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강등 부른 국가부채 ‘복지지출 탓’은 견강부회
[두런두런경제] 박경철 제정임 이성철의 생생토크

박경철(KBS 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올 겨울은 ‘삼한사온(三寒四溫)’ 대신  ‘삼한사빙(三寒四氷)’이란 신조어가 나올 만큼 혹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도 추우니까 ‘감방이 낫겠다’며 자수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하고, 홀로 사는 어르신이 휴대용 렌지에 변을 당한 일도 있고요. 저소득층 입장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게 추위 아니겠습니까? 

이성철(한국일보 경제부장): 네, 맞습니다. 날씨까지도 서민들을 안 도와준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지금 서민 경제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구제역은 말할 것도 없고 물가, 전셋값, 금리까지 올라가고요. 지표와는 다르게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굉장히 어려운데, 어려운 분들에겐 이런 강추위가 정말 어떤 것보다 더 위협적일 것입니다.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얼마 전엔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사람이 청소때문에 밖으로 밀려났다가 동사했다는 슬픈 소식도 있었죠. 독거노인 등 없는 분들이 사는 집일수록 단열도 안 되고 더 춥지 않습니까? 달랑 전기장판 하나에 의존해서 사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의 생활비는 대부분 전기료로 나간다고 합니다. 정부가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하고, 이웃의 손길도 좀 더 필요한 계절인 것 같습니다.

박: 추우니까 구제역이 더 창궐하고 있는데, ‘설날에 고향방문을 자제해라’는 담화문까지 발표가 됐어요.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이건 지켜야 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제: 구제역이 확산되지 않도록 협조할 부분은 해야겠죠. 이 무렵이면 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들 돌아오기를 고향 부모님들이 손꼽아 기다리는데, 이번 설날엔 그런 기쁨을 포기하는 가정이 많을 것 같습니다. 최근 보도를 보면 초동단계에서 대처를 잘 못하는 바람에 구제역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고 하는데, 우선 구제역을 잡는 게 시급하겠습니다만 철저하게 원인을 분석해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시스템을 정비해야 하겠습니다.

이: 가장 기초적인 매뉴얼이 없었거든요. 구제역이 터지면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틀도 안 짜여 있었고, 교육도 안 되어 있었고요. 소는 잃었지만 뒤늦게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하는데요, 가장 중요한 건 방역 시스템과 매뉴얼을 철저히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박: 저는 집이 안동이라 초동단계에서 바로 보지 않았습니까. ‘참 큰 일 났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길목을 막고 방역하고 있는데, 사실은 이미 전국으로 간 상태였기 때문이죠. 그럼 차량 길목 막고 따라다니면서 매몰하는 게 의미가 없고, 이동하는 경로를 파악해서 미리 그 쪽에 사전차단을 해야 되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를 초기에 굉장히 많이 했는데 이상하게 안 먹히더군요. 바이러스성 질환이 갖는 전염성의 폭발력에 대해서 다들 너무 방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건 1월 마지막 준데요, 한 주간 어떤 이슈에 주목하셨습니까? 

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서 연두교서를 발표 했습니다. 경제부분에서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에게는 이런 의지가 당연한 것이겠습니다만, 무역을 놓고 경쟁하는 국가들에게는 일종의 위협으로 들릴 수 있는 얘기였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대비 6.1% 증가해서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수출제조업만 호황을 누렸을 뿐 농림어업을 포함한 일부 산업엔 깊은 그늘이 졌고, 물가 상승으로 서민 살림은 더 어려워졌다는 부분을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용카드 회사들이 공격 경영에 나서면서 카드론이 급증하고 있는데요,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계층이 카드를 만들고, 대출을 쓰는 일이 늘어 가계부채 악화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뉴스에 주목했습니다.

 
이: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경제 전망을 대폭적으로 상향조정했습니다.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서 첫 번째 뉴스로 꼽아봤습니다. 두 번째는 일본의 신용등급이 마침내 강등됐다는 소식입니다. 마지막으로 곧 시작될 은행권의 인사회오리, 과연 최고경영자(CEO)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또 관치(官治)가 이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가 주목됩니다. 

수출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내수산업은 여전히 어려워

박: 저는 우리금융 이팔성 회장이 회장직에 재출마 할 거냐는 질문에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 나보다 훨씬 윗줄”이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 시사하는 바가 커서 꼽았습니다. 그리고 국가부채가 100조원 늘어났다고 발표했는데, 이게 코하고 입까지만 내놓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고요. 세 번째는 신용카드 문제입니다. 자, 우선 경제성장률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지난 해 성장률이 6.1%로 8년 만에 최고치라고 하죠. 물론 2009년 성장률이 0.2%였기 때문에 기저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성적표상의 점수는 훌륭하군요. 

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에서 터키에 이어서 두 번째로 높은 성장률입니다. 점수도 좋고 등수도 높은 거죠. 우리나라 GDP 성장률은 지난 2002년에 7.2%를 기록한 후 악화돼 왔고, 특히 글로벌금융위기의 타격으로 2008년 2.3%, 2009년 0.2%로 크게 떨어졌는데, 기저효과도 있겠습니다만 6.1% 성장이면 상당한 회복세라고 하겠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도 2010년에 2만 5백 달러 정도로 3년 만에 2만 달러 대를 회복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산업별로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제조업은 수출 호조로 14% 정도 성장했어요. 그런데 많은 자영업자들이 일하고 있는 서비스업은 3.5% 성장, 농림어업은 마이너스 4.9%입니다. 결국 수출대기업들은 잘됐지만 내수중심의 중소기업, 자영업자, 농어민들은 어려웠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박: 경제성적표와 체감경기의 괴리가 큰데, 왜 이렇습니까?

이: 제 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 그대로입니다. 대부분의 성장이 수출대기업 위주로 가다보니까 대다수 중소기업들, 자영업자들이 고성장의 과실을 나눠가질 수 없는 것이죠. 대기업들, 또 대기업에 있는 근로자들, 일부 금융회사들, 이런 쪽으로만 과실이 집중됐습니다. 가장 어려운 분이 자영업자들인데요.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들은 일단 수적으로 많습니다. 대부분 직장에 다니다가 잘 안됐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이 자영업입니다. 여기서마저 안 된다면 최빈곤층으로 전락하거나 재기가 힘든 분들이 많거든요. 고용형태도 ‘무급가족종사자’, 즉 별도 종업원 없이 가족들끼리 일하는 형태가 많고요. 취업자와 실업자의 중간지대에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박: 물가상승은 그야말로 여기에 기름을 붓는 건데요. 가만히 앉아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니까요.

제: 말씀하신 것처럼 서민생활에 물가 오름세가 가장 큰 위협입니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장바구니 중심으로 생필품 가격이 무섭게 올라서 서민들 살림이 쪼들립니다. 지금 특히 전셋값 문제가 큰 일 아닙니까. 일단 전셋집 구하기도 어렵고 몇 천만 원씩 올려달라는 전셋값을 마련하기도 어렵고, 그러다보니 부족한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하자는 가구도 많아서 갑자기 몇 십만 원씩 월세까지 내야하는 집들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전세금과 주택자금 때문에 대출 쓴 집들은 금리 오르면서 원리금 상환 압박이 커지게 됐고요. 그러면 취직 못하던 아들이 취직을 한다든지, 아니면 월급이 오르든지 소득이 개선되면 좋은데, 그런 전망은 별로 밝지 않습니다. 대기업들은 자본재 위주로 투자를 하기 때문에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있거든요. 수출대기업이 돈 많이 벌어 투자한다고 해야 일자리가 잘 안 생기거나, 오히려 노동 절약적인 투자로 일자리가 줄기도 합니다.

동반성장, 상생협력 위한 시스템 구축 절실

박: 이부장님, 기본적으로 ‘아랫목 이론’이 적용이 되려면 구들장이 윗목까지 연결돼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구들장에 아랫목에만 있고 위에는 전부다 흙으로 덮어놓았다면 들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글쎄요, 경제의 틀을 완전히 새로 짜면 편하겠습니다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거고요. 정부가 계속 상생협력, 동반성장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방향으로 가야합니다. 대기업들의 온정이라든가 자선, 개과천선만으로는 어려운거고요 제도, 시스템을 통해 ‘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일단 당장 시급한 건 일자리와 물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자리 문제가 여전히 힘든 과제로 남아있고, 특히 작년 이후에 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물가가 폭등하고 있기 때문에 두고두고 비판을 받아야할 것 같습니다.

제: 구들장이 잘못 깔려있는데요, 그래서 사실은 지금 성장에 목을 맬 때가 아니고 경제구조 개혁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지나치게 수출 대기업 위주로 경제 정책이 구조화되어 있는 것을 중소기업에게 실질적인 지원이 가는 방향으로 바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산업용 전기요금만 봐도 대기업들에게 과도한 혜택이 가는데, 연구개발지원 등 제도 구석구석에 이런 부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제는 그런 지원들을 중소기업 쪽으로 대거 돌려야 합니다. 또 하나는 복지의 확충입니다. 복지와 관련해서 지금 많은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데, 생산적인 논의가 더 활성화 되어야 합니다. 아까 이부장님께서 자영업자들 얘기를 하셨습니다만 정말 마지노선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 많은데 거기서 실패하면 극빈층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극빈층으로 떨어지면 그 순간 아이들 교육이나 보육, 의료 등 여러 면에서 대책이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사회 전체적으로 안전망을 충실히 깔아놓는 것이 기업이나 개인이 좀 더 쉽게 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복지를 어느 정도로 확충할 것인가, 세금 부담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등에 대해 건전한 토론과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박: 제 교수님이 지금 제 오른쪽에 앉아 계신데, 이런 문제를 얘기하면 자꾸 오른쪽, 왼쪽의 이념 문제로 구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문제죠. 

이: 어려운 말로 하면 ‘선택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 하는 건데요. 한 가지 재밌는 현상은 한나라당에서는 부자들을 차별하자고 주장하고, 민주당에서는 차별하지 말고 다 나눠줘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논쟁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게 다행인데, 만일 선거가 있는 내년에 이런 논쟁이 시작됐다면 한 발자국도 진전이 안 될 것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무상 3종 세트’라고 해서 무상보육, 무상급식, 무상의료, 이 세 가지를 놓고 포퓰리즘이냐 아니냐 논란이 일고 있는데 지금 시점에서 가장 급한 게 뭔지 따져보고 더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을 우선 구출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카드론 급증 2차 카드대란 우려

박: ‘이런 논쟁을 하면 나라 잡아먹는다’가 아니라 오히려 적절한 시점에 건강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이번에는 카드론 이야기로 가 볼까요. 카드론 시장이 최근 급성장 했다고 하는데요, 상황이 어떻습니까?

이: 2010년 3분기까지, 1월부터 9월이죠, 카드론이 17조 9천억 원,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 40%가량 늘어났다고 합니다. 경기회복에 따라 그렇게 된 부분도 있겠지만, 카드론은 여유 있는 분들은 안 쓰거든요.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게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할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 카드를 누가 쓰느냐, 이 부분인데요. 실제 카드론을 보면 저소득층이 많이 찾는데 이렇게 대출이 급증하면 카드대란 때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제: 그렇습니다. 신용등급을 1등급에서 10등급까지 분류 하는데, 7등급에서 10등급까지 하위등급에서 카드론이 늘고 있습니다. 보통 7, 8등급은 ‘주의등급’이라 해서 단기연체가 있어 은행에선 돈을 안 빌려줍니다. 그리고 9, 10등급은 ‘위험등급’이라 해서 다른 금융권에서도 돈 빌리기 힘들죠. 그런데 7등급의 신용카드 발급건수가 지난해 3분기를 기준으로 18만 건, 전년 동기보다 60%나 늘었다고 합니다. 8등급도 같은 기간 50% 가까이 늘어났고요, 9, 10등급에서도 카드발급이 많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카드를 발급받아서 카드론을 빌려 쓰는데요, 이는 악성부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나 마찬가집니다. 더 심해지면 해당 가계의 파산은 물론이고, 금융회사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금리상승과 함께 이런 문제가 한꺼번에 터지면 악몽과 같은 카드대란이 또 벌어질 수 있는 겁니다.

박: 제 핸드폰에도 “신용과 상관없이 카드를 만들어 주겠습니다”하는 문자가 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금융당국이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가장 이상적인 것은 금융회사들이 자기 스스로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관리)를 하고, 스스로의 자산위험성에 대해서 내부 통제가 작동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모든 금융회사들이 자기 절제가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브프라임 사태 때도 그랬고, 우리나라 외환위기 때도 그랬고, 카드대란도 그렇죠. 그렇다면 당국이 틈을 메워줘야 하는데 항상 사후약방문식으로 문제가 터진 뒤에야 뒤늦게 경고등을 발동했고, 지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신용카드 아닙니까? 저신용자에게는 미소금융 같은 다른 방법으로 금융접근 기회를 줘야지, 신용카드를 쥐어준다는 건 그냥 돈을 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박: 길거리에 교통사고로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병원으로 데려가야 하는데 마약주사만 놓는다면 큰 일 나는 거죠. 가뜩이나 가계부채가 심각한데 말입니다.

제: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금리를 올릴 텐데요, 상환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결국 못 갚는다고 손 터는 경우가 많이 생길 것입니다. 2003년 카드대란을 부른 원인을 보면, 규제완화를 너무 했죠.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신용카드 소득공제도 확대해주고 길거리에서 신용카드를 마구잡이로 발급하는 게 허용됐거든요. 요즘은 왜 갑자기 카드론이  늘어나냐면 신용카드 회사들이 최근 수수료 인하 등으로 카드 영업에서 수익이 많이 안나니까 그걸 만회하기 위해 현금장사에 뛰어든 것입니다. 그래서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공격적으로 카드를 발급해주고 카드론을 쓰라고 하는 것이죠. 이런 부분은 금융당국이 제재를 했어야만 합니다. 뒤늦게 금융감독원이 ‘대손충당금 쌓는 비율을 높이겠다’고 나섰는데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지금이라도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이: 신용카드는 기본적으로 외상쿠폰입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외상쿠폰을 나누어 주는 것은 상환 불능자가 되라고 유혹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제: 가격정책에도 약탈적인 가격정책이 있는가 하면 대출에도 약탈적인 대출이 있어요. 저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면 못 갚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빌려줘서 쓰게 하는 것이죠. 나중에 자기는 구제금융 같은 것 받아서 손해 안 본다는 계산을 하고요. 그런 약탈적 대출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규제를 해야 합니다.

GDP 2배 일본 국채, 90%는 내국인이 채권자

박: 이제 일본 얘기를 잠깐 해야겠는데 이부장님, 일본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됐잖습니까. 원래 최고등급은 아니었습니다만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AA'에서 ’AA-'로 9년 만에 한 등급 떨어뜨렸죠?

이: 이번 신용등급 강등은 일본의 국가부채 문제가 그 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올해 일본의 국가부채가 1000조 엔으로 GDP 대비 비율이 2008년 174%에서 2011년 올해는 204%까지 올랐습니다. 최근에 사실상 파산선고를 받은 그리스나 아일랜드 보다 국가부채가 심각하다는 것이죠. 물론 이것으로 인해 일본 경제가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일본이 최근 힘을 잃어가고 다시 잃어버린 10년 얘기가 나오는 것도 다 국가부채 때문입니다.

박: 그런데 일본은 막대한 자산이 있기 때문에 국가부채가 일본을 망하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스 같은 나라와는 상황이 다르고, 경제의 동력이 떨어지는 정도죠.

제: 일본이 GDP 대비 200%나 되는 국가부채를 지고도 망하지 않는 이유는 부채의 90% 이상을 내국인이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외국에서 빚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나라 상황이 좀 심상치 않다 싶으면 외국인이 달러를 빼가니까 위기를 겪죠. 하지만 일본은 국가부채를 내국인들, 가계와 기업들이 갖고 있기 때문에 결국 내부의 문제지 외환위기를 당할 걱정은 없거든요. 물론 국가부채가 이렇게 많으면 성장의 동력을 떨어뜨리고 대외 신용도가 하락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낳는 게 사실입니다. 일본 재정위기의 원인을 살펴보면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일본의 국가부채가 복지지출 때문에 급증한 것은 아닙니다. 민주당 정권의 고등학교 무상교육, 아동보육수당 지급 등의 정책은 최근 1~2년 사이에 하려다가 제대로 시행하지도 못한 것입니다. 물론 노인 인구가 늘면서 복지지출이 증가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일본 재정위기의 근본 원인은 1990년 이후에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엄청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한 것에 있습니다.

박: 무인도와 무인도 사이에 다리를 놓기도 했죠.

제: 그렇습니다. 수천 건의 토목건설 프로젝트가 합리성 없이 일본 전역에서 진행됐습니다. 대표적으로 문제가 됐건 게 얀바댐 건설인데, 15년 이상 지어왔던 것을 하토야마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단했죠. 지금 재개를 놓고 다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길, 강, 바다에 쏟아 부은 돈이 경기부양효과는 별로 거두지 못하고 국가부채로 차곡차곡 쌓이게 된 것입니다. 일본의 복지지출이 재정위기를 낳았다는 것은 정말 부분적인 문제로 전체를 호도하는 것입니다.    

박: 일본에 가보니 시외버스터미널을 우리나라 공항처럼 지어놨더군요. 

이: 바로 그게 일본의 문제인데요. 일본은 국가부채를 내국인들이 갖고 있기 때문에 외환위기 같은 위협이 없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한 일이 없습니다. 계속 재정으로 틀어막은 것이죠. 일본의 낙후된 정치시스템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으려 하다보니 결국 이 지경까지 온 것입니다. ‘일본경제의 문제는 바로 일본정치’라는 말도 있죠. 일본 정치구조를 확 뜯어고치지 않는 한 일본경제의 구조개혁은 어렵고, 그러면 역시 일본경제는 동력을 조금씩 잃어가며 쇠약해진 호랑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박: 일본의 문제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일본의 부분적인 사례만을 이용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오늘 두 분 말씀을 들으면서 또 많은 숙제를 안고 가는 느낌입니다. 지금까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정임 교수, 한국일보 경제부 이성철 부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기사는 KBS 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되었습니다. 일부 내용은 분량 상 생략되었습니다. 방송 내용은 1월 29일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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