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안세희

▲ 안세희 기자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인 2009년 독일인들은 도미노를 비롯한  ‘벽 붕괴 재현 행사’ 등을 벌이며 통일을 대대적으로 자축했다. 일부에선 베를린 장벽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고 말한다.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며 냉전이 종식된 뒤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는 것이다. 40만 명이 넘는 동독인이 탈출을 감행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장벽이다. 결코 쉽게 무너진 것은 아니며, 통일의 배경에는 서독의 전략 아래 진행된 활발한 동서 교류가 있었다.

‘자유를 산다’는 뜻의 ‘프라이카우프(Freikauf)’는 서독이 동독의 반체제 인사를 석방하기 위해 추진한 방식이다. 정치범 1명당 서독 1인당 국민소득의 5~12배까지 지급하며 실시한 프라이카우프는 자국민 보호는 물론 동독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기분 상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양국이 전면적으로 나서진 않았고, 언론의 협조로 철저히 비밀을 유지한 채 서독 교회와 동독 비밀경찰이 주축이 됐다. 엄연히 분단된 상황이었지만 그런 방식으로 교류를 지속했다. 알고도 눈감아주고, 내미는 손길은 못이기는 척 잡으며 신뢰가 두터워졌다. 독일 통일은 그런 노력의 결실이었다.

지난 두 정부 10년간 우리 대북 정책은 화해국면이었다. 안보체감지수는 높은 편이었고, 분단 이후 가장 평화로운 관계가 유지되는 것 같았다. 각종 물자 지원이 이뤄졌고 관광길이 열렸으며 정상회담이 진행됐다. 50년간 굳어진 거대한 두 체제가 융화되기 위해서는 문화적, 경제적 교류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남는 것은 무력 통일, 곧 전쟁에 의한 흡수통일이기 때문이다. 교류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신뢰 구축과 일관된 원칙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비핵․개방․3000이란 전략 아래 대북정책 방향을 급선회했다. 강경파가 득세했고, 안보를 보수세력 결집의 도구로 삼았다. 신뢰를 잃었음은 물론 일관성조차 사라졌다. 결국 끌어안아야 할 북한이라면, 우리가 팔을 벌려야 하지 않을까? 연평도 사건은 불안해진 남북관계의 악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물러설 곳 없는 북한과 그들을 압박하는 남한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인가?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전쟁으로 자존심을 지킬 것인가, 대화와 포용으로 국민들을 지킬 것인가? 그러나 며칠 전 남북군사실무회담도 기 싸움만 벌이다가 결렬됐다. 잔설이 녹아 내리면서 자연은 봄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반도에 진짜 햇볕이 들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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