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김동춘 교수
주제 ② 전쟁과 군사주의

'오십년대가 끝나자 나의 이십대도 끝났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50년대 서울거리' 마지막 문장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은 그녀가 꼭 스무 살 되던 해였다. 그녀는 20대를 전쟁의 공포가 가득한 서울에서 보냈다.

한국전쟁은 그녀의 삶을 지배했다. 그녀가 쓴 소설 대부분은 전쟁이 낳은 비극적 현실이 배경이다. 벗어날 수 없는 기억은 소설을 쓰게 한 동력이자 고통이었다. 빨갱이로 낙인 찍힌 가족들과 그녀는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 감사해야 했다. 사는 것이 아닌 살아내야만 하는 현실은 비단 그녀만의 일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거울

사회학자 김동춘은 박완서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치ㆍ사회 갈등의 뿌리는 한국전쟁에 있다며 반공주의 관점, 국가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한국전쟁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록 짧은 시기에 일어난 일이지만 한국전쟁은 우리 모습을 집약하고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이기에 현 사회를 비춰볼 수 있는 하나의 거울이라 말했다.

▲ '전쟁과 군사주의'라는 주제로 강의 중인 김동춘 교수. ⓒ 서동일
"한국전쟁을 말하면 누구나 거부감을 가집니다. 전쟁의 고통을 잊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입을 열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좌우 이념을 떠나 한국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조차 한 마디도 못해 온 게 현실입니다."

김교수는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가’가 아닌 ‘전쟁 중 국가와 국민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전쟁 후 누가 권력을 얻었는가’라고 질문한다. 역사를 재구성하는 역사학자가 아닌 사회학자의 시선이다. 그는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전쟁 중 이승만 정권의 무책임함과 전쟁 후 북한의 위협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권력을 잡은 이들이 은폐한 사실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한국전쟁 당시 학살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전부 인민군이나 좌익 세력이 자행한 학살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군인과 이승만 정부에 의한 학살이 더 많았습니다. 서울은 안전하다면서 제일 먼저 남쪽으로 몸을 피했던 게 이승만 정부였습니다. 서울에는 민간인만 남았죠. 그런 그가 미국의 도움으로 서울을 되찾은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빨갱이’를 찾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인민군에게 밥을 주거나 잠자리를 제공한 사람들이 모두 포함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이 사실은 은폐됐습니다.”

 ▲ 김동춘 교수가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포로의 사진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 서동일

당시 국민들은 체제의 장단점을 비교할 여유조차 없었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최우선으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피란을 가거나 이념을 명확히 택한 사람은 기득권층이나 지식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념보다 삶이 앞선 이들은 삶의 터전을 지켰다. 이는 김교수가 자신의 책 ‘전쟁과 사회’ 첫 머리에 ‘한국전쟁 당시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억울하게 스러져 간 남북한의 모든 이름 없는 영령들 앞에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쓴 이유다.

전쟁이 한국사회 운영원리로 내재화

"인간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전쟁기에 다 일어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계층간 갈등, 신분간 갈등, 가족 문제, 정치권력 문제, 국가에 대한 신뢰 문제, 폭력 문제 등 인문사회과학에서 다룰 수 있는 모든 쟁점이 포함된다는 것이지요.”

▲김동춘 교수. ⓒ서동일
그는 전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했다.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전쟁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일반 시민들이 보았던 전쟁의 실상을 말하고 싶어했다. 우리가 이러한 해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전쟁에 참여했던 선량한 시민들이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자가 됐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터로 뛰어 들어가야 했던 시민들의 억울함과 그에 따라 발생한 수많은 희생자는 무슨 죄가 있는 것일까?

“남북의 권력자를 제외한 최대의 수혜자는 일본이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사용하는 군수물자는 모두 일본에서 왔습니다. 그러나 더 큰 최대 수혜자는 미국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전쟁에서 많이 죽었지만 지금 와서 죽었다고 말하는 건 미국사람들이 아닌 바로 한국 정치가들이었습니다. 한쪽에서 사람이 죽어 가면 다른 한쪽에서는 돈을 벌게 되는 것이지요.”

한국전쟁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은 바로 김일성과 그의 정권을 지지한 사람들, 그리고 이승만과 친일세력들이었다. 이승만은 전쟁이 일어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권력과 위치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돌아보지 않았다.

“유대인 학살 최대 공로자는 히틀러가 아닙니다. 유대인 중에서 밀고자 역할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결국 유대인 학살이 커졌던 이유는 본인이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사태가 만연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똑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학살의 메커니즘 속에서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과 일반사람들의 동조는 사회적 신뢰를 잃게 만드는 것, 즉 도덕적 사명을 뜻합니다.”

1948년 여순사건 당시 현직검사가 총살당하는 일도 있었다. 좌익소탕작전을 핑계로 선량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사살하는 경찰의 폭력이 만연되었다. 그러한 경찰을 수사한 명목으로 박찬길 검사는 반란군에 가담한 빨갱이라 판단되어 결국 재판을 거치지 않고 경찰에게 바로 총살을 당했다. 검사를 경찰이 총살한 사건은 국회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고, 당시 법무부장관은 국회에 문제 제기를 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검사하나 죽은 것으로 경찰의 사기를 떨어뜨려야 하느냐’며 결국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안겨준 것은 무엇일까? 그는 전쟁이 사회 운영원리로 내재화하고 냉전적 정치경제 질서가 가장 철저하게 사회에 착근된 것이라고 말한다. ‘전쟁’ 중인 사회에서 힘없는 민중들은 끊임없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피난’ 행렬에 나설 수밖에 없다.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파업 등 현재 일어나는 부질없는 상황을 보면 그것 또한 ‘전쟁’으로 보인다. 노동자들은 공권력과 ‘적’으로 맞서 싸우고 있었다. 이는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는 싸움이지만 아직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광기에 심취한 자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가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넣습니다. 전쟁 때 사람 죽이는 것은 내가 죽지 않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는 측면이 있겠죠. 위협에 노출되면 패닉 상태가 됩니다. 나에게 총알이 날아올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광기’에 심취한 사람들은 말단 군인, 즉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라는 것이지요."

그는 어쩔 수 없이 희생자가 되는 군인들의 처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을 벌이지 않을 체제를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정당한 민주주의를 만들고 바르게 정치를 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의 말처럼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은 전쟁에서 ‘광기’의 희생자가 된다. 즉, 학살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학살은 정치적인 반대의견을 갖거나 국가 내에서 적으로 분류된 사람을 정당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 강의에 참여한 학생들. ⓒ 서동일

김 교수의 저서 <전쟁과 사회>에서는 전쟁과 폭력은 정치적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므로, 단순히 적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 전쟁의 목적을 두기보다, 적으로 분류된 집단을 완전히 제거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경우에 주로 학살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에서 학살이 만연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내전상황, 게릴라전 성격, 대량살상무기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경찰이 비인간적인 훈련을 해온 일본경찰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을 벌이지 않을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즉, 정당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질문시간에 한 학생이 “잘못된 공권력을 막기 위해서 힘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라고 묻자, 김 교수는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벽보고라도 소리치세요. 힘센 경찰, 힘센 판사들에게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 조직도 끊임없이 국민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잘못된 공권력으로 억울한 피해를 입었을 때는 하다못해 법원 경찰 사이트에 들어가서 댓글이라도 달아보세요.”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두식, 전중환, 박상훈, 구갑우, 김동춘, 박명림, 홍기빈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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