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가 혜택 실감하는 ‘보편적 복지’ 요구 분출
[두런두런경제] 홍기빈 제정임의 경제뉴스 따라잡기

홍기빈(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 요즘 ‘복지국가’ 얘기가 뉴스에 부쩍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산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고, 보편적 복지니 선별적 복지니 하는 논쟁도 벌어지는데요, 왜 지금 ‘복지’가 화두가 되는 겁니까?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사회적으로 복지 확대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2012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적극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사회가 ‘성장’을 넘어 ‘복지’를 논의하는 단계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요. 잘 아시다시피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이 아주 심화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소득양극화와 고용불안이 더욱 가중되면서 서민 복지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특히 지난 6.2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를 내세운 야당이 승리하면서 ‘성장’에 몰두했던 여당도 복지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죠. 이런 가운데 여당이 얼마 전 내년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면서 방학 중 결식아동급식지원비 등 서민복지예산을 대거 삭감한 것으로 나타나 여야공방이 증폭됐습니다.

: 이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나라는 이미 복지국가에 들어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한 게 논란을 가중시켰죠?

제: 그렇습니다. 내년 예산 중 복지부문이 약 86조원으로 전체 재정의 28%나 돼 ‘역대 최고 수준’이라며 그런 말을 했죠. 그러나 야당은 우리나라 복지재정이 선진국 평균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과 함께 예산 전체규모가 커지니 복지예산도 매해 ‘역대 최고’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중요한 건 국내총생산(GDP)대비 복지지출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들의 평균 복지지출은 GDP대비 20%대 인데, 우리는 7%대에 불과해 3분의 1 수준입니다. ‘고령화 저출산’이 이미 심각한 우리가 OECD평균 수준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해마다 복지지출을 크게 늘려야 하는데, 복지예산 증가율은 지난 2008년 12%에서 내년 6%로 오히려 낮아져 이에 역행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또 6% 정도 늘어나는 내년 예산에서 보금자리주택건설비 등 토목건설투자 같은 걸 빼면 실질적인 복지예산 증가율은 1% 정도밖에 안 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복지야말로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

: 그런데도 예산을 맡은 기획재정부장관까지 “복지 같은데 재원을 써버리면 남는 게 없다. 나라 형편이 되는 한도 내에서 복지를 즐겨야 한다”고 했죠?

제: 복지에 대한 행정부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4대강사업처럼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쓰는 돈은 성장에 도움이 되고, 복지 지출은 낭비일 뿐이라는 사고를 보여준 것이죠. 반면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경제전문가들은 민생을 안정시키는 복지투자야 말로 노동의 질을 높이고 내수 확대 등을 통해 경제의 역동성을 높여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 그런데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명인 박근혜 의원이 최근 ‘한국형 복지국가론’을 제시하는 등, 한나라당 내에서도 복지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있죠?

제: 그렇습니다. 박의원이 최근 ‘생애주기에 맞는 맞춤형 복지서비스’라는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 ‘생애주기’라는 게 뭔가요?

제: 아이를 낳았을 때, 한참 기르고 교육할 때, 또 노인이 되었을 때 등 생애의 각 단계를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 맞게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 그렇군요.

제: 이런 박 의원의 구상에 대해 ‘복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 의원이 ‘부자감세’를 주장했던 입장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데, 이런 복지를 위한 재원은 과연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청사진을 내놓지 않아 ‘공허한 립 서비스’라는 비판도 없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2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겨냥해서 여야가 복지국가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것이 복지에 대한 건설적인 논쟁과 합의로 이어진다면 바람직할 것입니다.

보편적 복지는 모두가 누려야 할 사회적 권리

: 야권이 ‘보편적 복지’를 내세운다면 여당은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제: 선별적 복지는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가난한 소수에 한정해서 복지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월 소득 일정액 이하인 가정을 기초생활지원대상자로 지정해서 생활비보조 등을 해주는 것, 또 가난한 학생만 골라 무상 급식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보편적 복지는 ‘소수 빈곤층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사회적 권리’로 복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 의료, 보육 등 핵심 영역에서 모든 국민에게 차별 없이 혜택을 주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의무교육대상인 초·중학생은 가정 형편과 상관없이 학교에서 모두 무료 점심을 주는 것, 일정 연령 이하의 어린이를 키우는 가정에는 국가가 보육비를 똑 같이 지원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 그런데 무상급식 논쟁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여권은 보편적 복지에 대해 ‘포퓰리즘’, 즉 대중 영합적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 그렇죠. 급식비를 낼 수 있는 부잣집 자녀까지 공짜로 밥을 먹인다면 더 시급한 교육현안을 해결하는 데 쓸 예산이 없어진다, 표를 얻으려 이런 정책을 동원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주장이죠. 반면 전면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자들도 의무교육인 초중학교의 학비는 안 내는 것처럼, 의무교육의 연장선에서 모든 학생에게 점심을 먹이자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따뜻한 밥 한 끼 먹게 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부모가 낸 세금으로 당당히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선별적 복지는 ‘돈 내는 사람 따로, 혜택 받는 사람 따로’ 이기 때문에 납세자의 저항이 있는데, 보편적 복지는 세금 낸 혜택을 모두가 실감할 수 있어서 그만큼 거부감이 줄고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기사는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와 제휴로 작성됩니다. 방송 내용은 12월 29일 <손에 잡히는 경제>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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