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학교 뉴스포츠의 성불평등 문제

지난 4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한 초등학교 6학년 체육 수업 시간. 스무 명 남짓한 학생들이 테이프로 줄이 처져 있는 코트 위에서 짐볼을 주고받으며 피구를 하고 있었다. 남녀 학생들이 섞여서 공을 던지고 피하면서 즐겁게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여학생들이 체육 과목에서 소외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피구를 변형해 도입한 ‘뉴스포츠(new sports)’로 체육 수업을 하는 것이다. 

지금 이삼십 대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피구는 공기가 빵빵하게 들어가 있는 딱딱한 배구공을 던져서 코트 안에 있는 상대편을 맞추는 스포츠였다. 얼굴이나 손가락 등에 공을 잘못 맞으면 다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짐볼은 말랑말랑한 고무공이어서 공에 맞아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화를 내는 학생이 없다. 이 학교 체육 전담 이지성 교사는 “공이 말랑말랑해 학생들이 다치지 않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이 종목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남녀 학생들이 차별 없이 즐길 수 있는 종목이라는 것이다. 

▲ 경기도 안산시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학생들이 체육 시간에 짐볼로 피구를 하고 있다. ⓒ 임경민

하지만 짐볼 피구는 정규 교과 과정에서는 잘 활용되지 않는다. 종목 자체가 단순하고 기술 난이도가 낮아 수업 중간 휴식시간에 짧게 활용하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다. 인천 마장초 허진 교사는 “짐볼 피구는 여학생들에게 종목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줄 수는 있으나 난이도가 높지 않아 학생들이 지루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난이도 낮췄지만, 성차별 여전한 티볼

앞서 지난달 28일 오후 인천시 한 중학교 2학년 체육 시간. 남녀 학생 20여 명이 두 팀으로 나뉘어 야구처럼 보이는 경기를 하고 있었다. 야구는 투수가 빠른 속도로 던지는 공을 받아치는 것인데, 이 경기는 높이 1미터(m) 정도 되는 배팅 티 위에 놓여 있는 공을 배트로 치는 종목이다. ‘티볼’(teeball)이란 종목으로 남녀 차별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뉴스포츠 중 하나다. 

남학생이 먼저 배팅 티 위에 얹혀 있는 공을 플라스틱 배트로 치자 공이 수비수를 뚫고 나가 안타가 되면서 1루로 진루했다. 다음에 나온 여학생이 배트를 휘둘렀지만 빗맞아 헛스윙을 했다. 다시 자세를 잡고 공을 때렸지만 멀리 나가지 않아 공이 내야수에게 잡혀 아웃이 됐다. 경기를 세 라운드 지켜보니 여학생들은 체력이 약해 불리한 경기를 하고 있었다. 어쩌다 공을 잘 치고 멀리 보내는 여학생이 있었지만, 여학생들은 대개 남학생만큼 공을 날려 보내지 못해 아웃 되는 경우가 많았다.

▲ 티볼 경기에서 한 선수가 배팅 티 위에 있는 볼을 치고 있다. 야구는 투수가 빠른 속도로 던지는 공을 치는 반면, 티볼은 배팅 티 위에 정지해 있는 공을 치는 것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할 수 있도록 고안된 뉴스포츠 종목이다(위). 티볼협회가 주최한 티볼 대회에서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있다(아래). ⓒ 티볼협회 홈페이지

조선대 체육교육과 김현우 교수는 “티볼이 야구보다는 볼을 치기가 쉽고 공격팀 전원이 타석에 서므로 여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남학생보다 힘이 부족해 팀에 부담을 준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포츠 종목에서도 티볼은 쉬운 편이긴 하나, 혼성 수업을 진행할 경우 여학생과 남학생 간 신체능력의 차이로 인해 남학생 위주로 흘러가게 돼 성차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교 체육에서 남녀 성차별 해소를 위해 도입된 뉴스포츠 종목들이 여전히 성차별 요소를 갖고 있거나 수업에서 성차별을 없애려는 노력하지 않아 성불평등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 2009년 여학생 등 소외된 학생을 포용하려는 조처로 도입한 뉴스포츠 종목은 짐볼 피구, 티볼, 넷볼(netball), 풋살(futsal), 츄크볼(tchoukball) 등이 있다. 짐볼 피구를 뺀 나머지 종목은 야구, 농구, 축구, 핸드볼을 변형한 것들로 신체 접촉을 줄이고 공격적 요소를 없앴다. 

혼성수업에 남녀학생 모두 흥미 잃어

넷볼(netball)은 농구를 변형한 것으로, 드리블과 몸싸움이 없는 점이 농구와 다르다. 최소 5인이 한 팀을 이루어, 드리블 대신 3초 이내에 패스나 슛을 해야 한다. 공을 가진 사람에게 90센티미터(cm)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게 돼 있어 패스나 슛을 하는 과정에서 공을 가로채야 한다. 1895년 영국 오스텐버그 여자대학에서 여성에게 맞게 농구의 경기규칙을 바꾼 것으로, 여학생에게 특화한 종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선 학교 수업에서는 이 종목을 남녀가 같이해서 도입 목적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 드리블과 몸싸움을 없애 여성들이 쉽게 할 수 있도록 바꿔 놓았지만, 남녀 혼성팀으로 경기하면 결국 체력이나 운동 능력에서 앞서는 남학생들에게 차별당할 수밖에 없다. 반면 남학생들은 넷볼이 드리블과 몸싸움을 없애서 재미가 없다며 이 수업시간에 농구를 하는 등 종목 도입 취지를 거의 못 살리고 있다. 

▲ 농구의 변형인 넷볼(netball) 경기를 하는 모습. ⓒ 셔터스톡

츄크볼은 핸드볼을 변형한 것으로, 상대의 볼을 빼앗거나 움직임을 방해하지 못하게 돼 있어 몸싸움이 없을 뿐 아니라 드리블이 허용되지 않고 패스로만 진행하는 종목이다. 골대 대신 사방 1m 넓이 네트에 볼을 던져 튀어 오르게 해서 그 볼이 상대방 선수에게 잡히지 않고 코트에 떨어지면 득점을 하는 방식이다. 여학생들을 위해 난이도를 낮추고 몸싸움을 없애 참여도를 높였지만, 경기도구나 장비를 새로 구입해야 돼서 실제 수업시간에 하는 곳이 많지 않다. 이 종목으로 수업해도 남녀 혼성 수업으로 진행해 여학생들은 차별을 받는 실정이다. 

▲ 핸드볼을 변형한 츄크볼 경기를 하고 있는 모습. ⓒ 셔터스톡

풋살은 실내 경기장 또는 실외 인조잔디 구장에서 하는 5인제 미니 축구다. 축구공보다 작고 탄성이 작은 공을 사용하고, 배구장만 한 운동장에서 경기한다. 경기장 크기가 작아 축구보다 체력 소모가 적다는 점 말고는 기존 축구와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는 종목이어서 종목 자체가 여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남학생들은 운동이 덜 된다며 축구를 하는 경우가 많은 등 풋살은 애초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 종목이라는 것이 교사들 지적이다. 

부천중 이동은 체육교사는 “실제 체육 수업 현장에서는 뉴스포츠 구기 종목 중 티볼을 많이 하고 다음으로 넷볼을 한다나머지 종목들은 교사들이 익숙지 않은 종목인 데다 장비나 도구를 구입하지 않은 곳이 많아 수업에서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뉴스포츠 구기종목은 주로 남녀 혼성 수업으로 진행한다. 그는, “(혼성 수업에서는)신체능력이 더 뛰어난 남학생들이 훨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여학생들은 뒤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이 교사는 정규 수업 시간에는 주로 몇 가지 기본기와 자세만 연습하게 시키고, 수업 중 휴식 시간에 짧게 실습형 경기를 하게 한다. 시합할 때 여학생에게 유리하게 어드벤티지를 적용하는 등 룰을 바꾸어 진행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성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교사 성인지 감수성 제고 필요

이처럼 학교 체육에서 성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뉴스포츠 종목들이 원래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종목 자체가 여전히 성차별적 요소를 가진 데다 체육수업을 운영하는 일부 교사의 성인지 감수성이 미흡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원광대 체육교육과 윤현수 교수는 “수업의 질을 결정하는 데는 교사의 지식과 역량 및 교육 철학과 학생에 관한 인식 수준이 절대적”이라며 “체육교육에서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들의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말했다. 교육 당국이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고 새로운 종목을 도입해도 일선 교사들이 제도나 종목의 도입취지를 이해하고 여학생 처지에서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지 고민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뉴스포츠 종목 가운데 여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난이도를 대폭 낮춘 티볼이나 넷볼, 츄크볼 등을 여학생 처지에서 생각해 보지 않고 그냥 남녀 혼성팀을 편성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대표적인 성인지 감수성 부족 사례다. 성평등 구현을 위한 종목이 도입됐지만, 종목 자체가 여전히 성차별적이거나 실제 학교 수업 과정에서는 성차별에 관한 의식 없이 진행되고 있어 결국 뉴스포츠 도입 전처럼 ‘여학생들은 피구나 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난이도 낮추고 분리 수업해야 

김현우 교수는 “규칙과 기술이 단순한 뉴스포츠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며 “난이도가 낮아 수업에서 소외되던 여학생들의 심리적, 신체적 장벽을 낮춰주는 것은 사실이나 경쟁성이 낮고 기술이 단순해 학생들이 쉽게 흥미를 잃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때 뉴스포츠를 활용해 수업할 때 학생들이 지루해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고 덧붙였다. 

학교 체육의 성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난이도를 낮춘 뉴스포츠를 활용해 여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이되, 남녀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에 맞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성별 분리수업을 하는 게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편집 : 유희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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