜브 채널의 영상 제목은 각각 <[LIVE]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수도 키예프 실시간 영상| View of Kyiv as Russia lauches Ukraine invaison>과 <LIVE-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각 키예프 현장·세계 각국 관련 속보>였다.

이들 채널을 통해 폭격음이 들리는 시가지 전경을 담은 CCTV 영상이나 도심 외곽에 피신 중인 키예프 시민들,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 폭격을 당해 불이 난 아파트에 진입하는 구조대의 모습 등이 적나라하게 국내 시청자의 눈앞에 중계됐다.

현장을 연결하는 생중계의 힘

뉴스에서 생중계는 현장의 상황과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현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저널리즘의 본질에 충실한 보도 방식이기도 하다. 특히 어떤 참사 현장을 생중계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참상의 현장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 팽목항 상황을 생중계한 유튜브 채널에 시청자들이 몰렸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생중계 역시 그런 의미에서 현장을 연결하려는 시도였고, 시청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팽목항 생중계 때와는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생중계에 대해서는 비판 목소리가 컸다. 공영방송이 전쟁 상황을 마치 게임 영상처럼 소비하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생중계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영화감독은 “서울에 전쟁이 났는데, 우크라이나 방송국에서 서울 CCTV를 생중계 한다고 생각해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영상에는 어떤 설명도 없었다. 새로운 소식을 전하거나 전쟁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전쟁을 생중계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댓글 창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욕하거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코미디언을 했다는 것을 비꼬는 등의 비방, 혐오 댓글이 무분별하게 달렸다. 심지어는 “우크라이나는 계속 전쟁을 진행해서 우리에게 재미를 선사해라”, “총력전 드러가자” 등 전쟁을 마치 게임처럼 대하는 댓글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흘째가 되어서야 양 방송사는 자사의 뉴스 리포트를 생중계 사이에 넣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MBC는 비판 여론에 대해 시청자의 알권리 차원에서 뉴스 가치가 있는 현장 영상을 ‘있는 그대로’ 실시간으로 전달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것이며, 교전 장면 등 자극적인 영상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댓글에 대해서는 “일부 부적절한 댓글은 더 세심하게 관리하겠다”며 해당 유튜브 채널에 “비난이나 장난스러운 댓글, 이번 사안과 관계없는 댓글을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는 공지를 올렸다.

전쟁과 같은 참사를 보도할 때는 보도의 형식과 방법에 있어서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이들에게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 중계되면 보는 이들에게도 2차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MBC의 의도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전쟁을 통해 누군가 목숨을 잃게 되고, 국가가 파괴되는 엄중한 사안이기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전쟁 참상을 게임처럼 보여주는 방송사 유튜브 콘텐츠

MBC 유튜브 채널 ’엠빅뉴스‘-영상 콘텐츠 썸네일과 내용. 유튜브 갈무리
MBC 유튜브 채널 ’엠빅뉴스‘-영상 콘텐츠 썸네일과 내용. 유튜브 갈무리

생중계뿐만 아니라, 방송사 유튜브 채널에서 전쟁을 마치 게임처럼 편집해서 콘텐츠로 만드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MBC의 유튜브 채널 <엠빅뉴스>에서는 우크라이나 탱크 1대가 러시아 장갑차 8대를 격퇴했다는 내용을 다뤘는데, 탱크 옆에 국기를 표시해 마치 게임 장면처럼 보여주거나 “뛰어난 전략으로 수적 열세를 극복했다”는 등의 자막으로 오락성을 부각했다.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이런 자극적인 보도는 오히려 왜곡된 진실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전쟁의 맥락이나 원인에 대한 분석은 없다. 선과 악의 이분법을 만들고, 사람이 죽게 되는 잔혹한 전쟁이 마치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 게임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래서 전쟁보도에 있어 자극적인 장면을 보도할 때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사회운동자인 수전 손택은 저서 <타인의 고통>을 통해 전쟁이나 학살의 잔혹한 사진이 대중에게 노출되면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쉽게 무감각해진다고 지적했다.

손택은 책에서 “선택된 전쟁들 속에서 대중매체가 모아놓은 고통을 의식한다고 한들, 그것은 억지 의식일 뿐”이라며 전쟁의 고통을 아무리 생생하게 이미지로 담아 보여주어도 고통에 공감하기보다는 금방 기억에서 사라지는 자극적인 소재가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자극성과 폭력성은 확산한다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 앨버트 밴듀라(Albert Bandura)가 1961년 진행했던 ‘보보인형 실험’을 2009년 EBS 다큐프라임 <아이의 사생활> 2부에서 똑같이 진행해 방송으로 담았다. 아동을 3개 집단으로 나누어서 첫 번째 집단에는 보보인형을 공격하는 행동을, 두 번째 집단에는 보보인형을 안아주는 등의 친절 행동, 세 번째 집단에는 무관심한 행동을 보여주고 이후 아이들이 같은 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았다.

EBS 다큐프라임 ‘아이의 사생활’ 보보인형 실험 장면, 왼쪽은 공격행동을 본 후 오른쪽은 친절행동을 본 후 아이의 행동이다. 유튜브에서 갈무리
EBS 다큐프라임 ‘아이의 사생활’ 보보인형 실험 장면, 왼쪽은 공격행동을 본 후 오른쪽은 친절행동을 본 후 아이의 행동이다. 유튜브에서 갈무리

그 결과, 공격행동을 봤던 그룹에서 9명 중 7명이 공격행동을 모방했다. 친절행동 그룹에서는 7명 중 3명만 친절행동을 모방했지만 공격행동을 보인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무관심 행동 그룹에서는 6명 모두가 보보인형에게 무관심한 행동을 보였다. 보보인형 실험에서처럼 폭력성이 전이되는 것은 비단 아이들에게 한정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콘텐츠가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두 콘텐츠는 모두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으로 연령 제한이 있는 작품이다. 오로지 선정적인 장면 때문에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인기 있는 콘텐츠에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이 있는 경향이 있고 사람들 역시 이를 거리낌 없이 소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방영 당시 자극적인 장면으로 논란이 있었지만 최고시청률 28.8%로 높은 시청률을 보였고,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한 <모범택시>나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등 잔혹한 장면이 나오는 콘텐츠의 인기가 높다. 이처럼 폭력성과 잔혹성은 쉽게 전파되고 소비된다.

오락적인 전쟁보도의 취급 기준이 필요하다

전쟁은 가장 잔혹한, 물리적인 폭력이다. 그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래서 더욱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이다. 전쟁을 보도하는 것은 이런 끔찍한 비극을 생생하게 목격함으로써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전쟁의 참상을 보도한다면서 잔혹한 장면을 과도하게 노출하거나 자극적이고 오락적인 콘텐츠로 만들어 보도하는 것은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 오히려 사람들을 폭력에 무디게 만들고 전쟁을 게임처럼 생각해 전쟁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문제는 어떤 보도가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전파하는 것이고, 어떤 정도가 오락적인 취급이 되는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바람직한 전쟁 보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부족한 것이다.

맥락을 전달하려는 고민이 필요하다

미국 파크대학교의 글로벌평화저널리즘 센터에서 제시한 평화 저널리즘의 10가지 원칙 중에는 “맥락을 제공하라”라는 것이 있다. 전쟁의 참상과 폭력, 갈등을 표면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보도하기보다, 깊이 있는 보도를 통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맥락을 제공하라는 이야기다. 올바른 전쟁 보도를 위한 구체적인 기준 논의가 필요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쟁의 폭력성이 하나의 유희로 전락해버리는 형태의 보도는 전쟁이라는 맥락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원인과 결과, 피해 상황 등 사람들의 ‘알권리’를 위해 맥락을 제대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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