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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노천탕에서 찬 맥주를 마시는 여유
[어서오너라 벗고놀자] 우세린 부부 여행기 ⑧
2019년 06월 07일 (금) 13:20:50 우세린 부부 homerunsery@gmail.com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는 활성화한 마그마의 작용으로 온천이 발달해 있다. 온천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신성시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온천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인 정착민이 원주민의 온천을 강제로 빼앗다시피 해 주변에 온천 리조트를 지었다. 전현직 기자 부부가 이 지역 무료 자연 온천을 다니며 썼다.

맛있는 거 먹을 땐 엄마 생각이 난다

레몬 빛 보리밭을 스치던 바람이 입 안에서 분다. 아하, 맥주 맛이 이래도 되는가. 가벼우면서 고소하고 향긋한, 그러면서도 미끈한 여운이 오래 남는다. 뜻하지 않은 선물에 웃음이 픽 난다. 미국 여행을 하며 로컬 맥줏집을 꼭 찾아가지만 이런 풍미는 처음이다. 아, 엄마 생각이 난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엄마가 떠오른다. 그러면 십중팔구 맛집이다. 맥주 좀 안다는 친구에게 사진 찍어 보고했다. 가게 이름은 ‘컨강 양조장’(Kern River Brewing). 친구는 바로 인정했다.

지난해 이곳은 미국 최고 맥주를 가리는 ‘그레이트 아메리칸 맥주 축제(Great American Beer Festival)’에서 브라운 포터(Brown Porter)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브라운 포터는 중간 쓴맛 홉에 초콜릿과 캐러멜 향이 나는 맥주로 19세기 초 저소득층인 영국 짐꾼들에게 유행했다.

“거기는 물이 좋아 맛이 없을 수가 없어”

친구는 이곳 맥주를 이렇게 풀이했다. 컨강 양조장은 캘리포니아 중부 샌호아킨 밸리(San Joaquin Valley) 배꼽 지점으로 컨강(Kern River) 하류 마을 컨빌(Kernville)에 있다. 컨강은 270km로 미국에서 10번째로 길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 수 많은 봉우리와 미 최고봉 휘트니 산에서 눈 녹은 물이 합류한다. 여름이 되면 황소 같은 물이 집채만 한 바위를 허옇게 할퀴며 내려온다.

   
▲ 컨강 하류. 허연 강물 따라 커다란 야자수가 자라고 있다. © 우세린
   
▲ 컨강을 둘러싼 높은 산들. 잡목들이 많다. © 우세린

4월부터 주말이면 2~4만 명이 찾아와 래프팅, 카약킹, 산악자전거, 클라이밍, 수상스키, 승마를 즐긴다. 겨울에는 산악스키, 크로스컨트리를 하러 많은 사람이 몰려 온다. 거친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산행, 낚시, 캠핑, 새 구경을 하고 골동품 가게를 둘러 본다. 컨강 양조장 주인도 카야킹 매니아다. 아내 레베카 기든슨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급류 카약 경기인 카누 슬라럼 종목 은메달리스트다.

수천 년 터전에서 학살당한 원주민

컨강은 1845년 지질학자 에드워드 컨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당시 탐험대장이자 훗날 공화당 미 초대 대통령 후보 존 찰스 프레몬트가 친구이자 학자이며 예술가였던 컨이 급류에 휩쓸려 익사할 뻔한 것을 보고 그의 노고를 기려 컨강이라 불렀다. 강 초입에 대형 경고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1968년 이후 294명 사망. 강의 별명은 ‘킬러 컨(Killer Kern)’이다.

수천 년 동안 이곳에는 우토-아즈텍(Uto-Aztecan)계 언어를 쓰는 아메리카 원주민 요쿠츠(Yokuts)와 카와이수(Kawaiisu), 튜바투라발(Tübatulabal) 부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작은 마을을 이루며 반 유목 생활을 했다. 사냥철 들과 산을 유랑하다 농작물 수확 철이면 마을로 돌아와 정착 생활을 했다. 남부 캘리포니아 고고정보센터는 몇 년 전 원주민이 사용한 흑요석을 발견했는데 기원전 3654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원주민이 그린 벽화, 픽토그램이다. 애리조나주 모뉴멘트 밸리에서 촬영했다. © 우세린
   
▲ 원주민들이 기도를 하던 공간. 식량 저장 창고로도 사용했다. 애리조나주 그랜드 캐년에서 촬영했다. ⓒ 우세린

침략은 18세기부터 시작됐다. 스페인 선교사이자 탐험가 프란시스코 가르세스가 서부 개척을 하다 1776년 튜바투라발 부족을 처음 만났다. 가르세스는 컨강을 ‘성직자 펠리페의 강’(Rio de San Felipe)이라 불렀다. 그 뒤 스페인이 이 땅을 점령하기 위해 1834년과 1843년 두 차례 급습했다.

1850년 대에는 2차 골드러시 행렬이 몰려왔다. 1851년 컨강 하류 그린혼 계곡(Greenhorn Creek)에서 사금이 발견된 것이다. 골드러시 중심지였던 새크라멘토 금광 채굴량이 줄어들던 때 사람들은 이곳으로 눈을 돌렸다.

개발업자들에게 걸림돌은 수천 년 간 터를 닦고 살던 원주민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들을 쫓아내야 개발을 촉진할 수 있었다. 1863년 4월 주정부 기병대는 꼼수를 썼다. 주민들이 원주민에게 소와 말을 빼앗겼다며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군에 요청을 했다는 거짓 보고를 만든 것이다. 기병대는 이를 빌미로 원주민을 공격했다. 3개월 간 극심한 가뭄에 기근까지 시달리고 있어 원주민은 며칠 지나지 않아 항복했다.

진짜 비극은 여기서 시작됐다. 전쟁이 끝난 뒤 캘리포니아 기병대장 말라우그린(Malaughlin)은 백기를 든 원주민들과 대화를 하자며 원주민 남성을 컨강 어귀에 모았다. 무장한 군인들을 잠복해 두고서 말이다. 기병대장은 비무장 상태로 대화 테이블에 나온 원주민 35명을 총으로 학살했다. 원주민들은 칼과 막대, 돌 등 잡히는 대로 휘두르고 던졌지만 모두 숨졌다. 다른 원주민에 대한 경고이자 향후 사업 방해에 대한 선제적 조처였던 것이다. 역사학자 벤자민 마드리(Benjamin Madley)는 1846년부터 1873년 사이 비원주민이 캘리포니아 원주민을 최소 9400~1만 6000명 살해한 것으로 추산한다. 하루 1~2명꼴이다. 학살 사건만 370건 이상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아메리칸 원주민

원주민들은 이후 컨강과 직선거리로 50km 떨어진 투레 리버 원주민 보호구역(Tule River Indian Reservation)으로 이주됐다. 하지만 아이들은 보호구역에서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 자급자족하던 시스템도 파괴돼 성인들은 자본주의 속 값싼 노동자로 팔려나갔다. 금융 지식이 부족해 빚에 허덕였다. 일부 원주민 과부들은 마을에 남아 있던 백인 농장주와 결혼했다. 원주민의 쓰라린 삶은 테일러 셰리던 감독의 영화 ‘윈드 리버’(Wind River)에서 엿볼 수 있다. 원주민 여성과 결혼한 백인 사냥꾼 코리, 백인 노동자들에게 강간당한 뒤 살해된 젊은 원주민 여성 나탈리, 대학을 나왔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루저가 된 피해자의 친 오빠. 영화의 부제는 ‘살인보다 발견이 어려운 그 곳’이다.

   
▲ 애리조나주 모뉴멘트 밸리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는 원주민들. 왼쪽은 수공예품 제작자, 오른쪽은 투어 가이드. © 우세린
   
▲ 청년 원주민 투어 가이드. 손님이 쉬게 하고 옆에서 피리를 불고 있다. © 우세린

개발 열풍이 수그러든 1890년대 초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원주민을 다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빈 땅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면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고향에 돌아온 원주민들은 주정부에서 받은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다. 수익이 나기 시작할 때쯤인 1950년대에 땅 투기꾼들이 가짜 뉴스를 퍼트렸다. 정부가 원주민에게 배당한 땅에 많은 세금을 물릴 거란 얘기였다. 그 말에 속은 원주민들은 헐값에 땅을 투기꾼에게 팔았다. 또 다른 투기꾼들은 비싼 값에 이자를 붙여 원주민에게 되팔았다. 원주민들은 졸지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황금 열병이 온천 광풍으로

금광 개발이 사양길로 접어들고 사금을 캐던 곳은 온천으로 개발됐다. 당시 금맥을 찾던 광산업자들에 의해 컨강 일대 숨은 온천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미네랄과 유황이 함유돼 있어 피부병과 소화불량에 좋다는 이야기가 전국에 퍼졌다. 건강 관리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들이 줄지어 찾아왔다. 1860년대 후반 광산이 문 닫기 시작하자 땅 주인들은 본격적으로 호텔이나 리조트를 지어 방문객에게 입장료를 받았다.

   
▲ 레밍턴 온천으로 내려가는 길. 비가 많이 와 원시림 같아 보인다. © 우세린

우리 부부가 찾아간 곳은 무료 자연 온천 ‘레밍턴 온천(Remington Hot Springs)’이다. LA에서 새벽 4시 30분 출발해 오전 7시 30분쯤 도착했다. 산사태로 일부 도로가 막혀 30분이 더 걸렸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 도착한 곳은 비포장 주차장이었다. 차에서 내려 경사면을 따라 강가로 내려갔다. 가파른 곳에는 밧줄이 설치돼 있었다. 몇 달 간 많은 비가 내려 숲은 원시림 같았다. 이끼가 바위를 덮고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300m쯤 내려 갔을까. 거친 계곡 옆에 뽀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온천 탕 서너 개가 보였다. 온천은 계단 형태로 가장 높은 탕에서 아래 탕으로 물이 흘렀다. 위쪽 탕은 41도, 중간 탕은 38도, 아래 탕은 36도 정도였다. 위쪽 탕 배수로를 막았다 열었다 하며 아래 탕 온도를 조절했다. 한국인들은 위 탕을 차지해야 제대로 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온천수는 분당 13리터가 솟구친다. 온천 바닥을 보면 사금이 보인다. 손으로 잡으려고 하면 계속 빠져 나간다. 인근에 사금 채취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 히스패닉계 에일라 커플이 온천에서 놀고 있다. © 우세린
   
▲ 온천에서 쉬고 있는 나. © 우세린

우리가 도착하기 전 온천에는 히스패닉계 에일라 커플이 먼저 와 가장 뜨거운 탕을 차지하고 있었다. 온천에서 남쪽으로 2시간 거리인 랭캐스터에 살고 있다고 했다. 커플은 손바닥만한 캠핑용 가스 버너에 물을 올려 차를 끓여 마시고, 물장구를 치며 좀처럼 명당에서 나오지 않았다. 에일라는 주말이면 이곳에 사람이 가득하다고 일러줬다.

“이곳은 광산업자가 금을 찾다 발견한 곳이야. 그 사람이 발견한 온천, 마이너스 튜브(the miner's tub)가 저 위 오르막길에 있어. 나도 여기 두 번째인데 주말이면 사람이 많아. 주차장에 차가 많으면 온천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그냥 돌아가는 게 나아.”

‘레밍턴의 친구들(Friends of Remington)’이라는 비영리 단체가 이곳을 청소하고 관리한다. 이들은 온천 탕에 알록달록한 돌로 나비, 꽃, 하트 문양을 수 놓았다. ‘이터널러브(Iterner Love)’. ‘지구를 위한 아이들(Children for the Earth)’ 등 메시지도 돌로 새겼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온천에 가도 되지만 물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유리 제품은 반입 금지다.

탐욕, 방탕에 이어 자연으로 돌아온 온천

레밍턴 온천에서 북쪽으로 2.4km 지점에는 ‘미라클 온천’(Miracle Hot Springs)이 있다. 컨강 하류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온천이다. 광산업자가 크레어 크릭이 남쪽으로 직선거리 7km 떨어진 하빌라(Havilah) 지하광산에 공기를 주입하기 위해 터빈을 설치했던 곳이다. 이 때문에 처음 ‘공기 압축기 온천’(Compressor Hot Springs)이라 불렸다. 광산이 문 닫은 뒤 미 연방 숲 서비스국(U.S. Forest Service)이 1901년 임대해 1927년 온천 리조트를 지었다.

1947년에는 핀란드에서 온 전문 마사지사들이 북유럽에서 유행하는 체계적인 요법들을 선보였다. 온도와 마사지 방법에 따라 가격을 매겼다. 광물이 녹아 있는 온천에다 다양한 치료 요법까지 더해지자 사람들은 병을 기적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며 이곳을 ‘미라클 온천’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1975년 호텔이 화재로 불타고 그 뒤 상류 기름 유출과 박테리아까지 발견되면서 완전히 폐쇄됐다. 현재는 건물도 사라져 자연화한 상태다.

   
▲ 미라클 온천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맥주 파티가 열렸다. © 우세린
   
▲ 2달 전 캐나다를 출발해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는 23살 잭(중간). © 우세린

온천 원수는 60도 이상으로 매우 뜨겁다. 화상을 입을 정도다. 원수를 따라 탕 서너 개가 이어지는데 자신에게 적당한 온도의 탕에 들어가면 된다. 캠핑, 자전거, 산악 오토바이를 즐기러 오는 사람이 많다. 정부가 관리하는 지역으로 누드 온천이 금지돼 있지만 공공연히 홀딱 벗고 온천을 한다. 두 달 전 캐나다에서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는 23살 잭을 만났다. 이곳을 지나다 지역 주민 집에 공짜로 하루 자고 온천을 따라 왔다고 한다. 붉은 수염이 멋지다. 대학 다닐 나이인데 왜 혼자 여행을 하냐고 물었다.

“목적? 자연이 아름답잖아. 난 아직 젊어. 세상이 어떤 건지 또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고민돼서 자전거를 타고 여러 나라, 도시를 구경하고 있어. 아르헨티나까지 내려간 다음 식당에서 일해 돈을 벌어 아프리카로 갈 거야. 돈이 없어 힘들지만 뭐 나는 어리잖아.”

다시 돌아오고 있는 원주민들

컨강 하류, 금광 개발도 끝나고 온천 산업도 한물갔다. 컨빌에는 이제 주민 2000명밖에 살지 않는다. 백인 정착민이 떠나자 원주민들이 컨빌 아래 다소 척박한 이사벨라 호수 일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해단체도 생기고 있다. ‘컨 밸리 원주민 커뮤니티’(Kern Valley Indian Community), ‘컨강 튜바투라발스’(Tübatulabals of the Kern River Valley), ‘파이우트 부족 위원회’(Kern River Paiute Council) 등이 활동한다. 기마대에게 원주민이 학살당한 지 150여년 만이다.

혹자는 원주민에게 왜 근대 국가를 건설해 스스로 보호하지 않았냐 비판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공동체 단위는 부족이었다. 우리 눈에는 다 같은 원주민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각각 다른 정체성과 독립성, 자주성을 지닌 별개 집단이었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부족이 커지는 것도 거부했다. 부족 규모가 커지면 정치 권력이 생기고 그 권력이 합법적인 폭력을 사용해 계급을 만들고 더 큰 폭력을 불러올 거란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호사 여치헌은 책 <인디언 마을 공화국>에 이렇게 썼다.

“인디언 사회는 부족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의 정체성, 이른바 부족주의(tribalism)가 생활 전반을 지배했다. 부족 저마다의 독자성이 ‘부족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뒤섞이는 걸 인디언은 꺼려했다. 부족 추장도 권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정치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이렇게 설명한다.

“추장은 명령을 내리는 자가 아니며 부족민들은 복종해야 할 어떤 의무도 갖고 있지 않다. 추장의 임무는 동족들 사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중략) 임무를 수행하는 유일한 수단은 말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것뿐이다.”

학살이 있었던 컨강은 일년 내내 계곡물이 검붉다. 빠른 물살이 쉬지 않고 소용돌이쳐 바닥을 뒤엎는다. 돌고 돈다. 원주민들은 바람과 나무, 숨 쉬는 호흡에 아버지, ‘그레이트 스피릿(Great Spirit)’이 있다고 믿는다. 세계가 변할 뿐 죽음은 없다 생각한다. 하늘과 땅에 자신의 영혼이 살아있다 여긴다. 전쟁터에 나간 전사의 화려한 옷과 깃털조차 상대방을 겁주기 위한 것이 아닌 ‘그레이트 스피릿’과 멋진 모습으로 만나려는 거다. 원주민의 시 ‘천 개의 바람’을 읽는다.

‘내 무덤 앞에 서지 마세요 / 그리고 풀도 깎지 마세요 / 나는 그곳에 없답니다 / 나는 그곳에 잠들어 있지 않아요 / 나는 불어대는 천 개의 바람입니다 /나는 흰 눈 위 다이아몬드의 반짝임입니다 / (중략) / 나는 무덤 앞에 빛나는 부드러운 별빛입니다 / 내 무덤 앞에 서지 마세요 / 그리고 울지 마세요 / 나는 그곳에 없답니다 / 나는 죽지 않았답니다’

   
▲ 컨강을 둘러싼 산. 돌이 많다. © 우세린

** 전 <경기방송> 기자이자 LA 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폭력 생존자를 돕고 있는 우세린 씨 부부가 캘리포니아 중남부 자연 노천 온천을 돌아다니며 글을 썼다. 충주에 화실을 운영하고 있는 유순상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편집 : 김지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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