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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자 카운터에 갇힌 '청춘들'...갑질과 폭력에 떤다
[단비현장] 갑질과 폭력에 무방비로 방치된 알바생들
2018년 12월 21일 (금) 15:22:32 임지윤 박지영 박선영 기자 dlawldbs20@naver.com

"아이 씨X, 아가씨 이거 어떻게 해야 돼."

지난 4일 밤 10시쯤 서울 광진구 자양동 ㅇㅇ편의점.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50대 남성 취객이 욕을 섞어 투덜대며 연신 씩씩거렸다. 구입한 플라스틱 얼음컵 밑 부분이 깨져 안에 있던 음료수가 바닥에 흘렀다는 것이다. 편의점 계산대를 혼자 지키던 아르바이트생이 "바꿔드리겠다"며 걸레로 바닥을 훔쳤다. 한밤중 휘청대는 취객과 여성 아르바이트생 단둘만 있는 편의점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편의점. 한밤중 어둑한 주택가 골목에는 편의점 불빛만 밝다. 치안이 취약한 곳에서도 알바생들은 혼자 편의점을 지킨다. ⓒ 박지영

‘나도 표적 될 수 있다’ 알바생들의 위태한 하루

"무슨 일을 당할까 봐 무서워 아예 대꾸를 않고 입을 닫아요."

4개월간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 1학년생 김 모(20)씨는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중년 취객에게 아무 말도 않고 손님이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왜 화를 내시느냐’고 말대꾸라도 했다가 더 큰 화를 당할까 봐 그냥 입을 닫는다"고 했다.

근처 다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대생 이 모(20)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주말마다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는 이씨는 "밤에 근무하다 보면 성희롱을 많이 당한다"며 "반말은 기본이고 갑자기 입술을 내밀거나 ‘입술색 이쁘다’며 희롱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 한 PC방 아르바이트생이 고객에게 피살된 데 이어 최근에는 서울 한 맥도날드 매장 아르바이트생이 고객이 던진 햄버거를 얼굴에 맞는 등 아르바이트생들 수난이 끊이지 않는다. 편의점이나 PC방 등에서 홀로 심야 근무는 아르바이트생들은 취객이나 ‘진상손님’들로부터 거의 매일 신변 위협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신변 안전 대책은 유명무실하다.

서울 용산구 한 PC방에서 주말 오후 시간에 아르바이트하는 백 모(25)씨는 ‘단골손님’이 올 때마다 긴장하며 마음을 졸인다고 했다. 그는 "도박을 하던 중년 고객이 돈을 많이 잃었으니 요금을 환불해 달라고 해 거절했더니 PC방 안에 놔둔 과자를 던지며 소리를 질러댔다"며 "그 순간 강서구 PC방 사건이 생각나 정말 무서웠다"고 말했다.

강서 PC방 사건 후 보복 두려워 신고도 못 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이 근무 중 위급한 상황에 대비할 방법은 계산대 아래 있는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는 것뿐이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3초 후 가까운 파출소로 자동신고가 된다. 하지만 늦은 밤 편의점 안에 아르바이트생 혼자 있어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공포에 질려 수화기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고 내려놓는다 하더라도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무사하게 피신할 방법이 없다.

실제 취재진이 지난 11~12일 이틀에 걸쳐 서울, 인천, 대구 등 대도시에 위치한 5개의 대형브랜드 편의점 41곳을 임의로 조사해 본 결과, 10곳의 편의점에는 비상벨이나 수화기 같은 신고 시스템 자체가 아예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고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편의점 중에서도 설치가 제대로 안 돼 있거나 아르바이트생이 이용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경우도 4곳이나 됐다. 신고 시스템이 제대로 운용되고 아르바이트생이 이를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편의점은 전체 60%(25곳)에 불과했다.

신고 후 경찰이 편의점에 도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문제다. 대구 달서구의 한 대형 브랜드 편의점에서 1년 6개월째 아르바이트 중인 이 모(25)씨는 "지난 7일 취객이 편의점에서 난동을 피워 신고 버튼을 눌렀지만 경찰이 15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 미성년자가 담배나 주류를 사려고 해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잦았다"며 "한 번은 경찰이 너무 신고를 많이 한다며 이 정도 일은 알아서 처리해 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의 한 대형 편의점에서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7시까지 일한다는 김 모(25)씨 또한 신고 버튼이 있어도 한밤중에 일하는 것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달 한 중국인이 난동을 피워 몰래 신고 버튼을 누른 채 기다렸는데 10분이 지나 (경찰이) 도착했다"며 "주변 사람들이 중국인을 말려 위급한 상황이 다 지나고 나서야 경찰이 왔다"고 말했다. 출동 시각이 ‘절대적으로 늦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위험에 노출된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는 ‘긴 시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폐쇄된 공간에서 위급 시 피할 데도 없어

사건이 발생한 PC방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이 일하는 공간은 비상시 피하기가 쉽지 않은 밀폐된 구조가 많다. PC방에는 출입문이 하나밖에 없는 지하에 있는 경우가 많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은 카운터 안에 갇혀 근무하니 대피가 힘들다.

2016년 경산 CU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살해당했다. 당시 피해자는 고객이 있는 매장 쪽으로만 출구가 있는 이른바 ‘ㄷ자 카운터’ 안에 있다가 매장 쪽에서 공격하는 가해자를 피할 곳이 없어 희생됐다.

그 사건 후 ‘ㄷ자 카운터’의 안전성에 관한 문제제기와 함께 카운터 뒤편으로 비상 탈출구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유야무야됐다. 편의점 카운터 대부분은 여전히 ’ㄷ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취재진이 비상시 신고 시스템과 함께 조사한 편의점 41곳의 카운터는 예외 없이 모두 ’ㄷ자’ 의 폐쇄된 구조로 돼 있었다.

서울 마포구 합정역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는 박 모(25)씨는 "카운터로 들어가면 카운터와 뒷벽 사이에 완전히 갇히게 된다"며 "위급한 일이 벌어지면 가해자가 버티고 있는 매장 쪽으로 밖에 출구가 없어 늦은 밤에 이상한 손님이 들어 오면 은근히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주로 지하에 위치한 PC방들도 가해자가 출입문을 막고 서서 아르바이트생을 공격하거나 위협하면 대피할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다.

   
▲ 2016년 경산 편의점 살인사건 이후 ‘ㄷ자 카운터’ 개선 주장이 제기됐으나 그동안 전혀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 경산 CU편의점대책위원회 페이스북

실효성 없는 알바생 안전 관련 법규

아르바이트생들의 안전확보 문제는 산업안전보건법 제31조에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다. 제31조는 ‘사업주는 해당 사업장의 근로자에 대하여 고용노동부령에 정하는 바에 따라 정기적으로 안전·보건에 관한 교육을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 10월 18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제26조의 2항(감정노동자 보호법)도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하여 고객응대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 부산의 한 CU편의점 포스 화면에 게시된 ‘점포 안전 수칙’ 게시글. ⓒ 박진수
   
▲ 부산의 한 CU편의점 포스의 ‘신고(3초)’ 버튼. 버튼을 누르면 인근 경찰서에 자동 신고된다. ⓒ 박진수

신정웅 알바노조 비상대책위원장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 사업장 대부분이 안전교육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어 각종 안전사고는 물론 아르바이트생들이 불안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1조에 ‘사고 발생 시 긴급조치에 관한 사항을 교육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지만, 상시 근로자가 5인 미만일 경우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 때문에 아르바이트생들은 이 법규정의 보호를 거의 못 받고 있다는 것이다.

편의점에서는 대개 평일 3명, 주말 3명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교대로 운영하는 곳이 많은데, 이 경우 전체 근로자 수는 6명이지만 1일 평균 근무 인원이 3명이므로 상시근로자 4인 이하 사업장으로 간주한다. 이처럼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대부분 영세사업장은 안전교육 시행 의무가 부과되는 대상이 아닐뿐더러, 그 사업장 수가 너무 많아 산업안전부의 안전교육과 관련 규정 이행 여부 점검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법의 보호막 밖에 내팽개쳐져 있다는 것이다.

2016년에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알바생 2,25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알바생 10명 중 7명이 화재나 사고 등 유사시 대처법 등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 위원장은 "사업주로서는 1분 1초가 아까워 교육받았다는 사인만 하게 하고 빨리 일하라고 한다"며 "사고 발생 시 대처할 수 있는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심야시간대 근무의 위험성을 인지하도록 하고 야간 근무 인력을 확충하는 등 아르바이트생 안전 대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최진혁 공인노무사는 "감독기관의 통제나 감독권 행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관련법에 처벌이나 예방 규정을 두더라도 실질적인 ‘감독’으로 이어지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뒤늦은 입법 추진, 언제 법제화해 시행될지 미지수

서울 강서구 PC방 아르바이트생 피살사건 발생 이후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야간알바 4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포함됐다.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안에는 사업주에게 경찰과 연계한 긴급출동시스템을 마련해 근로자 신변을 보호할 의무를 부여한 조항을 신설했고,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에는 24시간 영업장 인테리어에 범죄 예방 디자인을 적용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 담겼다. 법안이 언제 통과될지, 통과되더라도 정부가 아르바이트생들의 안전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미지수다.


편집 : 장은미 기자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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