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는 전 재산 기부, 우리 기업인은 변칙 상속
[두런두런경제] 홍기빈 제정임의 경제뉴스 따라잡기

홍기빈(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 정부가 대기업들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변칙 상속증여에 대해 과세할 수 있도록, 오는 8월까지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나라당에 통보했다는데요. 우선 일감 몰아주기란 어떤 것을 말하나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대기업 그룹이 비상장계열사, 즉 기업공개가 되지 않은 계열사를 만들어 대주주 가족들에게 그 회사 지분의 상당부분, 혹은 대부분을 넘긴 뒤, 그 회사에 다른 계열사들의 주문을 몰아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현대기아차 그룹이 글로비스라는 물류회사를 만들었는데, 지분 100%를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가 나눠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룹 내 물류거래를 이 회사에 몰아줬죠. 이렇게 되면 처음에 적은 자본금으로 만든 회사가 급속히 성장하게 되는데, 회사 덩치가 커지면 주식시장에 상장해서 소유주가 엄청난 자본을 챙기고, 이 돈으로 다른 계열사의 주식까지 사들여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편법 경영권 상속까지 이뤄지게 되는 것이죠.   

정부의 대기업 과세방안, 난항 예상되지만 원칙 세워 추진해야

홍: 지난 3월 ‘공정사회 추진회의’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 의지를 밝혔는데, 이런 관행이 얼마나 심각한가요?

제: 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30대 그룹 중에 총수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20개 비상장사의 지난해 매출이 약 7조4천억 원입니다. 그런데 이중 계열사 매출이 3조4천억 원으로 약 46%에 달합니다. 매출의 절반가량이 계열사 거래에서 나온다는 얘기죠. 이들 20개 비상장사의 실적은 최근 5년 새 평균 3.27배로 급증해 손쉽게 급성장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게 다 일감 몰아주기라고 볼 순 없겠지만 상당한 혐의가 있습니다. 만일 재벌들의 일감 몰아주기를 이용한 편법 상속증여에 엄정하게 과세를 했다면, 요즘 반값등록금 요구가 뜨거운데, 보육이나 교육, 주거, 의료 등 우리 사회의 복지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느라 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홍: 그래서 구체적으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어떻게 과세를 하겠다는 계획인가요?

제: 우선 대기업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에 시중가격보다 비싸게 물건을 공급해서 이익을 냈을 경우, 공급가격 차액에 대해 과세한다는 것입니다. 또 시중가격과 같이 납품을 한 경우에도 계열사에 일감을 대량으로 몰아줘 과다이익이 났다면 그에 대해 추가 과세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비상장계열사의 주식가치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올라갔다면 주식가치 증가분에 대해 과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정상적 거래에서 발생한 이익과 부당 이익을 구분하는 방법 등 과세 기준을 세우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 실제 입법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홍: 이런 방침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제: 민주당 등 야당과 여당인 한나라당 모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제개혁연대 등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도 적극 지지하고요. ‘늦었지만 엄정한 과세체계를 만들어 변칙 상속을 막아라’하는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대한상공회의소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 단체는 강력히 반대합니다. 일감 몰아주기는 옛날 얘기다, 이런 것을 과도하게 규제하면 기업의 비용이 올라가 경쟁력이 하락한다, 오히려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혜택 가장 많이 받은' 대기업 각성 필요

홍: 상당히 대립되는 의견이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영하는 의견이 많은 것은 일감 몰아주기가 편법 경영권 상속을 통한 탈세 뿐 아니라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중소기업의 기회 박탈 등 다른 심각한 문제도 낳고 있기 때문이겠죠?

제: 맞습니다.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게 현실인데요.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 재벌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하면서 계열사를 새로 만들고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덩치를 키우는 일이 더욱 늘어났습니다. 상위 10대 그룹의 계열사 자산총액이 올해 4월 현재 약 887조원으로 3년 전의 약 564조원에 비해 57%가량 늘었고, 계열사 수도 434개에서 649개로 약 50%나 늘었습니다. 이미 덩치가 큰 재벌들이 덩치를 더욱 키운 것이죠. 중소기업 영역에 대한 침해도 심각합니다. 대기업들이 소모성자재구매대행사(MRO)를 만들어 주문을 독식하는 것을 포함, 전산시스템, 물류, 건물관리, 유통, 건설 등의 중소기업들 밀어내고 있습니다. 또 이 분야의 대기업 계열사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로 손쉬운 영업을 하기 때문에 경쟁력과 전문성이 낮아 산업발전을 해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홍: 이런 편법을 써서라도 세금 덜 내고 자녀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우리나라 재벌들과는 달리 해외에선 파격적인 기부와 함께 상속세납세 옹호 등의 언행으로 눈길을 끄는 거부들이 많죠? 

제: 잘 아시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회장이 대표적이죠. 이미 수십조 원의 재산을 자선재단에 기부한 게이츠 회장은 오래 전부터 자신의 세 자녀에게는 (남아 있는 수십조 원의 재산 중) 각각 1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1백억 원 남짓의 재산만을 물려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아이들 인생에 결코 이롭지 않다”고 얘기하면서요.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도 수십조 원대인 자신의 전 재산을 빌 게이츠 자선재단에 기부할 뜻을 밝혔고 “사회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우리가 사회에 더 많이 돌려줘야 한다”며 다른 부자들의 재산 기부도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 반재벌 정서가 심하다’고 불만인데, 과연 원인이 뭔지, 외국의 존경받는 기업과 기업인들은 과연 왜 존경을 받는지, 성찰했으면 좋겠습니다.  

홍: 정부가 과세 의지를 밝혔지만, 과연 최종적으로 입법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있는데요.

제: (그동안 정부가 대기업 규제를 많이 풀어주는 정책을 추진해왔기 때문에) 이번 방침에 대해 ‘정권 말기에 협조하지 않는 재벌들에게 경고하는 의미에서 추진하다 그만 두는 것 아니냐’하는 의구심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말로만 떠드는 정부’라는 비판을 더 이상 듣지 않도록, 이번에는 반드시 결과로 말해줘야 할 것입니다.


* 이 기사는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손에 잡히는 경제> 6월 15일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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