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미디어읽기] ‘곰탕족’과 ‘명품시계족’ 사이

‘키워드로 미디어읽기’는 구세라․홍윤정 기자가 대화 형식으로 풀어내는 미디어 이야기입니다. 2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이번 주 키워드는 드라마 <대물>과 영화 <부당거래>로 주목을 받고 있는 캐릭터 ‘검사’입니다.

구세라(이하 쿠) : 드라마 <신의 저울>!

 

 홍윤정(이하 홍):음.나는 드라마 <에덴의 동쪽>

 쿠: 드라마 <검사 프린세스>! 하나만 더하면 빙고다 큭큭.......

홍 : 영화 <부당거래>! 앗싸 빙고!

 

: 아 맞다, <부당거래>가 있었지!

홍 : 검사가 나온 작품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넌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어떤 검사 캐릭터가 기억에 남아?

쿠: 요즘 드라마 <대물>이 대세잖아. 하도야(권상우 분) 검사처럼 불의를 참지 못하는 열혈 검사에게 끌려. 이름만 들어도 느낌이 팍 오잖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직업정신이 잘 드러난다고나 할까. 극중에서 거물 국회의원 조배호(박근형 분)의 비리를 조사할 때도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잖아. "조사 시작은 본인 신원 확인부터 합니다." 서면조사도 만만치 않을 여당 대표를 붙들고 이름부터 직업, 주소까지 캐묻는 장면 말이야. 그러다가 칼을 맞고 죽을 뻔 했는데도 몸을 사리지 않잖아.

▲ 왼쪽부터 <대물>의 하도야(권상우), <부당거래>의 주양(류승범)

홍 : 아, 맞아! 예전에 영화 <공공의 적2>에서 강철중(설경구 분)도 그랬지. 다른 검사들과 달리 오직 범죄자들을 잡겠다는 일념 하에 뛰어다니잖아. 사실 한상우(정준호 분)를 잡는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어떤 이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는 악을 처단하는 검찰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정의로운 검사'의 모습을 잘 연기해냈지.

쿠 : 응, 그런 반면 영화 <부당거래>의 주양(류승범 분) 같은 캐릭터도 있잖아. 이름에 '양'이 들어갔다는 것만 봐도 뭔가 ‘양아치’같은 껄렁한 느낌을 주지 않니? 극중 태경기업 회장에게 "내가 태경을 까야 뭐 하는 사람인지 알겠어?" 하며 권력을 과시하지. 그러면서도 명품 시계, 골프 접대 등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생각하고 말이야. 얼마 전 시끄러웠던 ‘스폰서 검사’를 영화에 옮겨 놓은 느낌이랄까.

홍 : 생각해보면 다른 성격을 보여준 검사 캐릭터도 많았어. 드라마 <신의 저울>에 나오는 검사 장준하(송창의 분)에게는 정의 실현도 중요하지만, 동생의 살인 누명을 벗기려고 고군분투했던 측면이 있지. 오로지 사회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보기엔 어려운 부분이야. 드라마 <검사 프린세스>에서 마혜리(김소연 분)는 보통 검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리 '한정판 구두‘에 집착하는 쇼핑광이었고 말이야. '검사가 저래도 되나' 하고 다시 보게 되는 독특한 캐릭터였지. 그런데 이렇게 검사가 미디어에 많이 등장한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검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는 얘기가 아닐까?

쿠 : 그래. 어렸을 때 열광하며 봤던 만화영화 주인공은 대개 '정의의 사도'였잖아. 나쁜 악당들을 처단하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꼈지. 그런데 커가면서 우리는 정의의 사도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 결국 이를 대신할 존재를 찾게 되는데, 그런 인물이 현실에서는 ‘정의로운 검사’가 아닐까?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검사 하도야’ 캐릭터가 바로 그런 대중의 욕구를 잘 담아내는 것 같아. 드라마 <대물>에서 하도야는 아버지가 자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구두를 핥는 모욕을 당하자 울부짖지. 그는 '못된 국회의원을 밟을 수 있는 건 검사’라는 말에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 권력을 휘두르며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들을 혼내주고,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겠다는 하도야의 굳은 신념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해.

홍 : 미디어 속 의사 캐릭터가 사람들의 '생명줄'을 다룬다는 것 때문에 주목을 받는다면, 검사나 변호사 같은 법조인은 사람들의 '명예'와 '밥줄'을 다루기 때문에 관심을 끌지 않을까?

쿠 : 검사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상징적인 의미도 살펴볼 필요가 있어. 입신양명을 할 수 있는 여러 직업 중에 ‘검사’는 가장 대표적이지. 드라마 <신의 저울> 장준하(송창의 분)도 집안을 일으킬 가장 빠른 지름길로 사법고시를 선택하니까.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서 이동욱(연정훈 분)도 가난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검사가 되잖아. 이렇게 '검사'가 신분 상승이나 출세를 상징하게 된 배경이 있을 거야.

▲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에덴의 동쪽> 이동욱(연정훈 분) <신의 저울> 장준하(송창의 분) <공공의적 2> 강철중(설경구 분) <검사프린세스> 마혜리(김소연 분)

홍 : 검사는 대중들에게 ‘멀고도 가까운’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쿠 : 그게 무슨 뜻이야?

: 음, 잘 들어봐. 검사가 되기 위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우리 주변에 많아. 실제로 그들 중 사법고시 합격자가 나오기도 하고. 그걸 보면서 '나도 열심히 하면 저 친구처럼 될 수 있겠다'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생기지. 게다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이도 검사가 되는 경우가 없지 않으니까. 재벌가의 자제로 태어나는 문제하곤 다르다는 얘기지. '평범한 환경에서도 꿈꿀 수 있는 출세'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거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지. 따져보면 돈 없는 사람들이 검사가 되는 건 점점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잖아. 예전에는 혼자 절간에 가서 공부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노량진에서 학원이라도 다녀야 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지. 게다가 로스쿨이 생기면서 돈 없으면 법학 공부 자체를 하기가 힘든 구조가 돼 버렸어.

쿠 : 결국 사람들은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검사의 꿈을 미디어를 통해 대리만족하려 한다는 얘기네. 그렇다면 '주양' 같은 비리 검사 캐릭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음.....내가 예전에 읽었던 심리학책에 ‘만족의 지연’이라는 개념이 있더라.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무언가를 할 때는 지금 당장 만족을 하면 나중에 누리는 것이 적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견딘 뒤, 나중에 판검사, 변호사가 되어 전부 보상받아야겠다고 다짐한다는 거지. 그리고는 '힘들게 공부했는데 본전은 챙겨야 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정부패나 비리를 저지른다고 해. 스폰서 검사도 그런 성격이 분명 있으리라고 봐.

: 그렇지만 주양 같은 극단적인 캐릭터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믿기는 어렵겠지. 주양이 '검사와 스폰서'라는 현실을 묘사한다고 해도, 상당한 과장이 있다고 봐야할 거야.

쿠 : 좋은 검사 이미지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도야, 강철중 같은 검사가 실제 존재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현직 검사들도 그러던걸. 어쨌든 검사가 이상적으로 묘사될 때 검사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나아지는 게 사실이야. 드라마 <검사 프린세스>와 <대물> 덕분에 검사가 좀 더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느껴지게 됐다고 생각해.

  :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검사의 모습이 드라마 속에만 머물 때 시청자들의 박탈감은 더 커지지 않을까? 현실은 드라마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 더 답답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 그렇다면 오히려 드라마에서 검사 캐릭터를 더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쿠 : 사실적인 캐릭터가 없진 않았어. 예전에 <대한민국 변호사들>이나 <파트너> 같은 드라마를 보면 법조인 캐릭터들이 상당히 현실적이야. 대신 드라마가 크게 흥행하진 못했지.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다보면 복잡한 캐릭터가 되기 쉽잖아. 반면 드라마와 영화에서 사람들이 호응하는 캐릭터는 단순하고 극단적일 때가 많아. <부당거래>를 만든 류승완 감독도 주양 캐릭터에 대해 “뻔한 현실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피디수첩>을 보는 편이 낫다”고 하더라. 영화나 드라마는 오락적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캐릭터가 극단적일 때 그 요소가 극대화되기 때문에 과장을 했다는 것이지.

▲ SBS 드라마 '대물'과 영화 '부당거래'

: 그래서 부당거래와 대물에 나오는 검사들 사이에서 ‘5천만 원짜리 시계’와 ‘5천 원짜리 곰탕’의 차이가 생긴 것이군. 현실에서 한정판 명품시계를 그렇게 당당하게 차고 다닐 검사가 과연 있을까? 또 갑자기 5천 원짜리 곰탕을 끓이는 전직 검사는 어떻고. 검사라는 직업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기보다 극단적 캐릭터를 만들다보니 생긴 간극 같아.

쿠 : 우리나라 전문드라마에서 항상 지적받는 부분이 전문성은 잘 드러나지 않고 사랑, 권선징악에 치중한다는 것이지. 류승완 감독은 <부당거래>가 자신이 만든 작품 가운데 가장 전문가주의를 내세운 영화라고 했지만 악한 검사 캐릭터를 부각하다보니 전문성이 좀 떨어진 느낌이 있어. 대중들은 선과 악이 분명한 캐릭터만 좋아한다고 단순화하지 말고 좀 더 입체적 면모를 드러내려고 연출자들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 맞아. 대부분 검사 캐릭터는 '판타지'에 빠져있는 듯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복잡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연출, 또 거기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시청자가 늘었으면 좋겠어.
 
쿠 : 그래 이제 좀 더 현실적이면서도 정의감 넘치는 검사를 봤으면 좋겠어.

: 현실에서? 미디어에서?

쿠 :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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