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납 ‘포식자’ 끄덕 없고 대기업 독식 반성 없는 사회
[두런두런경제] 박경철 제정임 조용래의 생생토크

박경철(KBS 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주말을 앞두고 엄청난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일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 오늘은 우선 한국경제신문 정인설 기자 연결해서 이 뉴스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인명피해가 엄청나다는 참담한 소식인데요, 기업들도 직격탄을 맞았겠죠?

정인설(한국경제신문 기자): 맞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일본 동북지역엔 원전과 공장들이 많이 몰려있는데요. 이번 지진으로 원전에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일부 원전에는 발전기가 고장 나면서 방사능 유출 우려도 있고요. 30개가 넘는 화력, 수력발전소도 다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일본 동북지방은 해안과 맞닿아 있어 석유화학, 철강, 금속 공장들이 많은데요, 정유시설과 철강공장들도 대부분 멈췄습니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언제 복구가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니나 도요타 같은 일본 대기업들도 지진의 직접 영향권에 있는 지역은 대부분 공장을 세웠습니다.

박: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대부분은 장 마감을 앞두고 있었던 시간이라 크게 반영된 것 같지는 않더군요.

정: 네, 일본 닛케이 평균 주가가 마감시간을 10여분 앞두고 이 지진 소식이 알려지면서 1.72% 하락했습니다. 엔화가치도 급락하면서 엔·달러 환율이 1달러 당 82.29엔으로 2월 22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다른 아시아 증시도 일본 닛케이 주가만큼은 아니지만 대부분 하락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박: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영향을 거론한다는 게 심정적으로 마땅치 않지만, 우리 경제와 산업에 미칠 영향을 안 따져볼 수 없겠죠?

정: 당장 우리는 일본 부품·소재를 수출하기도 하고 수입하기도 하는데 관련되는 모든 업체들이 피해를 입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부품·소재 수입량의 21.5%가 일본에서 들어오죠. 자동차, 철강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일본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반도체, 자동차,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일정 부분 반사이익을 누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도시바 등 일본 반도체 업체들의 생산라인 복구가 금방 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엔화가 약세를 보인다면 우리 수출 가격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박: 일본 경제나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요?

정: 일본은 지금도 재정적자가 심각한데, 피해 복구 과정에서 재정적자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기 충격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글로벌 금융시장이나 세계 경제에 끼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역사적으로 한 나라의 지진과 글로벌 증시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일본의 경제규모가 중국에 밀려서 세계 3위로 떨어지긴 했어도 일본의 경제 복구, 인프라 복구가 늦어지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고요, 사태가 장기화 되면 일본의 부품·소재를 사용하는 산업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개인 유린하는 권력,  엄중 처벌 필요

: 이번 주 한국경제를 돌아보는 생생토크 이어가겠습니다. 국민일보 조용래 논설위원,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정임 교수 두 분 나오셨습니다. 이번 주는 일단 사회면에서 장자연 편지, 상하이 스캔들 등 ‘19금’ 뉴스가 많았죠?

조용래(국민일보 논설위원):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 주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단기간에 압축 성장을 한 우리가 선진국 문턱에 왔다고 뻐기고 있지만 ‘우리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구나’를 보여준 낯 뜨거운 뉴스들이었습니다.

박: 제 교수님, ‘개그콘서트’를 보면 어떤 여자 개그맨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는 말을 하는데, 장자연 사건을 보면 정말 그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건 수사 들어가자마자 ‘편지 조작설’이 나와요. 이런 걸 흘리기 시작하면 설사 공정한 수사를 해도 의혹의 시선이 남지 않겠습니까?

제정임(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교수): 편지가 조작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 사건의 핵심은 여성 연기자가 ‘성상납’이라는 먹이사슬의 희생양이 돼 착취당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먹이사슬의 ‘포식자’들, 장씨가 편지에 ‘악마들’이라고 표현한 유력인사들의 정체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징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내 가족 중 누군가가 이런 일을 당했고 공권력이 두루뭉술하게 묻어버려 아무도 징벌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무기력함과 분노를 느낄까요? 보통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이런 것들이 쌓여 있다가 2년 만에 다시 나온 것인데, 만약에 이번에도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이런저런 핑계로 묻혀버린다면 경찰과 검찰에 대한 불신은 회복되기 어려운 지경이 될 것입니다.

박: 말씀하신 것처럼 진짜 중요한 논점은 연약한 한 사회적 인간을 어떤 형태든 권력을 가진 쪽에서 유린했다는 것이고, 이런 사회적 구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걸 어떻게 깨고 청소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없는 것 같아요.

조: 상하이 스캔들 뿐 아니라 몽골대사도 부적절한 관계로 문제를 일으킨 사실이 드러났죠. 사임을 했습니다만 외교부가 이런 문제를 쉬쉬 덮고 가려했다가 발각됐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비리가 있어도 대충 쉬쉬하고 덮고 가려는 속성이 굉장히 팽만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시스템 차원에서도 감독이나 감시, 상호견제가 필요하겠지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 특히 상층 엘리트층에 속한 사람들이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앞장서서 해줘야 합니다.

제: 저는 어느 사회, 어느 조직에서나 부도덕한 소수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런 부도덕 행위가 드러났을 때 그 조직, 혹은 사회가 어떻게 처리하느냐 라고 봅니다. 건강한 사회, 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썩은 상처를 외과적으로 도려내듯 엄벌에 처해서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저런 짓을 하면 안 되겠구나’ ‘자칫하면 내 인생 망가지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장자연 사건처럼 한 인생을 유린하고도 돈과 권력이 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넘어가는 경우들을 거듭해서 보여준다면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할 순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온갖 문제와 부조리를 겪고, 지금 이 시간에도 힘없고 돈 없는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이런 일에 대한 사후처리, 조직과 사회에서의 제재와 징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집권층, 사법부, 검찰과 경찰, 감시 역할을 맡은 언론이 이런 사실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대기업의 모범 보여줄 순 없었을까

박: 경제 분야에서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예전에 ‘경제는 이류, 정치는 삼류’라고 했다가 그 때만해도 정치권력이 자본을 압도할 때라 금방 꼬리를 내렸는데, 뉴스를 보니까 이번에는 굉장히 당당하고 압도적인 분위기에서 비판적인 얘기를 하더군요. ‘이익공유제’에 대해서는 공산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이런 식의 색깔론으로 몰기도 했죠?

조: 일단 ‘한국 재계가 참 많이 컸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웃음) 지난 95년도에는 그런 말을 했다가 화들짝 놀라서 아니라고 했는데 말이죠. 물론 초과이익공유제 자체는 제안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먼저 하도급과정의 불공정을 해결해야 하는데, 대뜸 결과를 가지고 이익을 쪼개자고 하는 식의 이야기는 조금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걸 가지고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못 배웠느니 한 것은 문제가 있죠. 경제학 교과서 공부를 잘 안 하신 것 같아요. 왜냐면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해서 나오거든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다면 이익을 사회로 환원시킨다는 차원에서 필요한 부분이고요. 과정이나 방법은 별개 문제입니다만, 이 논의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제: 재벌 회장님이니, ‘돈 번 것을 나누자’는 이야기에 기분 나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걸 표현한 방식이 잘못됐다고 봅니다. ‘기업인 가문에 태어나서 평생 기업가로 살았지만 이익공유제라는 말은 교과서에서도 못 배웠고 처음 들어봤다’는 얘기를 했는데 정말 모른다면 알아봐야 하는 것이죠. ‘사회주의인지 공산주의인지, 내가 모르는 것을 가지고 떠드는 건 안 된다’는 식의 오만한 태도는 유감스럽습니다. 이 회장 정도의 위치에 있는 기업인이라면 이익공유제가 거론될 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균형, 불공정이 심각하고 중소기업의 피해가 큰 상황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날 마침 동반성장 얘기를 하려고 기업인들이 모인 거니까, ‘이익공유제는 마음에 안 들어도, 우리 같은 대기업들이 솔선수범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자’하는 태도를 보여줬더라면 멋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 또 한 가지, 현재의 경제정책에 대해 “글쎄요, 뭐 낙제는 아니죠”라고 했죠. 정부가 처음에 ‘기업 프렌들리’로 간다고 했다가 ‘친 서민’ ‘공정사회’를 얘기하니까 오해와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논평과는 좀 다른 측면의 지적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박: 얼마 전에 우리 사회에서 ‘정교(政敎)분리’가 화두가 됐었는데, 이번엔 ‘정경(政經)분리’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자, 이번 주에 또 어떤 뉴스 주목하셨습니까?

조: 우선 누더기가 된 세무검증제 얘깁니다. 작년 세제개편안을 마련할 때 정부가 ‘이것만은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크게 높였던 건데 법안 만드는 과정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버렸습니다. 두 번째는 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에 대해 여야가 타협점을 찾았다는 뉴스입니다. 세 번째는 기준금리가 두 달 만에 0.25% 올랐다는 소식입니다.

제: 저도 기준금리 인상과 저축은행 구조조정은 같은 내용이고요, 농협의 금융업무와 농축산유통 업무를 분리하는 내용의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여전히 반발이 있다는 소식을 꼽아봤습니다.

박: 저는 세 분의 인물을 꼽아봤습니다. 첫 번째는 (산업은행 총재로 내정된)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두 번째는 이건희 회장, 세 번째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이렇게 세 분입니다. 세 분의 이름만 들어도 이번 주 뉴스가 깨끗이 정리되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 중 김중수 총재와 관련된 기준금리 이야기를 해볼까요?

기준금리 인상, 저소득층 위한 세밀한 배려 필요

조: 이번에 올린 것 자체는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김중수 총재가 ‘베이비 스텝으로 간다’ 즉 조금씩 올리겠다고 했는데 그런 과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이 성급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물가상승의 주원인이 국제원유가 상승이나 농산물 작황 등 공급 측면에 있는데 수요 측면에서 문제를 풀어간다는 건 엉뚱하다, 경기 회복세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죠. 하지만 올해 물가관리목표가 3±1% 인데, 이미 2월에 4.5%가 됐거든요. 공급측면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수요 측면으로의 전이, 즉 물가상승 기대감의 확산이라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금리를 올리는 게 맞다고 봅니다. 사실은 지난해에 선제적으로 올렸어야 하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조금 뒤늦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 제 교수님, 요즘 한국은행을 두고 ‘기획재정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냉소적 표현도 쓰지 않습니까? 독립성을 포기하고 한국은행이 지금처럼 기획재정부와 발 맞춰서 나가는 게 좋다고 보십니까?

제: 곤란하다고 생각하죠. 한국은행이 과거부터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 소리를 들었는데 그건 굉장히 불명예스러운 겁니다. 그런 얘기를 안 들으려고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독립성을 위한 노력을 굉장히 많이 해왔고요. 김중수 총재 부임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위상이 올라갔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김 총재가 대통령 측근에서 보좌를 하다가 왔고, 어떻게 보면 기획재정부 장관보다 더 열심히 성장을 걱정하고, 정부 실적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서, 한국은행의 본분이라 할 수 있는 물가안정에 대해서는 과연 고민을 하는지 의심할 만한 행보를 보인 게 사실이죠. 조 위원께서 이번 금리인상이 뒤늦은 감이 있다고 하셨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박 원장님이 늘 말씀하시는 재밌는 표현 중에 ‘한국은행은 문지방에 앉아 있다가 문 열 때 빨리 열고 닫아야 할 때 빨리 닫아야 한다’는 게 있는데, 필요할 때 금리를 신속하게 올리고 내리는 대응이 제대로 되지 않아 우리가 지금 물가불안을 엄청나게 겪고 있는 것이죠. 공급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지만 수요 측의 압력을 보여주는 근원 인플레이션도 이미 높아졌거든요. 그 피해를 누가 당하고 있냐면 소득은 똑같은데 더 많은 반찬 값 내야하고 더 높은 가격 지불해야 하는 서민들입니다. 물가안정이라는 게 민생을 위해서도, 거시경제를 위해서도 중요한 건데, 그런 임무를 맡은 한국은행 총재가 본분을 망각한 듯한 행보를 보인 것은 유감스럽습니다. 물가불안이 심상치 않으니 이제는 물가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모습인데, 조금 더 일관되게 본연의 의무에 충실해줬으면 합니다.

박: 조 위원님, 한은총재께서 하신 걱정은 생활지도교사가 분식점 매출 걱정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웃음) 이제 한은이 다시 스텝을 조이고 대통령까지 물가안정을 강조하는데, 앞으로 물가 쪽에 ‘올인’하게 될 것으로 보십니까?

조: 국민경제 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를 국정의 최우선 순위에 둔다’고 얘기했는데 그 다음에 청와대 쪽에서 ‘5% 성장과 3% 물가를 포기한 건 아니다’하는 말이 나왔어요. 물가가 그 정도로 문제가 된다면 성장 목표는 어디까지나 목표치니까 그걸 지향하되 물가까지 자극시켜가면서 하기엔 곤란하다는 쪽으로 가는 게 당연한 방책인데요, 엇갈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걸 보면 아직까지 두 마리 토끼를 계속 쫓겠다는 의지가 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 제 교수님, 그동안 가계부채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자부담이 폭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가계부채 때문에 금리를 못 올리고, 금리가 낮으니까 가계부채는 또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져오지 않았습니까?

제: 그렇습니다. 금리를 올리자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가계부채가 너무 많아 금리를 올리면 가계가 파산한다’는 논리가 나왔죠. 그러나 이 논의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는 숫자로 이미 드러났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저금리 환경에서 가계부채가 더 늘어났고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습니다. 결국 낮은 금리 때문에 가계부채가 더 악화됐다는 것이죠. 그러니 이제 그런 얘기는 더 이상 안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분간 금리가 올라가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 원리금상환이 걱정되면 부채를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중산층 중에 아파트 한 채를 투자용으로 구입했다가 어쩔 수 없이 소유하고 있는 분들은 이자부담이 커져 큰 문제에 부닥치기 전에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처분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집을 더 살 정도의 여유는 없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대출을 많이 쓴 가정도 예금통장, 보험계좌, 대출계약서 등을 펼쳐 놓고 고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금이나 보험을 깨서라도 갚을 수 있다면 대출원금을 줄이는 게 지혜로운 선택이 되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사실은 빚을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어려운 가정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정부와 은행권에서 대출만기를 조정해준다든지, 금리에 혜택을 준다든지, 서민대출을 활성화한다든지 대책을 세워줄 필요가 있습니다.

박: 저소득층에 대한 파격적인 대책이 없으면 완전히 붕괴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 같습니다.

조: 김중수 한은 총재는 “가계부채에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소득 4분위 또는 5분위, 즉 상위소득계층의 대출이 많기 때문에 금리가 조금 오른다고 해서 크게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죠. 하지만 5천 만 원, 1억 원을 빌린 5분위 소득계층보다 5백 만 원을 빌린 1분위 소득계층의 문제가 훨씬 파괴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세밀한 배려가 없어 섭섭했습니다.

박: 가계부채에 대한 정부의 접근방식이 ‘시스템의 안정성’에만 포커스를 두니까, 즉 은행이 자빠지느냐 안 자빠지느냐 이것만 보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실제로는 대한민국 20%의 삶이 붕괴되는 심각한 문제를 외면하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성만 논의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저는 가끔 ‘우리나라에서 정책을 담당하는 분들은 주변에 너무 부자 친구만 있나보다’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말로는 ‘친 서민’이라고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실제로 만난 적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현장을 뛰면서 서민들을 위해 현실적으로 필요하고 가능한 정책을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박: 제 주변에는 진짜 부자 친구들도 많은데 그 친구들은 또 사회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걱정을 하더군요. 친구도 친구 나름인 것 같습니다. (웃음) 화제를 돌려서 농협법 개정이 있는데요. 이제까진 농협이 정말 농민을 위한 곳이었나, 회의적이었는데 앞으로는 달라질까요?

농협개편, 농축산유통업 살리는 방향으로

조: 그간의 농협을 보면, ‘왝더독(Wag the dog)’이란 정치영화가 떠오는데요.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얘기죠. 농협이 출발할 때는 판매, 유통, 농민교육,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했는데 규모가 커지다 보니 신용 사업에 뛰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신용사업이 주가 되고 경제사업은 위축돼 농헙중앙회에서 경제부문을 담당하는 직원이 14~15%밖에 안 됩니다. 그러다보니 신용 쪽에 있는 사람들은 ‘농협’이라고 하는 부분에 발목이 잡혀 금융활동에 제약을 받고, 경제는 경제대로 위축되는 문제가 있었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신경분리’, 즉 신용부분과 경제부분을 분리하자는 얘깁니다. 신용부분은 농협 테두리를 벗어나 하나의 본격적인 금융기관으로 재탄생할 계기를 마련한 것이고요. 그런데 과연 금융부분은 이렇게 자리를 찾아간다하더라도 경제부분이 본래 목적대로 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일단 자본의 30%를 경제부분에 주고 부족한 부분은 정부가 채운다는 논리인데 선후관계가 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정부가 자꾸 끼어드는 것도 옳지 않고, 반반은 아니더라도 6 대 4 정도는 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경제부문이 본래 농협의 취지에 맞고 그것 때문에 설립된 것이거든요. 하지만 농협법에서는 금융부문이 우선시됩니다. 그런 면에서 과연 경제부문이 제대로 돌아갈 것인지 걱정이 됩니다.

제: 농민단체들이 반발하는 요지도 금융위주로 간다는 것이 가장 크더군요. 특히 나중에 민영화 수순을 밟아서 결국 외국투기자본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고요.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것도 농민단체는 농협연합회가 ‘컨트롤 타워’가 되어 농민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업을 하는 것인데, 지주회사체제로 가면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갈 우려가 있다는 것이죠. 원래는 농민들에게 제값을 주고 소비자들에게 싼값으로 농축산물을 제공하자는 취지인데, 지주회사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농민에게는 싸게 사서 소비자들에게 비싸게 팔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정부 개정안의 취지가 원래 경제 쪽, 농축산유통사업을 살리자는 취지이니 농민단체가 제기하는 이런저런 걱정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제도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좀 더 충실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박: 오늘도 두 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이 기사는 KBS 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됐습니다. 일부 내용은 분량 상 생략됐습니다. 방송 내용은 3월 12일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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