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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실험 마지노선은 ‘저널리즘 1%’
[단비현장]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임장원 KBS 주간 초청 특강
2019년 11월 02일 (토) 22:44:53 임지윤 기자 dlawldbs20@naver.com

“저는 어린 후배 기자들이나 디지털 팀원들에게 ‘자유롭게 뛰어 놀라’고 얘기해요. 그동안 지상파가 지켜온 문법을 파괴해도 좋다고요. 그래도 이 말은 꼭 합니다. 어딘가에 저널리즘(언론의 역할)이 1%는 묻어나야 한다고요.”

1일 오후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뉴스 전략’을 주제로 강연한 임장원(51) 한국방송(KBS) 보도본부 디지털뉴스 주간의 말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주관 언론인 초청 특강에 나선 임 주간은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전통 매체(legacy media)인 지상파 방송이 어떤 도전과 실험을 하고 있으며 어떤 어려움에 부닥치고 있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30’ 잡으러 나선 KBS, ‘크랩’ 등 뉴미디어 실험

   
▲ 임장원 KBS 보도본부 디지털뉴스 주간이 1일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초청 특강에서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지상파 방송뉴스가 어떤 도전과 실험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 김서윤

경제부 기자와 주말 9시뉴스 앵커, 뉴욕특파원 등 다양한 경험을 한 뒤 현재 디지털뉴스를 책임지고 있는 임 주간은 “크랩(KLAB) 등 뉴미디어 실험을 하면서 고민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경쟁 방송사들이 내놓는 ‘디지털 네이티브(본방송과 무관한 순수 디지털 생산물)’ 중에 ‘암만 봐도 저널리즘과는 무관한 먹방(먹는 장면을 방송하는 것) 종류’가 보도 프로그램의 하나로 큰 인기를 모을 때라고 한다. 그는 “그런 것을 보면서 ‘우리도 약(유해성분)을 쳐야 하나’ 하는 유혹을 느끼지만 ‘저널리즘이 1%라도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포기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상파 뉴스에서 멀어지고 있는 2030세대, 나아가 10대까지 붙잡기 위해 KBS가 세 가지 차원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첫 번째는 일종의 ‘다시 보기’를 다양화하는 서비스로, 지상파에서 방송된 뉴스를 조각으로 나눠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유통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상파 뉴스에서 파생상품을 만드는 것인데, 시간 제약 때문에 일부만 방송에 내보낸 인터뷰 등의 나머지 파일이나 취재 후기 등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것이다. 임 주간은 “얼마 전 KBS가 (조국 전 법무부장관 아내)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인 김경록씨 인터뷰를 일부만 9시 뉴스에 내보냈다가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그 나머지를 온라인에 공개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지상파와 관계없는 독자적인 콘텐츠, ‘디지털 네이티브’를 만드는 것이다. <크랩>이 KBS의 대표적 디지털 네이티브 뉴스다. 주로 밀레니얼 세대(현재 20~30대)를 겨냥한 전략으로 MBC의 <14F>와 <엠빅뉴스>, SBS의 <스브스 뉴스>와 <모비딕>등도 여기 해당한다. 그는 자신을 포함, 경력 10년 이상 기자들이 ‘저게 뉴스냐’ 했던 기획이 온라인에서 조회수 100만을 돌파하는 인기 있는 콘텐츠가 되고, 그게 다시 지상파 뉴스로 만들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은 ‘유기농 건강식’ 포기하지 말아야

   
▲ KBS가 10대와 20대를 겨냥해 만든 ‘디지털 네이티브’ 보도물 <크랩>의 홈페이지. KBS 기자와 디지털 전문인력, 대학생 인턴 등이 지상파 뉴스와 관계없이 자유로운 형식으로 제작해 유튜브 등에 올리고 있다. ⓒ KBS 뉴스 홈페이지

임 주간은 <크랩>이 타사의 디지털 네이티브에 비해 아직 영향력은 작지만 음식으로 치면 ‘유기농 건강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전통 매체의 문법과 경계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스토리텔링(기사작성) 방식도 그에 맞춰가야 하지만 공영방송으로서 지켜야 할 저널리즘의 본분은 놓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미혼모의 어려움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KBS는 그런 프로그램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중요한 이야기를 어떻게 더 흥미롭게 전할 것인가’하는 고민을 더 치열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주간은 또 “예산 규모로 따지면 주요 방송사 중 KBS의 디지털 투자가 가장 크다”고 소개한 뒤 “투자에 맞는 수익이 나지 않아 걱정”이라고 털어 놓았다. 신세대 사이에 KBS에 대한 인식이 ‘구리다’ ‘꼰대’ 등으로 부정적이어서 디지털 생산물에 KBS를 내세우지 않는데, 그러다보니 <크랩> 등이 인기를 모아도 방송사의 인지도, 영향력 상승으로 돌아오는 몫은 적다는 것이다. 현재 KBS가 큰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라 디지털 뉴스에 대한 투자가 과감하게 이어지기 어려운 것도 고민을 더하는 부분이다.

 
제천 시민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 등 30여명의 청중은 임장원 주간의 강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 뒤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 김서윤

“EBS 펭수 불러다 협업하면 어떨까 궁리도”

“전략을 세운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플랫폼이 빨리 변하고 콘텐츠도 확장하는 시대에 1~2년 뒤 미디어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내다보는 게 힘들죠. 예측하기보다는 대응하는 전략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임 주간은 뉴미디어 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KBS의 대표적 콘텐츠로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을 소개했다. 김기화 기자 등 4명이 자발적으로 자기 시간을 투자해 만든 이 프로그램은 현재 구독자가 1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디지털 프로그램이 됐다. 그는 “기자가 직접 취재한 기사의 맥락을 설명하고 기사에 달린 댓글에 답하며 시청자와 쌍방향 소통하면서 반성하는 모습도 보인 것이 많은 사람에게 신뢰를 줬다”며 “이는 곧 기자 자신의 브랜드와 회사의 신뢰도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 KBS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시청자와 격의 없이 쌍방향 소통을 추구하면서 디지털 공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 KBS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임 주간은 효과적인 디지털 대응 전략을 찾기 위해 후배들과 온갖 아이디어를 던지며 궁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교육방송(EBS)의 펭귄 캐릭터 ‘펭수’를 섭외해서 협업하자는 아이디어, 5060세대를 겨냥해 <아재TV>를 만들자는 안도 ‘농담처럼’ 나왔다고 그는 소개했다.

임 주간은 수용자들의 ‘확증편향(자기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것)’이 갈수록 심해져 기자들이 열심히 해도 공격받기 쉬운 시대가 됐지만 언론인을 지망하는 대학원생들이 저널리즘의 원칙을 되새기며 더욱 정진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강연을 들은 한상희(48·문화관광개발원 대표)씨는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공적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지금은 디지털 전략이 2030세대에 주로 맞춰져 있지만 앞으로는 5060세대를 위한 콘텐츠도 온라인에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편집 : 오수진 기자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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