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쟁이방송쟁이] 강제전보 취소 소송 MBC 한학수 PD

“처음 인사 소식을 들었을 때, 사표를 던지고 나올까도 생각했어요. 그게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봤거든요. 그런데 넓게 봤을 때 이번 인사조치가 왜 부당한지 밝혀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한 명의 저널리스트가 부당함에 파괴돼 떠나는 게 아니라 제 모습을 찾아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방송제작의 자유’를 둘러싼 일선 피디(PD)들과 문화방송(MBC) 경영진의 대립 와중에서 ‘강제전출’을 당한 한학수 PD를 MBC 경인지사 수원총국에서 지난 10일 만났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목소리에서는 단호한 의지가 묻어났다.

한 PD는 MBC 시사교양국의 ‘스타 PD’ 중 한 명이다. 지난 2005년 <PD수첩>에서 ‘황우석 줄기세포논문 조작 사건’을 특종 보도했고, 지난해엔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의 눈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지금은 회사를 상대로 ‘인사발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투쟁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 서 있다.

1년 생이별 가족과 동반여행 전날 인사 통보 받아

“지난 5월 23일, 그러니까 가족들과 휴가 떠나기 하루 전날 구체적인 인사발령 소식을 들었어요. 경인지사 얘기는 미리 알았는데, (피디 업무가 아닌) 비제작부서로 가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죠.”

▲ MBC 한학수 PD. ⓒ 양호근

한 PD는 지난해 <아프리카의 눈물> 취재로 거의 1년간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그래서 11살과 7살짜리 아들 둘, 그리고 아내와 함께 모처럼 가족여행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설레고 행복해야 할 여행을 착잡한 마음을 감춘 채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일, 그는 14년 동안 정들었던 여의도를 떠나 수원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철길을 달리는 두 시간 내내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비제작부서로 간다는 것은 전에 일하던 환경과 전혀 다른 곳으로 간다는 말이거든요. ‘유배를 가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어머니한테는 별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몸은 편한 곳이니까 괜찮다고 말씀드렸어요. 하지만 아내는 모든 내막을 아니까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한 PD에게 이런 인사 조치가 내려진 것은 동료인 이우환 PD가 취재하던 <PD수첩>의 ‘남북 경협 중단, 그 후 1년’ 편이 계기가 됐다.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은 이 사안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제작에 반대했다. 그 때 평PD협의회가 나서서 윤 국장을 설득했다. 한 PD는 평PD협의회의 운영위원 중 한 명으로 윤 국장과의 대화에 앞장섰다. 어떤 설득에도 윤 국장이 뜻을 굽히지 않자 평PD협의회와 이 PD는 제작 중단 지시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뜻이 관철됐음에도 불구하고 윤 국장은 이 PD와 한 PD를 전보 조치했다는 게 한 PD의 얘기다. 

“얼마 후 다른 매체에서 윤 국장을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어요. 평PD협의회 운영위원회 활동 때문에 제가 인사 조치됐다고 하더라고요. 그 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할 뿐 직접 얘기는 못 들었어요. 사실 평PD협의회는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됐고, 저는 운영위원 10명 중 한 명일 뿐이에요. 저를 표적삼아 인사 발령을 한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죠.”

▲ 5월 23일 한학수PD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
MBC 시사교양국에 평PD협의회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3월이었다. <PD수첩>에서 ‘검사와 스폰서’편 등을 제작했던 최승호 PD가 이명박 대통령이 다니는 소망교회를 취재하던 중 강제로 다른 부서에 발령됐다. <PD수첩>을 진행하던 홍상운 PD를 비롯한 다른 팀원 5명도 줄줄이 전보됐다. PD들은 이를 계기로 PD 개인이 대응하기 힘든 어려움에 함께 대처하자며 평PD협의회를 구성했다. 보직부장을 제외한 PD들이 모두 참여하는 조직이기에 노조와는 다소 성격이 달랐다.

“시사교양국 틀 내에서 저널리스트로서의 지위나 권리가 심각하게 손상당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만들어진 거예요. 방송국 조직에서 개별 PD의 역할이나 데스크의 임무가 명확히 구분돼 있는데도 요즘 ‘윗선’의 힘이 서서히 작동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러웠죠. 최승호 PD가 쫓겨난 것도 그런 음습한 기운의 방증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처분 신청 수용되면 복귀, 안 되면 본안 소송

MBC노조는 한 PD와 이 PD(용인 드라미아개발단)를 대신해 ‘인사발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명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직원을 전보할 수 없다’는 사규를 위반한 조치라는 게 가처분신청 취지다. 두 PD 모두 현 프로그램에 발령된 지 6개월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 동의 없이 이동 발령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차 심리는 지난 9일에 열렸고, 가처분신청 결과는 이달 말에 나온다.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이면 한 PD 등은 시사교양국에 복귀하고, 그렇지 않으면 본안 소송을 낼 계획이다.

“이번 가처분 신청은 아직까지 (유사한) 판례가 없다고 합니다. 법원도 고심하고 있을 거예요. PD나 기자에 대해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보복성 징계를 내리거나, 전혀 다른 업무를 맡긴다는 게 과연 온당한지 결정될 겁니다.”

MBC PD들이 언론인으로서의 권리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건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한 PD가 <아프리카의 눈물>을 촬영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머물고 있는 동안, MBC에는 ‘징계 폭풍’이 몰아쳤다. 지난해 4월 MBC 노조가 김재철 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한 달여 파업을 벌인 후 회사 측은 이근행 노조위원장과 오행운 PD 등 2명을 해고하고 노조 홍보국장이었던 연보흠 기자 등 13명에게 정직, 감봉 등의 징계를 내렸다.

“아프리카에서 촬영하며 부닥치는 어려움보다 동료였던 이근행 PD가 해고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충격이 컸어요. 멀리 있어서 도와줄 수도 없는 입장이라는 게 우울하고 괴로웠죠.”

 ▲ "부당함의 끝이 무엇인지, 참고 끝까지 견뎌서 꼭 밝혀내겠습니다" ⓒ 양호근  
“황우석 사태에 비하면 이 정도 쯤이야.......”

그런데 막상 자신이 ‘징계성 인사조치’의 당사자가 된 데 대해 한 PD는 담담하다.

“황우석 사태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힘든 것도 아니죠. 그때는 훨씬 더 가혹하고 격렬했으니까. 가족들은 다 지방으로 피신가고 아이들은 유치원도 못 갔어요. 저도 한 달 가량 24시간 경호를 받았죠.”

한 PD와 <PD수첩>팀이 지난 2005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복제연구’와 관련된 의혹을 파헤쳤을 때, 한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황우석 신화의 난자의혹’, ‘특집, PD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는가?’, ‘줄기세포 신화의 진실’ 등이 나가는 동안 황 교수의 지지자들은 <PD수첩>에 항의, 협박 등 맹공격을 퍼부었고, 광고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그러나 결국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고, 한 PD는 프로듀서연합회가 주는 ‘이달의 PD상’과 언론정보학회가 주는 ‘올해의 기획보도상’ 등 사회적 인정과 지지를 얻었다.

“그 때를 돌이켜 보면, 제가 한국 저널리즘 역사 속 큰 사건의 주인공이었다는 게 마치 소설의 주인공이었던 것처럼 느껴져요. 큰일을 겪으면서 위기의 순간에 원칙을 지켰고, 쉽게 타협하지 않고 버텼다는 게 스스로 가상했죠. 물론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해요. 군대 두 번 가라는 것과 똑같죠. 하하하.”

그는 “PD들에겐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존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사랑’과 ‘사회를 개선시키겠다는 정의감’이 없다면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청자, 제 자신, 그리고 한국의 저널리즘을 위해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부당함의 끝이 무엇인지, 참고 끝까지 견뎌서 꼭 밝혀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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