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박상훈 대표
주제② 민주주의와 정치

좋은 정치는 인간의 능력을 발현케 한다

“아테네는 2500년 전 산악지역에서 적은 인구로 철학과 문학, 천체학 등의 다양한 학문을 꽃피웠는데, 그 바탕에는 민주정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좋으면 인간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거든요.”

 ▲ 강의 중인 박상훈 대표. ⓒ 김승태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우리보다 훨씬 낮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는 "이들 국가는 우리보다 노동의 가치를 더 인정하고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문화를 발전시켰는데 그 바탕에는 잘 발달된 정치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출판사를 운영해보니 ‘정치’가 들어가면 책도 잘 안 팔리더군요.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하는 것도 최악 아닙니까?”

박 대표는 “정치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동시에 어려워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정치가나 정치학자들도 현실에 정치 이론이나 학문을 적용하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덧붙였다.

“보통사람들 지혜가 웬만한 정치학자보다 나을 때가 많아요”

그는 그동안 정치학자들이 정치 현실을 다루기보다 정론적 방법론에 치중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정치가들이 현실 정치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가 이데올로기와 편견, 권력 등의 요소가 작용하는 세계를 다루는 학문인 만큼 이것들을 꿰뚫고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길상사의 한 주지스님도 종교 조직을 운영하면서 음모와 질투, 권력관계를 견디기 어려워하셨습니다.”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종교라고 해도 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박대표는 설명했다. 주지는 예산도 유능하게 관리해야 하고 절이란 종교 조직에서 파생되는 이권과 영향력도 잘 다뤄야 한다며, 주지라는 자리는 위대한 종교 구도자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정치적이지 않다'는 이들의 위선

▲ 박상훈 대표의 저서 <정치의 발견>.    
조직을 운영할 때, 대표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권력이 만들어지고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에 ‘조직은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정치도 그렇다”며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 정치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열 명 정도를 대상으로 하면 선의를 지니고 일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국가는 적어도 몇 만 명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래서 정치를 할 때는 반드시 권력을 제도화해서 일해야 하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효율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박 대표는 “모든 사람은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불평등하게 태어나기 때문에 이런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것이 정치”라며 “이것은 권력을 통해 이뤄진다”고 말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를 둘러싼 음모와 질투,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 권력은 이런 악마적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하며 "정치란 좋은 신념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한편으로 악마와 무기를 거래하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진보정치가들을 만났던 경험을 소개했다. 그들은 자신이 지켰던 선의가 정치세계에서 깨지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난 권력적이지 않고 정치적이지도 않다”며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진보정치가들이 자신도 정치가이면서 정치적인 것을 부정하는 태도는 위선이라 꼬집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성과를 내고 돌아오던 한 함선이 난파됐습니다. 당시 페리클레스의 아들을 포함한 장군들이 배를 구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가 민회에서 논란이 됐지요. 평소 페리클레스를 적대시하던 파벌들은 검정색 망자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시켜 퍼포먼스를 꾸몄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충분히 구조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됐다"고 대중 앞에서 얘기했고, 이에 분노한 사람들은 페리클레스의 아들을 포함한 6명의 장군을 처형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박 대표는 페리클레스의 아들이 민주정치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일화를 소개하며, 민주정치를 꽃 피운 고대 아테네에서도 폭력과 음모는 존재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진보정치가들이 이런 정치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권력이 갖는 악마적 요소를 견제하면서 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개선하려는 노력이 정치가의 사명이라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 진보정치가들은 이것이 부족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정치현실을 인정하고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아테네가 직접민주주의로 정치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특별한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노예와 여성이 생산을 맡아 남성 시민들이 정치에 집중할 여유가 있었다는 점과 인구가 1만 정도밖에 안 되는 소수시민사회였다는 점입니다. 또 해상권을 둘러싸고 주변국과 끊임없이 전쟁을 하는 제국주의 국가였던 점도 들 수 있습니다.”

직접민주주의는 참여 기반일 뿐 ‘대의제’가 바람직

▲ 박상훈 대표. ⓒ 김승태
박 대표는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를 예로 들며 대의제를 설명했다. 그는 요즘 직접 민주주의를 하자는 사람이 많은데 "직접민주주의는 아테네처럼 특별한 조건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아테네와 달리 계급이 없고 인구도 훨씬 많기 때문에 직접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직접성의 논리만으로 정치를 하면 앞서 말한 페리클레스의 아들이 겪었던 사건처럼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그릇된 결정으로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정한 나이의 모든 사람에게 직업과 소득을 불문하고 시민권을 주는 지금의 제도는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 대의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의제를 제대로 하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선거를 잘 작동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하부기관의 참여적 기반을 좋게 만드는 요소로 생각하자며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투표를 통해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야구의 열기' 정치에도 필요해

그는 요즘 야구 열기에 빗대어 한국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한 시즌 야구 관람객은 5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야구의 사회적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정치는 단 한 번 게임에 3000만 명이 움직입니다. 그 정치가 잘 되었을 경우 사람들이 느낄 행복은 야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클 겁니다.”

시민들이 야구와 달리 정치라는 게임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박 대표는 "시민들이 자신의 투표행위가 가져온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강남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투표율이 높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강남 같은 부자 동네일수록 타 지역보다 투표율과 정치참여율이 높은 것은, 부자들이 정치 게임에서 자신이 원하던 행복을 얻은 적이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 없다고 말하기 전에 정치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야구처럼 정치도 많은 사람들의 열기가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며, 정치인들이 먼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정치를 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두식, 전중환, 박상훈, 구갑우, 김동춘, 박명림, 홍기빈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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