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안세희
‘자유를 산다’는 뜻의 ‘프라이카우프(Freikauf)’는 서독이 동독의 반체제 인사를 석방하기 위해 추진한 방식이다. 정치범 1명당 서독 1인당 국민소득의 5~12배까지 지급하며 실시한 프라이카우프는 자국민 보호는 물론 동독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기분 상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양국이 전면적으로 나서진 않았고, 언론의 협조로 철저히 비밀을 유지한 채 서독 교회와 동독 비밀경찰이 주축이 됐다. 엄연히 분단된 상황이었지만 그런 방식으로 교류를 지속했다. 알고도 눈감아주고, 내미는 손길은 못이기는 척 잡으며 신뢰가 두터워졌다. 독일 통일은 그런 노력의 결실이었다.
지난 두 정부 10년간 우리 대북 정책은 화해국면이었다. 안보체감지수는 높은 편이었고, 분단 이후 가장 평화로운 관계가 유지되는 것 같았다. 각종 물자 지원이 이뤄졌고 관광길이 열렸으며 정상회담이 진행됐다. 50년간 굳어진 거대한 두 체제가 융화되기 위해서는 문화적, 경제적 교류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남는 것은 무력 통일, 곧 전쟁에 의한 흡수통일이기 때문이다. 교류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신뢰 구축과 일관된 원칙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비핵․개방․3000이란 전략 아래 대북정책 방향을 급선회했다. 강경파가 득세했고, 안보를 보수세력 결집의 도구로 삼았다. 신뢰를 잃었음은 물론 일관성조차 사라졌다. 결국 끌어안아야 할 북한이라면, 우리가 팔을 벌려야 하지 않을까? 연평도 사건은 불안해진 남북관계의 악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물러설 곳 없는 북한과 그들을 압박하는 남한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인가?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전쟁으로 자존심을 지킬 것인가, 대화와 포용으로 국민들을 지킬 것인가? 그러나 며칠 전 남북군사실무회담도 기 싸움만 벌이다가 결렬됐다. 잔설이 녹아 내리면서 자연은 봄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반도에 진짜 햇볕이 들 날은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