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박칼린이 가르친 뮤지컬 배우들도 한몫 톡톡

 “도대체 뭐가 10년을 기억하게 하냐고요? 공기도 냄새도 사람도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는데요!”

▲ 10년 전 인도 조드푸르(Jodhpur)의 기억 속에 서 있는 현재의 서지우(임수정) ⓒ 김종욱 찾기

 인도 조드푸르(Jodhpur). 건물 벽면들이 온통 푸른색이어서 ‘블루 시티’로 불리는 곳. 그 거리를 잊지 못하는 여자를 남자는 ‘도대체, 왜?’하고 궁금해 한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여자 서지우(임수정). ‘첫사랑 찾기 사무소’의 고객이 된 그녀와 함께 길을 나선 남자 한기준(공유). 영화 <김종욱 찾기>는 10년 전 헤어진 첫사랑을 찾아 나선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첫 장면은 생각보다 묵직하다. 섭씨 49도의 뜨거운 인도 거리가 그녀의 기억 속에서 재현됐기 때문이다. 거리의 수많은 인파를 제치고 숨을 몰아쉬며 기차역으로 뛰어가는 지우. 안타깝게도 넘어지는 바람에 김종욱이 탄 기차를 코앞에서 놓치고 만다. 이제 그녀는 십년을 뛰어 넘어 서울 밤거리에 서 있다. “잘 있었어, 종욱씨?”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첫사랑’과 ‘지금의 사랑’, 누가 더 셀까?

 고객 감동이란 게 뭔지 제대로 한 번 보여주고 싶다며 잘 다니던 여행사를 때려치운 한기준. 그는 사업컨설팅을 해 준다고 대학 남자 동기들을 찾아다니며 사기를 친 여자 동기 덕에 창업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녀에게 사기를 당했으면서도 다들 그녀가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외치는 동기들을 보며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차리기로 한 것. 아버지(천호진)에게 등 떠밀려온 서지우는 그의 첫 손님이다. 딸이 괜찮은 남자에게 프로포즈를 받고서도 ‘첫사랑을 못 잊어’ 결혼을 안 한다니 아버지의 속은 타 들어갈 수밖에. 책임감과 의욕에 불타는 한기준. ‘대한민국 김종욱 1108명 리스트’ 까지 만들어 ‘과학적인’ 수색작업에 착수한다. 그런데 웬일? 김종욱을 찾는 동안 한기준은 점점 서지우에게 빠져들고 만다.

▲ 서지우 아버지(천호진)와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차린 한기준(공유) ⓒ 김종욱 찾기

 서지우는 왜 10년이나 지난 첫사랑 김종욱을 그토록 찾고 싶어 했을까? 영화 내내 스토리를 관통하는 것은 사람들이 가슴 속에 묻어둔 추억의 애틋함이다. 그녀가 인도의 푸른 거리를, 거기서 만난 김종욱을 왜 그렇게도 못 잊는지 한기준은 애가 탔지만, 서지우가 정말 찾고 싶어하는 것은 그것들과 함께 했던 그 ‘순수했던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영화는 은근슬쩍 얘기하고 있다.

 “풍경사진을 봤어요. 보는 순간 뭐랄까. 운명적인 기대감이 생겼다고 할까. 여행사에 물어봤더니 인도래요.”

10년 전 서지우가 인도 여행을 떠난 건 ‘운명적인’ 선택이었다. 그 곳에서 첫사랑을 만난 것도. 그러면 현실에서 만난 한기준은 뭘까? 그녀가 애타게 찾는 운명의 진짜 주인공은 김종욱일까, 아니면 한기준일까.

▲ 김종욱을 찾아다니는 서지우(임수정)와 한기준(공유) ⓒ 김종욱 찾기

운명적 사랑은 따로 있는 걸까

 “인연을 붙잡아야 운명이 되는 거지.”

 운명은 따로 있는 게 아니냐고, 만날 사람은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되는 거 아니냐고 묻는 딸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김종욱 찾기>는 숱하게 많은 영화에서 보여줬던 ‘운명적 사랑’ 얘기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속 뮤지컬 ‘라스트 쇼(Last Show)’는 그 얘기를 결코 진부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하나의 세트와 의상으로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원 셋(One Set)’ 뮤지컬 장면에서 여자 주인공이 ‘펑크’를 내자 무대 감독인 서지우가 대신 무대에 섰다. 그 때 그녀가 “사랑을 두려워했던 나, 이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아름답고, 의미심장했다. 
 
영화 속 뮤지컬의 주인공들이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곳은 ‘데스티니 클럽(destiny club)’이다. 지우는 이 간판을 보며 김종욱을 만났던 인도의 ‘데스티니 호텔(destiny hotel)’을 떠올린다. 그런데 진짜 김종욱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하러 달려온 기준이 지우의 공연을 보며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그 순간, 기준의 눈에도 운명이라는 글자 ‘데스티니’가 유독 반짝거린다. 

▲ 무대감독 서지우(임수정)가 영화 속 뮤지컬 '라스트 쇼' 무대에 선 모습 ⓒ 김종욱 찾기

찾았어요, 그 사람

 영화의 후반부까지 관객들은 서지우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김종욱을 공유의 1인 2역으로 보면서 ‘진짜 김종욱은 어떤 모습일까’를 궁금해 하게 된다. 어린 시절 ‘보물찾기’를 할 때처럼 마음 졸이는 긴장감이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다. 한기준과 서지우가 ‘대한민국 김종욱’들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오나라, 신성록, 엄기준, 원기준, 오만석, 김무열, 최지호, 김동욱, 정성화, 정준하 등 진짜 뮤지컬 배우들을 깜짝 ‘카메오’로 맞닥뜨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영화는 이미 오랫동안 뮤지컬로 사랑받아 온 <김종욱 찾기>가 원작이다. 자칫 평범한 사랑 타령이 될 수 있었던 영화에 새 숨을 불어넣은 건 원작인 뮤지컬의 힘. 이 영화를 계기로 뮤지컬 감독에서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장유정씨는 평소 존경하던 박칼린 감독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극 중 뮤지컬 배우들의 보이스 코치를 맡아달라고. 박 감독의 치밀한 솜씨 덕에 영화는 장 감독의 소원대로 관객들에게 ‘뮤지컬 한 편을 새로 만나는 느낌’을 성공적으로 전하고 있다.

 “인도가 가지고 있는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무엇이 있어요.”
 “아침에는 짙은 안개에 뒤덮여 보이지 않다가 안개가 걷히면서 드러나는 인도의 모습이 마치 첫사랑에 대한 이미지와 같았어요.”

▲ 10년 전 떠난 인도 여행지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서지우(임수정) ⓒ 김종욱 찾기

 인도의 이국적이고 고혹적인 모습을 잊지 못했다는 장유정 감독. 그녀가 국내 최초 인도 현지 촬영을 고집했다는 점도 올 겨울 따뜻한 영화 한 편을 만나려는 관객들에게 반가운 선물이다.

데뷔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을 맡았다는 임수정은 점퍼와 운동화 차림에 정리 안 된 긴 파마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는 지우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했다. 제대 후 첫 영화인데도 ‘2대8 가르마’의 엉뚱한 한기준과 하얀 셔츠 한 장만 입어도 멋진 10년 전 김종욱을 자유자재로 소화해낸 공유 역시 매력이 철철 넘쳤다. 3년 전 열애설에 휩싸인 적이 있는 두 사람은 ‘정말 사귀는 것 아니야?’하고 눈을 동그랗게 뜰 만큼 잘 어울렸다.

공유가 직접 부른 배경음악(O.S.T.) ‘두번째 사랑’을 들으며 가슴 설레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나면 청춘남녀들은 올 겨울이 바빠질 것이다. 솔로는 당장이라도 운명적 사랑을 찾기 위해, 커플은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을 운명으로 만들기 위해. 이번 크리스마스엔 각자의 ‘김종욱’을 찾아나서는 게 어떨까. 그리고 이렇게 외치자. “찾았어요,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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