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박명림 교수 / 주제② 역사와 지식과 사회

큰 대학, 큰 교회, 큰 신문이 자신만을 위한다면......

“지구 상에 위대한 삶은 없습니다. 위대한 영혼이 있을 뿐이지요. 위대한 영혼이 그들의 삶을 바꿉니다.”

‘자살하고 싶다’며 상담을 청하는 학생에게 박명림 교수가 해주는 말이란다. 그는 현실이 어려울수록 말이라는 게 아무 힘이 없다고 생각한다. 말과 글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지 의문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말과 글이 죽은 사회는 정말 죽은 사회라고 본단다.

▲ 강의 중인 박명림 교수. ⓒ 구세라
힘든 현실에 처해 있는 학생과 밤새 대화할 때 ‘어떤 고통도 끝이 있다’며 힘주어 말한다는 박 교수. 그는 지금 우리들의 삶이 말과 글에서 너무 멀어져 있는 건 아닌지 묻는다. “안중근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명을 내놓고 시대의 과제에 맞섰는가”, “인도의 상류 계층이었던 간디가 고난의 길 위에서 어떻게 전체 역사를 끌어 안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길 주문했다.

“우리가 전체의 역사를 내 문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와 관계 없는 사람들이 역사를 만듭니다.”

이유는 명료하다. 우리가 참여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과연 이런 세상을 그대로 놓아 둘 것인가? ‘전쟁과 평화’, ‘공동체와 개인’에 대해 공부해 온 박 교수는 ‘역사와 지식과 사회’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명쾌한 예를 들어가며 쉽게 풀어냈고, 어려운 정의를 말할 때는 “메모해 보세요, 여러분”이라고 운을 떼며 친절하게 여러 번 설명했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었기에 청년들이 미래를 놓고 고난과 고통을 느껴야 하나를 교육자로서 고민해왔습니다. 이 사회에서 교육과 종교와 언론이 낮은 곳을 올려주고 굽은 것을 펴 주고 억울한 것을 대변해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죠. 큰 대학, 큰 교회, 큰 신문일수록 더 많이 갖고자 몰려듭니다.”

지식은 다른 논리와 대화하는 것

박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이념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더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문제는 좌나 우, 진보나 보수 이념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보다 좌파나 우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문제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들 생각과 사회 세력 관계에서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목소리를,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부르짖는 게 좌파나 우파 한 진영에 속하는 것입니다.” 

토마스 만과 견해를 같이한다는 그는 어떤 사안을 다룰 때, 이념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문제로 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knowledge(지식)’는 논리를 안다는 것이고, ‘dialogue(변증법)’ 또한 논리를 주고 받는다는 뜻이다. 결국 지식은 철저하게 소통과 대화에 근거한다. 우리들 지식은 다른 논리와 대화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내 논리를 구축해 나가는 것인데, 이 때 궁극적으로 ‘인간성(휴머니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지식은 인간성을 기반으로 다른 논리와 대화하는 것.

그는 이러한 인간성이 사실성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창동 감독과 대화해 보면 ‘모든 영화의 출발도 사실성’이라고 한다. 인간이 어떤 목소리로 부르짖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기술도 마찬가지란다. 그것이 사실적이면 감동적이고 울림이 있다고. 허구를 꾸며내기 시작해 사실성이 결여되면 논리는 갖출지 모르지만 휴머니티를 드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전두환 시대 이후 20년 이상 한국전쟁을 공부해온 박 교수는 “인간의 문제를 바라볼 때 이념을 벗어나야 ‘사실’에 접근할 수 있고, ‘사실’의 목적은 ‘인간성’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한국 전쟁의 사망 몇 명, 가옥 파괴 몇 채. 이것이 뭐예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사람이 얼마나 죽었고, 사람의 집이 얼마나 파괴됐다는 이야기예요. 성장을 했건 피해를 입었건 사회에 대한 모든 통계는 인간 문제입니다. ‘성장 5%’, 그것은 5% 성장시키는 데 들어간 인간의 땀이고요. ‘-5% 성장’ 그러면 -5% 성장한 만큼 누군가가 실업을 했고, 누군가가 굶어 죽었다는 거예요.”

그는 통계를 물신화하지도 지나치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앞으로 기사를 쓰고 프로그램을 만들 예비 언론인이니 모든 통계를 ‘인간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단다. 단 하나 통계도 인간이 아닌 게 없다. 도로가 몇 Km 늘어났다면 누군가가 그 곳에서 노동을 한 것이다. 도로 통계이기 전에 ‘인간 노동’의 통계이자 ‘피와 땀, 눈물’의 통계다.

그는 ‘통계’는 곧 ‘인간’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전쟁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 문제’이므로 근본주의로 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수구반동’, ‘친북좌파’, ‘수구꼴통’과 같은 말에는 인간이 없다. 수단화하고 대상화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인간은 사라진 말의 전쟁이다.

지식은 왜 인간성을 가져야 하나

▲ 6월 발간된 박명림의 <역사와 지식과 사회>.
박 교수는 자신이 최근에 쓴 <역사와 지식과 사회>를 소개하며, ‘인간성, 사회성, 공공성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식이라는 것이 왜 인간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학문이라는 것이 왜 사회성을 가져야 하며, 교육이라는 것이 왜 공공성을 띠어야 하는지’를 말했다. 그는 이 책에서 ‘역사라는 과거의 문제가 어떻게 지식이라는 이성 작용을 통해 사회를 바꿔 나갈까’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했다.

광주항쟁 이후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끝날 때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바라보며 연구했고, 지식인들은 어떻게 소통을 해왔을까? 보수적인 한국 전쟁 연구만 거듭하다가 광주라는 현재의 문제를 통해 과거의 한국전쟁을 다시 보게 됐을까? 박 교수는 이러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앞선 선각자들의 인식과 더불어 책 속에 담아냈고, 강의를 통해 전달했다.

광주라는 현재의 아픔은 ‘구조’로 돌아가서 결국 분단이나 미국과 관련된 현재의 반독재, 현재의 민주화 운동을 살펴보게 하며, 해방전후사를 다시 인식하게 했단다. 그 과정에서 1980년대에 수많은 대학생들이 자료를 다시 읽기 시작했고, 해외 연구 자료들을 입수해 파고 들었다.

그는 “주관성을 통하지 않은 객관성은 무의미하다”며 “나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 전체의 문제는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아무리 민주주의나 평등에 대해 배운다 해도 그것이 나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으면 추상적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에 대해 읽는다면 내 삶의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문제로 다가와야 한다는 말이다. 박 교수는 이를 한국전쟁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 지어 이야기했다.

“바라보기에 따라서는 우리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직결되어 있는 것이에요. 한국전쟁에 앞서 망국이 됐고 식민이 됐고 분단이 됐고 이 과정을 극복하지 못한 구조가 후대에 엄청난 사건으로 다가오는 거죠.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누구는 반공주의로 기억하지만 누구는 또 평화로 기억해요. 리영희 선생은 한국전쟁 때문에 평화주의자로 거듭나고, 많은 사람들은 반공주의를 갖게 되고 북한을 비판하게 되고 그래요.”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로 전체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생각하는 동시에 체험자들의 이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과학이 체험보다 우월하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체험하지 않은 사람이 체험자를 비판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단다. 한국전쟁에서 죽다 살아난 사람들, 가난하기에 오천 원 쓰는 것을 벌벌 떠는 사람들, 자식 먹이려고 생선 한 토막 못 먹는 엄마들. 이들을 보고 ‘쩨쩨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폭력이다. ‘체험’이 다르기에 세대간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교수는 같은 이유에서 청년들이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것을 긍정하는 편이라고 한다.

▲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 ⓒ구세라

‘역사 내전’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사회

박 교수는 우리가 안타깝게도 다시 ‘역사 내전’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항쟁 이후 반공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면,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는 급진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균형을 갖추고 역사 연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지금 교과서 논쟁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저는 어느 쪽에도 가담하고 있지 않아요. 각자 개인이 연구한 사실에 입각해서 인간성을 드러내다 보면 그것이 모여서 상황이 되는 것이죠. 집단을 만들어서 그 힘으로 하는 것은 연구가 아니라 정치입니다. 진리나 진실을 밝히는 행위가 아니죠.”

그는 학문이 궁핍한 인간들을 위로하는 데 많이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문은 진리를 드러내며, 그 진리는 삶 자체가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왜 어려워졌는지를 밝히는 것이란다.

“스스로 고통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말해주어야 합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한테는 문제가 존재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것을 문제로 보지 않으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됩니다.”

그는 어떤 문제든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나서서 그 문제를 추적해 사회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학문의 길이라고 전했다. 또한 정의는 누가 독점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진보를 중단시키는 것은 방법이 될 수 없다며 현재 한국사회의 역사적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제시했다. 

“진실화해위원회라든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많은 과거사 극복 노력이 있었지만 그 때는 아직 반공주의 체제에 익숙해 있었기에 진보적 느낌으로 접근한 관점이 없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지금 다시 보수적 관점에서 그걸 다 폐지하려고 하는데 그건 아주 잘못된 거예요. 보수적으로 피해 받은 분들도 같이 진실을 규명해야 되는 겁니다.”

죽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그는 ‘죽음’에 대해서도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죽음을 차별해선 안 돼요. 부자이거나 귀하다고, 또는 유명한 사람의 죽음이라고 해서 큰 슬픔이고, 가난한 내 엄마의 죽음이라고 해서 작은 죽음이 아니잖아요? 모든 죽음은 절절하고, 수많은 사연이 있고, 생명이 끝날 때 보면 똑같아요.”

그는 삶을 차별하지 않는 출발점은 죽음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기에 모든 죽음을 똑같이 긍휼이 여기고 안쓰러워할 때 우리가 지금 산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념적으로 보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미 죽었는데, 좌파한테 죽음을 당했다고 추앙이나 짓밟힘을 받거나 우파한테 죽음을 당했다고 경멸이나 칭송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덧붙여 우리들 내면에서 지배적 세계관이나 가치관으로부터 내 영혼이 독립되어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실과 화해, 정의와 관용. 우리는 하나의 진실만 있다고 생각하니까 화해로 나가지 못하고, 내가 옳다고 정의를 추구하며 전쟁을 했기에 관용하지 못했던 거예요. 진실을 넘어 화해로, 정의를 넘어 관용으로 나아가려면 다른 인간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회의 의사가 되고 디자이너가 되세요”

▲ 철학자 쥘 미슐레.
박 교수는 책에서 언급한 <민중>이라는 위대한 역사책을 쓴 프랑스 평민 철학자 쥘 미슐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들려주었다. 미슐레는 “문제는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면서 머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려운 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서 머물러 있는 것, 곧 고통스러운 사람을 끌어안아야 되겠다는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책임이다. 진짜 지식인, 언론인이나 역사가들이 할 일은 자신이 말해야 할 고통스러운 일을 말하는 것이다. 아픔을 들춰내고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 

“의사는 강한 것이나 잘 나가는 사람들, 신체의 강한 부위를 고쳐주는 사람이 아니에요. 국가가 공동체 안에서 많이 가진 사람들을 보도해 주거나 광고해 줘선 안 되죠. 의사는 전체가 잘 살게 하기 위해 병 들고 아픈 부위, 아픈 사람을 고쳐줘야 해요.”

간이 아프면 간을 고쳐야지 잘 나가는 오른팔을 고치려고 하면 신체는 파괴되어 죽는다고 말하는 박 교수. 그는 언론인과 학자야말로 의사이자 디자이너이자 건설자가 되어야 한다며,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 치료하고 다른 사람들의 희망을 설계하고 건설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두식, 전중환, 박상훈, 구갑우, 김동춘, 박명림, 홍기빈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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