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SNL 코리아 리부트 시즌 3 ‘MZ오피스’

SNL 코리아는 미국 NBC ‘Saturday Night Live’의 포맷을 사와 만든 프로그램이다. 2017년 오리지널 시리즈가 종영되고, 2021년 SNL 코리아 리부트가 시작됐다. 출처 쿠팡 플레이 유튜브 채널
SNL 코리아는 미국 NBC ‘Saturday Night Live’의 포맷을 사와 만든 프로그램이다. 2017년 오리지널 시리즈가 종영되고, 2021년 SNL 코리아 리부트가 시작됐다. 출처 쿠팡 플레이 유튜브 채널

지난달 SNL 코리아 리부트 시즌3가 막을 내렸다. tvN에서 오리지널 시즌9를 마지막으로 종영한 뒤 쿠팡 플레이로 돌아온 SNL 코리아는 리부트 시즌1에서 ‘주 기자가 간다’ 코너로 큰 인기를 얻었다. 시즌3에는 ‘MZ오피스’라는 코너가 화제였다. ‘MZ오피스’는 이른바 ‘MZ’(엠지) 세대가 주류인 가상의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은 콩트다. MZ세대는 대략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세대를 구분하는 정확한 개념이기보다는 마케팅 용어로 처음 사용되어 미디어에서 자의적으로 쓰이고 있다. 방송의 핵심 부분만 담은 유튜브의 하이라이트 영상은 5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큰 화제가 되었다.

SNL 코리아의 큰 인기 요인 중 하나는 입체적이고 생생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사무실에서 무선 이어폰을 끼고 일하는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의 줄임말) 캐릭터가 특히 인기를 얻었다. ‘맑은 눈의 광인’은 눈빛은 맑지만 어쩐지 속내를 알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이다. ‘맑눈광’ 캐릭터를 통해 MZ세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선배가 그에게 무선 이어폰을 빼고 일하라고 말하면 그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이걸 끼고 일해야 능률이 올라갑니다”라고 말한다. 이를 들은 직장 선배는 기가 차지만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한다.

‘맑눈광’의 선배 격인 ‘젊꼰’(젊은 꼰대의 줄임말) 캐릭터도 인기를 얻었다. ‘주 기자가 간다’ 코너에서 화제가 된 배우 주현영이 역할을 맡았다. ‘젊꼰’은 본인도 MZ 세대에 속하는 어린 나이지만, 기성세대 못지않은 권위적인 태도로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하는 ‘꼰대’를 뜻한다. 부장이 커피를 사겠다고 하자 신입이 선배보다 먼저 자신이 원하는 커피 종류를 말한다거나, 부장이 인쇄물을 가져다 달라고 했을 때 바로 일어나지 않자 따로 불러서 “나 때는~” 이란 서두로 군기를 잡는다. 그러나 그도 상사의 눈에는 영락없이 철없는 MZ세대이다. 출근할 때마다 유튜브 영상을 찍고, 화장실에서 몰래 상사의 욕을 하다 걸려 크게 혼나기도 한다. ‘젊꼰’ 캐릭터가 상사와 후배 사이에서 치이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통쾌해하기도, 감정 이입을 하기도 한다.

풍자의 본질은 약자가 아닌 강자 희화

‘MZ오피스’는 화제를 일으킨 만큼이나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기도 했다. 풍자의 대상이 강자가 아닌 약자라는 것이다. 풍자의 원래 목적은 강자를 향한 ‘비판적 웃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약자가 강자를 비판 하는 것이 위험한 행위였던 시절, 대중은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바로 웃음을 통해서다. 직접적인 방식보다는 해학을 곁들인 간접적 방식으로, 풍자하려는 대상은 과장되며 희화된다. 약자들은 풍자를 통해 연대하고, 사회적 박탈감을 해소했다.

2012년 SNL 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는 신랄한 정치 풍자로 큰 인기를 얻었다. 출처 tvN
2012년 SNL 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는 신랄한 정치 풍자로 큰 인기를 얻었다. 출처 tvN

SNL 코리아의 모델인 미국 NBC의 SNL은 바로 이런 정치·사회 풍자로 성공한 프로그램이다. 포맷을 수입한 SNL 코리아 오리지널 시리즈가 표방한 프로그램의 방향도 이와 다르지 않았고 정치 풍자코너인 ‘여의도 텔레토비’로 큰 인기를 얻었다.

SNL 코리아 리부트도 기획의도는 비슷하다. 포털에 SNL 코리아 시즌 3를 검색하면 “브레이크 없는 과감한 풍자, 스트레스 날리는 스펙터클한 웃음으로...”라는 소개가 나온다. SNL 리부트의 지향점이 신체적 개그를 통하여 웃음을 끌어내는 ‘슬랩스틱’, 말로 사람들을 웃기는 ‘토크쇼’의 전통적 코미디 형식 대신, 사회 ‘풍자’임을 유추할 수 있다.

문제는 SNL 코리아의 ‘MZ오피스’가 풍자하는 대상이 강자가 아닌 약자라는 점이다. ‘MZ오피스’ 콩트를 끌고 가는 주요 인물인 주현영은 ‘여초’(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경우)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성이다. 이 사무실에서 여성 직원들은 서로 기 싸움을 하는 이른바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를 보인다. 상대방의 피부 상태를 비롯한 외모부터 옷차림, 말투 등을 서로 속으로 비난하며 지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사무실의 유일한 남성 직원은 이런 상황을 매우 불편해하며, 사직서를 품에 넣고 다닌다. 여성들이 다수인 사무실이 비정상적인 곳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반대로 주현영이 ‘남초’(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경우) 회사에 파견 나갔을 때 묘사되는 사무실 모습은 사뭇 다르다. 남성 회사원들은 개인의 선호를 고집하지 않는다. 점심 메뉴도 한 번에 통일하고, 상사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자고 할 때마다 매번 군말 없이 따라가는 무던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주현영이 “이 편안함 뭐야?”라고 하는 대사를 통해서도 ‘여성이 다수인 사무실은 피곤하며 불편하다’라는 연출자의 시각이 보인다. 두 사무실의 비교를 통해 여성 MZ는 까다롭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남성 MZ는 조직에 별 탈 없이 잘 적응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 여성이라는 것. 기성 사회에서 주변으로 여겨지는 ‘MZ여성’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풍자하여 웃음으로 소비하는 것은 사회적 차별을 재생산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미디어 재현은 섬세해야

미디어는 실제 사회의 재현(再現)이다.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사회는 있는 그대로를 투영한 것이 아니고, 연출자가 특정한 시각을 가지고 선택해 재구성한 것이다. 같은 현상이라도 어떻게 재현하느냐에 따라 매우 상반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잘못된 재현은 현실과 다른 문화적 상징을 사회에 유포하고 잘못된 고정관념을 확산시킬 수 있다.

‘MZ오피스’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는 사무실의 사람들은 2030대 여성이다. 직장인·MZ세대·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교차한다. 과연 이들이 풍자의 대상이 될 만큼 우리 사회의 주류라고 할 수 있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여성의 취업률은 약 52%이다. 남성의 취업률이 약 70%를 웃도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 OECD에 가입한 1996년부터 27년 동안 여성과 남성 간의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기도 하다. 직장인 여성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이들을 풍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손쉬운 상대를 고른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사회적 강자를 웃음을 통해 비판한다는 풍자의 본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쿠팡 플레이는 구독자 52만 명을 보유하고 있지만, 해당 회차 영상은 5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MZ오피스’라는 코너가 채널의 영향력에 비해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쿠팡 플레이 유튜브 채널
쿠팡 플레이는 구독자 52만 명을 보유하고 있지만, 해당 회차 영상은 5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MZ오피스’라는 코너가 채널의 영향력에 비해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쿠팡 플레이 유튜브 채널

일각에서는 이런 비판이 코미디의 발전을 저해하며, 코미디는 코미디일 뿐 심각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기는 높지만, 성찰 없는 코미디는 사회적 부작용을 만들어 낼 위험이 있다. 실제로 조회 수 500만 회가 넘은 ‘MZ오피스’ 하이라이트 영상에서는 “여초 회사 현실방영(현실반영) 정말 무섭네여 ㅋ”, “여초 남초 둘 다 일했는데 다시 선택하면 남초 감 본인 여자”, “모든 여초가 그럼.. 여초인데 기싸움 뒷담 없는 여초 본적 있나요??”와 같은 댓글들이 달렸다. 여성이 다수인 사무실을 향한 근거 없는 부정적인 시선이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약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재현은 사회의 고정관념을 확산한다. ‘MZ오피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비이성적이고 기 싸움을 하며 어리숙하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이 강화된 캐릭터들이다. 실제로 입사하자마자 퇴사를 하고 다른 사람과 기 싸움을 하는 등 주위에 민폐를 끼친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성별이 여성일 가능성도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집단에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는 것과 미디어에서 그 집단에 고정관념을 부여해 재현하는 것의 무게는 다르다. SNL 코리아가 재정비하며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동안, 손쉬운 약자에 대한 풍자가 아닌 사회에 필요한 풍자 콘텐츠를 준비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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