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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처럼 끓어오르는 갈등의 욕망들
[어서오너라 벗고놀자] 우세린 부부 여행기 ④
2019년 03월 31일 (일) 01:15:03 우세린 부부 homerunsery@gmail.com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는 활성화한 마그마의 작용으로 온천이 발달해 있다. 온천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신성시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온천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인 정착민이 원주민의 온천을 강제로 빼앗다시피 해 주변에 온천 리조트를 지었다. 전현직 기자 부부가 이 지역 무료 자연 온천을 다니며 썼다.

1954. 1000. 654. 0. 

미국과 멕시코 국경 길이 1954마일(3144km), 트럼프 대통령이 세우려는 새 국경 장벽 1000마일(1609km). 기존 장벽 654마일(1052km), 지난 2월 기준 완성된 새 장벽 0마일. 북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처럼 벽은 한번 세우면 무너뜨리기 어렵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에 쓰는 국방비를 돌려쓰더라도 멕시코 국경지대에 9m 높이 콘크리트 장성을 쌓겠다고 한다. 미국은 ‘용광로(melting pot) 사회’라 불렸지만 여전히 인종 갈등이 심한데 특히 멕시코 접경지대는 불법 이민자 이슈의 뜨거운 현장이다.

이번 목적지는 멕시코 접경지대에 있는 홀트빌 온천(Holtville Hotsprings)이다. 국경선과 직선으로 9km 떨어진 곳이다. LA에서 남쪽으로 300km쯤 내려오자 길 양 옆으로 레고블럭처럼 반듯한 밭들이 고르게 펼쳐져 있다. 콘크리트 인공 수로에서 밭으로 물이 흘러가고 곳곳에서 스프링쿨러가 뱅그르르 돌며 물을 발사한다. 밤마다 경찰 헬리콥터가 용의자 차량을 향해 불빛을 쏘고 데시벨 높은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밤을 찢어대는 LA에서 살다 모처럼 시골길을 달리자니 낯설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다.

   
▲ 임페리얼 카운티 한 농장. 스프링쿨러를 이용한 대규모 농장을 쉽게 볼 수 있다. © 우세린
   
▲ LA 근교 곳곳에 야자수 농장이 조성돼 있다. © 우세린

이곳 임페리얼 카운티는 인구 18만이 채 안 되고 농업이 주 산업이다. 주민 넷 중 하나가 농부다. 1월 한겨울에도 기온이 영상 4~21도로 따뜻해 이모작이 가능하다. 당근과 새싹 채소 알팔파(alfalfa),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미국 상추(Lettuce) 등이 재배된다. 1년 농업 생산량이 10억 달러가 넘는데 미 전역에서 소비하는 겨울 채소 대부분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지하로는 마약, 지상으로는 인신매매

“창 내려 보세요! 당신, 미국 시민권자예요? 어디로 가는 거에요?”

목적지 30km를 남겨 두고 소도시 웨스트몰랜드(Westmorland)에 진입했다. 왕복 2차선 좁은 도로에 미국 국경수비대 검문소가 있어 차를 세웠다. 짙은 녹색 유니폼을 입고 소총을 둘러맨 수비대원이 허리를 숙여 차량 안을 노려봤다. 어디로 가느냐, 미국시민이냐, 툭 내뱉듯 물었다. 또 다른 수비대원은 잘 빠진 검은색 마약 탐지견을 앞세워 트렁크를 검색했다.

아차! 그때서야 생각났다. 얼마 전 주유소에서 흑인이 몰던 스포츠카가 내 차를 들이받아 차량 번호판이 떨어져 나갔는데 그걸 다시 단다는 걸 깜박했다. 순간 등에 식은 땀이 났다. 미국 합법 체류자지만 겁이 났다. 이민법 세부 사항이 복잡해 가령 심기 안 좋은 국경수비대원이 차량 선팅을 핑계로 붙잡아둔 뒤 먼지털이식으로 조사해 뭐든 트집을 잡아 추방해도 그만이다. 또는 단속됐다는 기록이 남아 미국 체류에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사람에게 300km 넘게 달려 온천을 간다고 하면 믿기나 할까?

“나는 시민권자는 아니다. 나는 LA에서...”
“그래. 알았어. 그냥 가.”

상황을 설명하려는데 말을 툭 자르고 그냥 가란다. 마약 수색견에게 발각된 금지물품도 없고 아시안 부부라서 자세히 추궁하지 않은 듯했다. 히스패닉이나 흑인에게 불심검문은 더 엄격하다. 그 때문에 늘 인종차별 문제로 지적되곤 한다. 그 대신 남쪽에서 북쪽으로 되돌아 올 때는 더 자세히 캐물었다. 어디를 갔냐, 무엇을 했냐, 직업은 무엇이냐 등등. 미국 체류 신분에 작은 문제라도 있으면 굳이 오지 말 것을 추천한다.

국경지대에서는 강력범죄가 자주 일어난다. 마약 거래를 다룬 범죄 영화 ‘시카리오’처럼 멕시코 주택 지하 땅굴이나 수로를 통해 미국으로 마약을 들여오다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대형 트럭 화물칸에 이민자를 가득 싣고 국경을 넘다 폭염에 이민자들이 사망하는 일까지, 뜨악할 만한 사건이 잇따라 터지는 지역이다.

갈취한 원주민 땅에 욕심이 범람하다

   
▲ 남부 국경지대에 있는 임페리얼 샌드 듄스(Sand Dunes)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모래 언덕이다. © 우세린

이곳은 연평균 강우량이 76㎜밖에 안 되는 황량한 사막이었다. 그러다 서부개척자들이 들어오면서 운명이 바뀐다. 1849년 금광 개발업자이자 의사인 올리버 워젠크래프트(Oliver M. Wozencraft)가 이주해 온다. 금광 개발에 실패한 그는 이곳에서 미 행정부를 대신해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무보수 ‘인디언 에이전트’가 된다. 그 뒤 관련 업무 위원 등으로 임명되는데 하는 일은 원주민 부족과 다양한 계약을 체결해 그들의 땅을 강탈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워젠크래프트는 원주민을 통해 사막 동쪽에 콜로라도 강이 흐른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는 물길을 사막으로 끌어오는 야심 찬 계획을 한다. 투자가와 정치가를 만나 로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는 등 잇따라 대형 이슈가 터지자 투자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다. 지역 언론은 그를 일컫어 ‘임페리얼 밸리의 아버지(Father of Imperial Valley)’라고 추켜세웠다. 그때부터 이곳은 ‘임페리얼 카운티’라 불렸다.

세월이 지나 1990년 캐나다 출신이자 관개시설 기술자인 조지 채피(Georgy Chaffey)가 이곳에서 대운하를 건설하려다 실패한 ‘캘리포니아 개발사’를 사들였다. 채피는 미국 최초로 미시시피강에 수력발전소를 만들어 돈과 부를 얻은 검증된 인물이었다. 그는 첫 삽을 뜬 지 3주만인 1901년 6월 멕시코 쪽 콜로라도 강물을 임페리얼 카운티로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약 64km 구간이었다. 채피는 나무로 된 수문을 개발해 10만 달러(1억1000만원)라는 적은 투자금으로 성공했다. 당시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길잡이 역할을 했다.

그런데 반전 드라마가 펼쳐진다. 캘리포니아 개발사를 창립했던 록우드가 다른 투자자들과 지분을 모아 채니를 몰아내고 회사를 다시 차지한 것이다. 록우드는 욕심을 냈다. 수익을 더 내기 위해 배수로를 더 팠다. 채니는 봄이 되면 눈이 녹아 수위가 높아지는 것을 계산해 수로를 만들었는데, 록우드는 겨울철 수량이 성에 차지 않자 봄이 오기 전 더 많은 수로를 판 것이다.

그러다 1905년 8월부터 몇 달 간 기록적인 폭우가 콜로라도 유역에 쏟아졌다. 강물은 수로를 이탈해 임페리얼 카운티로 마구 넘쳐 흘렀다. 록우드가 판 수로는 물살을 견디지 못해 줄줄이 터졌다. 마을은 침수되고 회사도 파산했다. 결국 채피가 돌아와 아메리칸 원주민과 돌산을 깨고 모래주머니를 쌓아 터진 수로를 복구했다.

   
▲ 캘리포니아 임페리얼 카운티 부감이다. 바둑판처럼 밭들이 펼쳐져 있다. © 유순상

‘토사구팽’ 당한 아시안 이주노동자

사막에 생긴 거대한 밭을 백인 정착민들로만 개간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하지만 미국이 노동력이 싸다는 이유로 중국인을 추방하는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ve Act)’을 1882년 시행하면서 중국인을 쓰기도 힘들었다. 그때 눈길을 돌린 곳이 일본인과 인도인이었다.

   
▲ 농장에 물을 대는 콘크리트 수로가 사막을 가로질러 끝없이 뻗어있다. © 우세린

일본 메이지 유신 때 높은 세금에 시달리던 일본 농민과 인도의 영국군 주둔지 일대에서 일하던 인도 농민들이 임페리얼 카운티로 대거 이주한다. 그들은 악착같이 일하며 사막을 질 좋은 농장으로 개간했다. 당시 상황은 UC샌타바버라 대학 리히 퍼르낸다즈의 박사학위 논문 '인종과 서부개척자: 임페리얼 밸리 식민지화(Race and the Western Frontier: Colonizing the Imperial Valley, 1900-1948)'에 자세히 묘사돼 있다.

“그들은 하루 12시간 뼈 빠지게(backbreaking work) 일했다. 빨리 일하려고 농기구도 백인들이 쓰던 긴 곡괭이를 버리고 짧은 호미로 바꿨다. 백인들은 아시아인이 땅에 기어 다니며 일한다고 비아냥거렸다. 곧 농기구 판매점에서는 호미가 주로 판매됐다.”

아시안 이주노동자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해지고 땅도 소유하게 됐다. 그때부터 백인의 시기가 시작됐다. 1913년에 이르자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비시민권자가 땅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법(California Alien Land Law)을 통과시켰다. 자존심을 지키며 조국을 버리지 않던 농민들은 땅을 빼앗겼다. 한쪽에서는 문화적 차별도 가해졌다. 결혼하지 않고 일만 하던 인도 남성들은 동성애자나 아동 성폭행 위험 인물로 간주돼 멸시를 받았다. 현재 임페리얼 카운티에는 아시안이 전체 1.2%인 2천여명 살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히스패닉이 전체 인구의 절대다수인 82.7%(14,880)를 차지하고, 백인 11.9%(21,334), 흑인 2.3%(4,195) 순이다. 10명 중 7명이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겨울여행자 ‘눈새’와 캐나다 스노보더의 천국

국경선 가까이 오자 음악 소리를 낮추고 내비게이션 안내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 바로 프리웨이를 나와 시간이 더 걸리는 마을 길로 갈아탔다. 초행길 운전자가 프리웨이에서 교통 표지판을 잘못 보고 멕시코로 곧장 들어가버렸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갈림길에서는 차를 세워 지도를 일일이 확인하며 운전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도로변에 간이 화장실이 있고 연못을 품고 있는 야자수 군락이 나타났다. 조금 높은 지대로는 8번 하이웨이를 따라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차도 옆에 온천이 있을 리 없겠지 하며 차로 돌아가려는데 야자수 뒤쪽으로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철제 울타리가 둘러쳐진 홀트빌 온천(Holtville Hot Springs)이 야자수 뒤에 숨어 있었다.

   
▲ 홀트빌 온천은 탕이 두 개로 10명 정도가 한꺼번에 목욕을 즐길 수 있다. © 우세린

시골 우물가 같은 홀트빌 온천에는 콘크리트로 마감된 탕 두 개가 있다. 녹슨 쇠파이프에서 나온 뜨거운 온천수가 두 탕을 지나 연못으로 흐른다. 큰 탕 온도는38도로 꽤 뜨거웠다. 가장 깊은 곳이 1m 60cm 정도로 성인이 까치발을 들고 서있어야 할 정도다. 작은 탕은 깊지 않고 온도도 30도 중반이라 아이들이 놀기 적당하다. 두 탕에서 10명 정도가 한꺼번에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온천수가 뜨거우면 물이 나오는 쇠파이프를 탕 바깥으로 돌려놓으면 된다.

깊은 탕에 들어갔다. 서서 목까지 잠기는 열탕에 몸을 담그니 운전하며 생긴 긴장이 쫙 풀렸다. 뜨거운 물의 압력이 몸 전체를 감싸며 마사지를 하는 듯했다. ‘온천중독’. 그저 물에 잠겨 나오기 싫었다. 안택원의 책 <치유의 온천>은 머리를 제외한 모든 신체를 물에 담그는 것을 ‘완전침수욕’이라고 소개한다. 온천수에서 머리만 내놓고 어깨와 손목, 무릎 등을 스트레칭 하면 혈액순환과 긴장완화, 피로회복 등에 좋다고 한다.

이곳은 겨울철 일조량이 8시간 이상이어서 캐나다와 미 북부 워싱턴 주, 오리건 주 사람들이 10월부터 겨울을 나러 많이 온다. 이런 겨울 여행자를, ‘눈새(Snowbird)’라 부른다. 근처에 미 토지관리국이 관리하는 ‘장기 방문자 지역(Long Term Visitor Area)’이 있는데 최장 7개월 유료 캠핑을 할 수 있다.

   
▲ 홀트빌 온천 전체 모습. 물을 뿌려대는 파이프를 이용해 샤워도 할 수 있다. © 유순상

흰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인 할아버지 짐은 근처 동네 주민이라고 했다.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온천수가 나왔지만 누가 딱히 관리를 하지 않아 진흙탕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캐나다 스노보더들이 캠핑을 하다 몸을 씻으러 왔고 한 사람이 돈을 투자해 현재 모습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그런데 무료다.

“지금은 온천탕에 이끼도 끼어있지만 10월이 되면 아주 깨끗해져. 여기가 스노보더들 집결지거든. 그 친구들이 와서 물을 빼 청소를 하지. 그때가 사람도 많고 물도 제일 좋아.”

   
▲ 온천수 파이프를 바깥으로 돌려 남녀가 샤워를 하고 있다. © 우세린

‘용광로’처럼 뜨거운 건 온천만이 아니다

탕에 있으면 8번 하이웨이가 가까이 보인다. 여기서 9km만 가면 멕시코다. 이 국경선을 넘기 위해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등 중미 사람 수천 명이 매년 이민 행렬인 캐러반을 형성해 행진하고 있다. 도중 성폭력과 강도 등 강력 범죄가 발생하지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으로 걸어온다.

매년 국경선을 몰래 넘어오다 국경수비대 총격에 사람이 죽어나가고, 실수로 길을 잘못 들어 패가망신하는 ‘불법 이민자들’(순화해서 서류미비자라고도 표현한다)이 숱하다. 요즘은 불법 체류자 부모를 추방하다 어린 아이와 생이별하는 사태가 벌어져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불법 체류자였던 한인 트럭 운전사가 길을 잃고 국경을 넘는 바람에 체포됐다. 전문 변호사를 수소문해 도움을 주려 했지만 이미 추방 절차가 끝난 뒤였다.

이곳은 지역적으로도 소외된 곳이다. 부유한 옆 동네 샌디에이고 카운티에 쓰일 태양광 개발을 위해 땅을 파헤치고 있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지하에 묻힌 고대 유물이 훼손된다고 저항한다. 배터리 재활용 공장과 대규모 축산시설이 들어서자 남미 출신 주민들이 환경 정의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왔다. 한국의 밀양 송전탑과 단양에 들어선 폐기물 재활용업체가 떠오른다.

겨울여행자 ‘눈새’가 떠난 자리에 3월이면 멕시코에서 날아온 작은 멋쟁이 나비(Painted Lady)가 무리를 지어 캐나다 국경을 향해 줄지어 날아간다. 꽃에서 꽃으로 수분을 나르며 하루 최대 160km를 여행한다. 과학자들은 왜 이 나비가 북상한 뒤 남쪽으로 돌아오지 않는지 아직 모른다. 온천에 누워, 복잡한 생각을 해본다.

   
▲ 홀트빌 온천 앞에 있는 야자수 군락. 물오리가 노니는 곳이다. © 우세린

** 전 <경기방송> 기자이자 LA 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폭력 생존자를 돕고 있는 우세린 씨 부부가 캘리포니아 중남부 자연 노천 온천을 돌아다니며 글을 썼다. 충주에 화실을 운영하고 있는 유순상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편집 : 황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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